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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수의 원칙과 축복의 원리

진리의증인 2022. 11. 18. 04:32

 

이 정만 목사 (HP:010-5359-1617)

블로그(네이버:논산동산교회, 다음:논산동산교회)

 

메시지80(180) 추수의 원칙과 축복의 원리

 

6이것이 곧 적게 심는 자는 적게 거두고 많이 심는 자는 많이 거둔다 하는 말이로다 7각각 그 마음에 정한 대로 할 것이요 인색함으로나 억지로 하지 말지니 하나님은 즐겨 내는 자를 사랑하시느니라” (고린도후서 9:6-7)

 

서론: 가을은 추수와 결실의 계절이며 농부의 수고에 보상을 받는 복된 계절입니다. 추수는 한여름의 무더위에 땀 흘려 수고하고 노력한 데 대한 보상입니다. 바울 사도는 적게 심는 자는 적게 거두고 많이 심는 자는 많이 거둔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적게 심는 자는 적게 거두고 많이 심는 자는 많이 거두는 것이 추수의 원칙이며 축복의 원리입니다. 심은 대로 거두고 뿌린 대로 거둔다.”는 것이 추수의 원칙이며 축복의 원리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선한 행위를 심고 복된 씨앗을 뿌려야 합니다. 많이 심고 많이 뿌려야 많이 거두고 선하고 복된 행위의 씨앗을 심고 뿌려야 선하고 복된 열매를 거두는 것입니다.

이 시간에는 추수의 원칙과 축복의 원리란 제목으로 함께 은혜를 받고자 합니다.

 

1. 많이 심고 많이 뿌려야 많이 거두고 선하고 복된 씨앗을 뿌려야 복된 열매를 거둡니다.

본문 6절에 이것이 곧 적게 심는 자는 적게 거두고 많이 심는 자는 많이 거둔다 하는 말이로다말씀하고 있습니다. 바울 사도는 농부가 밭에 씨앗을 뿌리는 파종(播種)을 비유로 추수의 원칙과 축복의 원리를 설명하고 있습니다. 일반적으로 추수는 파종과 비례합니다. 많이 심고 많이 뿌려야 많이 거둡니다. 만 평의 농사를 짓는 사람은 천 평의 농사를 짓는 사람보다 열배의 수확을 합니다. 왜냐하면 만 평의 농사를 짓는 사람은 천 평의 농사를 짓는 사람보다 열배 정도 많은 경작을 하기 때문입니다. 추수는 심고 뿌린 만큼 거두고 경작한 만큼 보상을 받는 것입니다.

우리의 신앙과 인생도 씨를 뿌리고 농사를 짓는 것과 같습니다. 많이 심고 많이 뿌려야 많이 거두고 선하고 복된 행위의 씨앗을 심고 뿌려야 복된 열매를 거두는 것입니다. 바울 사도가 많이 심으라고 한 것이 무엇이냐? 헌금입니다. 바울 사도는 예루살렘 교회의 가난한 성도들을 구제하기 위해 고린도 교회의 성도들에게 헌금을 독려하면서 적게 심는 자는 적게 거두고 많이 심는 자는 많이 거둔다고 말씀하셨습니다. 많이 심고 많이 뿌린 사람이 많이 거두는 것처럼 헌금도 많이 드리고 넉넉하게 드리는 사람이 큰 축복을 받고 많은 축복을 받는다는 말씀입니다. 농사를 지을 때 씨앗이 아깝다고 안 뿌리거나 씨앗을 아끼려고 적게 뿌리는 농부는 없습니다. 많이 뿌려야 많이 거두기 때문입니다. 헌금은 축복의 씨앗을 뿌리고 축복의 나무를 심는 행위입니다. 많이 심고 많이 뿌리는 사람이 많이 거두는 것처럼 헌금이라는 축복의 씨앗도 많이 심고 많이 뿌려야 많은 열매를 거두는 것입니다.

다음으로 좋은 씨를 심고 복된 행위의 씨앗을 뿌려야 좋은 열매와 복된 열매를 거둡니다. 좋은 씨와 복된 행위의 씨앗이 무엇이냐? 사랑, 구제, 봉사, 전도, 선행과 같은 것들입니다. 사랑과 구제와 봉사와 선교와 선행이 성도가 심고 뿌려야할 복된 씨앗입니다. 우리 속담에도 콩 심은 데 콩 나고 팥 심은 데 팥 난다고 했습니다. 원인이 있기 때문에 결과가 나타납니다. 콩을 심었기 때문에 콩이 나고 팥을 심었기 때문에 팥이 나는 것입니다. 사기나 치고 도둑질이나 하고 인색한 자가 복을 받고 좋은 결과를 기대할 수 있을까요? 하나님의 축복을 받으려면 선하고 복된 행위의 씨앗을 많이 심고 많이 뿌려야 합니다. 가난한 사람에게 구제를 해보십시오. 성도 여러분의 영혼이 기쁨으로 충만하고 부요함을 느끼게 될 것입니다. 시간을 내서 병자와 독거노인을 위해 봉사해보십시오. 영육 간에 강건한 축복을 받고 감사와 기쁨이 충만한 경험을 하게 될 것입니다. 경제적으로 어려운 교회와 작은 교회의 가난한 목회자를 섬겨보십시오. 하나님의 놀라운 은혜를 체험하실 것입니다.

하나님과 교회를 잘 섬기고 하나님의 선한 사업에 부요한 사람이 하나님 은혜와 축복을 받습니다. 하나님 축복은 이 세상에서 받는 것이 전부가 아닙니다. 성도가 받는 진짜 축복은 장차 천국에서 누리게 될 복락입니다. 하나님의 선한 사업에 부요하고 복된 행위의 씨앗을 많이 뿌린 사람이 천국에서 큰상을 받고 영광을 누리게 되기 때문입니다. 예수를 믿으면 누구나 죄에서 구원받고 천국에 갑니다. 그러나 구원받고 천국에 간다고 천국에서 똑같은 영광과 똑같은 복락을 누리는 것은 아닙니다. 예수님과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혀 죽기 직전에 구원받은 강도와 평생 복음을 전하고 순교한 바울 사도가 천국에서 똑같은 영광과 복락을 누릴까요? 절대로 그렇지 않습니다. 구원과 상급을 혼동하면 안 됩니다. 구원과 상급은 전혀 다릅니다. 예수를 믿으면 누구나 구원받고 천국에 갑니다. 그러나 천국의 상급과 영광은 이 땅에서 하나님과 교회를 위해 얼마나 섬기고 봉사했느냐에 따라 결정됩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과 교회를 잘 섬기고 사랑과 구제와 봉사와 같은 복된 행위의 씨앗을 많이 심고 많이 뿌려야 합니다. 많이 심고 많이 뿌려야 많이 거두고 선하고 복된 행위의 씨앗을 많이 심고 뿌려야 선하고 복된 열매를 거둔다는 것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2. 헌금은 마음에 정한 대로하고 인색한 마음이나 억지로 하면 안 됩니다.

본문 7절에 각각 그 마음에 정한 대로 할 것이요 인색함으로나 억지로 하지 말지니......”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하나님께 드리는 헌금은 마음에 정한 대로 하라는 말씀입니다. ‘마음에 정한 대로 하라는 말씀의 뜻이 무엇이냐? 처음에 마음에 작정한 대로 하라는 뜻입니다. 신앙생활을 하다 보면 교회건축이나 어떤 일로 헌금을 해야 할 때도 있고 하나님 은혜에 감사해서 특별히 헌금을 하고 싶을 때가 있습니다. 그리스도인이 헌금을 계획하고 헌금을 작정할 때 맨 처음에 마음에 떠오르는 금액이 있습니다. ‘맨 처음에 생각하고 작정한 금액마음에 정한 대로 하라는 말씀의 의미입니다. 바울 사도께서 왜 헌금을 마음에 정한 대로 하라고 말씀하셨느냐? 인간의 마음은 돈 앞에서 갈대처럼 흔들리고 변덕을 부리기 때문입니다. 돈에 인색한 마음이 들고 돈에 욕심이 생겨서 헌금을 제대로 하지 못하기 때문에 마음에 정한 대로 하라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마귀는 인간의 탐심을 이용해서 성도가 하나님께 헌금하는 것을 방해합니다. 어떤 사람이 교회건축을 위해 마음속으로 삼천만 원을 작정했습니다. 그런데 마귀가 ! 삼천만 원은 너무 많다, 너보다 돈이 많은 부자들도 많이 해봐야 몇 백만 원이다, 그리고 한꺼번에 너무 많은 헌금을 하면 저 사람 다음에 선거에 나오려고 그러나! 저 사람 과시하고 싶어서 저러나?’ 하고 사람들이 이상하게 생각할 수도 있다, 삼천만 원을 한 번에 하지 말고 조금씩 나눠서 하고 우선 급한 사업에 사용해서 먼저 사업을 키워라, 예수는 한번 믿고 그만두는 것 아니다, 평생 믿을 텐데 헌금은 천천히 해도 된다.”고 속삭입니다. 생각해보니까 그 말도 일리가 있는 것 같습니다. 그래서 삼천만 원 작정한 헌금이 삼백만 원으로 줄었습니다. “헌금은 마음에 정한 대로 하라는 말씀은 처음에 작정한 대로 삼천만 원을 해야지 삼천만 원이 삼백만 원으로 줄어들면 안 된다는 뜻입니다.

또 바울 사도는 헌금을 드릴 때 인색함으로나 억지로 하지 말라고 말씀하셨습니다. 헌금을 인색한 마음으로 하거나 억지로 하면 안 된다는 뜻입니다. 헌금 말만 나오면 불평과 원망을 하고 헌금을 마지못해 억지로 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헌금을 해도 사람들의 시선과 평판이 두려워서 하고 체면 때문에 억지로 하는 것입니다. 이런 사람은 자기 호주머니에서 돈이 나가도 헌금을 한 것이 아니라 강탈당하고 빼앗긴 것이 됩니다. 왜냐하면 헌금은 감사한 마음으로 드리고 즐거운 마음으로 드려야 하나님께서 받으시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억지로 하고 마지못해서 한 헌금은 받지 아니하십니다. 그래서 자기 호주머니에서 돈이 나가도 억지로 한 헌금은 헌금이 안 되고 빼앗기고 강탈당한 것이 되는 것입니다. 헌금은 인색한 마음이나 억지로 하면 안 됩니다. 헌금은 자원하는 마음으로 하고 감사한 마음으로 해야 한다는 것을 명심하셔야 합니다.

말씀이 반복되고 있습니다만 헌금은 축복의 씨앗을 심는 복된 행위입니다. 농부가 밭에 씨앗을 파종하지 않으면 수확을 할 수 없는 것처럼 성도가 헌금을 하지 않고 헌금에 인색하면 하나님의 축복을 받을 수 없습니다. 헌금에 인색한 사람은 씨앗이 아깝다고 밭에 파종을 하지 않는 사람과 같습니다. 농부는 파종기가 되면 추수에 소망을 품고 열심히 씨를 뿌립니다. 농부는 씨를 뿌릴 때 절대로 씨앗이 아깝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씨앗을 많이 심고 많이 뿌려야 많은 열매를 거두고 많은 수확을 하기 때문입니다. 헌금에 인색한 사람은 씨앗이 아깝다고 파종을 하지 않는 농부와 같습니다. 그런 사람이 어떻게 많은 추수를 하고 하나님의 축복을 받겠습니까? 헌금은 마음에 정한 대로 하고 인색한 마음이나 억지로 하면 안 된다는 것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3. 하나님은 즐거운 마음으로 헌금을 드리는 자를 사랑하시고 축복하십니다.

본문 7절 하반절에 “......하나님은 즐겨 내는 자를 사랑하시느니라.” 말씀하고 있습니다. 헌금을 하고 예물을 드릴 때 기쁜 마음으로 드리는 자를 사랑하시고 은혜와 복을 주신다는 말씀입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죄와 사망에서 구원해주시기 위해 하나님의 외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십자가에 못 박혀 죽게 하셨습니다. 아들보다 소중한 것이 무엇이 있겠습니까? 그러므로 하나님께 예물을 드릴 때는 독생자를 주신 하나님처럼 아낌없이 드려야 합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죄와 사망에서 구원해주시고 우리에게 영원한 생명을 주시고 우리를 하나님 자녀와 천국백성으로 삼아주셨습니다. 그런데 하나님께 인색하고 하나님께 드리는 것이 아깝다면 얼마나 잘못된 마음입니까?

하나님께 헌금을 드리고 하나님과 교회를 섬길 때 왜 즐겁고 기쁜 마음으로 하지 못하느냐? 체험적인 믿음이 없고 하나님의 사랑과 은혜를 깨닫지 못하고 하나님을 사랑하는 마음이 부족하기 때문입니다. 사랑하는 마음으로 드려야 하나님께서 받으시고 사랑의 정신으로 섬기고 봉사해야 하나님께서 받으신다는 것을 명심하셔야 합니다. 바울 사도는 고린도전서 13:3,에서 내가 내게 있는 모든 것으로 구제하고 또 내 몸을 불사르게 내어줄지라도 사랑이 없으면 내게 아무 유익이 없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사랑의 정신으로 하지 않으면 소용이 없다는 말씀입니다. 투덜대고 불평하는 마음으로 하고, 사람들의 시선이나 여론이 두려워서 하고, 마지못해서 억지로 하는 헌금과 봉사는 하나님께서 받지 아니하십니다. 사랑하는 마음으로 드리고 감사하는 마음으로 섬기고 봉사해야 하나님께서 받으십니다. 예물은 기쁘고 즐거운 마음으로 드리고 하나님의 사랑과 은혜에 감사한 마음으로 드려야 하나님의 은혜와 축복을 받는다는 것을 명심하셔야 합니다.

우리가 우리의 이웃이나 형제에게 구제하고 봉사하는 것도 마찬가지입니다. 기쁘고 즐거운 마음으로 봉사하고 베풀어야 받는 사람도 행복하고 주는 사람도 행복합니다. 억지로 하고, 마지못해서 하고, 피할 수 없기 때문에 한다면 그것은 선행이나 봉사가 될 수 없습니다. 기쁘고 즐거운 마음으로 베풀고, 겸손한 자세로 봉사하며, 웃는 얼굴로 상냥하고 친절하게 대해야, 받는 사람에게 기쁨과 감동을 주고 봉사하는 사람도 행복한 것입니다. 어거스틴(Augustine)네가 네 떡을 다른 사람에게 인색한 마음으로 주면 너는 네 떡도 잃고 네 상급도 잃게 될 것이다......만일 자선 사업이 장차 얻을 상급의 씨를 심는 것이라면 그 씨를 눈물로 심을 까닭이 무엇이냐고 말했습니다. 축복의 씨앗을 뿌리는 구제와 봉사를 왜 인색한 마음으로 하고 억지로 하느냐는 책망입니다. 그리고 구제와 봉사를 할 때 상대가 자존심 상하지 않도록 겸손한 자세로 해야 합니다. 섬기고 봉사한다는 사람이 교만한 자세와 멸시하는 태도로 하면 돈도 잃고, 사람도 잃고, 하나님 상급도 잃게 됩니다. 기쁘고 즐거운 마음으로 드려야 하나님의 사랑과 은혜를 받고, 기쁘고 즐거운 마음으로 베풀고 봉사해야 받는 사람이나 베푸는 사람이나 행복한 것입니다.

오늘날 우리들은 물질적으로 풍족한 세상에 살기 때문에 추수나 추수감사절에 대해 별로 감동이 없습니다. 옛날에는 교회에서 추수감사절은 1년 중 가장 큰 잔칫날이었습니다. 일제 식민지시대는 말할 것도 없고 지금부터 60-70여 년 전만 해도 우리나라는 농경사회였기 때문에 그 때에는 보리나 쌀과 같은 농산물로 십일조를 드렸고, 목회자의 사례비도 쌀과 보리와 같은 곡식으로 드렸습니다. 그리고 결혼식이나 초상집에 부조를 할 때도 쌀 몇 되, 보리 몇 되, 곡식으로 했습니다. 옛날에는 일 년에 두 번, 맥추절과 추수감사절에 십일조를 드렸는데 맥추절에는 여름에 수확한 보리와 밀과 감자와 같은 것으로 십일조를 드렸고 추수감사절에는 가을에 수확한 벼, 고구마, 옥수수, 콩과 같은 곡물로 십일조를 드렸습니다. 그래서 맥추감사절이나 추수감사절에는 교회마당에 십일조로 드린 곡식가마니가 산처럼 쌓였습니다. 큰 교회에서는 돼지도 잡고 떡도 해서 푸짐하게 추수감사절을 지켰습니다.

오늘은 한국교회가 2022년 추수감사절로 지키는 날입니다. 추수감사절은 추수와 결실을 감사하고 일 년 동안 받은 하나님의 사랑과 은혜에 감사하는 마음으로 지키는 복된 날입니다. 추수의 원칙과 축복의 원리는 심는 대로 거두고 뿌린 대로 거둔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선하고 복된 행위의 씨앗을 많이 심고 많이 뿌려야 복된 열매를 거둡니다. 하나님께 드리고 가난한 사람을 섬기고 봉사하는 것은 축복의 씨앗을 심고 축복의 씨앗을 파종하는 복된 행위라고 말씀드렸습니다. 그러므로 넉넉하게 드려야 합니다. 또 마음에 정한 대로 드려야 복을 받고 기쁘고 즐거운 마음으로 예물을 드리는 사람이 하나님의 은혜와 축복을 받는다고 말씀드렸습니다. 추수의 원칙과 축복의 원리로 많이 심고 많이 뿌려야 많이 거두고, 선하고 복된 행위의 씨앗을 많이 심고 많이 뿌려야 선하고 복된 열매를 거두며, 기쁘고 즐거운 마음으로 드려야 한다고 말씀드렸습니다. 추수의 원칙과 축복의 원리를 잘 지키셔서 하나님의 큰 은혜와 축복을 받아 누리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2022, 11, 2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