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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를 본받으라

진리의증인 2023. 12. 1. 06:54

유튜브: 진리의 증인

 

6형제들아 내가 너희를 위하여 이 일에 나와 아볼로를 들어서 본을 보였으니 이는 너희로 하여금 기록된 말씀 밖으로 넘어가지 말라 한 것을 우리에게서 배워 서로 대적하여 교만한 마음을 가지지 말게 하려 함이라, 7누가 너를 남달리 구별하였느냐, 네게 있는 것 중에 받지 아니한 것이 무엇이냐, 네가 받았은즉 어찌하여 받지 아니한 것 같이 자랑하느냐, 8너희가 이미 배부르며 이미 풍성하며 우리 없이도 왕이 되었도다, 우리가 너희와 함께 왕 노릇 하기 위하여 참으로 너희가 왕이 되기를 원하노라, 9내가 생각하건대 하나님이 사도인 우리를 죽이기로 작정된 자 같이 끄트머리에 두셨으매 우리는 세계 곧 천사와 사람에게 구경거리가 되었노라, 10우리는 그리스도 때문에 어리석으나 너희는 그리스도 안에서 지혜롭고, 우리는 약하나 너희는 강하고, 너희는 존귀하나 우리는 비천하여 11바로 이 시각까지 우리가 주리고 목마르며 헐벗고 매맞으며 정처가 없고 12또 수고하여 친히 손으로 일을 하며 모욕을 당한즉 축복하고 박해를 받은즉 참고, 13비방을 받은즉 권면하니 우리가 지금까지 세상의 더러운 것과 만물의 찌꺼기 같이 되었도다, 14내가 너희를 부끄럽게 하려고 이것을 쓰는 것이 아니라 오직 너희를 내 사랑하는 자녀 같이 권하려 하는 것이라, 15그리스도 안에서 일 만 스승이 있으되 아버지는 많지 아니하니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내가 복음으로써 너희를 낳았음이라, 16그러므로 내가 너희에게 권하노니 너희는 나를 본받는 자가 되라”   (고린도전서 4:6-16)

 

서론: 성경 고린도 전후서는 바울 사도께서 고린도 교회에 보낸 서신입니다. 고린도 교회는 바울 사도께서 2차 전도여행 중에 고린도에 16개월 동안 머물면서 전도하여 세운 교회입니다(사도행전 18:1-17). 고린도는 고대 헬라제국 시대부터 세계의 교통과 상업의 중심지로 발달했습니다. 문명의 발달과 물질의 풍요는 인간의 삶의 질을 개선하는 긍정적인 면과 타락과 죄악의 확산이라는 부정적인 면을 함께 가지고 있습니다. 바울 사도는 고린도 교회 성도들에게 나를 본받는 자가 되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나를 본받으라는 뜻입니다.

이 시간에는 나를 본받으라는 제목으로 함께 은혜를 받고자 합니다.

 

1. “나를 본받으라는 말씀은 바울 사도의 신앙과 행위를 본받으라는 말씀입니다.

바울 사도께서는 나를 본받는 자가 되라고 말씀하셨습니다(4:16). 바울 사도의 신앙과 행위를 본받으라는 말씀입니다. 그리스도인의 신앙과 행위의 법과 기준은 성경입니다. 그러므로 성경 말씀대로 살아가도록 가르쳐야 하는데 바울 사도는 나를 본받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나를 본받으라고 말씀하셨느냐? 초대교회는 성경이 없었기 때문입니다.

초대교회 때는 신약성경은 아직 나오지 않았고 구약성경만 있었습니다. 구약성경도 오늘날 우리가 읽고 있는 39권의 통일된 성경이 아니라 검증되지 않은 수많은 종류의 성경 사본(寫本)들이 낱권으로 유통됐는데 이단적인 사상을 가진 사본들도 많이 있었습니다. 지금 우리가 읽고 있는 신구약 성경은 4세기 말 카르타고(AD 394, 북아프리카 튀니지 수도 튀니스)의 세계 종교회의에서 공식으로 채택되었습니다. 그리고 초대교회 때는 오늘날과 같은 종이가 없었기 때문에 파피루스 같은 나무껍질이나 양가죽으로 만든 양피지(羊皮紙)에 문자를 기록했습니다. 구약성경은 두루마리로 양피지에 기록했는데 성경을 양피지에 기록하면 부피가 얼마나 크고 값이 얼마나 비싸겠습니까? 그래서 성경은 회당과 같은 공공장소에만 보관됐는데 이사야나 예레미야처럼 잘 알려지고 많이 읽히는 책만 낱권으로 몇 권씩 보관돼 있었습니다. 일반 성도들이 성경을 소유한다는 것은 꿈도 꿀 수 없었습니다.

초대교회 때는 신약성경은 나오지 않았고 구약성경은 부피가 크고, 값이 비싸고, 희귀해서 일반 성도들은 성경을 읽거나 성경을 접할 수가 없었습니다. 이런 환경에서 복음을 전하고 신앙교육을 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복음을 전하는 사람이 신앙적인 삶과 거룩한 행실로 신앙의 본을 보여야 합니다. 내가 믿는 예수가 진리라는 것을 거룩한 삶과 의로운 행실로 보여주고 그리스도인은 이렇게 살아야 한다고 본을 보여 가르쳐야 합니다.

2천 년 전 바울 사도가 복음을 전할 때는 성경도 없었고, 교회건물도 없었으며, 목사도 턱없이 부족하고, 자유롭게 모일 수도 없었습니다. 왜냐하면 로마제국의 황제를 살아 있는 신으로 숭배하도록 강요했기 때문입니다. 반면에 예수 때문에 받는 박해와 불이익은 말로 표현할 수 없을 정도로 극심했습니다. 예수를 믿으면 불순한 인간으로 낙인찍혀 직장에서 쫓겨났으며, 재산을 빼앗기고, 감옥에 갇히고, 생명의 위협을 받았습니다. 성경도 없고, 목사나 선교사도 턱없이 부족하고, 공개적으로 복음을 전할 수 없었기 때문에, 사람들이 보고, 깨닫고, 감동을 받을 수 있도록 거룩한 행실과 선하고 의로운 삶으로 복음을 전한 것입니다. 바울 사도가 고린도에 1년 반 동안 머물면서 복음을 전해서 교회를 세웠기 때문에, 고린도교회 성도들은 바울 사도의 삶을 통해 신앙생활에 대해 많이 보고 배웠을 것입니다. 바울 사도는 6절에서 형제들아 내가 너희를 위하여 이 일에 나와 아볼로를 들어서 본을 보였다고 말씀하셨습니다. 바울 사도와 아볼로가 고린도에 있을 때 예수를 어떻게 믿고 신앙생활은 어떻게 하는지 그들의 삶을 통해 가르치고 본을 보였다는 말씀입니다.

그리스도인은 바울 사도처럼 나를 본받으라.”고 말할 수 있는 진실한 성도가 돼야 하며 세상 사람들이 본받고자 하는 신앙과 인격의 모델이 돼야 합니다. 그리스도인이 세상의 빛과 소금이 돼야 하나님께서 영광을 받으시고, 전도가 되고, 교회가 부흥합니다. 그리고 그리스도인이 세상의 빛과 소금이 돼야 교회가 세상 사람들에게 선한 영향력을 끼칠 수 있습니다. 교회가 세상으로부터 비난받고 전도가 되지 않는 것은 교회가 세상의 빛과 소금이 되지 못하고 그리스도인이 세상의 빛과 소금으로 살아가지 않기 때문입니다. 바울 사도처럼 가정이나 직장이나 누구 앞에서나 나를 본받으라고 말할 수 있는 진실한 그리스도인이 되셔야 한다는 것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2. 그리스도인은 성경 말씀을 벗어나거나 성경 말씀을 넘어가면 안 됩니다.

바울 사도는 6절에서 기록된 말씀 밖으로 넘어가지 않게 하려고 본을 보였다.”고 말씀하셨습니다. 기록된 말씀은 성경을 말하는데 신약성경이 아니라 구약성경입니다. 성경 말씀에서 벗어나거나 성경 말씀에 역행하는 삶을 살면 안 된다는 말씀입니다. 왜냐하면 성경 말씀은 만고불변의 진리로 신앙과 행위의 유일한 법과 기준이 되기 때문입니다. 바울 사도는 디모데후서 3:16,에서 모든 성경은 하나님의 감동으로 된 것으로 교훈과 책망과 바르게 함과 의로 교육하기에 유익하니 이는 하나님의 사람으로 온전하게 하며 모든 선한 일을 행할 능력을 갖추게 하려 함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부족하고 허물진 인간에게 살아서 역사하는 하나님 말씀이 들어가야 선하고 의로운 사람으로 거듭난다는 말씀입니다.

또 히브리서 기자는 하나님의 말씀은 살아 있고 활력이 있어 좌우에 날선 어떤 검보다도 예리하여 혼과 영과 및 관절과 골수를 찔러 쪼개기까지 하며 또 마음의 생각과 뜻을 판단한다.”고 말씀하셨습니다(히브리서 4:12). 살아서 역사하는 하나님 말씀이 들어가야 자신의 죄를 깨닫고 새로운 피조물로 거듭나는 중생의 역사가 일어납니다. 하나님 말씀이 살아서 역사하는 것은 성경 말씀을 읽거나, 성경 말씀을 들을 때, 성령께서 역사하사, 죄인을 회개시키고, 죄의 유혹을 받는 사람을 깨우쳐, 바른길로 인도하시기 때문입니다. 하나님 말씀은 만고불변의 진리로 신앙과 행위의 유일한 법과 기준이 되기 때문에 성경 말씀에 역행하거나 성경 말씀을 넘어가면 안 된다는 것을 명심하셔야 합니다.

인간이 세운 법과 제도는 세월이 흐르면 바뀌고 수정되고 보완됩니다. 왜냐하면 인간이 만들어 놓은 법과 제도는 불완전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하나님 말씀은 영원히 변하지 않는 만고불변의 진리입니다. 그러므로 그리스도인은 하나님 말씀을 잘 지키고 하나님 말씀에 순종해야 합니다. 야고보 사도는 네가 만일 율법을 판단하면 율법의 준행자가 아니요 재판관이다고 말씀하셨습니다(야고보서 4:11). 인간은 하나님 말씀을 판단하거나 비판할 권한이 없다는 말씀입니다. 율법을 세우신 분과 율법에 의해 의인과 악인을 구별하시고 세상을 심판하시는 분이 누굽니까? 하나님입니다. 성경 말씀은 만고불변의 진리로 신앙과 행위의 유일한 법과 기준이기 때문에 그리스도인은 성경 말씀을 벗어나거나 성경 말씀에 역행하는 삶을 살면 안 된다는 것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3. 그리스도인은 겸손해야 합니다.

바울 사도는 7절에서 고린도 교회 성도들의 교만을 책망하셨습니다. “누가 너를 남달리 구별하였느냐, 네게 있는 것 중에 받지 아니한 것이 무엇이냐, 네가 받았은즉 어찌하여 받지 아니한 것 같이 자랑하느냐고 책망하셨습니다. 바울 사도는 고린도 교회 성도들의 세 가지의 교만을 책망하셨습니다. 첫째, 바울 사도는 고린도 교회 성도들이 구별하고 차별한다고 책망하셨습니다. 예를 들면 유식한 사람은 유식한 사람끼리, 부자는 부자끼리, 젊은 사람은 젊은 사람끼리 교제합니다. 그러면 유식하지 못한 사람과, 가난한 사람과, 나이가 많은 사람은 어디로 갑니까? 그리스도인은 예수님의 지체입니다. 그러므로 교회에서 성도를 구별하고 차별하는 것은 예수님의 몸을 찢어서 나누는 범죄행위가 됩니다. 부모가 성공하고 똑똑한 자식만 사랑합니까? 부모는 성공한 자식보다 실패한 자식과 부족하고 못난 자식에게 더 관심을 갖습니다. 하나님의 사랑도 그와 같습니다. 하나님도 가난하고 약하고 부족한 사람에게 더 관심을 가지십니다. 그런데 교회에서 차별하고 멸시하면 그 죄가 얼마나 크겠습니까? 교회에서 믿음의 형제를 멸시하고 차별하면 안 된다는 것을 명심하셔야 합니다.

둘째, 바울 사도는 고린도 교회 성도들에게 자랑하지 말라고 책망하셨습니다. “네게 있는 것 중에 받지 아니한 것이 무엇이냐, 네가 받았은즉 어찌하여 받지 아니한 것 같이 자랑하느냐?”고 책망하셨습니다. 고린도 교회 성도들이 자랑한 것이 무엇이냐? 영적 은사입니다. 고린도 교회 성도들에게 영적 은사를 주신 분이 누굽니까? 하나님입니다. 그러나 고린도 교회 성도들은 하나님께서 주신 영적 은사를 마치 자기들 것처럼 자랑하고 자기 은사가 최고라고 자랑했습니다. “나는 병 고치는 은사를 받았다, 나는 예언의 은사를 받았다, 나는 방언의 은사를 받았다고 은사를 자랑한 것입니다. 그리고 다른 사람의 은사는 자기 은사보다 못한 은사라고 교만을 떨었습니다. 은사가 교회에 다툼과 분쟁만 일으킨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은사를 왜 주셨습니까? 하나님 일 하라고 주셨습니다. 그러므로 은사를 받은 사람은 하나님과 교회를 위해 열심히 일해야 합니다. 교회에 꼭 필요한 은사와 최고의 은사가 무엇이냐? 섬기고 봉사하는 사랑의 은사입니다. 방언이나 예언이나 병 고치는 은사는 없어도 교회 운영에 아무 지장이 없습니다. 그러나 섬기고 봉사하는 사랑의 은사가 없으면 교회를 운영할 수 없습니다. 섬기고 봉사하는 사람이 없으면 어떻게 하나님의 사랑과 은혜를 베풀 수 있겠습니까? 은사의 가치는 은사의 성격에 있는 것이 아니라 그 은사가 하나님과 교회에 얼마나 유익하게 사용되는가에 따라 결정됩니다. 은사를 자랑하거나 다른 사람의 은사를 멸시하는 것은 하나님 앞에 죄가 된다는 것을 명심하셔야 합니다.

셋째, 바울 사도는 고린도 교회 성도들의 영적 자만을 책망하셨습니다. 본문 8절에서 너희가 이미 배부르며 이미 풍성하며 우리 없이도 왕이 되었다고 책망하셨습니다. 고린도 교회 성도들은 우리는 신앙과 행위가 완전하기 때문에 더 이상 누구의 가르침이나 도움을 받을 필요가 없다고 주장했기 때문입니다. 바울 사도는 똑똑하고 잘났다고 자랑하는 고린도 교회 성도들에게 우리는 그리스도 때문에 어리석으나 너희는 그리스도 안에서 지혜롭고, 우리는 약하나 너희는 강하고, 너희는 존귀하나 우리는 비천하여, 바로 이 시간까지 우리가 주리고 목마르며 헐벗고 매 맞으며 정처가 없고......모욕을 당한즉 축복하고, 핍박을 당한즉 참고......우리가 지금까지 세상의 더러운 것과 만물의 찌꺼기같이 되었다고 신랄하게 책망하셨습니다(4:9-13). 바울 사도는 헐벗고, 굶주리고, 옥에 갇히고, 핍박을 당하면서도 열심히 복음을 전파하셨는데 고린도 교회 성도들은 바울 사도가 어리석고 지혜가 부족해서 고난을 당한다고 비판한 것입니다. 얼마나 악하고 배은망덕한 자들입니까?

이처럼 잘나고 똑똑하다고 교만을 떨어대는 고린도 교회 성도들에게 바울 사도는 아버지의 사랑으로 타이르고 호소하셨습니다. “그리스도 안에서 일만 스승이 있으되 아버지는 많지 아니하니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내가 복음으로써 너희를 낳았음이라, 그러므로 내가 너희를 권하노니 너희는 나를 본받는 자가 되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아버지의 사랑과 스승의 사랑은 차원이 다릅니다. 아버지는 자식이 잘못하고 자식이 아버지를 섭섭하게 해도 끝까지 자식을 사랑합니다. 바울 사도가 복음을 전해서 고린도 교회를 세웠기 때문에 바울 사도는 고린도 교회 성도들에게 신앙의 아버지가 됩니다. 그러나 고린도 교회 성도들은 그들의 신앙의 아버지인 바울 사도를 배반했습니다. 바울 사도가 복음을 전하기 위해 고린도 교회를 떠난 사이에 이단과 가짜 선지자들의 유혹에 넘어가 바울 사도를 배반한 것입니다. 그래도 바울 사도는 인자한 아버지의 사랑으로 나를 본받는 자가 되라고 호소하셨습니다. 교만한 인간은 다된 인간이며 이미 끝난 인간입니다.

불의하고 악한 인간은 나를 본받으라고 말할 수 없습니다. 세상의 빛과 소금으로 살아가지 않는 사람은 나를 본받으라고 말할 수 없습니다. 의롭고 진실하고 신앙의 양심에 떳떳한 사람이 나를 본받으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그리스도인은 나를 본받으라고 말할 수 있는 사람이 돼야 하며 세상 사람들이 본받고자 하는 신앙과 인격의 모델이 돼야 합니다. 가정에서나 직장에서나 누구 앞에서나 나를 본받으라고 말할 수 있는 성도 여러분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2023, 12, 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