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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은 자다가 깰 때

진리의증인 2023. 2. 24. 04:49

메시지27(로마57) 지금은 자다가 깰 때

 

11또한 너희가 이 시기를 알거니와 자다가 깰 때가 벌써 되었으니 이는 이제 우리의 구원이 처음 믿을 때보다 가까웠음이라, 12밤이 깊고 낮이 가까웠으니 그러므로 우리가 어둠의 일을 벗고 빛의 갑옷을 입자, 13낮에와 같이 단정히 행하고 방탕하거나 술 취하지 말며 음란하거나 호색하지 말며 다투거나 시기하지 말고 14오직 주 예수 그리스도로 옷 입고 정욕을 위하여 육신의 일을 도모하지 말라” (로마서 13:11-14)

 

서론: 바울 사도는 본문 11절에서 너희가 이 시기를 알거니와 자다가 깰 때가 벌써 되었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지금은 자다가 깰 때라는 말씀입니다. 사도 베드로도 근신하라 깨어라 너희 대적 마귀가 우는 사자 같이 두루 다니며 삼킬 자를 찾는다......”고 말씀하셨습니다(베드로전서 5:8). 복음서에 보면 예수님께서도 깨어 있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러므로 그리스도인은 깨어 있어야 합니다. “자다가 깰 때가 되었다는 말씀은 시공을 초월하여 이 땅의 모든 성도들에게 주시는 하나님과 예수님의 경고와 권면과 책망의 말씀입니다.

이 시간에는 지금은 자다가 깰 때라는 제목으로 함께 은혜를 받고자 합니다.

 

1. 우리의 구원이 처음 믿을 때보다 가까워졌기 때문에 깨어 있어야 합니다.

바울 사도는 본문 11절에서 또한 너희가 이 시기를 알거니와 자다가 깰 때가 벌써 되었으니 이는 이제 우리의 구원이 처음 믿을 때보다 가까웠음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우리의 구원이 처음 믿을 때보다 가까워졌기 때문에 깨어 있어야 한다는 말씀입니다. 우리의 구원이 처음 믿을 때보다 가까워졌다는 말씀이 무슨 뜻입니까? 우리의 믿음이 처음 믿을 때보다 더 성장하고 원숙해졌다는 뜻입니다. 사람이 예수를 믿으면 죄에서 구원받지만 완전한 구원에 이른 것은 아닙니다. 성도의 구원은 거듭나게 하는 성령의 역사와 교육과 연단과 훈련의 과정과 성도들과의 친교를 통해 신앙과 인격이 성장하고 완전한 구원에 도달합니다. 우리의 구원이 처음 믿을 때보다 가까워졌다는 말씀은 우리의 신앙과 인격이 성장해서 처음 믿을 때보다 천국에 가까이 갔다는 뜻입니다. 그러므로 그리스도인은 시간이 흐르고 신앙의 연륜이 더할수록 신앙과 인격이 성장하고 더욱 발전해야 합니다.

우리의 구원이 가까워졌다는 말씀의 두 번째 의미는 육신의 죽음이 가까이 왔다는 뜻입니다. 우리의 구원은 육신의 죽음이라는 관문을 통과한 후에 완성됩니다. 죽음의 관문을 통과하지 않고는 영생에 들어갈 수 없습니다. 그리스도인은 누구나 처음 예수를 영접했을 때보다는 죽음에 가까이 와 있습니다. 죽음에 가까이 왔다는 것은 천국에 가까이 갔다는 뜻입니다. 그러므로 나이가 들고 죽음이 가까울수록 근신하고 깨어 있어야 합니다. 특히 연세가 들어 예수님 만나실 시간이 많이 남지 않은 분들은 더욱 깨어 있어야 합니다. 헛된 생각을 버리고 진실하고 충성되게 신앙생활 잘하시다가 하나님 앞에 가셔야 합니다.

우리의 구원이 가까워졌다는 말씀의 세 번째 뜻은 예수님 재림이라는 종말론적 사건과 관계가 있습니다. 우리가 얼마나 예수를 믿었든지 시간적으로 그만큼 예수님 재림이 가까워졌습니다. 10년 예수를 믿었으면 예수님 재림은 10년 가까워졌고 30년 믿었다면 예수님 재림이 30년 가까워졌습니다. 예수님 재림이 가까워졌기 때문에 깨어 있어야 합니다. 성도 여러분의 구원이 처음 믿을 때보다 천국에 가까이 갔고 죽음이 가까이 왔으며 예수님 재림이 가까워졌기 때문에 깨어있어야 합니다. 그리스도인의 신앙과 인격은 날로 성장해야하며 천국을 소망하는 성도답게 깨어서 신앙인의 삶을 살아야 한다는 것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2. 우리에게 주어진 인생의 시간이 한정되어 있기 때문에 깨어 있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모든 인간에게 그가 사용 할 수 있는 인생의 시간을 정해 주셨습니다. 그러나 모든 인간에게 똑같은 시간을 주시지는 않았습니다. 어떤 사람은 100년 이상 살지만 어떤 사람은 50-60년을 살기도 하고 어떤 사람은 30도 안 된 젊은 나이에 세상을 떠납니다. 하나님께서 나에게 주신 시간이 얼마나 되는지 자신의 인생의 시간을 알고 살아가는 사람은 없습니다. 나에게 주어진 인생의 시간을 모르기 때문에 깨어 있어야 하며 오늘이 인생의 마지막 날이 될지도 모른다는 생각으로 최선을 다해 살아야 합니다. 같은 시간이지만 잠을 잔 시간이나 일하지 않고 허송한 시간은 시간이 없는 것과 같습니다. 시간이란 일을 하고 어떤 중요한 사건이 있고 활동이 있는 시간만 나의 시간으로 남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그리스도인은 선하고 유익한 일로 열심히 일하며 살아야 합니다.

사람을 평가할 때 그 사람이 얼마나 장수하고 얼마나 부귀영화를 누렸느냐?”는 보지 않습니다. 인간에 대한 평가는 그 사람이 어떤 일을 하고 어떻게 살았느냐에 따라 결정됩니다. 짧게 살아도 많은 사람을 위해 유익한 일을 하고 훌륭한 업적을 남기면 위대한 사람으로 평가받지만 아무리 오래 살고 아무리 부귀영화를 누려도 한 일이 없으면 역사는 그 사람을 기억해주지 않습니다. 인간이 하나님의 심판대 앞에 서게 되면 하나님께서는 그 사람이 인생의 시간을 어떻게 사용했는지 심문하실 것입니다. 그러므로 무익하고 헛된 일로 세월을 허송하면 안 됩니다. 인간은 자신에게 주어진 인생의 시간이 한정되어 있기 때문에 깨어 있어야 하고 깨어서 인생의 시간을 지혜롭게 잘 사용해야 합니다.

바울 사도께서 너희가 이 시기를 알거니와 자다가 깰 때가 벌써 되었다.......”고 하신 말씀은 인생의 시간을 낭비하지 말고 지혜롭게 잘 사용하라는 뜻입니다. 성도에게 주어진 인생의 시간을 얼마나 충성스럽게 잘 사용했느냐에 따라 천국의 상급과 영광이 결정되기 때문입니다. 지나간 과거는 우리의 시간이 아닙니다. 지나간 시간은 이미 사용해버리고 도둑맞은 시간입니다. 내일도 내 시간이라는 보장이 없습니다. 왜냐하면 오늘 밤에라도 하나님께서 부르시면 떠나야 하기 때문입니다. 우리에게 주어진 시간은 지금 현재의 시간밖에 없습니다. 그러므로 그리스도인은 오늘이 내 인생의 마지막 날이 될지도 모른다는 생각으로 경건하고 성실한 자세로 하루하루 최선을 다해 살아야 합니다.

우리들의 구원은 분명히 처음 믿을 때보다 가까워졌습니다. 우리들이 주님 앞에 서게 되면 주님께서는 우리의 달란트를 계산하실 것입니다(마태복음 25:14-30). 주님께서는 우리의 능력에 따라 달란트를 맡기셨습니다. 다섯 달란트의 능력을 가진 사람에게는 다섯 달란트를 맡기시고 두 달란트의 능력을 가진 사람에게는 두 달란트를 맡기셨습니다. 또한 특별한 사명을 위해 특별한 달란트를 받은 사람도 있습니다. 예를 들면 정치인, 고위관료, 사업가, 연예인, 음악가, 직업적인 전문 운동선수도 자기의 영역과 자기 분야에서 전도하고 하나님 일을 하도록 하나님께 특별한 달란트를 받은 사람들입니다. 우리 주님께서는 한 달란트나 두 달란트의 능력을 가진 사람에게 다섯 달란트를 요구하시지 않습니다. 내가 받은 달란트와 내 능력대로 최선을 다하면 착하고 충성된 종이라고 칭찬하십니다. 우리에게 주어진 인생의 시간이 한정되어 있기 때문에 깨어 있어야 한다고 말씀드렸습니다. 그리스도인은 오늘이 내 인생의 마지막이 날이 되고 지금 이 시간이 내 인생의 마지막 시간이 될지도 모른다는 자세로 깨어서 하루하루 최선을 다하는 삶을 살아야 한다는 것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3. 그리스도인은 깨어서 빛과 진리 가운데 행하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본문 12절에 밤이 깊고 낮이 가까웠으니 그러므로 우리가 어둠의 일을 벗고 빛의 갑옷을 입자말씀하고 있습니다. 밤이 깊고 낮이 가까워졌으니 어둠과 죄악 된 일을 벗어던지고 선하고 의롭고 빛이 되는 삶을 살아야 한다는 말씀입니다. 일반적으로 사람들은 어두운 밤에는 쉬고 밝은 낮에 일을 합니다. 그러나 밤에 일을 하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왜 밤에 일을 하느냐? 밝은 낮에는 할 수 없는 부끄러운 일이기 때문입니다. 밤에 하는 일이 어떤 일입니까? 밤에 하는 일은 도둑질과 방탕, 술 취함, 음란, 호색과 같은 행위들입니다.

그리스도인은 밤에 속한 사람이 아니라 낮에 속한 사람입니다. 그리스도인은 낮에 속한 사람이기 때문에 죄악 된 일을 하면 안 됩니다. 바울 사도는 어둠의 일을 벗고 빛의 갑옷을 입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갑옷은 전쟁터에서 군인이 호신용으로 입는 옷입니다. 바울 사도는 그리스도인을 적과 싸우는 군인에 비유하신 것입니다. 그리스도인이 맞서 싸우는 그리스도인의 적군은 누굽니까? 사탄 마귀와 죄악의 세력입니다. 사탄 마귀와 싸워 이기고 죄악의 세력을 물리치려면 빛의 갑옷을 입고 단단히 무장을 해야 합니다. 빛의 갑옷이 무엇이냐? 빛의 갑옷은 만고불변의 진리인 하나님 말씀과 예수님의 교훈입니다. 하나님 말씀으로 무장하고 우리의 대장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의지해야 승리하기 때문에 빛의 갑옷을 입으라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또 바울 사도는 낮에와 같이 단정히 행하라.......”고 말씀하셨습니다(13). 그리스도인은 깨어 있는 사람이요 낮에 속한 사람이기 때문에 옷차림이나 행실이 단정해야 합니다. 그리스도인은 방탕하거나 술 취하면 안 되고 음란과 호색에 빠져도 안 되며, 정욕과 육신의 쾌락을 즐겨도 안 됩니다. 또한 싸우고 시기하는 육신의 일을 도모해도 안 됩니다. 그런 일은 어둠에 속한 일이며 죄악 된 일입니다. 깨어 있는 사람은 낮에 속하고 빛에 속하기 때문에 빛과 진리 가운데 행하며 하나님 영광을 드러내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기독교역사에서 영원한 진리의 금자탑으로 우뚝 선 어거스틴의 회심(回心)에 관한 이야기입니다. 어거스틴은 지식과 학문이 뛰어났지만 그의 방탕한 생활을 고치는 데는 탁월한 지식과 학문도 아무 도움이 되지 않았습니다. 주후(AD) 386년의 여름 어느 날 어거스틴은 이태리의 밀라노 근처에 있는 별장에서 죄악에 무능한 자신을 한탄하며 죄악 된 생활에서 구원하여 달라고 통곡하며 하나님께 부르짖어 기도했습니다. 방탕한 생활에 대한 갈등과 괴로움이 얼마나 컸으면 하나님께 구원해달라고 통곡하며 기도했겠습니까? 어거스틴이 무화과나무 아래서 땅에 엎드려 눈물을 흘리며 기도하고 있을 때 한 음성이 들려 왔습니다. 이웃집에서 들려오는 소리 같은데 소년의 음성인지 소녀의 음성인지 분간하기가 어려웠습니다. 마치 노래의 가사처럼 집어 들고 읽어라. 집어 들고 읽어라고 반복해서 들려왔습니다. 어거스틴은 지금 내가 듣고 있는 말이 혹시 어린아이의 노래가 아닌가?” 하고 조심스럽게 주위를 둘러보았지만 노래가 아니었습니다. 그것은 분명히 하나님의 음성이었습니다.

어거스틴은 급히 친구인 알리피우스(Alypius)가 앉았던 자리로 가서 거기에 있는 바울 서신을 펴들고 눈에 들어오는 성경구절을 읽었습니다. 그가 읽은 말씀이 오늘 본문으로 봉독한 로마서 13:13-14,의 말씀입니다. “낮에와 같이 단정히 행하고 방탕하거나 술 취하지 말며 음란하거나 호색하지 말며 다투거나 시기하지 말고 오직 주 예수 그리스도로 옷 입고 정욕을 위하여 육신의 일을 도모하지 말라는 말씀이었습니다. 어거스틴은 더 읽지 않았습니다. 왜냐하면 이 짧은 말씀은 술과 방탕한 생활로 찌든 어거스틴에게 책망과 경고의 말씀으로 충분했기 때문입니다. 어거스틴은 경건한 그의 어머니 모니카의 기도와 방탕한 생활을 끊고자 한 본인의 노력과 살아서 역사하는 하나님 말씀과 성령의 감동으로 회심을 하고 하나님 앞으로 돌아온 것입니다.

어거스틴은 술과 방탕한 생활과 죄악과의 싸움에서 수없이 넘어지고 실패했지만 좌절하거나 포기하지 않고 빛 가운데 행하기 위해 계속 도전하고 노력했습니다. 어거스틴이 하나님의 품으로 돌아올 때까지 참된 만족과 평화를 누리지 못했습니다. 어거스틴의 탁월한 지식도 그에게 참된 만족과 평화를 주지 못했고 술과 방탕한 생활도 그에게 참된 만족과 평화를 주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어거스틴이 그의 참회록에서 주여 당신께서는 나를 당신에게로 향하도록 만드셨나이다. 내 영혼이 당신 품에서 휴식을 취할 때까지 편안하지 않을 것입니다.”라고 고백한 것입니다. 어거스틴은 회심하고 하나님 앞으로 돌아온 후에 참된 평화와 만족을 얻은 것입니다. 하나님과 예수가 없는 인생은 절대로 참된 만족과 평화를 누릴 수 없습니다. 왜냐하면 인간은 하나님을 섬기고 살아가도록 하나님 형상대로 창조되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어거스틴처럼 믿음으로 살기 위해 노력하는 사람에게는 믿음으로 살아갈 수 있도록 길을 열어주십니다. 하나님과 세상에 양다리를 걸치고 교회에 출석하시는 분이 있습니까? 죄악과 불의한 습관을 끊지 못하시는 분이 있습니까? 낙심하지 마시고 계속 도전하시고 노력하시기 바랍니다. 때가 되면 하나님께서 끊게 해주실 것입니다. 반드시 승리할 수 있습니다. 어거스틴이 그 증인입니다. 시간은 우리를 기다려주지 않습니다. 회개와 구원도 때가 있고 기회가 있습니다. 결단과 청산의 기회를 놓치면 안 됩니다.

하나님께서는 어리석은 부자에게 어리석은 자여 오늘 밤에 네 영혼을 도로 찾으리니 그러면 네가 준비한 재물이 누구의 것이 되겠느냐고 말씀하셨습니다(누가복음 12:13-21). 인간의 탐욕과 죄악으로 얼룩진 부귀영화와 권세와 명예는 하나님의 심판대 앞에서 심판의 형벌만 무겁게 할 뿐입니다. 솔로몬의 고백처럼 하나님 없는 부귀영화는 헛되고 헛되다.”는 것을 명심하셔야 합니다. 지금은 자다가 깰 때입니다. 죄악의 잠에서 깨어나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어리석은 부자에게 하신 책망이 성도 여러분에 대한 책망이 되지 않도록 깨어서 진실한 믿음으로 최선을 다하는 삶을 살아야 한다는 것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말씀을 맺겠습니다. 첫째, 우리의 구원이 처음 믿을 때보다 가까워졌기 때문에 깨어 있어야 한다고 말씀드렸습니다. 그리스도인은 하나님 앞에 가는 날까지 깨어서 경건한 신앙인의 삶을 살아야 한다는 것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둘째, 우리에게 주어진 인생의 시간이 한정돼 있기 때문에 깨어 있어야 한다고 말씀드렸습니다. 오늘이 인생의 마지막 날이 될지도 모른다는 자세로 깨어서 최선을 다하는 삶을 살아야 한다는 것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셋째, 그리스도인은 깨어서 빛과 진리 가운데 행해야 한다고 말씀드렸습니다. 깨어서 불의하고 죄악 된 것을 버리고 빛과 진리의 길로 나아가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2023, 2, 26.

 

* ‘어거스틴은 영어로 발음하는 이름이고 어거스틴의 라틴어(옛날 로마와 지중해 일대에서 사용된 언어) 이름은 아우렐리우스 어거티누스(Aurelius Augustinus, AD 354-430)입니다. 어거스틴은 초대기독교회의 위대한 사상가이자 신학자로 삼위일체론 등 많은 저서가 있지만 잘 알려진 서적은 참회록(Confessiones)입니다. 어거스틴은 참회록에서 인간의 참된 행복은 하나님을 사랑할 때 얻어진다고 말했습니다. 하나님을 알지 못하고 하나님을 만나지 못한 인간은 참된 행복을 누릴 수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