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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스도인의 인생관

진리의증인 2023. 3. 24. 04:50

메시지580(로마59) 그리스도인의 인생관

 

7우리 중에 누구든지 자기를 위하여 사는 자가 없고 자기를 위하여 죽는 자도 없도다. 8우리가 살아도 주를 위하여 살고 죽어도 주를 위하여 죽나니 그러므로 사나 죽으나 우리가 주의 것이로다. 9이를 위하여 그리스도께서 죽었다가 다시 살아나셨으니 곧 죽은 자와 산 자의 주가 되려 하심이라 10네가 어찌하여 네 형제를 비판하느냐 어찌하여 네 형제를 업신여기느냐 우리가 다 하나님의 심판대 앞에 서리라 11기록되었으되 주께서 이르시되 내가 살았노니 모든 무릎이 내게 꿇을 것이요 모든 혀가 하나님께 자백하리라하였느니라 12이러므로 우리 각 사람이 자기 일을 하나님께 직고하리라” (로마서 14:7-12)

 

서론: 오늘 말씀의 제목은 그리스도인의 인생관입니다. 인생관이 무엇이냐? 인간이 어떻게 살아가고 무엇을 위해 살 것인지, 인생의 의의와 목적과 가치에 관한 이론적이고 철학적인 견해와 방법을 인생관(人生觀)이라고 합니다. 인생관은 사람의 성격과 사람의 외모만큼이나 매우 다양합니다. 총론적으로는 같은 인생관이 있지만 각론으로 들어가면 사람의 성품과 자라온 환경과 처한 상황에 따라 천차만별이기 때문입니다. 신자와 불신자, 의인과 악인은 인생관이 다릅니다. 본문은 그리스도인의 인생관에 대한 바울 사도의 말씀입니다.

이 시간에는 그리스도인의 인생관이란 제목으로 함께 은혜를 받고자 합니다.

 

1. 그리스도인은 살든지 죽든지 예수를 위해서 사는 인생관을 가져야 합니다.

바울 사도는 본문 7절에서 우리 중에 누구든지 자기를 위하여 사는 자가 없고 자기를 위하여 죽는 자도 없다.”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리스도인은 자신을 위해 살지 않는다는 말씀입니다. 그리스도인은 누구를 위해 살고 무엇을 위해 삽니까? 예수를 위해 살고 예수님 뜻을 이루기 위해 삽니다. 왜 예수를 위해 살고 예수님 뜻을 이루기 위해 삽니까? 예수님께서 우리를 죄와 사망에서 구원해주셨기 때문입니다. 예수님께서 우리를 죄와 사망에서 구원하사 영원한 생명을 주시고 예수님께서 죽은 자와 산 자의 주님이 되시기 때문에 우리가 살아도 예수를 위해 살고 죽어도 예수를 위해 죽는 인생관을 가져야 하는 것입니다.

다음으로 바울 사도는 우리가 살아도 주를 위하여 살고 죽어도 주를 위하여 죽나니 그러므로 사나 죽으나 우리가 주의 것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8). ‘우리가 주의 것이란 말씀이 무슨 뜻입니까? 그리스도인은 예수님의 소유로 예수님의 백성이란 뜻입니다. 왜냐하면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우리의 죗값을 치르시고 죄와 사망에서 우리를 구원해주셨기 때문입니다. 그리스도인의 주인은 예수님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을 주님이라고 하는 것입니다. 신자와 불신자, 그리스도인과 비그리스도인을 구별하는 기준이 무엇입니까? 예수를 믿느냐 믿지 않느냐에 따라 신자와 불신자로 구별하고 그리스도인과 비그리스도인으로 나누어집니다. 불신자와 비그리스도인은 예수를 믿지 않기 때문에 천국과 내세를 부인하고 돈과 명예와 세속적인 것을 믿고 의지하며 그런 것들을 자랑합니다.

그러나 불신자와 비그리스도인이 모르는 인생의 진리가 있습니다. 인간은 돈이나 명예나 세속적인 것으로는 절대로 참된 만족과 평화를 누릴 수 없다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인간은 하나님을 섬기고 살아가도록 하나님 형상대로 창조되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을 믿지 않는 인간은 온 세상을 소유하고 그가 원하는 것을 다 이루어도 참된 만족과 평화를 누리지 못하는 것입니다. 인생에 하나님과 예수가 없는 인간은 죽는 날까지 물질과 명예와 세속적인 것에 집착하지만 그들은 멸망의 바벨탑을 쌓아 올리는 자들입니다. 왜냐하면 싸우고 원수 맺고 평생 수고하고 모은 것들이 죽음과 함께 떠나기 때문입니다.

반면에 그리스도인은 예수를 신앙과 인생의 주인으로 모시고 살아갑니다. 그리스도인에게는 예수가 신앙과 인생의 목적입니다. 그래서 바울 사도께서 우리 중에 누구든지 자기를 위하여 사는 자가 없고 자기를 위하여 죽는 자도 없도다. 우리가 살아도 주를 위하여 살고 죽어도 주를 위하여 죽나니 그러므로 사나 죽으나 우리가 주의 것.”이라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그리스도인은 하나님 말씀과 예수님 뜻에 합당하지 않는 것은 그것이 무엇이든지 반대하고 거부해야 합니다. 그리스도인은 살든지 죽든지 예수를 위해서 사는 인생관을 가져야 한다는 것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2. 그리스도인은 하나님 말씀과 예수님 뜻을 구체적으로 실천하며 살아야 합니다.

머리로 예수를 믿는 관념적인 신자와 입으로 예수를 믿는 사람이 되면 안 된다는 말씀입니다. 머리로 예수를 믿는 관념적인 신자는 어떤 사람입니까? 신앙의 지식으로 신앙을 대신하며 신앙의 지식을 신앙의 행위로 착각하는 사람입니다. 믿음과 행위는 절대로 분리될 수 없습니다. 삼위일체 하나님과 구원의 교리에 대한 지식이 아무리 탁월하고, 성경과 하나님 말씀에 대한 지식이 아무리 뛰어나도 자신이 알고 있는 대로 행하지 않고 실천하지 않으면 그 사람은 관념적인 신자입니다. 또 입으로 예수를 믿는 사람이 있습니다. 아무리 논리정연한 주장을 해도 말과 행위가 일치하지 않고 말하고 주장하는 대로 행하지 않으면 입으로 예수를 믿는 사람입니다. 야고보 사도는 행함이 없는 믿음은 죽은 믿음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행함이 없는 믿음은 죽은 믿음이며 행위로 예수를 부인하는 사람입니다.

그리스도인의 인생관은 살아도 예수를 위해 살고 죽어도 예수를 위해 죽는다고 말씀드렸습니다. 국가나 민족이나 가정이나 부모나 자녀나 어떤 것도 예수님 위에 둘 수 없습니다. 국가와 민족을 위한다는 구실로 하나님과 예수님 뜻을 거역하면 안 됩니다. 국가와 민족에 대한 의무와 직장과 사회 구성원으로 책임과 부모에 대한 효도와 가정과 자녀에 대한 의무도 주 안에서라는 것을 명심하셔야 합니다. ‘주 안에서란 말이 무슨 뜻입니까? 하나님 말씀과 하나님 뜻 안에서 행하고 하나님 말씀과 하나님 뜻에 거역하면 안 된다는 말씀입니다. 국가의 정책도 하나님 말씀과 하나님 뜻에 역행하면 반대하고 거부해야 합니다. 하나님은 국가와 민족 위에 계시며 하나님 말씀은 최고의 법과 최상위의 법이 되기 때문입니다.

오늘날 한국의 영화와 드라마와 노래와 음식과 의상이 세계적 유행으로 국경과 인종을 초월하여 세계의 수많은 사람이 대한민국 문화에 열광하며 대한민국을 찾고 있습니다. 대한민국이 세계의 유행과 문화를 선도하는 중심이 되었다는 데에 자부심을 가질 수 있지만 그리스도인은 세계의 유행과 문화를 선도하는 대한민국의 문화가 하나님 뜻에 합당한지 고민하고 대한민국 문화가 하나님을 알리고 하나님 뜻을 이루는 데 긍정적인 작용을 할 수 있도록 기도해야 합니다. 진보와 보수, 좌익이나 우익의 정치적 이념을 초월하여 하나님 뜻에 합당하지 않는 것은 반대하고 거부해야 합니다.

그리고 그리스도인은 우리 사회의 갈등과 불평등과 우리 사회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고민하고 도전하고 투쟁하고 목소리를 내야 합니다. 학자나 전문가들은 저출산과 인구감소로 대한민국과 우리 민족은 머지않아 지구상에서 완전히 사라지고 소멸될 것이라고 주장합니다. 위정자들은 출산장려 정책을 세우고, 지자체에서는 자기 지역에서 신생아가 태어나면 몇천 만원씩 지원금을 준다고 떠들어대지만 소용없는 짓들입니다. 왜냐하면 가난한 서민은 생활이 안 되고 생존이 불안하기 때문입니다. 아파트가 몇억에서 몇십억씩 하고, 안정된 직장이 없어서 임시직이나 아르바이트를 전전하고, 집 한 칸, 방 한 칸 없이 원룸에서 살아가는데, 어떻게 결혼을 하고, 아이를 낳고 살아갈 수 있겠습니까? 경제적 불평등도 인구감소 원인의 하나지만 페미니즘과 동성애 운동도 인구감소를 가져왔습니다. 원래 페미니즘(feminism)은 남녀평등과 남녀동권을 주장하며 시작됐지만 시간이 흐르면서 목적이 변질되고 방향이 빗나갔습니다. 결혼도 하지 않고, 가정도 갖지 않고, 하고 싶은 일 하고, 살고 싶은 대로 살고, 자유롭게 살아야 한다는 이상한 방향으로 발전한 것입니다. 그 결과 페미니즘 운동은 혼자 사는 사람을 영웅으로 만들고 결혼을 기피하는 현상을 가져왔습니다. 평생 페미니즘 운동을 한 사람이 나이가 들어서 그들의 삶을 얼마나 후회하는지 아십니까? 가정이 없기 때문에 나이가 들어도 갈 곳이 없고 의지할 데가 없습니다. 이 사람들은 정말로 뼈를 깎는 회개를 해야 합니다. 우리 사회에 얼마나 부정적인 결과를 가져왔습니까?

그리스도인은 양심이 있어야 하고 분별력이 있어야 합니다. ‘내로남불이란 말은 같은 상황에서 같은 일을 했지만 내가 한 것을 옳은 일이고 다른 사람이 한 것은 나쁘다는 뜻으로 사용하는 신조어입니다. 전세를 끼고 아파트를 사는 것을 갭(gap)투자라고 하는데 아파트값이 오를 때 갭투자를 해서 몇억씩 돈을 번 그리스도인이 많이 있습니다. 갭투자가 하나님 율법과 실정법을 어긴 것은 아니라 할지라도 하나님께 칭찬을 받지는 못할 것입니다. 그리스도인은 그리스도인답게 살아야 하고 신앙의 양심에 부끄럽지 않게 살아야 합니다.

바울 사도는 본문 10절에서 네가 어찌하여 네 형제를 비판하느냐, 어찌하여 네 형제를 업신여기느냐, 우리가 다 하나님의 심판대 앞에 서리라고 말씀하셨습니다. 함부로 형제를 비판하거나 멸시하거나 업신여기지 말라는 말씀입니다. 일반적으로 청바지나 짙은 색깔의 옷을 입은 사람보다 밝고 하얀색 옷을 입은 사람이 옷에 더 신경을 쓰고 조심합니다. 왜냐하면 하얗고 밝은색의 옷이 얼룩이 지고 쉽게 더럽힘을 받기 때문입니다.

인격과 양심이라는 마음의 옷도 그와 같습니다. 영혼이 깨끗한 사람은 작은 실수와 허물에도 괴로워하지만 죄의 종이 된 사람은 죄를 짓고도 전혀 양심의 가책을 느끼지 않습니다. 양심의 가책은커녕 자신의 불의한 행위를 정당화하고 의로운 사람을 험담하고 비판합니다. “가랑잎이 솔잎더러 바스락거린다.”고 호통치는 격입니다. 파스칼은 인간은 생각하는 갈대라고 했습니다. 인간은 사색하고 반추하는 이성적이고 인격적인 존재라는 뜻입니다. 자신을 돌아보지 않기 때문에 함부로 정죄하고 비판하는 것입니다.

사람은 누구나 허물과 약점이 있고 인간은 시행착오를 반복하면서 신앙과 인격이 성장합니다. 그러므로 남을 비판하는 것은 신중해야 합니다. 남을 비판하기에 전에 자신을 돌아보고 자신을 비판할 줄 아는 사람이 지혜로운 사람입니다. 성경은 로마서 2:16,에서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사람들의 은밀한 죄를 심판한다.” 말씀하고 있습니다. 사람들의 은밀한 죄가 무엇입니까? 드러나지 않고 숨겨진 죄를 말합니다. 숨겨진 죄가 얼마나 많이 있습니까? 우리의 숨겨진 죄가 드러나 심판을 받게 되기 때문에 진실하고 겸손해야 합니다.

다음으로 하나님을 진실하게 섬겨야 합니다. 헌금도 그렇습니다. 십일조는 하나님 것이니까 하나님께 드려야 하지만 불가피한 사정이 있을 때는 못 드릴 수도 있습니다. 하나님은 빚을 내서 헌금을 하도록 요구하시지 않습니다. 구제에도 관심을 갖고 참여해야 합니다. 돈이 남아돌아서 구제하는 사람은 없습니다. 내가 쓰고 내 가정과 내 자녀에게 사용하는 것을 조금만 아끼면 구제에 참여할 수 있습니다. 내가 기도를 하는지 안 하는지 목사는 모르고, 교회의 성도는 모르지만 하나님은 아십니다. 하나님은 모든 것을 다 아시는 전지하신 하나님이시기 때문입니다. 그리스도인은 사람이 있거나 없거나 사람이 보거나 안 보거나 진실하고 성실해야 합니다. 기도를 못 하고 기도가 집중이 안 되면 하나님께 죄스러운 마음을 가져야 하며 신앙의 양심에 떳떳하지 못한 일을 했으면 마음이 괴롭고 고통스러워야 합니다.

그리고 그리스도인은 하나님 입장에서 생각하고 하나님 시각으로 세상을 보는 세계관을 가져야 합니다. 무슨 뜻이냐? 우리 교회와 우리 교파만 생각하는 우물 안 개구리가 되지 말고 하나님 입장에서 생각하고 한국 교회 전체를 보는 안목을 가져야 한다는 말씀입니다. 한국 교회의 문제 중 하나가 지나친 개교회주의와 교파 중심주의입니다. 하나님 뜻은 생각하지도 않고 우리 교회와 우리 목사와 우리 교파만 생각합니다. 그리스도인이 이렇게 편협한 신앙관을 갖게 된 데에는 목사의 책임이 큽니다. “우리 교회가 진짜 교회다, 주일 예배는 반드시 본교회에서 드려야 한다, 누구는 본교회에서 예배를 드리기 위해 부산에서 서울까지 올라와서 예배를 드렸고, 서울에서 광주까지 내려가서 예배를 드렸다.” 얼마나 유치하고 한심합니까? 이단들이나 써먹는 수법입니다. 사정이 있어서 교회를 떠나있으면 가까운 교회에 나가서 예배를 드리게 해야 합니다. 우리 교회와 우리 교파만 주장하는 사람은 부모 앞에서 형제자매의 사정은 외면하고 자기 이익만 따지는 인간과 같습니다. 교회와 교파 이기주의 때문에 기독교 연합사업이 안 되고 한국 교회가 어려움을 당합니다.

예수를 위해 죽는 사람은 살지만 자기가 살기 위해 예수를 부인하고 하나님을 배반하는 사람은 영원히 죽습니다. 하나님 이름으로 베풀고 나눠주는 사람은 이 땅에서도 복을 받고 영광을 받지만 천국에서는 더 큰 상급과 영광을 받습니다. 반면에 자신을 위해 쌓아두고 하나님과 교회에 인색하고 가난한 이웃에게 인색한 인간은 하나님 심판을 받을 것입니다. 그리스도인은 인자하고 너그럽고 겸손해야 합니다. 비판보다 이해하고 감싸주고 위로해주는 사람이 돼야 하며 꿈과 희망을 주는 사람이 돼야 합니다. 그리스도인은 하나님 말씀과 예수님 뜻을 구체적으로 실천하는 삶을 살아야 한다는 것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말씀을 맺겠습니다. 바울 사도는 갈라디아서 2:20,에서 내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혔나니 그런즉 이제는 내가 사는 것이 아니요 오직 내 안에 그리스도께서 사시는 것이라, 이제 내가 육체 가운데 사는 것은 나를 사랑하사 나를 위하여 자기 자신을 버리신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믿음 안에서 사는 것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바울 사도의 말씀처럼 그리스도인은 옛날의 나는 십자가에 못 박혀 죽었습니다. 그리고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새사람으로 거듭나서 살아도 주를 위해서 살고 죽어도 주를 위해서 죽는 인생관을 갖게 되었습니다. 예수가 없는 인생은 절대로 참된 만족과 평화를 누릴 수 없습니다. 왜냐하면 인간은 하나님을 섬기고 하나님과 교통하며 살아가도록 하나님 형상대로 창조되었기 때문입니다. 부모와 자식 때문에 하나님 마음 서운하게 하고, 돈과 명예 때문에 하나님 마음 아프게 하면 안 됩니다. 살아도 주를 위해서 살고 죽어도 주를 위해서 죽는 인생관으로 하나님과 예수님께 충성하시고 헌신하시는 성도 여러분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2023, 3, 2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