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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국은 침노하는 자의 것

진리의증인 2022. 12. 9. 04:53

이 정만 목사 (HP:010-5359-1617)

블로그(네이버:논산동산교회, 다음:논산동산교회)

 

메시지292(마태77) 천국은 침노하는 자의 것

 

12세례 요한의 때부터 지금까지 천국은 침노를 당하나니 침노하는 자는 빼앗느니라, 13모든 선지자와 율법이 예언한 것은 요한까지니 14만일 너희가 즐겨 받을진대 오리라 한 엘리야가 곧 이 사람이니라, 15귀 있는 자는 들을지어다, 16이 세대를 무엇으로 비유할까 비유하건대 아이들이 장터에 앉아 제 동무를 불러 17이르되 우리가 너희를 향하여 피리를 불어도 너희가 춤추지 않고 우리가 슬피 울어도 너희가 가슴을 치지 아니하였다 함과 같도다, 18요한이 와서 먹지도 않고 마시지도 아니하매 그들이 말하기를 귀신이 들렸다 하더니 19인자는 와서 먹고 마시매 말하기를 보라 먹기를 탐하고 포도주를 즐기는 사람이요 세리와 죄인의 친구로다 하니 지혜는 그 행한 일로 인하여 옳다 함을 얻느니라” (마태복음 11:12-19)

 

서론: 예수님께서는 천국은 침노하는 자가 들어간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천국은 구경꾼이나 방관자가 들어가는 것이 아니라 전쟁터에서 적과 싸우는 군인처럼 신앙과 진리를 위해 투쟁하고 하나님과 예수님께 충성하고 헌신한 사람이 들어간다는 말씀입니다.

이 시간에는 천국은 침노하는 자의 것이란 제목으로 함께 은혜를 받고자 합니다.

 

1. 천국은 침노하는 자의 것이며 천국은 침노하는 자가 들어갑니다.

예수님은 본문 12절에서 세례 요한의 때부터 지금까지 천국은 침노를 당하나니 침노하는 자는 빼앗느니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침노(侵擄)한다는 말은 전쟁에서 다른 나라를 공격하고 쳐들어가서 빼앗는 것을 의미합니다. 천국에 들어가기 위해 투쟁하고 노력하는 사람이 천국을 얻고 천국에 들어간다는 뜻입니다. 성경은 주 예수를 믿으라. 그리하면 너와 네 집이 구원을 받으리라말씀하고 있습니다. 예수를 믿어야 죄에서 구원받고 천국에 들어간다는 말씀입니다. 우리들도 전도할 때 예수 믿으면 천국에 들어간다고 말합니다. 문제는 믿음의 진실성입니다. “진짜 믿음이 있느냐?” 믿음이 얼마나 진실한가에 달려있습니다. 위선자의 거짓된 믿음이나 하나님과 세상에 양다리를 걸치고 살아가는 기회주의자는 천국에 들어갈 수 없습니다. 예수를 진실하게 믿고 믿음이 진실해야 천국에 들어갑니다. 예수를 진실하게 믿으면 사람이 변하고 성품이 변합니다. 예수 믿는 티가 나고 예수의 향기가 풍기는 것입니다. 예수 믿는 사람은 교회의 일에 무관심할 수 없고 이웃의 고통을 외면할 수 없습니다. 믿음이 진실하고 하나님과 예수님을 사랑하며 하나님과 교회를 위해 충성하고 헌신하는 사람이 천국에 들어가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천국은 침노하는 자가 들어간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천국 문이 열려 있다고 누구나 천국에 들어가는 것은 아니라는 말씀입니다. 전쟁에서 군인이 성이나 진지를 빼앗기 위해 목숨을 걸고 싸우는 것처럼 하나님과 천국을 위해 투쟁하고 노력하는 사람이 천국에 들어갑니다. 말씀이 반복되고 있습니다만 하나님과 세상에 양다리 걸치고 살아가는 기회주의자는 천국에 들어가지 못합니다. 또 구경꾼이나 방관자도 천국에 들어갈 수 없습니다. 아무나 들어갈 수 있다면 그곳은 천국이 아니라 지옥입니다. 하나님과 교회를 위해 투쟁하고 충성하고 노력한 사람이 천국에 들어간다는 것을 명심하셔야 합니다.

예수님은 계시록 2:10,에서 네가 죽도록 충성하라, 그리하면 내가 생명의 면류관을 네게 주리라고 말씀하셨습니다. 하나님과 얘수님을 위해 죽도록 충성한 사람이 영생을 얻고 천국에 들어간다는 말씀입니다. 하나님과 천국보다 세상일에 열심을 낸 사람들 그리고 하나님께 인색하고 냉담했던 자들은 절대로 천국에 들어갈 수 없습니다. 바울 사도는 디모데에게 나는 선한 싸움을 싸우고 나의 달려갈 길을 마치고 믿음을 지켰으니 이제 후로는 나를 위하여 의의 면류관이 예비되었다......”고 말씀하셨습니다(디모데후서 4:7-8). 바울 사도처럼 천국을 향해 열심히 달려가고 예수님께 충성한 사람이 천국에 들어갑니다. 말씀이 반복되고 있습니다만 천국은 아무나 들어가는 곳이 아닙니다. 천국은 침노하는 자가 들어가며 천국을 얻기 위해 노력한 사람이 들어갑니다. 전쟁에서 목숨을 걸고 싸우는 군인처럼 하나님 뜻을 이루기 위해 투쟁하고 몸과 마음을 바쳐 하나님께 충성한 사람이 천국에 들어간다는 것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2. 예수를 믿고 하나님 일을 하는 사람은 반대와 비판을 각오해야 합니다.

예수님은 본문 16-19절에서 어린아이들의 놀이를 비유로 세례 요한과 예수님을 반대한 유대인들의 변덕을 책망하셨습니다. “이 세대를 무엇으로 비유할까, 비유하건대 아이들이 장터에 앉아 제 동무를 불러 이르되 우리가 너희를 향하여 피리를 불어도 너희가 춤추지 않고 우리가 슬피 울어도 너희가 가슴을 치지 아니하였다 함과 같다고 말씀하셨습니다. ! 여기에 한 무리의 어린이들이 모여서 편을 갈라 결혼식 놀이를 하기로 했습니다. 결혼식은 기쁜 날이기 때문에 풍악과 춤이 빠질 수 없습니다. 그래서 한편이 피리를 불면 다른 한편은 피리에 맞춰 흥겹게 춤을 춰야 합니다. 그러나 놀이를 시작해서 피리를 불자, 다른 편의 아이들이 재미가 없다, 하기 싫다는 핑계로 춤을 추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이번에는 장례식 놀이를 하기로 했습니다. 장례식은 슬퍼서 울기 때문에 한쪽에서 아이고 아이고하고 슬프게 곡을 하면 다른 편에서는 손으로 가슴을 치면서 슬픔을 표시해야 합니다. 그러나 장례식 놀이를 시작하자 이번에도 트집을 잡고 핑계를 대면서 놀이를 깨뜨렸습니다. 이렇게 해도 반대하고 저렇게 해도 반대하고 도무지 기분을 맞출 수 없습니다.

세례 요한과 예수님을 반대하고 비판한 유대인들의 태도가 결혼식과 장례식 놀이를 반대하는 어린아이들처럼 유치하고 변덕스럽다고 책망하신 것입니다. 광야의 선지자인 세례 요한은 광야에서 낙타가죽으로 만든 옷을 입고 음식은 메뚜기와 석청(자연산 꿀)을 먹었습니다. 낙타가죽으로 만든 옷을 입은 것은 거친 광야생활에 편리하기 때문이며 음식으로 메뚜기와 석청을 먹은 것은 광야에서 쉽게 구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세례 요한은 유대인들처럼 빵도 먹고 채소와 같은 음식도 먹었지만 메뚜기나 석청처럼 광야에서 구할 수 있는 것을 음식으로 섭취하며 검소하게 생활하신 것입니다. 그러자 유대인들은 광야에서 경건하고 검소하게 생활하는 세례 요한을 미쳤다고 비난했습니다. “포도주도 안마시고 거친 광야에서 지나치게 엄격한 생활을 하는 것을 보면 요한은 틀림없이 귀신이 들렸다, 귀신 들린 사람의 말을 어떻게 믿느냐고 세례 요한의 전도를 거부한 것입니다.

반면에 예수님은 세례 요한과 달리 포도주도 마시고 음식도 잘 잡수시고 창기나 세리처럼 죄인으로 멸시받는 사람들까지 차별하지 않고 사랑하셨습니다. 그러자 유대인들은 예수는 먹기만 탐하고 불의한 자들과 어울리는 세속적인 인간이라고 비난을 퍼붓고 반대했습니다. 세례 요한은 너무 엄격해서 싫다고 전도를 받아들이지 않고 예수님은 너무 사교적이고 너무 친절하다는 이유로 반대한 것입니다. ! 어느 장단에 맞춰 춤을 춰야 하겠습니까? 이렇게 하면 이래서 싫다고 반대하고 저렇게 하면 저래서 싫다고 핑계를 댑니다. 이처럼 하나님과 교회를 비판하고 반대하는 사람들은 어떻게 해도 반대할 이유를 만들어냅니다. 그러므로 습관적으로 교회를 반대하고 비난하는 사람들의 반대와 비판에는 신경을 쓸 필요가 없습니다. 그들은 반대와 비판을 위해 존재하기 떄문입니다.

기독교와 그리스도인에 대해서 악랄할 정도로 적대적이고 비판적인 사람들이 있습니다. 겸손한 사람에게는 비굴하고 위선자라고 공격하고 친절하고 사교적인 사람에게는 줏대도 없고 쓸개도 없는 인간이라고 비난합니다. 또 과묵하고 내성적인 사람에게는 교만하고 편협한 인간이라고 악평하며 키가 크면 크다고 헐뜯고 키가 작으면 작다고 흉을 봅니다. 이처럼 습관적으로 모함하고 악의적으로 비판하는 사람들은 어떤 방법으로도 그들의 입을 막을 수 없습니다. 비판하고 반대하다가 지옥에 가도록 내버려둬야 합니다. 건전한 비판과 충고에는 귀를 기울여야 하지만 원수 마귀들의 악의적인 반대와 비판에는 신경을 쓸 필요가 없습니다. 원수 마귀들의 비판에 낙심하고 좌절하면 원수 마귀들이 손뼉치고 좋아한다는 것을 명심하셔야 합니다. 원수 마귀들의 비판은 무시해야 합니다. 이 세상에는 반대 없는 정의도 없고 비판받지 않는 선행도 없습니다. 아무리 정당하고 옳은 일도 반대가 있고 비판이 있습니다. 하나님 일을 하고 하나님의 뜻을 행하는 데 반대와 비판이 없다면 그것이 오히려 더 이상한 것입니다. 이것이 하나님 뜻이요 이 길이 옳다고 생각되면 반대와 비난이 있더라도 밀고 나가야 합니다. 예수님도 반대를 받으셨는데 어떻게 우리들이 반대와 비판을 피할 수 있겠습니까? 하나님 일을 하는 사람은 반대와 비판을 각오해야 하며 반대자들의 비난과 비판을 무시하고 담대하게 하나님 일을 하셔야 한다는 것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3. 참된 지혜는 그 사람이 행한 일과 나타나는 결과로 알 수 있습니다.

예수님은 19절 하반절에서 “......지혜는 그 행한 일로 인하여 옳다 함을 얻느니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지혜가 무엇입니까? 본문에서 예수님이 말씀하신 지혜는 구원의 진리를 의미합니다. 성경은 고린도전서 1:21,에서 하나님의 지혜에 있어서는 이 세상이 자기 지혜로 하나님을 알지 못하므로 하나님께서 전도의 미련한 것으로 믿는 자들을 구원하시기를 기뻐하셨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인간이 그들의 지혜로는 하나님의 구원의 진리를 깨닫지 못하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전도라는 방법으로 믿는 자들을 구원하신다는 말씀입니다.

예수님 당시에 예수님을 가장 극렬하게 반대했던 사람들은 서기관과 바리새인과 제사장 같은 이스라엘 종교지도자들이었습니다. 이 사람들은 요한에게 세례도 받지 않았고 요한의 메시지도 듣지 않았으며 예수님의 교훈에도 귀를 막고 반대와 비난을 일삼았습니다. 그들이 세례 요한과 예수님을 반대한 이유가 무엇이었습니까? 세례 요한은 사교성도 없고 따뜻함도 없고 너무 엄격한 금욕주의자다, 세례 요한은 귀신 들린 사람이다, 귀신이 들어가지 않았다면 광야에서 어떻게 그렇게 엄격한 생활을 할 수 있느냐? 귀신 들린 사람의 말을 어떻게 믿을 수 있느냐고 세례 요한을 배척했습니다. 반면에 예수님은 무엇이든지 잘 잡수셨으며 세리나 창기나 어린아이나 누구나 차별 없이 사랑하셨습니다. 그러자 이번에는 예수는 먹기를 탐하는 사람이요, 죄인들과 너무 가까이 지내며 너무 친절하고 너무 세속적인 사람이라고 예수를 반대했습니다. 말도 안 되는 이유로 예수님을 반대한 것입니다.

서기관과 바리새인과 제사장들은 이스라엘에서 지혜롭고 똑똑하다는 사람들입니다. 그러나 사실은 가장 어리석고 미련한 사람들입니다. 왜냐하면 서기관과 바리새인과 제사장들이 죄인이라고 멸시한 창기와 세리는 복음을 받아들이고 하나님 나라에 들어갔지만 스스로 지혜롭다고 주장한 서기관과 바리새인과 제사장은 구원받지 못하고 천국에 들어가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은 하나님 말씀보다 그들의 전통과 장로들의 교훈을 더 중시하고 하나님의 지혜보다 인간의 지혜와 지식을 더 믿고 의지했습니다. 그래서 구원받지 못하고 지옥에 간 것입니다. 세상에서 가장 지혜로운 사람이 어떤 사람이냐? 어린아이처럼 단순한 마음으로 예수를 믿고 하나님 말씀에 순종하는 사람입니다. 오늘날도 자기의 됫박만 한 머리로 하나님 말씀을 판단하고 비판하는 인간들이 얼마나 많이 있습니까? 지옥의 번호표를 받고 기다리는 사람들입니다. 인간의 됫박만 한 머리와 불완전한 인간의 지식으로 하나님과 예수님을 비판하고 판단하는 너무 똑똑한 인간들이 지옥에 가는 것입니다.

무엇이 참된 지혜인지 결과를 보면 알 수 있습니다. 이스라엘 종교지도자들은 세례 요한은 귀신들리고 미쳤다고 반대했고 예수님은 너무 세속적이고 너무 친절하다고 반대하고 지옥에 갔습니다. 반면에 이스라엘 종교지도자들이 죄인이라고 멸시한 세리와 창기는 예수 믿고 천국에 들어갔습니다. 스스로 지혜롭다고 자랑하는 이스라엘 종교지도자들은 천국에 들어가지 못하고 세리와 창기와 죄인들은 천국에 들어간 것입니다. 누가 진짜 지혜로운 사람이고 누가 어리석은 인간입니까? 참된 지혜는 그 사람이 행한 일로 알 수 있으며 결과를 보면 알 수 있습니다. 지혜 중의 최고의 지혜, 지혜로운 사람 중에 가장 지혜로운 사람은 예수 그리스도와 구원의 복음을 믿고 받아들이는 사람이라는 것을 명심하셔야 합니다.

사람은 복된 소식을 들을 수 있는 귀를 가져야 합니다. 예수님은 본문 15절에서 “......귀 있는 자는 들을지어다.”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예수님 말씀을 들을 수 있는 복된 귀를 가져야 한다는 말씀입니다. 해와 달과 별이 움직이는 소리와 우주의 소리를 다 듣고 세상의 소리를 다 들어도 예수님 말씀과 구원의 복음을 듣지 못하면 서기관과 바리새인 같은 영적 귀머거리로 지옥에 갑니다. 성도의 귀가 세상일에 너무 열려 있으면 하나님 말씀에 귀가 어두울 수밖에 없습니다. 세상 소리는 듣지 못해도 하나님 말씀을 들을 수 있는 귀를 가져야 합니다. 왜냐하면 하나님 말씀을 듣고 말씀에 순종해야 사죄와 구원을 받고 천국에 들어가기 때문입니다. 이스라엘 종교지도자들이 죄인이라고 멸시하고 조롱한 세리와 창기와 죄인은 천국에 들어갔지만 서기관과 바리새인과 제사장 같은 이스라엘 종교지도자들은 다 지옥에 갔습니다. 오늘날도 하나님과 교회를 반대하고 천국을 부정하며 지옥으로 가고 있는 사람들이 얼마나 많이 있습니까? 정말로 어리석고 교만하고 천박한 인간들입니다. 참된 지혜는 그 사람이 행한 일과 나타난 결과로 알 수 있다는 것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말씀을 맺겠습니다. 첫째, 천국은 침노하는 자의 것이라고 말씀드렸습니다. 천국에 들어가기 위해 노력하고 신앙과 진리를 위해 투쟁하는 사람이 천국에 들어간다는 것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둘째, 하나님 일을 하는 사람은 반대와 비판을 각오해야 하며 반대자들의 비판에 신경을 쓰면 안 된다고 말씀드렸습니다. 하나님 앞에 옳다고 생각하는 일은 담대하게 밀고 나가셔야 한다는 것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셋째, 참된 지혜는 행한 일과 나타난 결과로 알 수 있다고 말씀드렸습니다. 이스라엘 종교지도자들이 멸시하고 조롱한 세리와 창기는 예수 믿고 천국에 들어갔지만 스스로 지혜롭다고 자처하는 이스라엘 종교지도자들은 다 지옥에 갔습니다. 천국은 침노하는 자의 것입니다. 하나님과 예수님께 충성하시고 헌신하셔서 영광된 천국에 들어가시는 성도 여러분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2022, 12, 11.

 

** 세례 요한에 대해 **

기독교 역사에서 세례 요한의 위치와 역할은 시대를 구분하는 기준이 되고 있습니다. 기독교는 세례 요한의 출현으로 새로운 시대가 열리기 때문입니다. 세례 요한은 구약의 마지막 선지자지만 세례 요한의 사역은 성격과 내용에서 구약 시대의 선지자와는 전혀 차원이 달랐습니다. 구약 시대 선지자의 메시지의 핵심은 오실 메시아에 대한 예언이었습니다. “장차 메시아(messiah, 세상의 구원자 משח)가 와서 세상을 구원할 것이라고 예언한 것입니다. 그러나 세례 요한은 구약의 선지자들이 예언한 메시아의 길을 예비하고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메시아를 직접 소개하기 위해 오셨습니다. 세례 요한은 구약 시대의 어둡고 긴 터널을 벗어나 새로운 시대를 연 것입니다. 그래서 어떤 학자는 기독교 역사에서 세례 요한을 구약과 신약을 잇는 걸쇠(문의 빗장으로 쓰는 ㄱ자 모양의 쇠)로 비유했습니다. 세례 요한은 구약과 신약을 잇는 걸쇠의 역할을 했다는 말씀입니다. 본격적인 복음시대는 예수님의 의해 시작됐지만 복음시대의 여명을 밝힌 사람은 세례 요한인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