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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셉과 두 관원장의 만남

진리의증인 2022. 8. 19. 04:52

이 정만 목사 (HP:010-5359-1617)

블로그(네이버:논산동산교회, 다음:논산동산교회)

 

@메시지476(118) 요셉과 두 관원장의 만남

 

1그 후에 애굽 왕의 술 맡은 자와 떡 굽는 자가 그들의 주인 애굽 왕에게 범죄한지라, 2바로가 그 두 관원장 곧 술 맡은 관원장과 떡 굽는 관원장에게 노하여 3그들을 친위대장의 집 안에 있는 옥에 가두니 곧 요셉이 갇힌 곳이라 4친위대장이 요셉에게 그들을 수종들게 하매 요셉이 그들을 섬겼더라 그들이 갇힌 지 여러 날이라 5옥에 갇힌 애굽 왕의 술 맡은 자와 떡 굽는 자 두 사람이 하룻밤에 꿈을 꾸니 각기 그 내용이 다르더라, 6아침에 요셉이 들어가 보니 그들에게 근심의 빛이 있는지라, 7요셉이 그 주인의 집에 자기와 함께 갇힌 바로의 신하들에게 묻되 어찌하여 오늘 당신들의 얼굴에 근심의 빛이 있나이까, 8그들이 그에게 이르되 우리가 꿈을 꾸었으나 이를 해석할 자가 없도다 요셉이 그들에게 이르되 해석은 하나님께 있지 아니하니이까 청하건대 내게 이르소서”  (창세기 40:1-8)

 

서론: 세상에서 가장 순결하고 가장 진실한 요셉이 주인 여자를 겁탈하려했다는 누명을 쓰고 감옥에 갇혔습니다. 요셉이 갇힌 감옥은 정치범과 왕의 죄수들을 가두는 감옥으로 친위대장 보디발의 집 안에 있습니다. 어느 날 요셉이 갇혀있는 감옥에 애굽 왕의 술 맡은 관원장(官員長)과 떡 굽는 관원장이 들어왔습니다. 술 맡은 관원장은 왕의 술을 책임지는 사람이고 떡 굽는 관원장은 왕의 음식을 책임지는 사람입니다. 애굽 왕궁에서 고관의 지위에 있는 두 사람이 죄수의 몸으로 감옥에 들어 온 것입니다. 친위대장 보디발은 요셉에게 이들 두 사람을 수종들게 했습니다. 이들이 옥에 갇힌 지 얼마 후 두 사람은 각기 몽조가 다른 꿈을 꾸었습니다. 다음날 아침 요셉이 들어가 보니 그들의 안색이 좋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요셉은 당신들의 얼굴에 근심의 빛이 있는데 어찌된 일이냐?”고 물었습니다. 두 관원장은 우리가 꿈을 꾸었으나 해석할 자가 없다고 말했습니다. 그러자 요셉이 해석은 하나님께 있지 아니합니까? 청하건대 나에게 말씀하소서라고 말했습니다.

이 시간에는 요셉과 두 관원장의 만남이란 제목으로 함께 은혜를 받고자 합니다.

 

1. 요셉은 감옥에서 두 관원장을 만났습니다.

감옥은 죄수들이 가고 죄수를 수감하는 곳이지만 요셉처럼 죄가 없고 죄수가 아닌 사람이 감옥에 갇히는 경우도 있습니다. 지금 이 시간에도 북한과 제삼 세계의 독재국가나 이슬람국가 그리고 법의 정의와 민주주의가 정착되지 않은 정치후진국에서는 수많은 사람들이 자유와 정의를 부르짖다가 반역죄로 붙잡혀 감옥에 갇혀 고난을 당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정의와 진리의 복음이 들어가야 하고 하나님 나라가 임해야 하는 것입니다.

요셉이 치한의 누명을 쓰고 감옥에 갇혀 있던 어느 날 애굽 왕의 술 맡은 관원장과 떡 굽는 관원장이 죄수의 몸으로 감옥에 들어왔습니다. 그래서 요셉은 감옥에서 애굽 왕의 술 맡은 관원장과 떡 굽는 관원장을 만났습니다. 요셉과 두 관원장의 만남은 요셉의 인생에서 아주 중요한 만남이 됩니다. 이 만남으로 요셉이 왕궁으로 불려가 애굽 왕의 꿈을 해석하고 애굽의 국무총리가 되기 때문입니다. 인생에서 중요한 만남은 언제나 이렇게 우연히 이루어지고 인생에서 중요한 만남은 언제나 자신의 의지와 상관없이 우연히 이루어집니다. 그러나 사실은 우연한 만남이 아닙니다. 왜냐하면 인간의 만남 특히 그리스도인의 만남은 하나님의 섭리와 하나님의 뜻에 의해 이루어지기 때문입니다. 예수님께서는 하나님 뜻이 없으면 참새 한 마리도 땅에 떨어지지 않는다. 너희는 참새보다 얼마나 더 귀하냐......”고 말씀하셨습니다(마태복음 10:29-31).

인간을 어떻게 참새와 비교할 수 있겠습니까? 하찮은 참새 한 마리의 생명도 하나님께서 주장하신다면 하나님 형상대로 창조되고 예수님의 보혈로 구속받은 그리스도인이 어디에 가서, 누구를 만나는 일이, 어떻게 하나님의 섭리와 뜻이 없이 이루어지겠습니까? 요셉이 감옥에서 애굽 왕의 술 맡은 관원장과 떡 굽는 관원장을 만난 것도 하나님의 섭리와 뜻에 따라 이루어졌습니다. 7년 흉년에서 야곱의 자손을 애굽으로 불러들여 아브라함의 후손을 하늘의 별과 바다의 모래처럼 번성하게 하시려고 요셉을 애굽의 감옥으로 보내시고 감옥에서 애굽 왕의 신하와 만나게 하신 것입니다.

인생에서 인간의 운명을 좌우하는 중요한 결정은 대부분 자신의 의지와 상관없이 이루어집니다. 예를 들면 인간은 자신의 의지와 상관없이 국가와 민족과 부모와 가정이 결정됩니다. 또 인생에서 수많은 사람을 만나지만 만남의 대부분은 자신의 의지와 상관없이 이루어집니다. 학교에서 군대에서 직장에서 사람을 만나는 것이 자신의 의지에 의해 결정되는 것은 아니지 않습니까? 다른 사람과의 만남을 통해 인생의 행로와 인간의 운명이 결정됩니다. 인생에서 만남이 얼마나 중요합니까? 그러므로 어떤 사람을 만나든지 정중하게 최선을 다해 대해야 합니다. 정중하게 최선을 다해 대하라는 말씀이 무슨 뜻이냐? 속이지 말고 교만하지 말고 정성을 다해 진실하게 대하라는 말씀입니다.

인생은 만남으로 시작합니다. 부모와 자식으로 만나고 남편과 아내로 만나며 은인과 친구로 만나고 스승과 제자로 만납니다. 인간의 운명은 사람과의 만남으로 결정되며 어떤 사람을 만나느냐에 따라 인생의 행복과 불행이 좌우되고 인생의 성공과 실패가 결정됩니다. 그러므로 인간은 좋은 만남을 가져야 합니다. 좋은 만남을 가지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내가 먼저 좋은 사람이 돼야 합니다. 하나님 앞에 진실하고 겸손하고 정의롭게 행하고 사람들에게 사랑과 은혜를 베풀어야 합니다. 신앙의 양심에 따라 바르게 살았다면 어떤 상황을 만나든지 두려워할 필요가 없습니다. 왜냐하면 의인이 고난을 당한다면 거기에는 반드시 하나님의 목적과 뜻이 계시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 어떻게 섭리하시고 어떤 길로 인도하시는지 지켜보고 기다려야 합니다. 요셉은 감옥에서 두 관원장과 만났는데 이 만남이 요셉을 애굽의 국무총리로 발탁하는 중요한 실마리가 되었습니다. 그리스도인은 어디에서 누구를 만나든지 최선을 다해 대하시고 좋은 관계를 유지하셔야 한다는 것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2. 요셉은 감옥에서도 최선을 다해 두 관원장을 돌보고 섬겼습니다.

술 맡은 관원장은 애굽의 왕궁에서 사용하는 술을 관리하는 사람이며 떡 굽는 관원장은 왕의 음식을 책임지는 사람입니다. 술 맡은 관원장과 떡 굽는 관원장이 얼마나 신분이 높은 사람입니까? 친위대장 보디발은 요셉에게 두 관원장을 잘 돌보라고 분부했습니다. 요셉은 정성껏 두 관원장을 섬기고 돌봤습니다. 요셉은 눈가림이나 억지로가 아니라 정성껏 최선을 다해 두 사람을 돌본 것입니다. 두 관원장이 꿈을 꾸고 근심하자 요셉이 어찌하여 얼굴에 근심의 빛이 있느냐?”고 물었습니다. 요셉은 매일 그들의 안색을 살폈고 안색이 좋지 않거나 근심이 있어 보이면 이유를 묻고 정성을 다해 그들을 돌본 것입니다.

사람은 주어진 환경에서 항상 최선을 다하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우리가 인생을 살아가면서 저 사람은 별 볼 일 없다, 나와 상관 없다고 차별하고 무시했다가 양심의 가책을 받고 수치와 부끄러움을 느낀 순간들이 얼마나 많이 있습니까? 하나님은 부자나 권력자나 유명인사를 통해 우리를 시험하시지 않습니다. 가장 부족하고 연약한 사람을 통해서 우리를 시험하시고 가장 열악한 환경에서 우리를 시험하십니다. 그러므로 그리스도인은 항상 겸손하고 진실해야 하며 최선을 다하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한순간의 연극으로는 하나님의 시험을 통과할 수 없습니다. 형통한 날이나 불행한 날이나 좋은 자리에 있을 때나 낮은 자리에 있을 때나 마음과 뜻과 정성을 다해 하나님을 섬겨야 합니다. 그리고 우리의 사랑과 도움을 필요로 하는 사람들에게는 최선을 다해 돌보고 봉사하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하나님은 우리들이 감사한 마음으로 하나님을 섬기고 사랑의 정신으로 이웃을 섬기고 봉사하면서 살아가기를 원하시기 때문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주어진 여건과 환경에서 최선을 다하지 않고 환경을 탓하고 운명을 원망합니다. 그러나 환경을 탓하고 불평하고 원망하는 것은 인생에 아무 도움이 되지 않습니다. 그리스도인은 하나님의 심판과 천국의 영생복락을 믿고 사는 사람들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심판과 천국의 영생복락을 소망하는 사람답게 살아야 합니다. 인생에서 절망보다 무서운 병은 없습니다. 아무리 힘들고 어려워도 내일에 대한 희망의 끈을 놓으면 안 됩니다. 하나님의 심판과 천국의 영생복락을 믿고 소망하는 사람은 내일 세상의 종말이 온다고 해도 오늘은 한 그루의 사과나무를 심고 희망을 노래하는 사람이 돼야 합니다.

하늘은 스스로 돕는 자를 돕는다.”고 했습니다. 하나님은 스스로 노력하고 최선을 다하는 사람을 도와주십니다. 하나님은 주어진 여건과 환경에서 최선을 다하는 사람을 축복해주시는 것입니다. 좌절하고 낙심하고 포기하는 사람에게는 기적이 일어나지 않습니다. 또 게으르고 불평하고 원망하는 사람도 하나님 축복을 받을 수 없습니다. 어려운 상황에서도 낙심하지 않고 최선을 다하는 사람이 하나님 축복을 받고 성공하는 것입니다. 요셉은 감옥에서 죄수의 신분으로 있으면서도 최선을 다해 두 관원장을 섬기고 돌봤습니다. 그리스도인은 요셉처럼 아무리 절망적인 상황을 만나도 변함없는 믿음으로 최선을 다해 하나님을 섬기고 최선을 다하는 삶을 살아야 한다는 것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3. 하나님께서는 요셉에게 꿈을 해석할 수 있는 특별한 지혜와 능력을 주셨습니다.

본문 창세기 40:8,에 보면 두 관원장이 근심된 얼굴로 우리가 꿈을 꾸었으나 이를 해석할 자가 없다.”고 말하자 요셉은 꿈의 해석은 하나님께서 하시지 않습니까? 당신들의 꿈을 나에게 말씀해주십시오라고 말했습니다. 요셉이 꿈을 해석해 주겠다고 한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요셉에게 꿈을 해석할 수 있는 특별한 지혜와 능력을 주신 것입니다. 요셉은 어려서부터 하나님이 주신 계시적인 꿈을 많이 꾸었습니다. 그리고 요셉은 하나님이 주신 꿈 때문에 형들에게 미움을 받아 노예로 팔려왔습니다. 그런데 언제부터인가 하나님께서 요셉에게 꿈을 해석할 수 있는 특별한 지혜와 능력을 주신 것입니다. 요셉은 열일곱 살의 어린 나이에 형들에 의해 노예로 팔려왔고 애굽의 친위대장 보디발의 집에서는 함께 동침하자는 주인 여자의 유혹을 거절해서 치한의 누명을 쓰고 감옥에 갇혔습니다.

왜 요셉이 이런 고난과 시련을 겪었느냐? 하나님께서 요셉을 큰 그릇과 큰 인물로 사용하시기 위해 연단과 훈련을 하셨기 때문입니다. 요셉이 노예와 죄수의 신분으로 전락하여 세상으로부터 격리되어 하나님만 믿고 의지할 때 하나님께서 요셉에게 꿈을 해석할 수 있는 특별한 지혜와 능력을 주신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요셉처럼 진실하고 충성된 백성에게 특별한 지혜를 주시고 하나님의 비밀과 하나님의 은밀한 계획을 알려주십니다. 하나님께서 소돔과 고모라 성을 멸하실 때 아브라함에게는 하나님의 계획과 비밀을 말씀하여주셨습니다. 또 하나님께서 홍수로 세상을 심판하실 때는 노아에게 심판의 비밀을 알려주시고 홍수에 대비하게 하셨습니다. 이처럼 하나님께서 당신의 진실하고 충성된 종에게는 하나님의 은밀한 계획을 말씀해주시고 특별한 지혜를 주시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요셉에게 꿈을 해석할 수 있는 특별한 지혜와 능력을 주셨습니다. 요셉처럼 일편단심 깨끗한 마음으로 하나님께 충성하고 헌신하는 사람이 천국과 하나님께 속한 특별한 지혜와 능력을 받는 것입니다.

회남자(淮南子, 중국 전한(前漢)의 회남왕(淮南王) 유안(劉安)이 저술한 책 AD ? - 123 ?)의 인간훈(人間訓)에 나오는 고사(故事)로 인간만사새옹지마(人間萬事塞翁之馬)라는 고사가 있습니다. 새옹(塞翁)이란 중국 북쪽 국경의 새상(塞上)이란 곳에 사는 늙은이를 말합니다. 고대 중국의 전한시대(前漢時代 BC 202-AD 8)에 북방 국경 부근에 점을 잘 치는 한 노인이 살고 있었습니다. 어느 날 이 노인이 집에서 기르던 말이 뛰쳐나가 국경을 넘어 오랑캐들이 사는 땅으로 도망해버렸습니다. 그러자 마을 사람들이 찾아와서 참 안 됐다고 노인을 위로했습니다. 그러나 노인은 이것이 또 무슨 복이 될는지 알겠소?”라고 말하고 조금도 낙심하지 않았습니다. 그로부터 몇 달 후에 도망갔던 말이 오랑캐들의 훌륭한 준마(駿馬)를 데리고 집으로 돌아왔습니다. 그러자 마을 사람들이 다시 노인에게 찾아와서 말이 돌아온 것을 축하하고 기뻐했습니다. 그러나 노인은 이번에도 이것이 또 무슨 화가 될는지 알겠소?”라고 반문하고 조금도 기뻐하거나 좋아하지 않았습니다. 아니나 다를까 돌아온 그 말 때문에 집에 큰 재앙이 닥쳤습니다. 이 노인에게 아들이 하나 있었는데 아들은 어려서부터 말타기를 좋아했습니다. 말타기를 좋아한 아들이 준마를 타다가 말에서 떨어져 다리가 부러져서 절뚝발이가 된 것입니다. 그러자 마을 사람들이 다시 노인에게 찾아와 말에서 떨어져 불구자가 된 아들의 불행을 위로했습니다. 그러나 노인은 이번에도 이것이 혹시 복이 될는지 누가 알겠소?”라고 대답했습니다. 그로부터 1년 후에 북쪽의 오랑캐들이 국경을 넘어 쳐들어 왔습니다. 그래서 마을의 장정들은 다 전쟁에 나가 적과 싸우다 전사했지만 노인의 아들은 다리가 부러져 절뚝발이가 되었기 때문에 전쟁에 나가지 않았고 노인은 부자가 다 무사했습니다.

새옹지마라는 고사는 인간의 행복과 불행은 예측할 수 없다는 뜻으로 인생에는 복()이 화()가 되고 화가 복이 되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눈앞의 현실이나 이해득실에 따라 웃고 울고 할 필요가 없다는 교훈을 주고 있습니다. 인생에는 크고 작은 수많은 고난과 시련이 있습니다. 요셉처럼 선하고 의로운 사람이 억울하게 죄인의 누명을 쓰고 모함을 받고 고난을 당할 수도 있습니다. 이런 경우 사람들은 낙심하고 좌절하고 하나님의 사랑을 의심하고 하나님을 원망합니다. 그러나 원망과 좌절을 하면 안 됩니다. 하나님 앞에 믿음으로 살기 위해 노력하고 의롭게 사는 사람이 고난을 당한다면 거기에는 반드시 하나님의 목적과 뜻이 있기 때문입니다. 더 큰 축복을 주시기 위한 하나님의 연단이요 훈련인 것입니다.

복된 만남을 가지려면 내가 먼저 복된 사람이 돼야 한다고 말씀드렸습니다. 요셉처럼 변함없는 믿음을 지키고 하나님을 잘 섬겨야 합니다. 그리고 주어진 여건에서 최선을 다하시고 만나는 사람마다 정직과 성실로 최선을 다해 대하시며 좋은 관계를 유지해야 합니다. 요셉처럼 주어진 여건과 환경에서 최선을 다하셔서 하나님 은혜와 축복으로 신앙과 인생에 승리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2022, 8, 2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