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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브라함의 거짓말

진리의증인 2023. 3. 3. 05:31

메시지190(36) 아브라함의 거짓말

 

10그 땅에 기근이 들었으므로 아브람이 애굽에 거류하려고 그리로 내려갔으니 이는 그 땅에 기근이 심하였음이라, 11그가 애굽에 가까이 이르렀을 때에 그의 아내 사래에게 말하되 내가 알기에 그대는 아리따운 여인이라, 12애굽 사람이 그대를 볼 때에 이르기를 이는 그의 아내라 하여 나는 죽이고 그대는 살리리니 13원하건데 그대는 나의 누이라 하라, 그러면 내가 그대로 말미암아 안전하고 내 목숨이 그대로 말미암아 보존되리라 하니라, 14아브람이 애굽에 이르렀을 때에 애굽 사람들이 그 여인이 심히 아리따움을 보았고 15바로의 고관들도 그를 보고 바로 앞에서 칭찬하므로 그 여인을 바로의 궁으로 이끌어들인지라, 16이에 바로가 그로 말미암아 아브람을 후대하므로 아브람이 양과 소와 노비와 암수 나귀와 낙타를 얻었더라, 17여호와께서 아브람의 아내 사래의 일로 바로와 그 집에 큰 재앙을 내리신지라, 18바로가 아브람을 불러서 이르되 네가 어찌하여 나에게 이렇게 행하였느냐, 네가 어찌하여 그를 네 아내라고 내게 말하지 아니하였느냐, 19네가 어찌 그를 누이라 하여 내가 그를 데려다가 아내를 삼게 하였느냐 네 아내가 여기 있으니 이제 데려가라 하고 20바로가 사람들에게 그의 일을 명하매 그들이 그와 함께 그의 아내와 그의 모든 소유를 보내었더라” (창세기 12:10-20)

 

서론: 어느 날 하나님께서 갈대아인의 우르에 살고 있던 아브라함에게 너는 내가 지시하는 땅으로 가라. 너는 복이 될지라. 땅의 모든 족속이 너로 말미암아 복을 얻을 것이라고 약속하셨습니다(창세기 12:1-5). 그래서 아브라함은 하나님 말씀에 순종해서 갈대아인의 우르르 떠나 가나안 땅에 정착했습니다. 그러나 복의 근원으로 축복해주시겠다는 하나님 약속과는 달리 가나안 땅에 정착한 아브라함은 흉년으로 큰 위기를 맞이했습니다. 그래서 아브라함은 부인과 가족을 데리고 애굽으로 피난을 갔습니다. 애굽으로 간 아브라함은 자기 부인을 누이동생이라고 거짓말을 해서 애굽 왕에게 부인을 빼앗기게 되었습니다. 애굽 왕이 사라를 후궁으로 삼기 위해 왕궁으로 데려간 것입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아브라함과 사라를 구원해주시고 애굽에서 큰 부자가 돼서 가나안으로 돌아가게 하셨습니다.

이 시간에는 아브라함의 거짓말이란 제목으로 함께 은혜를 받고자 합니다.

 

1. 믿음의 조상과 복의 근원으로 축복 받은 아브라함도 고난과 시련을 만났습니다.

고난과 시련을 좋아하는 사람은 없습니다. 사람은 누구나 고난과 시련이 없고 근심 걱정 없는 평탄한 인생을 살기 원합니다. 그러나 인간의 소원과는 달리 인생에는 크고 작은 고난과 시련이 그치지 않습니다. 고난과 시련의 풍파가 휩쓸고 지나가면 또 다른 문제로 걱정과 긴장을 하며 살아갑니다. 그래서 인생을 파란만장(波瀾萬丈)하다고 합니다. 바닷가에 작은 물결과 큰 물결이 계속 밀려오는 것처럼 인생에도 변화와 곡절이 계속 일어나기 때문에 인생을 파란만장하다고 하는 것입니다. 고난과 시련이 없는 인생은 없습니다. 고난의 유형과 고난의 성격만 다를 뿐 인간은 누구나 고난과 시련 속에서 살아가는 것입니다.

인간의 의식 속에는 착하게 살면 복을 받고 악하게 살면 벌을 받는다는 상선벌악(賞善罰惡) 사상이 자리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착하게 살고 선하게 사는 사람에게도 고난과 시련이 있습니다. 착하고 선하게 살아가는 사람이 왜 고난을 당할까요? 착하고 선하게 살아가는 사람에게도 고난이 필요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악인의 고난과 의인의 고난은 고난의 성격과 고난의 목적이 다릅니다. 먼저 악인이 당하는 고난은 그들의 죄악에 대한 심판과 형벌입니다. 악인은 죄악에 대한 심판과 형벌로 고난을 받는 것입니다.

반면에 의인이 당하는 고난은 신앙과 인격을 연단하는 데 목적이 있습니다. 사람이 예수를 믿는다고 하루아침에 천사가 되거나 완전한 사람이 되는 것은 아닙니다. 예수를 믿어도 실수와 시행착오를 반복하면서 신앙과 인격이 성장합니다. 인간이 얼마나 지혜가 부족하고 인간이 얼마나 연약하고 불완전한 존재입니까? 인간은 5분 후에 일어날 일도 알지 못하고 정의와 진리의 문제에도 자신의 이해에 따라 오락가락합니다. 인간이 연약하고 불완전하고 인생의 경험과 지혜가 부족하고 세상을 살아가는 지혜가 부족하기 때문에 고난과 시련이 필요한 것입니다. 고난과 시련은 성도를 연단하고 깨우치는 하나님의 수단이며 하나님의 교육방법입니다. 하나님은 고난과 시련을 통해 당신의 백성에게 인생의 지혜를 주시고 인내와 겸손을 가르치시며 진실하고 담대한 신앙의 용사로 훈련시키시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보실 때 아브라함에게도 고난과 시련이 필요했습니다. 전에 아브라함이 살았던 갈대아인의 우르는 기후가 좋고 땅이 비옥해서 흉년이나 기근을 경험하지 못했습니다. 반면에 가나안은 흉년과 기근이 심합니다. 아브라함이 가나안에서 살아가려면 흉년과 기근에 대한 경험이 필요하고 흉년과 기근에 대처하는 지혜와 방법도 터득해야 합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흉년과 기근을 경험하게 하신 것입니다. 또 아브라함이 이방인의 땅에서 하나님 백성으로 살아가려면 강하고 담대한 믿음을 가져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당신의 백성에게 강하고 담대한 믿음을 주시는 방법이 무엇이냐? 고난과 시련이라는 연단과 훈련을 통해서 주십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흉년과 기근이라는 고난과 시련을 통해 아브라함의 믿음을 연단하신 것입니다. 성도가 당하는 고난에는 반드시 성도를 향하신 하나님의 목적과 뜻이 있습니다. 성도에게 고난이 필요하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고난을 주시는 것입니다. 악인의 고난은 그들의 죄악에 대한 심판과 형벌이지만 성도의 고난은 신앙과 인격을 연단하여 천국백성으로 만드시는 하나님의 훈련과 교육이라는 것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2. 사람이 거짓말을 하면 반드시 곤경에 처하고 위기를 당하게 됩니다.

본문 11-13절에 보면 아브라함 일행이 애굽에 가까이 왔을 때 아브라함은 자기 부인에게 내가 알기에 그대는 아리따운 여인이라 애굽 사람들이 당신의 아름다움을 보고 탐내서 나를 죽일지 모르니 당신은 나의 누이동생이라고 하시오. 그렇게 하면 내가 안전하고 내 목숨이 보존될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아브라함 일행이 애굽에 도착하자 애굽 사람들은 사라의 미모에 놀랐습니다. 애굽의 왕과 신하들이 사라의 미모에 놀란 것을 보면 사라가 대단한 미인이었던 것 같습니다. 왕의 신하들이 사라의 미모를 칭찬하자 애굽 왕은 사라를 후궁으로 삼기 위해 왕궁으로 불러들였습니다. 그리고 애굽 왕은 사라의 오라비가 된다고 하는 아브라함에게 많은 가축과 노비를 선물했습니다. 아브라함은 많은 재물을 얻었지만 자신의 거짓말 때문에 애굽 왕에게 꼼짝없이 아내를 빼앗기게 되었습니다.

아브라함이 왜 사라를 누이동생이라고 했느냐? 옛날에는 왕이나 권력자들이 다른 사람의 아내를 빼앗기 위해 남편을 죽이는 일이 다반사(茶飯事)였기 때문입니다. 이스라엘 왕 다윗도 밧세바라는 여인을 빼앗기 위해 그녀의 남편인 우리아를 전쟁터에 내보내 죽였습니다. 아브라함도 애굽 왕이 두려워서 자기 부인을 누이동생이라고 거짓말을 한 것입니다. 아브라함은 그랄 왕 아비멜렉에게도 사라가 내 이복 누이동생인데 내 아내가 되었다.”고 말했습니다(창세기 20:12). 사라를 부인이라고 하면 애국 왕에게 죽음을 당할까 두려워서 누이동생이라고 거짓말을 한 것입니다. 그러나 아브라함은 지금까지 한 번도 사라 때문에 생명에 위협을 받은 적이 없습니다. 누이동생이라고 거짓말을 해서 위기를 맞이한 것입니다. 이처럼 사람이 거짓말을 하면 반드시 곤경에 처하고 수치와 낭패를 당하게 됩니다.

하나님은 십계명의 제9계명에서 거짓말하지 말라고 말씀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 거짓말하지 말라는 계명을 왜 주셨을까요? 거짓말하지 말라는 계명이 어떤 경우에도 거짓말을 하면 안 된다는 절대 계명으로 주셨습니까? 아닙니다. 부당하게 상대를 속여서 손해를 끼치거나 모함하지 못하도록 불의와 불법을 막는 데 목적이 있습니다. 그리스도인은 주어진 상황에서 어떻게 말하고 어떻게 행동하는 것이 하나님 뜻에 합당한지 분별할 수 있는 지혜를 가져야 합니다. “거짓말하지 말라는 계명이 사탄과 원수 마귀들에게 미주알고주알 사실대로 보고하라고 주신 말씀은 아니지 않습니까? 성경 말씀을 해석하고 적용하는 데도 지혜가 필요합니다. 히브리 산파들처럼 죄 없는 사람이 죽게 되고 의로운 사람의 목숨이 달린 상황에서는 거짓말을 해도 됩니다. 왜냐하면 그것은 거짓말이 아니라 정의와 진리와 하나님 뜻을 이루기 위한 의로운 행동이 되기 때문입니다. 하나님 뜻과 하나님 목적보다 상위법은 없습니다. 히브리 산파들처럼 사람이 억울하게 죽게 된 경우나 하나님 뜻에 역행하는 경우는 거짓말을 해도 됩니다. 사람을 살리는 것이 정의와 진리와 하나님 뜻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사람을 속이고 손해를 끼치기 위해 거짓말을 하거나 하찮은 일로 거짓말을 하면 안 된다는 것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3. 하나님께서는 거짓말을 하고 곤경에 처한 아브라함과 사라를 구원해 주셨습니다.

아브라함과 사라가 곤경에 처한 것은 그들의 거짓말 때문입니다. 아브라함이 처음부터 사라를 자기 부인이라고 했다면 사라를 후궁으로 빼앗기는 일은 없었을 것입니다. 아브라함의 거짓말로 위기를 맞이한 것입니다. 자업자득이지요.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거짓말로 곤경에 처한 아브라함과 사라를 구원해 주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거짓말을 한 아브라함보다 애굽 왕의 죄가 더 크다고 판단하셨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 왜 그렇게 판단하셨을까요? 왕이 두려워서 거짓말을 한 아브라함보다 아무런 죄책감 없이 다른 사람의 아내를 빼앗는 애굽 왕의 죄가 더 컸기 때문입니다. 옛날에 왕이 많은 부인을 거느린 것이 당시의 관례와 전통이라고 할지라도 하나님 앞에 그들의 행위가 정당화되는 것은 아닙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왕이 두려워서 거짓말을 한 아브라함보다 애굽 왕의 죄를 더 크게 보신 것입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을 구원하신 보다 큰 이유는 아브라함을 믿음의 조상으로 부르시고 하나님 백성으로 택하여 세우셨기 때문입니다. 아브라함은 믿음의 조상이 되고 거룩한 백성의 씨가 될 사람입니다. 그런데 이방인에게 아내를 빼앗기면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하신 약속이 어떻게 이루어지겠습니까? 그래서 하나님께서 아브라함과 사라를 구원해주신 것입니다.

그리스도인이 세상을 살아가면서 어쩔 수 없는 불가피한 상황에서만 죄를 범합니까? 그렇지 않습니다. 믿음이 부족해서 죄를 범하고, 용기가 없어서 죄를 범하고, 물질과 명예에 대한 욕심 때문에 양심의 소리에 귀를 막고 죄를 범합니다. 그리스도인이 믿음과 지혜가 부족해서 죄를 범하고 판단과 결정을 잘못해서 위기에 처하면 하나님께서 구원해주십니다. 인간은 부족하고 연약하고 불완전한 존재이기 때문에 실수할 수도 있고 넘어질 수도 있고 거짓말을 할 수도 있습니다. 평상시에는 지혜롭고 똑똑한 사람이 두려움을 느끼거나 당황하면 얼마나 엉뚱한 행동을 합니까? 아브라함이 자기 부인을 누이동생이라고 한 것은 연약하고 불완전한 인간의 두려움에서 나온 순간적인 실수와 허물인 것입니다.

인간은 약자에게는 강하고 강자에게는 약한 속물근성을 가지고 있습니다. 가난하고 별 볼일 없는 사람이 거짓말을 하거나 잘못 해서 곤경에 처하면 그놈 거짓말 한 죗값이다. 그놈이 잘못해서 그렇게 됐으니 죽든지 살든지 내버려 두라고 말합니다. 반면에 강하고 힘 있는 사람이 실수를 하고 죄를 범하면 한없이 관대합니다. 얼마나 잘못된 태도입니까? 하나님은 그렇게 판단하시지 않습니다. 하나님께서는 힘이 있고 지식이 있고 사회적으로 높은 지위에 있는 사람에게는 더 큰 책임을 물으십니다. 같은 죄를 지어도 어린아이보다는 어른의 책임이 더 크고 가난한 자보다 부자의 책임이 더 크며 무식한 자보다 유식한 자의 책임이 더 큽니다. 교회에서도 평신도보다 집사의 책임이 더 크고 집사보다 장로의 책임이 더 크며 장로보다 목사의 책임이 더 큽니다.

믿음의 조상 아브라함은 흉년을 피하기 위해 가나안을 떠나 애굽으로 갔다가 거짓말을 하고 이방인에게 책망을 받고 수치를 당했습니다. 성경에서 가나안은 천국과 교회를 상징하고 애굽은 세상을 상징합니다. 아브라함이 가나안을 떠나 애굽으로 가서 곤경에 처한 것은 하나님 백성이 하나님과 교회를 떠나 세상으로 가면 곤경에 처하고 위기를 만난다는 하나님의 경고입니다. 성도가 어렵다고 하나님과 교회를 떠나는 것은 물고기가 물을 떠난 것과 같습니다. 물고기가 물을 떠나면 어떻게 됩니까? 반드시 죽습니다. 하박국 선지자는 비록 무화과나무가 무성하지 못하며, 포도나무에 열매가 없으며, 감람나무에 소출이 없으며, 밭에 먹을 것이 없으며, 우리에 양이 없으며, 외양간에 소가 없을지라도 나는 여호와로 말미암아 즐거워하며 나의 구원의 하나님으로 말미암아 기뻐하리라고 노래했습니다(하박국 3:17-18). 그리스도인은 하박국 선지자처럼 재물과 명예와 권세를 소유하지 못해도 죄에서 구원받고 천국백성 되었다는 한 가지 이유만 가지고도 평생 감사하며 살아야 합니다. 인생에는 위기의 순간도 있고 고난과 시련의 때도 있습니다. 인생에 어려움과 고난이 있다고 하나님과 교회를 떠나면 더 큰 고난과 시련을 만난다는 것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말씀을 맺겠습니다. 믿음의 조상 아브라함은 갈대아인의 우르에서 가나안으로 이주한 후 심한 흉년과 기근을 만났습니다. 하나님 백성과 하나님 자녀로 택함 받은 성도에게도 고난이 있고 시련이 있습니다. 성도의 고난에는 성도를 향하신 하나님의 목적과 뜻이 있습니다. 하나님 백성에게도 고난과 시련이 있지만 성도의 고난과 시련은 천국 백성으로 만드시기 위한 하나님의 연단과 훈련이라는 것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둘째, 사람이 거짓말을 하면 곤경에 처하고 위기를 당한다고 말씀드렸습니다. 앵무새처럼 거짓말하지 말라는 계명을 되뇌는 개념 없는 그리스도인이 되면 안 됩니다. 그리스도인은 어떻게 하는 것이 정의와 진리의 길이며, 어떻게 하는 것이 하나님 뜻에 합당할지 주어진 환경에서 거짓말과 진리를 분별할 수 있는 지혜로운 성도가 되셔야 한다는 것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셋째, 하나님께서는 거짓말을 해서 곤경에 처한 아브라함을 구원해주셨습니다. 우리도 거짓말과 양심의 가책과 부끄러운 상황에서 하나님의 구원을 받은 경우가 얼마나 많이 있습니까? 평생 거짓 없는 진실한 믿음으로 신앙과 인생에 승리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2023, 3, 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