메시지129,마태22 온유한 자는 복이 있나니
“온유한 자는 복이 있나니 그들이 땅을 기업으로 받을 것임이요” (마태복음 5:5)
서론: 예수님께서는 “온유한 자는 복이 있나니 그들이 땅을 기업으로 받을 것”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온유한 자가 복을 받고 땅을 차지한다는 말씀입니다. 온유(溫柔, 헬라어 프라오테스 πραότης)로 번역된 말을 간단하게 정의하면 강자(强者)의 미덕이며 거듭난 그리스도인의 성품입니다. 온유한 사람은 하나님 뜻을 이루기 위해 자기의 정당한 자유와 권리까지 절제하고 양보합니다. 치열한 생존경쟁 속에서 자기의 정당한 자유와 권리까지 절제하고 양보하는 사람이 어떻게 땅을 차지할 수 있겠습니까? 그러나 예수님께서 온유한 자가 땅을 차지한다고 말씀하셨으면 온유한 자가 땅을 차지하고 온유한 자가 물질의 축복을 받습니다. 예수님 말씀은 만고불변의 진리이기 때문입니다.
이 시간에는 “온유한 자는 복이 있나니”란 제목으로 함께 은혜를 받고자 합니다.
1. 그리스도인은 온유한 사람이 되셔야 합니다.
온유에 대해 가장 많은 글을 쓴 사람은 고대 그리스의 철학자 아리스토텔레스(Aristoteles BC 384-BC 322)입니다. 아리스토텔레스는 모든 미덕(美德)을 두 극단(極端) 사이의 중용(中庸)으로 보았습니다. 너무 넘치거나 너무 모자라지 않는 중용을 온유로 정의한 것입니다. 예를 들면 한 사람은 너무 낭비가 심하고, 다른 한 사람은 너무 인색합니다. 너무 낭비적인 사람도 문제지만, 너무 인색한 구두쇠도 문제가 있습니다. 이상적인 사람은 너무 낭비하지도 않고 너무 인색하지도 않는 사람입니다. 낭비와 인색함의 중간에 온유함이 있는 것입니다. 또 한 사람은 너무 화를 잘 내고 다른 한 사람은 도무지 화를 낼 줄 모릅니다. 습관적으로 화를 내는 것도 문제지만, 화를 내야 할 때에 화를 내지 않는 것도 문제가 있습니다. 평소에는 화를 내지 않지만 화를 내야 할 때에는 화를 내서 책망하고 꾸짖고 분노할 줄 아는 사람이 온유한 사람입니다. 이처럼 온유란 두 극단 사이의 중용에 속합니다.
다음으로 온유의 뜻으로 쓰인 헬라어 프라오테스(πραότης)는 잘 훈련되고 잘 길들여진 가축에 사용되었습니다. 주인은 잘 훈련되고 길들여진 소나 말이나 당나귀 같은 가축을 이용해서 밭을 갈고 물건을 나르고 일을 합니다. 온유한 사람은 자신의 감정과 행동을 콘트롤하고 절제할 수 있는 사람이라는 뜻입니다. 그러나 인간은 자신의 마음대로 자신의 감정을 절제하거나 제어하지 못합니다. 그러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인간보다 강한 힘과 능력으로 자신을 제어할 수 있는 분의 도움을 받아야 합니다. 그분이 누굽니까? 하나님입니다.
그러므로 온유한 사람은 하나님 은혜를 받고 성령으로 거듭 난 사람입니다. 온유한 사람은 성령으로 거듭 난 사람이지, 태어날 때부터 온유한 사람이 아닙니다. 성경은 잠언 16:32,에서 “노하기를 더디하는 자는 용사보다 낫고 자기의 마음을 다스리는 자는 성을 빼앗는 자보다 낫다” 말씀하고 있습니다. 자기 마음을 다스릴 수 있는 사람이 강한 사람이며 온유한 사람입니다. 헬라인들은 힘과 부드러움, 능력과 절제가 조화된 사람을 온유한 사람이라고 생각했습니다.
또 온유한 사람은 자기 자신에게는 엄격하지만 다른 사람에게는 부드럽고 관대합니다. 성경 사무엘하 16장에는 다윗 왕이 그의 아들 ‘압살롬’의 반란으로 피난을 간 장면이 기록돼 있습니다. 압살롬의 반란으로 피난길에 오른 다윗 왕이 ‘바후림’이란 곳에 이르렀을 때, 베냐민 지파(支派)의 ‘시므이’란 사람이 다윗 왕을 따라오며 비난과 저주를 퍼부었습니다. 다윗이 피난길에 올랐지만 다윗은 여전히 이스라엘 왕입니다. 그리고 이스라엘의 수많은 장수가 다윗을 호위하여 수행하고 있습니다.
시므이가 따라오면서 계속 다윗 왕을 저주하자, ‘아비새’란 장수가 다윗에게 “죽은 개 같은 자가 내 주 왕을 저주하게 버려둘 수 없습니다. 내가 단칼에 시므이의 목을 베어 오겠다.”고 말했습니다. 하나님께서 기름 부어 세우신 왕을 저주했기 때문에 시므이는 백 번 죽어도 마땅한 죄인입니다. 그러나 다윗 왕은 아비새에게 “내 몸에서 난 아들도 내 생명을 해치려고 하는데 하물며 이 베냐민 사람이야 말할 게 있겠느냐”며 “시므이가 저주하도록 버려두라”고 말했습니다. 다윗은 이스라엘 왕으로 시므이를 죽일 수 있는 권한이 있었지만 “내 몸에서 난 내 자식도 나를 죽이려고 하는데 남을 심판할 수 있겠느냐?”고 말린 것입니다. 온유한 사람은 다윗처럼 자신에게는 엄격하지만 다른 사람에게는 관대합니다.
또 온유한 사람은 개인적인 문제에는 멸시와 비난을 받아도 참고 절제하지만, 공공의 이익과 정의와 진리의 문제에는 강하고 엄격하게 대처합니다. 온유한 사람은 공공의 이익과 정의의 문제에는 침묵하거나 물러서지 않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온유한 자가 복이 있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온유는 두 극단 사이의 중용으로 온유한 사람은 절제할 줄 아는 사람이고, 온유한 사람은 성령으로 거듭난 사람이며, 온유한 사람은 자신에게는 엄격하지만 남에게는 관대한 사람이라고 말씀드렸습니다. 온유한 사람의 모델은 예수님입니다. 예수님은 악하고 불의한 이스라엘 종교지도자들과 어리석고 무지한 백성들의 불순종을 참고 인내하셨습니다. 그리스도인은 온유한 사람이 되셔야 한다는 것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2. 온유한 사람이 복을 받고 온유한 사람이 신앙과 인생에 승리합니다.
예수님께서는 “온유한 자는 복이 있나니 그들이 땅을 기업으로 받을 것”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온유한 자가 자족하는 마음으로 평화를 누리고 영적인 복을 받는다는 것은 몰라도 온유한 자가 땅을 차지하고 물질의 복을 받는다는 것은 선뜻 이해가 되지 않습니다. 성경에서 온유한 사람이 땅을 차지하고 온유한 사람이 물질의 축복을 받은 경우가 있습니까? 있습니다. 누굽니까? 믿음의 조상 아브라함입니다. 창세기 13장에는 아브라함과 그의 조카 ‘롯’이 헤어진 장면이 기록돼 있습니다. 아브라함은 ‘나홀’과 ‘하란’ 이렇게 삼 형제였는데, 막내 동생 하란이 ‘롯’을 낳고 일찍 세상을 떠났기 때문에 아브라함은 조카 롯을 자기 아들처럼 기르고 돌봤습니다. 아브라함은 조카 롯이 장성한 후에도 유목민으로 가축을 치면서 롯과 한집에서 살았는데, 아브라함과 롯의 가축의 숫자가 늘어나고, 목축의 규모가 커지자, 땅도 비좁고 물과 풀이 부족해서, 아브라함의 목자와 롯의 목자가 날마다 다투고 싸웠습니다.
그래서 어느 날 아브라함은 조카 롯과 헤어지기로 마음먹고 롯에게 말했습니다. “우리는 한 친척이다. 나나 너나 내 목자나 네 목자나 서로 다투게 하지 말자. 네 앞에 온 땅이 있지 아니하냐 나를 떠나가라. 네가 왼쪽으로 땅을 차지하면 나는 오른쪽으로 가고, 네가 오른쪽으로 땅을 차지하면 나는 왼쪽으로 가겠다.”고 말했습니다. 아브라함은 롯의 큰아버지와 부족의 족장으로, 가족과 부족의 모든 일을 결정할 수 있는 권한을 가지고 있었지만, 조카 롯에게 롯이 원하는 땅을 선택해서 떠나도록 양보한 것입니다.
롯은 물과 풀이 넉넉한 요단 들녘을 선택해서 아브라함을 떠났고, 아브라함은 가나안 땅에 남았습니다. 목축을 하는 사람에게 물과 풀이 넉넉한 땅보다 좋은 땅은 없습니다. 롯이 좋은 땅을 선택해서 아브라함을 떠난 것입니다. 아브라함과 롯, 두 사람의 운명이 어떻게 되었습니까? 물과 풀이 넉넉한 요단 들녘으로 떠난 롯은 거처를 옮겨 소돔과 고모라로 들어갔는데, 소돔과 고모라가 멸망할 때 롯도 함께 멸망하고 말았습니다. 반면에 롯에게 양보하고 가나안 땅에 머문 아브라함은 이스라엘 민족의 조상이 됐고, 오늘날 가나안 땅은 아브라함의 후손의 땅이 되었습니다. 이기적인 롯이 땅을 차지했습니까? 온유한 아브라함이 땅을 차지했습니까? 롯처럼 이기적이고 배은망덕한 인간은 절대로 복을 받을 수 없고, 신앙과 인생에 승리할 수 없습니다. 아브라함처럼 온유한 자가 복을 받고, 온유한 사람이 넓은 땅을 소유하고, 온유한 사람이 신앙과 인생에 승리한다는 것을 명심하셔야 합니다.
다음으로 온유한 자가 복을 받는 것은 하나님께서 온유한 자를 축복해주시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인생에서 자주 목도하는 바입니다만, 악인의 승리는 잠깐이며 악인의 잔치는 절대로 오래가지 않습니다. 온유한 자의 행동이 어리석게 보이고, 손해를 보는 것 같아도, 결국은 온유한 자가 승리합니다. 하나님께서 온유한 자를 축복해주시기 때문입니다. 또 온유한 자가 복이 있는 것은 주위의 사람들과 좋은 관계를 유지하여 친구와 이웃의 사랑과 도움을 받습니다. 그리고 온유한 자는 법과 질서를 잘 지켜 국가와 법의 보호를 받습니다. 국가와 법의 보호를 받고 좋은 친구와 이웃의 사랑과 도움을 받는다면, 성공하지 않을 수 없고, 복을 받지 않을 수 없을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온유한 자를 축복해주시기 때문에 온유한 자가 복을 받고 승리하는 것입니다.
또 하나님께서는 온유한 사람을 큰 인물과 큰 그릇으로 사용하십니다. 성경은 민수기 12:3,에서 “이 사람 모세는 온유함이 지면의 모든 사람보다 더하더라.” 말씀하고 있습니다. 모세보다 온유한 사람은 없다는 뜻입니다. 하나님은 온유한 모세를 큰 인물과 큰 그릇으로 사용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 선지자에게 말씀하실 때는 꿈이나 이상(異像)으로 말씀하셨지만, 모세와는 직접 대면하여 말씀하셨습니다. 모세는 하나님 앞에 가장 온유하고 충성된 일군이었기 때문입니다. 온유한 사람 모세는 애굽의 압제에서 고통 받는 이스라엘 민족을 구원하여 약속의 땅 가나안으로 인도했고, 하나님께 율법을 받아 이스라엘 백성에게 율법을 전하고 율법을 가르친 이스라엘 민족의 지도자가 되었습니다. 지도자에게 가장 필요한 덕목이 무엇일까요? 온유함입니다. 아무리 지혜와 용기가 있어도 온유함이 없는 사람은 지도자가 되면 안 됩니다. 온유함이 없는 지도자는 김일성이나 모택동이나 스탈린처럼 잔인한 폭군과 독재자가 되기 때문입니다.
성경은 갈라디아서 5:23,에서 온유를 성령의 아홉 가지 열매 중 하나로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성령으로 거듭 나지 아니하면, 온유한 사람이 될 수 없습니다. 그리스도인이 아직도 온유한 성품을 갖지 못했다면, 그 사람은 성령의 뜨거운 은혜를 체험하지 못했든지, 거듭 나지 못한 사람입니다. 칼빈 선생님은 “우리가 그리스도의 양 떼 취급을 받으려면 양이 되어야 한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양이 된다는 말이 무슨 뜻입니까? 그리스도인은 하나님의 양처럼 온유한 사람이 되어야 한다는 말씀입니다. 오늘날 한국 교회에는 양이 없습니다. 양을 발로 차고 목자에게 대드는 염소들로 가득합니다. 똑똑한 사람은 많아도 온유한 사람은 많지 않습니다. 오늘날 한국 교회와 그리스도인에게 필요한 것은 신학지식이나 기도훈련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어린 양처럼 온유한 사람이 되는 것부터 배워야 합니다.
또 온유한 자는 함부로 비판하지 않습니다. 그리고 온유한 자는 자기가 당한 손해나 인간의 배은망덕을 오래 기억하지 않습니다. 온유한 자는 힘이 있고, 상대를 징벌하고 보복할 수 있는 정당한 권리를 가지고 있지만 참고 인내합니다. 온유한 자는 불이익과 부당한 현실 앞에서도, 합력하여 선을 이루시는 하나님의 섭리를 믿고, 참고 인내합니다. 또 온유한 사람은 화를 내야 할 때는 화를 내지만, 온유한 사람의 분노는 절제된 분노이며, 이성적인 분노입니다. 하나님은 온유한 사람을 크게 사용하십니다. 온유한 사람 아브라함은 믿음의 조상이 되었고 온유한 사람 모세는 이스라엘 민족의 구원자가 되었습니다.
온유한 자가 땅을 기업으로 받는다는 말씀은 시편 37:11,을 인용하신 말씀입니다. 시편 37편에서 말하는 땅은 가나안인데 가나안은 영적으로 천국을 상징합니다. 온유한 자가 궁극적으로 얻을 땅은 천국인 것입니다. 온유한 자가 천국에 들어가지만, 온유한 자는 이 세상에서도 하나님 은혜와 축복으로, 많은 것을 소유하고 넓은 땅을 차지합니다. 세상에서 가장 강한 사람은 온유한 사람입니다. 온유한 사람이 복을 받고, 온유한 사람이 교회에 덕을 세우며, 온유한 사람이 신앙과 인생에 승리한다는 것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말씀을 맺겠습니다. 온유한 자의 모델은 예수님입니다. 예수님은 전능하신 하나님이시지만 인간을 죄에서 구원하시기 위해 십자가에 못 박혀 돌아가셨습니다. 온유하신 예수님께서 온 인류의 구원자가 되신 것입니다. 지금까지 인류 역사를 발전시키고 세상을 변화시킨 사람들은 강한 자가 아니라 온유한 사람이었습니다. 그리스도인은 온유한 사람이 되셔야 한다는 것을 명심하셔야 합니다. 온유한 성품은 구원받은 증거요 온유한 사람은 구원받은 그리스도인을 상징합니다. 지금까지 살아온 성도 여러분의 삶을 한번 돌아보시고 성도 여러분이 얼마나 온유한 사람으로 살았는지 여러분의 삶을 스스로 평가하고 판단하는 시간을 가져보시기 바랍니다. 예수님께서는 온유한 사람이 복이 있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온유한 사람으로 신앙과 인생에 승리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2024, 7, 2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