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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음에 빚진자

진리의증인 2023. 2. 3. 04:29

메시지4(로마7) 복음에 빚진 자

 

14헬라인이나 야만인이나 지혜 있는 자나 어리석은 자에게 다 내가 빚진 자라, 15그러므로 나는 할 수 있는 대로 로마에 있는 너희에게도 복음 전하기를 원하노라” (로마서 1:14-15)

 

서론: 우리 속담에 빚진 죄인이란 말이 있습니다. 빚을 갚지 못하면 채무자는 채권자에게 죄인이 된다는 뜻입니다. 빚에는 물질적인 빚, 도덕적인 빚(양심이나 윤리적인 빚), 복음의 빚, 사랑의 빚 등 다양한 빚이 있습니다. 성경은 사랑의 빚 외에는 어떤 빚도 지면 안 된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로마서 13:8). 바울 사도는 나는 복음에 빚진 자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복음에 빚졌다는 말은 복음을 전해야 할 사명과 의무를 가지고 있다는 뜻입니다. 우리들 중에 값을 지불하고 복음을 받은 사람은 없습니다. 누군가 우리에게 값없이 복음을 전해서 복음을 받았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그리스도인에게는 복음의 빚을 갚아야 할 책임과 의무가 있습니다. 복음의 빚을 갚는 방법이 무엇이냐? 우리 이웃과 온 세상 모든 사람에게 힘써 복음을 전해야 합니다. 도덕적인 빚이나 물질적인 빚이나 사랑의 빚은 다른 사람이 대신 갚을 수 있지만(빌레몬 1:18-19) 복음의 빚은 다른 사람이 대신 갚아줄 수 없습니다.

이 시간에는 복음에 빚진 자란 제목으로 함께 은혜를 받고자 합니다.

 

1. 복음의 빚을 갚기 위해 이웃과 온 세상 모든 사람에게 힘써 복음을 전해야 합니다.

바울 사도는 본문 14절에서 헬라인이나 야만인이나 지혜 있는 자나 어리석은 자에게 다 내가 빚진 자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바울 사도는 세상 사람을 헬라인과 야만인, 지혜 있는 사람과 어리석은 사람이라는 이분법으로 말씀하셨습니다. 헬라인의 의미가 무엇이냐? 헬라인은 헬라국가의 태생이나 헬라인의 혈통과 상관없이 국경과, 인종과, 종교를 초월하여 헬라어를 사용하는 사람과 헬라의 사상과 문화에 동화된 사람을 의미합니다. 바울 사도 당시에 헬라인은 야만인에 반대되는 개념으로 문화인과 문명인을 상징했습니다. 헬라인은 학문과 교양과 철학과 지성의 상징이었습니다. 당시에 헬라어()는 세계의 공용어로 세상의 언어 중에서 가장 발음이 부드럽고 세상의 문자 중에서 가장 과학적인 문자였습니다. 반면에 이방인들의 말과 언어는 거칠고 발음이 불분명했습니다. 헬라인들이 들을 때 이방인들의 말은 알아들을 수 없는 이상한 소리를 내는 것과 같았습니다.

그러면 야만인은 어떤 사람이냐? 야만인은 헬라의 문화와 사상과 철학을 모르고 헬라어를 구사할 줄 모르는 사람을 상징합니다. 헬라인은 지혜 있는 사람을 의미하고 야만인은 헬라어를 모르는 미개하고 어리석은 사람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헬라인이나 야만인이나 지혜 있는 자나 어리석은 자에게 다 내가 빚진 자라고 하신 말씀은 인종과 국경과 종교를 초월하여 온 세상 모든 사람에게 복음을 전할 책임과 의무가 있다는 뜻입니다.

복음은 누구에게나 차별 없이 전해야 합니다. 복음은 문명의 도시에서부터 광야와 산골 오지까지 빠짐없이 전해져야 하며 존귀한 왕으로부터 미천한 하인과 죄수에 이르기까지 누구나 들을 수 있도록 전해야 합니다. 또한 복음은 사랑하는 사람에게도 전해야 하지만 내가 증오하고 싫어하는 민족과 나를 괴롭히는 원수에게도 전해야 합니다. 선지자 요나는 민족감정에 얽매여 니느웨 사람들에게 복음전하기를 거부하다 하나님께 책망과 징계를 받았습니다. 아직도 하나님과 예수 그리스도의 구속의 십자가를 모르는 사람이 있다면 그가 어디에서 무엇을 하는 사람이든지 복음을 전해야 합니다. 그리스도인에게는 온 세상 모든 사람에게 복음을 전해야 할 사명과 의무가 있습니다. 그리스도인은 온 세상 모든 사람에게 힘써 복음을 전해야 할 의무가 있는 복음에 빚진 자라는 것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2. 할 수 있는 한 최선을 다해 복음을 전해야 합니다.

바울 사도는 본문 15절에서 그러므로 나는 할 수 있는 대로 로마에 있는 너희에게도 복음 전하기를 원하노라고 말씀하셨습니다. ‘할 수 있는 대로란 표현은 할 수 있는 한 최선을 다해서라는 뜻입니다. 최선을 다해 복음을 전하기 원한다는 말씀입니다. 바울 사도는 디모데후서 4:2,에서 너는 말씀을 전파하라, 때를 얻는지 못 얻든지 항상 힘쓰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복음을 전하는 데 정해진 대상이나 정해진 시간은 없습니다. 복음은 누구에게나 전해야 하고 항상 전해야 합니다. 그리고 복음은 인내심을 가지고 전해야 합니다. “때를 얻든지 못 얻든지 항상 힘쓰라는 말씀은 전도자의 인내를 강조하신 말씀입니다. 씨를 뿌리고 당장 열매를 기대하는 자세로 복음을 전하면 안 된다는 말씀입니다. 일단 복음의 씨앗을 뿌려 놓으면 때가 되면 열매가 맺을 것이라는 믿음을 가지고 복음을 전해야 합니다. 복음의 열매를 수확하는 것은 하나님께 맡기고 열심히 복음을 전하면 되는 것입니다. 또한 때를 얻든지 못 얻든지 복음을 전파하라는 말씀은 복음을 받아들이든지 안 받아들이든지 낙심하지 말고 전해야 한다는 뜻입니다. 복음을 전하는 사람에게 가장 필요한 자질이 인내심입니다. 인내심을 가지고 듣든지 안 듣든지 힘써 복음을 전해야 합니다.

다음으로 우리가 값없이 복음을 받았기 때문에 우리도 값없이 복음을 전해야 합니다. 바울 사도는 고린도전서 9:18,에서 그런즉 내 상이 무엇이냐 내가 복음을 전할 때에 값없이 전하고 복음으로 말미암아 내게 있는 권리를 다 쓰지 아니하는 이것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우리가 값을 지불하고 복음을 받았다면 복음은 빚이 되지 않습니다. 정당한 대가를 지불했다면 빚이 될 수 없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값없이 복음을 받았기 때문에 빚이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도 값없이 복음을 전해야 합니다.

! 사람들이 듣든지 안 듣든지 값없이 복음을 전하기만 하면 복음전도자의 사명이 끝날까요? 그렇지 않습니다. 사람들이 복음을 받아들일 수 있도록 효과적인 방법으로 전해야 합니다. 예를 들면 복음을 듣는 사람들의 현실적인 문제에도 관심을 가지고 접근해야 합니다. 헐벗고 굶주린 사람에게는 입을 것과 먹을 것을 주고, 낙심 중에 있는 사람에게는 도움과 격려를 주며, 슬픔 가운데 있는 사람에게는 따뜻한 위로와 함께 복음을 전해야 합니다. 예수님도 그렇게 복음을 전하셨습니다. 귀신에 들린 사람에게는 귀신을 쫓아내주셨고, 병든 자는 병을 고쳐주셨으며, 소경은 보게 하시고, 귀머거리는 듣게 하셨으며, 굶주린 자들에게는 오병이어(五餠二魚)의 기적으로 주린 배를 채워 주시면서 복음을 전하셨습니다. 복음만 가지고는 부족합니다. 사람들의 마음을 사로잡을 수 있는 수단과 방법이 병행돼야 합니다. 그래서 선교와 복음 전파에 물질이 필요하고 사랑과 봉사가 필요한 것입니다. 값없이 복음을 받았기 때문에 값없이 복음을 전해야 하지만 복음을 듣는 사람의 문제에 관심을 갖고 그들에 대한 지원이 병행돼야 효과적인 전도가 된다는 것을 명심하셔야 합니다.

또한 복음을 전할 때는 말의 지혜로 하지 말고 단순히 복음만 전해야 합니다. 바울 사도는 고린도전서 1:17,에서 그리스도께서 나를 보내심은.......오직 복음을 전하게 하려 하심이로되 말의 지혜로 하지 아니함은 그리스도의 십자가가 헛되지 않게 하려 함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복음의 핵심은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입니다. 그러므로 복음을 전할 때는 예수님이 인간의 죄를 지시고 십자가에서 죽으셨다는 것과 누구든지 예수를 믿어야 죄에서 구원받고 영생을 얻는다는 복음의 핵심을 전해야 합니다. 유식하고 고상한 말로 복음을 전하거나 인간적인 방법으로 복음을 전하면 반드시 실패합니다.

사도행전 17장에는 바울 사도가 제2차 전도여행 중에 아덴에서 복음을 전한 사건이 기록돼 있습니다. 아덴은 오늘날 그리스의 수도인 아테네를 말합니다. 바울 사도가 복음을 전할 때 고린도나 에베소는 상업의 도시였지만 아덴은 철학과 종교와 학문과 예술의 도시였습니다. 아덴에는 많은 철학자들이 있었는데 이 사람들은 새로운 종교와 새로운 사상에 대해서 듣고 토론하는 것이 그들의 일과였습니다. 바울 사도는 아덴에서 에비구레오 학파와(에피큐로스학파, 쾌락주의) 스도이고 학파의(스토아학파 일종의 범신론, 세계는 신의 몸이고 만물에 신이 있다고 주장) 철학자들을 만나 그들과 기독교에 대해 열띤 논쟁을 하고 장소를 옮겨 아레오바고 언덕에서 수많은 아덴 사람들을 상대로 유식이 철철 흘러넘치는 논리적이고 철학적인 설교로 청중을 압도했습니다. 오늘날 우리들이 읽어도 매우 감동적인 설교입니다.

그러나 바울 사도의 지적이고 철학적인 유식한 설교는 전도의 열매를 맺지 못했습니다. 바울 사도는 가는 곳마다 복음을 전해서 수많은 교회를 세웠지만 아덴에서는 교회를 세우지 못했습니다. 바울 사도의 지적이고 철학적인 설교에도 불구하고 겨우 몇 사람만 복음을 받아들였습니다. 지적이고 철학적인 설교가 실패한 것입니다. 복음을 전하는 사람은 단순하게 예수 그리스도와 구속의 십자가를 전해야 합니다. 아무리 유식하고 고상한 설교를 하고 아무리 논리적이고 철학적인 설교를 해도 십자가와 예수 그리스도가 없는 설교는 복음이 아니라 웅변이나 강연에 불과합니다. 복음을 전하는 사람은 복음의 핵심인 예수 그리스도와 구속의 십자가를 전해야 한다는 것을 명심하셔야 합니다.

다음으로 복음을 전하는 사람은 복음에 합당한 생활을 해야 합니다. 바울 사도는 빌립보서 1:27,에서 오직 너희는 그리스도의 복음에 합당하게 생활하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리스도의 복음에 합당한 생활이 무엇이냐? 삶의 현장에서 선하고 아름다운 행실로 예수 그리스도를 증거하라는 말씀입니다. 복음에 합당한 생활보다 감동과 호소력 있는 전도방법은 없습니다. 아무리 복음전파에 열심을 내도 말과 행실이 일치하지 않고 그 사람의 삶에 경건성과 진실성이 없으면 사람들은 절대로 복음을 받아들이지 않습니다.

19세기 독일의 시인이자 철학자였던 니체(Friedrich Wilhelm Nietzsche 1844-1900)는 목사의 아들로 태어났습니다. 그러나 니체는 기독교를 가장 반대한 자가 되었습니다. 왜냐하면 그리스도인의 말과 행실이 너무나 달랐기 때문입니다. 니체는 그리스도인에게 당신이 구원받고 있음을 보여다오. 그렇게 되면 나는 당신의 구세주를 믿겠다.”고 말했습니다. 그리스도인이 예수를 잘못 믿기 때문에 니체와 같은 반대자가 나오는 것입니다. 우리가 믿고 전하는 복음이 진리라면 복음이 진리라는 것을 생활 속에서 변화된 우리의 삶을 통해 보여주어야 합니다. 복음은 살아서 역사하는 생명의 말씀인데 내가 감동을 주지 못하면 어떻게 전도에 성공할 수 있겠습니까? 복음은 말로 전하는 것이 아닙니다. 그리스도인은 복음에 합당한 생활로 최선을 다해 복음을 전해야 한다는 것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3. 교회와 성도에게 복음을 전하는 일보다 긴급하고 중요한 일은 없습니다.

예수님 당시에 이스라엘 민족의 가장 간절한 소망은 이스라엘이 로마의 식민지로부터 독립을 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제자들은 부활하신 예수님께 제일먼저 이스라엘이 언제 독립하느냐?”고 물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때와 시기는 아버지께서 자기의 권한에 두셨으니 너희가 알 바 아니요 오직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시면 너희가 권능을 받고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돼라고 말씀하셨습니다(사도행전 1:7-8). 복음을 전하는 전도는 나라의 독립보다 중요하고 긴급하다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오늘날 우리들은 어떤 방법으로 복음을 전할 수 있을까요? 자신이 직접 복음을 전하는 방법이 있고 간접적으로 복음을 전하는 방법이 있습니다. 직접 복음을 전하는 방법은 선교사로 외국에 나가서 복음을 전하는 방법이 있고, 서울의 명동이나 시장이나 지하철처럼 사람이 많이 모이는 곳이나, 마을과 가정을 방문해서 복음을 전하는 방법이 있습니다. 그러나 개인적인 사정으로 직접 복음을 전할 수 없는 사람도 많이 있습니다. 직접 복음을 전할 수 없는 성도들은 간접적인 방법으로 복음을 전할 수 있습니다. 물질적 후원과 선교헌금, 기도 등의 방법으로 선교에 참여하는 것입니다. 바울 사도는 로마서 10:14-15,에서 “......전파하는 자가 없이 어찌 들으리요 보내심을 받지 아니하였으면 어찌 전파하리요......”라고 복음전파의 중요성과 긴급성을 호소하셨습니다. 복음을 전하는 사람이 없으면 어디에서 누구에게 복음을 듣겠습니까? 그래서 선교사를 파송하고 거리에 나가 가두전도를 하고 집집마다 찾아가는 축호전도를 하는 것입니다. 복음을 전하는 교회가 부흥하고 선교사를 보내는 교회가 부흥하고 발전합니다. 교회와 성도는 복음 전하는 일에 최선을 다해야 합니다.

바울 사도는 고린도전서 9:16,에서 내가 복음을 전할지라도 자랑할 것이 없음은 내가 부득불 할 일임이라 만일 복음을 전하지 아니하면 내게 화가 있을 것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바울 사도께서는 나는 부득불 복음을 전해야 한다고 말씀하셨습니다. 부득불(不得不)이 무슨 뜻입니까? 하지 않을 수 없는 일, 꼭 해야 할 일을 부득불이라고 합니다. 전도는 하지 않을 수 없고 전도는 반드시 해야 한다는 뜻입니다. 바울 사도는 만약 복음을 전하지 아니하면 하나님께서 내게 화를 내리실 것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리스도인은 복음전파에 대해 바울 사도와 같은 뜨거운 열정과 투철한 사명감을 가져야 합니다. 복음전파는 국가의 독립보다 중요하고 지금 당장 실천해야 하는 중요하고 긴급한 일입니다. 교회와 성도 여러분에게는 복음을 전하는 일보다 긴급하고 중요한 일이 없다는 것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말씀을 맺겠습니다. 복음을 전하는 일은 해도 되고 안 해도 되는 일이 아닙니다. 복음은 반드시 전해야 하고 지금 당장 전해야 합니다. 영혼이 구원받고 하나님 은혜를 체험한 사람은 복음을 전하지 않을 수 없고 복음을 전하라는 주님의 분부를 외면할 수 없습니다. 그래서 바울 사도가 복음전파의 사명과 전도의 사명을 빚에 비유하신 것입니다. 빚은 강제적인 구속력을 가지고 있습니다. 빚은 반드시 갚아야 합니다. 그리스도인은 복음에 빚진 자들입니다. 복음을 전하지 않는 성도는 빚을 떼어먹고 사는 사람과 같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성도 여러분을 오늘 이 시대의 복음 전도자로 부르시고 세우셨습니다. 그러므로 그리스도인은 최선을 다해 열심히 복음을 전해야 합니다. 복음의 빚을 갚기 위해 복음 전파에 최선을 다하시는 성도 여러분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2023, 2, 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