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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의 사자를 대접하라

진리의증인 2022. 12. 2. 04:20

메시지267(마태75) 주의 사자를 대접한 자의 보상

 

40너희를 영접하는 자는 나를 영접하는 것이요, 나를 영접하는 자는 나를 보내신 이를 영접하는 것이니라, 41선지자의 이름으로 선지자를 영접하는 자는 선지자의 상을 받을 것이요, 의인의 이름으로 의인을 영접하는 자는 의인의 상을 받을 것이요, 42또 누구든지 제자의 이름으로 이 작은 자 중 하나에게 냉수 한 그릇이라도 주는 자는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그 사람이 결단코 상을 잃지 아니하리라 하시니라, 11:1예수께서 열두 제자에게 명하시기를 마치시고 이에 그들의 여러 동네에서 가르치시며 전도하시려고 거기를 떠나가시니라

(마태복음 10:40-42, 11:1)

 

서론: 예수님은 제자들을 복음전도자로 파송하시면서 너희를 영접하는 자는 나를 영접하는 것이요 나를 영접하는 자는 나를 보내신 이를 영접하는 것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손님을 맞아 대접하는 것을 영접이라고 합니다. 영접에는 원칙이 있습니다. 크고 존귀한 사람일수록 극진한 영접을 받는다는 것입니다. 극진한 영접을 받으셔야 할 가장 존귀하신 분이 누굽니까? 예수님입니다. 예수님께서는 복음을 전하는 자와 주의 일군을 영접하는 것이 예수님을 영접하는 것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이 시간에는 주의 사자를 대접한 자의 보상이란 제목으로 함께 은혜를 받고자 합니다.

 

1. 그리스도인은 주의 사자와 하나님 일군을 영접하고 정성껏 대접해야 합니다.

주의 사자와 하나님 일군이 누구냐? 복음을 전하는 사람과 하나님 일을 하는 사람입니다. 하나님 일을 하는 사람은 다 주의 사자지만 본문에서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주의 사자는 목회자와 선교사처럼 복음전파에 전념하는 사람을 의미합니다. 예수님은 본문 40절에서 너희를 영접하는 자는 나를 영접하는 것이요 나를 영접하는 자는 나를 보내신 이를 영접하는 것......”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주의 사자를 정성껏 대접하라는 말씀입니다.

우리나라는 세계 여러 나라에 대사를 파견하고 있고 세계의 많은 나라들도 우리나라에 대사를 파견하고 있습니다. 대사는 그를 파견한 국가와 국민을 대표하는 사람이기 때문에 상대국에서 특별한 권리와 지위를 누리며 주재국에서는 대사에게 특별한 예우를 합니다. 또 대통령 비서가 대통령의 명령을 받고 누구를 만나거나 어떤 곳을 방문하면 대통령 비서는 대통령을 대신한 사람이기 때문에 특별한 영접을 받습니다. 이처럼 왕이나 대통령이 보낸 사람은 그를 보낸 왕이나 대통령을 대신하기 때문에 특별한 영접을 받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너희를 영접하는 자는 나를 영접하는 것......”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예수님의 제자를 영접하는 것은 예수님을 영접하는 것이요 예수님이 보내신 자를 거절하는 것은 예수님을 거절하는 행위가 되는 것입니다.

오늘날 예수님의 보냄을 받은 사람은 어떤 사람이 있을까요? 오늘날 베드로나 요한이나 바울 같은 예수님의 직계 제자들은 없지만 예수님과 사도들을 계승해서 복음을 전하고 교회를 섬기는 사람들은 다 예수님 제자요 예수님께서 보내신 사람들입니다. 그러므로 목사나 선교사나 하나님 일 하는 사람을 돌보고 후원하는 것이 예수님을 영접하고 예수님을 대접하는 일이 되는 것입니다. 모든 사람이 다 선교사가 될 수는 없지만 선교사업에 동참할 수는 있습니다. 선교사를 지원하고 선교사업을 후원하는 사람은 선교사 일을 하는 사람입니다. 자신이 직접 선교사로 나가지 못해도 자신의 후원으로 선교사가 선교활동을 하기 때문에 선교사의 일을 하는 것이 되는 것입니다.

세상에는 겉으로 드러나는 일도 있고 겉으로 드러나지 않는 일도 있습니다. 사람들은 겉으로 드러나는 일을 하고 싶어 하고 사람들의 박수갈채를 받기 원합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겉으로 드러내는 행위를 경계하셨습니다. 구제할 때는 오른손이 하는 일을 왼손이 모르게 하라고 말씀하셨고 금식할 때는 사람들이 눈치채지 못하도록 얼굴을 씻고 머리에 기름을 바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또 기도할 때는 사람들 앞에서 하지 말고 골방에 들어가 하나님만 아시도록 은밀하게 하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러나 사람들은 자신의 행위가 겉으로 드러나기 원하며 사람들의 박수와 환호를 받기 원합니다.

사람들의 눈에 띄고 사람들의 박수갈채를 받았다고 하나님께도 인정을 받는 것은 아닙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은 마음의 중심을 보시고 동기와 목적을 보시기 때문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의 판단은 인간의 생각과 다를 수 있습니다. 이다음에 하나님 앞에 가면 우리들은 많은 사실에 놀랄 것입니다. 많은 사람들로부터 하나님의 훌륭한 일군으로 인정받았던 사람이 하나님께 책망을 받는 경우도 있을 것이며 반대로 사람들에게 인정받지 못한 사람이 하나님께 칭찬 받는 경우도 있을 것입니다. 하나님은 누가 양이고 누가 염소인지, 누가 알곡이고 누가 쭉정이인지 알고 계십니다. 하나님은 모든 것을 다 아시는 전지하신 하나님이시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유일한 재판장과 최후의 심판자가 되시는 것입니다.

그리고 목회자와 하나님 일군이 다소 부족해도 영접하고 잘 대접해야 합니다. 악하고 불의하지 않다면 능력이 조금 부족하고 신체에 허물이 있어도 받아들여야 한다는 말씀입니다. 부족하고 허물이 있어도 하나님의 목적과 뜻이 있어서 하나님께서 일군으로 세우셨다는 것을 기억하셔야 합니다. 그릇은 용도에 따라서 종류와 크기가 다릅니다. 항상 크고 귀한 그릇만 필요한 것은 아닙니다. 큰 그릇도 필요하고, 작은 그릇도 필요하며, 귀하게 사용할 그릇도 필요하고, 마구잡이로 사용할 그릇도 필요합니다.

하나님 교회에서 사용하는 일군도 마찬가지입니다. 하나님 일을 할 때 꼭 베드로나 요한이나 바울 같이 능력 있는 일군만 필요한 것은 아닙니다. 큰 교회에 필요한 목사도 있고, 작은 교회나 농어촌의 교회에 필요한 목사도 있으며, 군인이나, 학원이나, 교도소나, 장애인 선교와 같은 특수한 분야에서 사역할 목회자도 필요합니다. 중요한 것은 하나님께서 필요하셔서 일군으로 세우셨다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이 세우신 일군을 함부로 판단하면 안 됩니다. 칼빈 선생님은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것은 제자들의 메시지가 아니라 메시지를 전하고 하나님의 일을 하는 제자들을 영접하고 보살피라는 말씀이라고 해석하셨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메시지나 목사의 어떤 면을 가지고 함부로 판단하면 안 됩니다. 하나님 일군으로 조금 부족하고 허물이 있어도 예수님 분부대로 잘 영접하고 잘 대접하면 주의 종을 대접하라는 예수님 말씀을 행한 것이 됩니다. 그리스도인은 복음을 전하는 목회자와 하나님 일군을 잘 영접하고 정성껏 대접을 잘하셔야 한다는 것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2. 하나님 일군을 대접한 사람에게는 반드시 하나님의 보상이 있습니다.

예수님은 본문 41절에서 선지자의 이름으로 선지자를 영접하는 자는 선지자의 상을 받을 것이요 의인의 이름으로 의인을 영접하는 자는 의인의 상을 받으리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이어서 42절에서는 또 누구든지 제자의 이름으로 이 작은 자 중 하나에게 냉수 한 그릇이라도 주는 자는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그 사람이 결단코 상을 잃지 아니하리라고 말씀하셨습니다. 하나님 일군을 영접하고 대접한 자에게 축복과 보상을 약속하신 말씀입니다. 하나님의 사자를 영접하고 하나님의 일군을 공궤한 사람에게는 반드시 하나님의 축복이 있습니다. 선지자를 영접한 사람은 선지자의 행위에 공감하여 선지자를 돕고 의인을 영접한 사람은 의인의 행위에 공감하여 의인을 돕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선지자를 돕는 사람은 선지자 상을 받고 의인을 돕는 사람은 의인의 상을 받는 것입니다.

그리스도인 중에는 하나님 말씀을 하나님께서 자신에게 주신 주관적인 진리로 받아들이지 않고 객관적인 진리로 이해하는 이상한 사람들이 있습니다. 자신은 하나님의 종을 대접할 책임이 없는 것처럼 하나님께서 당신의 종은 까마귀를 통해서라도 먹이신다고 남의 이야기하듯 말합니다. 하나님은 전능하시기 때문에 하나님의 종이 위급한 상황을 만나면 까마귀를 통해서 도와주실 수도 있고 특별한 방법으로 구원해주실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정상적인 상황에서 하나님의 종을 보살피고 돌봐야 할 책임은 교회와 성도에게 있습니다. 교회와 성도가 마땅히 감당해야 할 사명과 책임은 감당하지 않고 하나님의 종은 하나님이 책임지신다.”고 주장하면 하나님 앞에 얼마나 무례한 태도입니까? 하나님께서 까마귀를 통해 엘리야 선지자에게 떡과 고기를 먹이신 것은 아합 왕이 엘리야 선지자를 죽이려고 위협하는 특별한 상황이었습니다(열왕기상 17). 그래서 하나님께서 엘리야 선지자를 요단강 앞 그릿 시냇가에 숨기시고 까마귀를 통해 떡과 고기로 먹이신 것입니다. 정상적인 상황에서 하나님의 종과 하나님 일군을 돌보는 책임은 교회와 성도에게 있다는 것을 명심하셔야 합니다.

다음으로 하나님의 종을 대접하고 주의 사자를 영접한 사람에게는 하나님께서 반드시 상을 주십니다. 어떤 상을 주시느냐? 이 땅에서 받는 상이 있고 내세에서 받는 상이 있습니다. 먼저 주의 종을 공궤한 사람이 이 땅에서 받는 상은 일용할 양식과 육신의 건강과 신령한 기쁨 등 많은 것들이 있습니다. 주의 사자를 영접하고 잘 대접한 사람에게는 이 땅에서 살아가는 데 필요한 것들을 풍족하게 채워주십니다. 그러나 주의 사자를 공궤한 성도가 받는 진짜 상은 이다음에 천국에서 받는 상입니다. 천국에서 말로 표현할 수 없는 영광과 축복을 누리게 되기 때문입니다. 주의 종을 영접하여 돌보고 대접한 자들에게는 하나님께서 현세와 내세에서 큰 축복으로 갚아주신다는 것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만군의 여호와가 이르노라, 너희가 눈먼 희생제물을 바치는 것이 어찌 악하지 아니하며 저는 것, 병든 것을 드리는 것이 어찌 악하지 아니하냐, 이제 그것을 너희 총독에게 드려보라, 그가 너를 기뻐하겠느냐고 책망하셨습니다(말라기 1:8). 흠이 있는 짐승은 제물로 드릴 수 없습니다. 그러나 말라기 선지자 시대에 이스라엘 백성들은 눈멀고 병들고 다리를 저는 짐승을 제물로 드렸습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그것을 너희 총독에게 드려보라, 총독이 그것을 받고 기뻐하겠느냐고 책망하신 것입니다.

하나님께 예물을 드리거나 목사나 하나님 일군에게 선물을 하고 대접을 하실 때는 귀하고 좋은 것으로 드리고 정성을 다해 대접해야 합니다. 본문에서 예수님께서 강조하신 말씀은 주의 종이나 하나님 일군에게 형식적인 인사치레가 아니라 정중하게 영접하고 최선을 다해 대접하라는 말씀입니다. 주의 사자나 하나님 일군을 대접할 때는 하나님을 대접하는 마음과 예수님을 섬기는 자세로 정성을 다해 대접해야 합니다. 받는 사람이 자존심 상하지 않도록 대접하는 사람의 세심한 배려가 필요하며 진심에서 우러난 마음으로 대접해야 합니다. 하나님과 하나님 종에게 드리는 것은 좋은 것으로 드려야 하며 하나님 일꾼과 하나님 종을 대접하는 자에게는 반드시 하나님의 보상이 있다는 것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3. 약하고 곤고한 성도를 돌보는 것이 하나님과 예수님을 대접하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본문 42절에서 또 누구든지 제자의 이름으로 이 작은 자 중 하나에게 냉수 한 그릇이라도 주는 자는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그 사람이 결단코 상을 잃지 아니하리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약하고 곤고하고 어려움 가운데 있는 성도를 보살피라는 말씀입니다. 어느 시대나 교회는 그 사회의 축소판입니다. 교회 안에는 빈부의 차이도 있고 세대의 차이도 있고 신분의 차이도 있습니다. 모든 인간이 평등하면 좋겠지만 이 세상은 불공평과 불평등과 계층 간의 차이가 존재하고 있는 것이 현실입니다. 그래서 국가에서 공평한 세상을 실현하기 위해 추진하고 있는 제도가 사회보장제도입니다. 강한 자와 능력 있는 자가 약한 자의 짐을 나누어지는 원리입니다. 바울 사도는 로마서 15:1,에서 믿음이 강한 우리는 마땅히 믿음이 약한 자의 약점을 담당해야 한다......”고 말씀하셨습니다. 믿음이 강하고 힘 있는 사람이 믿음이 약하고 어려움에 처한 성도를 돌봐야 한다는 뜻입니다.

예수님은 마태복음 25장의 양과 염소의 비유에서 오른편에 있는 양들에게 너희가 여기 내 형제 중 지극히 작은 자 하나에게 한 것이 곧 내게 한 것이라고 칭찬하셨습니다. 반면에 왼편에 있는 염소들에게는 이 지극히 작은 자 하나에게 하지 아니한 것이 곧 내게 하지 아니한 것이라고 책망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는 가난하고 불행한 사람들에게 베푼 사랑과 자비를 당신에게 드린 것으로 말씀하시고 반면에 가난한 자에게 베풀지 아니한 것은 예수님께 드리지 아니한 것으로 간주하신 것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나는 가진 것이 없어서 베풀 수 없다고 말합니다. 그러나 가진 것이 없는 것이 아니라 믿음이 없고 사랑이 없기 때문입니다. 물질을 많이 소유했다고 사랑을 베푸는 것은 아닙니다. 거듭 난 은혜를 체험하고 천국과 영생을 확신한 성도와 하나님을 사랑하는 사람이 사랑을 베풉니다. 약하고 가난한 사람을 돌보는 것이 하나님과 예수님을 사랑하고 대접하는 것이며 하나님은 가난하고 약한 자에게 베푼 사랑을 하나님에 대한 사랑으로 받아주신다는 것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말씀을 맺겠습니다. 첫째, 그리스도인은 주의 사자와 하나님 일군을 잘 영접하고 정성껏 대접해야 한다고 말씀드렸습니다. 주의 사자와 하나님 일군을 영접하고 공궤하는 것은 예수님을 영접하고 하나님을 공궤하는 것이 된다는 것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둘째, 하나님 일군을 잘 대접한 사람에게는 반드시 하나님의 보상이 있다고 말씀드렸습니다. 궁핍하고 어려운 처지에 있는 하나님 일군을 보시면 하나님께 복 받는 일이라고 생각하시고 잘 대접하시기 바랍니다. 셋째, 약하고 곤고한 성도를 돌보고 사랑하는 것이 하나님과 예수님을 대접하고 섬기는 사랑의 행위가 된다고 말씀드렸습니다. 약하고 곤고한 성도를 돌보는 것은 예수님의 분부요 하나님 명령입니다. 다 선교사가 될 수는 없고 다 목사가 될 수는 없지만 선교사와 목사를 위해 기도하고 물질로 후원하는 사람은 목사와 선교사의 일에 동참하는 사람입니다. 사람을 돕고 하나님께 바치는 것도 할 수 있을 때 해야 합니다. 물질 잃고 가진 것 잃으면 하고 싶어도 할 수 없습니다. 주의 사자를 잘 대접하시고 가난하고 어려운 형제를 잘 돌보셔서 하나님 축복받고 신앙과 인생에 승리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2022, 12, 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