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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랄 수 없는 것을 바라고 믿은 믿음

진리의증인 2023. 2. 17. 06:02

메시지14(로마25) 바랄 수 없는 것을 바라고 믿은 믿음

 

18아브라함이 바랄 수 없는 중에 바라고 믿었으니 이는 네 후손이 이 같으리라 하신 말씀대로 많은 민족의 조상이 되게 하려 하심이라, 19그가 백 세나 되어 자기 몸이 죽은 것 같고 사라의 태가 죽은 것 같음을 알고도 믿음이 약하여지지 아니하고 20믿음이 없어 하나님의 약속을 의심하지 않고 믿음으로 견고하여져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며 21약속하신 그것을 또한 능히 이루실 줄을 확신하였으니 22그러므로 그것이 그에게 의로 여겨졌느니라 23그에게 의로 여겨졌다 기록된 것은 아브라함만 위한 것이 아니요, 24의로 여기심을 받을 우리도 위함이니 곧 예수 우리 주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신 이를 믿는 자니라, 25예수는 우리가 범죄한 것 때문에 내줌이 되고 또한 우리를 의롭다 하시기 위하여 살아나셨느니라

                                                                     (로마서 4:18-25)

 

서론: 성경은 히브리서 11장에서 믿음은 바라는 것들의 실상이요 보이지 않는 것들의 증거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히브리서 11:1). 믿음은 바라고 소망하는 것들을 현실로 이루어 주며 보이지 않는 것들을 본 것처럼 증거한다는 말씀입니다. 바울 사도는 믿음의 조상 아브라함이 바랄 수 없는 중에 바라고 믿었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인간의 지식과 경험으로 이해되는 것만 믿고 바라는 것은 참된 믿음이 될 수 없습니다. 하나님 약속과 하나님 말씀은 인간의 경험과 지식으로 이해가 되지 않아도 믿고 바라고 순종해야 합니다.

이 시간에는 바랄 수 없는 것을 바라고 믿은 믿음이란 제목으로 은혜를 받고자 합니다.

 

1. 아브라함은 바랄 수 없는 중에도 바라고 믿었습니다.

바울 사도는 본문 18절에서 아브라함이 바랄 수 없는 중에 바라고 믿었으니 이는 네 후손이 이 같으리라 하신 말씀대로 많은 민족의 조상이 되게 하려 하심이라말씀하고 있습니다. 아브라함은 불가능한 상황에서도 하나님 말씀을 믿어 많은 민족의 조상이 되었다는 말씀입니다. 어느 날 하나님께서 메소포타미아 갈대아인의 우르에 살고 있던 아브라함을 부르시고 내가 너로 큰 민족을 이루고 네게 복을 주어 네 이름을 창대하게 하리라......”고 말씀하셨습니다(창세기 12:2).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을 부르시고 많은 자손을 주시겠다고 약속하신 것입니다. 이때 아브라함은 75세였습니다. 아브라함은 75세가 되도록 대를 이을 아들이 없었습니다. 그러나 그로부터 몇 년이 지나도 아들을 주시겠다는 하나님 약속은 이루어지지 않았습니다. 아브라함이 아들처럼 길렀던 조카 과 헤어지고 허탈감에 잠겨있던 어느 날 하나님께서 다시 나타나셔서 아브라함의 자손이 땅의 티끌처럼큰 민족이 되도록 번성하게 해주시겠다고 약속하셨습니다(창세기 13:16). 자손에 대한 두 번째 약속입니다.

그러나 아들을 주시겠다는 하나님 약속은 좀처럼 이루어지지 않았습니다. 아들을 기다리다 지친 아브라함은 자기 집에 있는 종 중에서 엘리에셀이란 종을 양자와 후계자로 세우겠다고 하나님께 말씀드렸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그 사람이 네 상속자가 아니라 네 몸에서 날 자가 네 상속자가 되리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는 아브라함에게 밤하늘의 수많은 별들을 가리키시며 네 자손이 하늘의 별처럼 많게 해주시겠다고 약속하셨습니다(창세기 15).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아들을 주시겠다고 말씀하신 세 번째 약속입니다.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세 번이나(창세기 12,13,15) 나타나셔서 하늘의 별과 땅의 티끌처럼 많은 자손을 주시겠다고 약속하셨지만 하나님 약속은 이루어지지 않았습니다. 큰 민족이나 많은 자손은 고사하고 아브라함은 당장 대를 이을 아들도 없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반복해서 약속만 하시고 아들을 주시지 않은 것입니다.

그로부터 다시 몇 년의 세월이 흘렀고 그사이에 아브라함은 하갈이란 여종을 통해서 이스마엘이란 아들을 얻었습니다. 이스마엘을 얻은 후 하나님께서 네 번째로 아브라함에게 나타나셨습니다. 이때 아브라함은 99, 아브라함의 부인인 사라89세였습니다. 하나님은 아브라함에게 다시 아들을 주시겠다고 약속하셨습니다. 아브라함은 이스마엘을 상속자로 세우고 싶었고 사라의 임신과 출산이 불가능했기 때문에 아들을 주시겠다는 하나님 말씀에 갈등이 일어났습니다. 그래서 엎드려 웃으며 마음속으로 백 세 된 사람이 어떻게 자식을 낳을까 사라는 구십 세니 어떻게 출산하리요라고 중얼거렸습니다(창세기 17:17).

나는 백세요, 내 아내는 구십 세인데 어떻게 출산하리요!”라고 한 아브라함의 심중의 독백을 의심이라고 해야 할지, 신앙과 지식 사이의 갈등이라고 해야 할지, 판단하기 어렵지만 아브라함은 순간적으로 이성과 믿음 사이에서 갈등을 했던 것 같습니다. 백 세가 된 아브라함과 이미 생리가 끊어진 사라가 자녀를 생산한다는 것은 도저히 불가능했기 때문입니다. 그로부터 얼마 후 하나님께서 다섯 번째로 아브라함에게 나타나셨습니다(창세기 18:1-15). 하나님은 아브라함에게 내년 이맘때 내가 반드시 네게로 돌아오리니 네 아내 사라에게 아들이 있으리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아브라함의 아내 사라가 장막에 있다가 하나님 말씀을 듣고 속으로 웃고 내가 노쇠하였고 내 주인도 늙었으니 내게 무슨 즐거움이 있으리요라고 중얼거렸습니다(창세기 18:13). 아들을 주시겠다는 하나님 말씀을 믿지 못한 것입니다. 그러자 하나님께서 사라에게 여호와께 능하지 못한 일이 있겠느냐?” 책망하시고 내년 이맘때에 사라에게 아들이 있으리라고 거듭 말씀하셨습니다. 하나님 말씀대로 일 년이 지나 사라는 아들을 낳았고 그 때에 아브라함은 100, 사라는 90세였습니다.

바울 사도는 믿음의 조상 아브라함이 바랄 수 없는 중에 바라고 믿었다고 말씀하셨습니다. 바랄 수 없는 중에 바라고 믿었다는 말씀이 무슨 뜻입니까? 생리가 끊어진 사라가 아들을 낳는다는 것은 의학적이나 생물학적으로 실현이 불가능한 약속이었지만 아브라함은 바라고 믿었다는 말씀입니다. 인간의 이성으로 이해되는 것만 믿는 것은 믿음이 아닙니다. 하나님은 전능하십니다. 그러므로 하나님 말씀은 이해가 되지 않고 불가능하게 생각되는 말씀도 믿어야 합니다. ‘사라는 오래전에 생리가 끊겼습니다. 생리가 끊어진 여자가 어떻게 아이를 가질 수 있겠습니까? 그러나 아브라함은 전능하신 하나님의 약속이기 때문에 바라고 믿었습니다. 아브라함은 바랄 수 없는 것을 바라고 믿었으며 오랜 세월 동안 인내하고 기다려서 하나님이 약속하신 아들을 받았습니다. 그리스도인은 아브라함처럼 하나님 말씀과 약속은 불가능하고 이해가 되지 않는 것도 바라고 믿어야 한다는 것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2. 아브라함이 믿은 하나님은 계시와 언약의 하나님입니다.

기독교를 계시(啓示)의 종교(宗敎)또는 계시의존(啓示依存)의 신앙(信仰)이라고 합니다. 계시(revelation 리버레이션)가 무엇이냐? 인간의 지식이나 인간의 능력으로 알 수 없는 하나님의 존재와 하나님의 뜻을 하나님께서 인간에게 나타내고 보여주시는 것을 계시라고 합니다. 세상에는 많은 종교가 있지만 하나님의 계시와 약속에 의해 세워진 종교는 기독교밖에 없습니다. 먼저 하나님의 계시와 약속이 있고 계시하신 하나님의 약속과 말씀을 믿는 것이 기독교입니다. 그래서 기독교를 계시 의존의 신앙, 언약신앙(言約神仰), 혹은 계약신앙(契約神仰)이라고 합니다. 하나님의 자기계시(自己啓示)와 하나님의 구체적인 말씀과 약속이 없이 믿는 것은 미신(迷信)이며 우상숭배(偶像崇拜)입니다. 그리고 신념(信念)과 신앙(信仰)도 다릅니다. 인간의 일방적인 믿음이나 확신은 신념입니다. 반면에 하나님 약속이 있고 하나님 약속을 믿는 것은 신앙입니다. 하나님께서 먼저 아브라함에게 나타나셔서(啓示 계시), 아브라함을 부르시고(召命 소명),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약속하셨습니다(言約 언약). 아브라함이 먼저 하나님을 찾은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먼저 아브라함을 부르시고 약속하셨습니다. 그래서 기독교를 계시의 종교 또는 계약의 종교 혹은 언약신앙이라고 하는 것입니다.

반면에 기독교 제외한 세상의 종교는 하나님의 계시나 약속이 없습니다. 왜냐하면 기독교를 제외한 세상의 종교는 인간의 철학과 인간의 사색으로 만들어진 허구이기 때문입니다. 세상 사람들은 상상 속의 존재나 나무나 바위나 짐승과 같은 것들을 신으로 섬깁니다. 상상 속의 존재는 실재로 존재하지도 않고 나무나 짐승이나 바위와 같은 것들은 생명도 없고 능력도 없습니다. 오래된 당산나무에 절을 하고 바위가 신령하게 생겼다고 절을 하고 신으로 섬기면 당산나무가 신이 되고 바위가 신이 됩니까? 또 사람이 손으로 깎아 만든 조각품이나 쇳물을 녹여 부어 만든 우상의 형상에 절을 하고 숭배한다고 그것이 신이 됩니까? 토속종교나 세상 사람들이 믿는 신앙은 공통적인 특징이 있습니다. 그들은 자연에 있는 어떤 사물을 숭배하거나 인간이 상상해서 만든 어떤 형상을 신으로 숭배한다는 것입니다.

인간은 하나님 형상대로 창조된 존귀한 존재입니다(창세기 1:26). 세상에서 인간보다 존귀한 존재는 없습니다. 하늘과 땅과 산과 바다와 짐승과 자연계의 모든 것은 하나님께서 인간을 위해 창조하시고 인간에게 주셨습니다. 그러므로 인간은 세상의 주인입니다. 그러나 어찌 된 일인지 인간이 자연과 짐승의 형상을 숭배하고 존재하지도 않는 상상의 물건을 만들어 숭배합니다. 우상숭배자들은 인간 되기를 포기하고 금수(禽獸)와 버러지보다 못한 존재가 되겠다고 자처한 사람들입니다. 인간이 하나님을 거부하기 때문에 버러지와 금수를 숭배하며 버러지와 금수보다 못한 짓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우상숭배자들이 얼마나 불쌍한 인간들입니까? 아브라함은 계시와 언약의 하나님을 믿었습니다. 그리스도인은 계시와 언약의 하나님을 믿는 사람입니다. 진짜 신은 하나님밖에 없습니다. 그리스도인은 하나님을 섬기는 데 자부심을 가지고 하나님께 충성하시고 헌신하셔야 한다는 것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3. 아브라함과 같은 믿음을 가져야 하나님께 의인으로 인정받고 복을 받습니다.

본문 23-24절에서 그에게 의로 여겨졌다 기록된 것은 아브라함만 위한 것이 아니요 의로 여기심을 받을 우리도 위함이니 곧 예수 우리 주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신 이를 믿는 자니라말씀하고 있습니다. 아브라함과 같은 믿음을 가져야 의인이 되고 아브라함이 받은 축복을 받는다는 말씀입니다. 성경에 기록된 하나님 말씀과 약속은 시간과 공간을 초월하여 온 세상 모든 인간에게 주시는 하나님 말씀이며 하나님 약속입니다. 그러므로 아브라함에게 하신 약속은 아브라함의 후손인 이스라엘 백성과 영적 이스라엘이 된 그리스도인과 온 세상 모든 민족에게 주신 하나님의 약속입니다. 하나님 앞에 의인이 되고 아브라함의 후손이 되는 것은 혈통이나 율법이나 할례가 아니라 믿음으로 됩니다. 아브라함과 같은 믿음을 가져야 의인으로 인정받고 아브라함의 후손이 되고 하나님 은혜와 축복을 받는 것입니다.

그리스도인은 아브라함과 같은 믿음을 가져야 합니다. 아브라함의 믿음이 어떤 믿음입니까? 하나님 약속이 이해가 되지 않아도 믿고 하나님 약속이 속히 이루어지지 않아도 기다리고 믿는 믿음입니다.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최초로 아들을 주시겠다고 약속하실 때 아브라함의 나이는 75세였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그로부터 25년이 지나 아브라함이 100세 때에 약속하신 아들을 주셨습니다. 아브라함은 25년이란 시간을 기다려서 하나님이 약속하신 아들을 받은 것입니다. 아브라함같이 인내하고 순종하고 기다려야 복을 받는 것입니다.

많은 성도들이 하나님께 복 달라고 기도하지만 하나님께 복 받는 방법을 알지 못합니다. 하나님께 복 받는 방법이 무엇이냐? 아브라함처럼 믿고 하나님 말씀에 순종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아브라함을 믿음의 조상과 복의 근원으로 축복해주셨습니다. 아브라함이 믿음의 조상과 복의 근원으로 축복받은 비결이 무엇입니까? 아브라함이 하나님 약속을 믿고 하나님 말씀에 순종했기 때문입니다. 순종이 없는 신앙은 위선이고 자기기만입니다. 예수는 머리나 입으로 믿는 것이 아닙니다. 반드시 순종하고 행위와 실천이 뒤따라야 합니다. 행함이 없는 믿음은 죽은 믿음입니다. 하나님은 아브라함이 75세 때에 너는 너의 고향과 친척과 아버지의 집을 떠나 내가 네게 보여 줄 땅으로 가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아브라함은 고향과 친척과 아버지 집을 떠나라는 하나님 말씀에 순종해서 즉시 떠났습니다. 아브라함이 하나님 말씀에 순종했기 때문에 믿음의 조상과 복의 근원으로 축복해주신 것입니다. 아브라함처럼 믿고 순종해야 하나님 은혜와 축복을 받는다는 것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말씀을 맺겠습니다. 첫째, 믿음의 조상 아브라함은 바랄 수 없는 중에 바라고 믿었다고 말씀드렸습니다. 아브라함은 불가능하게 보이고 하나님 말씀과 약속이 이해가 되지 않아도 바라고 믿은 것입니다. 인간의 경험과 지식으로 이해되는 것만 믿는 것은 믿음이 아닙니다. 현대 그리스도인의 문제와 그리스도인의 불신앙이 무엇이냐? 이해되는 것만 믿고 이해되지 않는 것은 믿지 않는 태도입니다. 아브라함이 왜 바랄 수 없는 것을 바라고 믿었습니까? 하나님은 무엇이든지 하실 수 있는 전능하신 하나님이시기 때문입니다. 믿음의 조상 아브라함처럼 하나님 말씀이라면 이해가 되지 않고 불가능하게 보이는 일도 바라고 믿고 소망하셔야 한다는 것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둘째, 아브라함은 계시와 언약의 하나님을 믿었다고 말씀드렸습니다. 기독교의 하나님은 계시의 하나님이시며 언약의 하나님이십니다. 기독교를 제외한 세상의 종교에는 하나님의 계시와 언약이 없습니다. 왜냐하면 우상숭배나 세속적인 종교는 인간의 상상과 인간의 생각으로 만들어낸 허구이기 때문입니다. 기독교는 계시의 종교이며 기독교 하나님은 언약의 하나님이라는 것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셋째, 아브라함과 같은 믿음을 가져야 하나님께 의인으로 인정받고 복을 받는다고 말씀드렸습니다. 아브라함의 믿음이 어떤 믿음입니까? 아브라함은 바랄 수 없는 것을 바라고 믿었습니다. 머리로 믿는 관념적인 믿음이나 입으로 믿는 믿음이나 형식적인 믿음이 아니라 아브라함처럼 바랄 수 없는 것을 바라고 믿는 믿음을 가져야 합니다. 주경학자인 벵겔 선생님은 아브라함의 믿음은 앞으로 되어 질 그리고 일어날 것에 대한 것이었으나 우리들의 믿음은 실제로 일어난 것에 대한 것이다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렇습니다. 아브라함은 장차 이루어질 하나님 약속을 믿었지만 우리들은 이미 이루어진 것을 믿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들은 아브라함보다 더 확신을 가지고 믿어야 합니다. 아브라함과 같은 진실한 믿음과 순종하는 믿음으로 신앙과 인생에 승리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2023, 2, 1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