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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은 버리지 아니하심

진리의증인 2022. 8. 5. 03:28

이 정만 목사 (HP:010-5359-1617)

블로그(네이버:논산동산교회, 다음:논산동산교회)

 

@메시지574(로마47) 하나님은 버리지 아니하심

 

1그러므로 내가 말하노니 하나님이 자기 백성을 버리셨느냐, 그럴 수 없느니라. 나도 이스라엘인이요, 아브라함의 씨에서 난 자요, 베냐민 지파라, 2하나님이 그 미리 아신 자기 백성을 버리지 아니하셨나니 너희가 성경이 엘리야를 가리켜 말한 것을 알지 못하느냐, 그가 이스라엘을 하나님께 고발하되 3주여 그들이 주의 선지자들을 죽였으며 주의 제단들을 헐어버렸고 나만 남았는데 내 목숨도 찾나이다 하니 4그에게 하신 대답이 무엇이냐 내가 나를 위하여 바알에게 무릎을 꿇지 아니한 사람 칠천 명을 남겨 두었다 하셨으니 5그런즉 이와 같이 지금도 은혜로 택하심을 따라 남은 자가 있느니라. 6만일 은혜로 된 것이면 행위로 말미암지 않음이니 그렇지 않으면 은혜가 은혜 되지 못하느니라. 7그런즉 어떠하냐 이스라엘이 구하는 그것을 얻지 못하고 오직 택하심을 입은 자가 얻었고 그 남은 자들은 우둔하여졌느니라, 8기록된 바 하나님이 오늘까지 그들에게 혼미한 심령과 보지 못할 눈과 듣지 못할 귀를 주셨다 함과 같으니라. 9또 다윗이 이르되 그들의 밥상이 올무와 덫과 거치는 것과 보응이 되게 하시옵고 10그들의 눈은 흐려 보지 못하고 그들의 등은 항상 굽게 하옵소서하였느니라 11그러므로 내가 말하노니 그들이 넘어지기까지 실족하였느냐, 그럴 수 없느니라. 그들이 넘어짐으로 구원이 이방인에게 이르러 이스라엘로 시기나게 함이니라. 12그들의 넘어짐이 세상의 풍성함이 되며 그들의 실패가 이방인의 풍성함이 되거든 하물며 그들의 충만함이리요” (로마서 11:1-12)

 

서론: 바울 사도는 율법에 열성적이었던 유대인은 구원에 실패했지만 율법을 모르는 이방인은 구원을 받았다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러면 하나님께서 유대인을 버리신 것이냐?” 이에 대해 바울 사도는 하나님은 당신이 택한 백성을 결코 버리지 아니하신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은 진실하시고 변함이 없으시기 때문입니다. 인간은 불완전한 존재이기 때문에 하나님 말씀에 불순종하기도 하고 약속을 어기기도 합니다. 또한 인간은 하나님을 배반하고 부인하기도 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완전하시고 진실하시기 때문에 당신이 택한 백성을 버리지 아니하십니다.

이 시간에는 하나님은 버리지 아니하심이란 제목으로 함께 은혜를 받고자 합니다.

 

1. 하나님은 당신이 택하신 자녀들을 결코 버리지 아니하십니다.

바울 사도는 본문 1절에서 “.......하나님이 자기 백성을 버리셨느냐, 그럴 수 없느니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유대인들은 항상 자기들은 하나님께 택함 받은 하나님 백성이기 때문에 유대인은 다 구원받는다고 믿었습니다. 그러나 바울 사도는 유대인이 구원에 실패했다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러면 하나님께서 유대인을 버리신 것이냐? 바울 사도는 결코 그럴 수 없다.”고 말씀하셨습니다. 바울 사도는 두 가지 경우를 예로 들어 하나님은 당신이 택하신 백성을 버리지 아니하신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첫 번째 예는 바울 사도 자신입니다. 본문 1절 중반절에 “.......나도 이스라엘인이요 아브라함의 씨에서 난자요 베냐민 지파라말씀하고 있습니다. “봐라! 나도 아브라함의 자손으로 이스라엘 민족이 아니냐? 나는 우리 조상 야곱이 가장 사랑한 아들이었던 베냐민 지파의 사람이다. 내가 얼마나 하나님을 거역하고 교회를 박해했느냐? 그러나 하나님은 나 같은 죄인도 버리지 아니하셨다. 내가 예수 그리스도의 사도가 되었다는 사실이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민족을 버리시지 않았다는 증거라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민족을 버리시지 않았다는 두 번째 예로 바울 사도는 성경의 권위에 호소하고 있습니다. 본문 로마서 11:4,의 말씀은 구약 열왕기상 19:18,을 인용하신 말씀입니다. 엘리야 선지자는 죽음을 보지 않고 천국에 올라간 신앙의 용사이며 선지자 중 최고의 선지자입니다. 엘리야 선지자가 갈멜산에서 바알 선지자 450명과 대결할 때 하나님께서는 엘리야의 기도에 불로 응답해주셨으며, 엘리야 선지자가 범죄하고 타락한 이스라엘 백성에 대한 심판으로 비를 내리지 말라고 기도하자, 하나님은 이스라엘에 3년 반 동안이나 비를 내리시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엘리야 선지자가 다시 비를 달라고 기도하자 하나님께서 즉시 이스라엘에 비를 내려주실 정도로 엘리야 선지자는 탁월한 능력의 선지자였습니다.

그러나 엘리야 선지자보다 고난과 박해를 받은 선지자는 없습니다. 이스라엘 왕 아합과 왕비 이세벨바알이란 우상을 숭배했는데 이들은 여호와 신앙을 말살하기 위해 하나님의 선지자를 죽이는 만행을 저질렀습니다. 아합과 이세벨이 엘리야 선지자를 체포하기 위해 군대를 동원해서 추격하자, 엘리야 선지자는 호렙 산의 한 동굴 속에 몸을 숨겼습니다. 동굴로 피신한 엘리야 선지자가 낙심하여 죽고 싶다고 죽기를 소원하고 하나님께 기도하자, 하나님께서 찾아오셔서 엘리야야 네가 어찌하여 여기에 있느냐?”고 물으셨습니다. 엘리야는 “.......이스라엘 자손이 주의 언약을 버리고, 주의 제단을 헐며, 칼로 주의 선지자들을 다 죽이고, 오직 나만 남았는데 그들이 내 생명마저 찾아 빼앗으려 하나이다.”라고 호소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엘리야 선지자에게 내가 이스라엘 가운데에 칠천 명을 남기리니 다 바알에게 무릎을 꿇지 아니하고 다 바알에게 입 맞추지 아니한 자라고 말씀하셨습니다(열왕기상 19:9-10,18). 아합과 이세벨의 박해 속에서도 진실하고 충성된 하나님 백성을 칠천 명이나 남겨두셨다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엘리야 선지자는 이스라엘 백성들이 다 바알과 우상을 숭배하고 하나님 백성은 자기 혼자만 남았다고 생각했는데 하나님께서는 진실한 하나님 백성을 7천 명이나 남겨 두셨던 것입니다. 아합과 이세벨의 박해에도 남겨진 7천 명이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을 버리시지 않았다는 증거인 것입니다.

바울 사도가 유대인의 구원문제를 논하면서 일관되게 강조한 중요한 논거(論據)가 있습니다. 그것이 무엇이냐? 성경과 이스라엘 역사에서 이스라엘의 백성 전체가 택함을 받고 이스라엘 민족 전체가 구원을 받은 적은 한 번도 없었다는 것입니다. 아브라함의 아들 중에서는 이삭만 택함을 받았고 이삭의 아들 중에서는 야곱만 택함을 받았습니다. 또한 야곱의 열두 명의 아들을 통해 이스라엘이 세워졌지만 그들 중에서도 택함을 받고 버림을 받는 과정이 계속 반복되었습니다. 유대인들은 하나님께서 택하신 하나님 백성이기 때문에 이스라엘은 민족 전체가 구원을 받는다고 믿었습니다. 그러나 바울 사도는 민족 전체가 아니라 개인적으로 하나님께 택함을 받은 자만 구원을 받는다고 주장한 것입니다.

구원은 민족이나, 국가나, 가족이나, 단체로 받는 것이 아닙니다. 구원은 철저하게 개인적입니다. 자기 믿음으로 자기만 구원을 받는 것입니다. 아버지 믿음으로 아들이 구원받을 수 없고 아내의 믿음으로 남편이 구원받을 수 없습니다. 구원은 개인적이며 자신의 믿음으로 자신만 구원을 받습니다. 하나님은 당신이 택하신 자녀들을 결코 버리지 아니하신다고 말씀드렸습니다. 그러나 이 말씀이 민족 전체와 국가 전체가 구원을 받는다는 뜻은 아닙니다. 믿음을 지킨 사람은 버림을 받지 않고 구원을 받는다는 뜻입니다. 칼빈 선생님은 인간의 불충실성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언약이 파괴된다고 하는 것은 어리석은 생각이다고 말씀하셨습니다. 그 근거로 인간이 하나님의 양자가 된 것은 하나님의 은혜로 되어졌고 또한 선택의 근거가 인간에게 있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에 의해 결정되었기 때문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 택하시고 부르셨기 때문에 하나님은 당신이 택하신 백성을 버리시지 않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구원은 전체가 아니라 개인적이며 조상과 부모의 신앙과 상관없이 믿음을 지킨 자가 구원받고 본인의 믿음으로 구원받는다는 것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2. 하나님을 거역하고 계속해서 죄를 범하면 심령이 우둔(愚鈍)한 자가 됩니다.

본문 17절에 그런즉 어떠하냐, 이스라엘이 구하는 그것을 얻지 못하고 오직 택하심을 입은 자가 얻었고 그 남은 자들은 우둔하여졌느니라.” 말씀하고 있습니다. 인간의 구원은 하나님의 선택(選擇)에 의해 결정되고 택함 받지 못하고 버림받은 자들은 우둔하여졌다는 말씀입니다. ‘우둔하여졌다로 번역된 말은 피부나 근육에 단단한 굳은살이 박인다.”는 뜻입니다. 굳은살이 박이면 감각이 없기 때문에 차가움이나 뜨거움이나 아픔을 느끼지 못합니다.

사람이 계속해서 죄를 짓고 하나님을 거역하면 나중에는 그 마음과 양심 상태가 마치 손이나 피부에 굳은살이 박인 것처럼 아무런 감각이나 죄의식을 느끼지 못하고 점점 악해지고 우둔해지는 것입니다. 사람이 처음에 죄를 지을 때는 두렵고 떨리고 양심의 가책을 느낍니다. 그러나 죄를 계속 범하면 나중에는 죄에 인이 박히고, 죄에 중독이 되고, 양심에 굳은살이 박혀 괴로움이나 불편함을 전혀 느끼지 못합니다. 또한 사람의 마음이 우둔하여지면 어둡고 혼미한 심령이 되기 때문에 영적장님과 영적귀머거리가 됩니다. 본문 8절에 기록된 바 하나님이 오늘까지 그들에게 혼미한 심령과, 보지 못할 눈과, 듣지 못할 귀를 주셨다말씀하고 있습니다. 혼미(昏迷)란 마음이 흐리고 사리에 어둡다는 뜻입니다. 사람이 하나님을 떠나서 죄를 범하고 죄의 종이 되면 마음이 우둔하게 되고 지혜와 분별력을 상실하게 됩니다. 멸망의 길인 줄 알면서도 그 길로 돌진해 가고 옳고 바른 길로 가는 것을 거부하고 반항합니다. 저주받은 심령이 되었기 때문에 진리와 정의에 반대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둔한 자들은 눈으로 보고도 하나님의 역사와 하나님이 행하신 기적을 깨닫지 못합니다. 죄를 짓고 악을 행하는 일에는 영리하고 눈이 밝지만 하나님을 섬기고 의를 행하는 일에는 장님이 되는 것입니다. 또한 심령이 우둔하게 되면 귀가 있어도 하나님 말씀을 듣지 못합니다. 죄를 짓고 불의를 행하는 소리에는 귀가 열려 있지만 성경과 하나님의 말씀에는 귀머거리가 되는 것입니다. 그리스도인은 죄짓는 일과 불의한 일에는 장님과 귀머거리가 돼야 하지만 신령한 일에는 눈이 열리고 귀가 열려있어야 합니다. 천국을 보아야 하고 성령의 소리를 들어야 하며 하나님의 말씀에 귀가 열려있어야 합니다.

겸손하고 하나님 말씀에 순종해야 복을 받고 신앙과 인생에 승리합니다. 겸손과 순종은 하나님 은혜와 축복을 받는 비결입니다. 하나님을 거역하면 심령이 우둔한 자가 되고 죄의 종이 됩니다. 우둔한 심령이 되지 않도록 깨어서 기도하며 겸손한 마음과 진실한 믿음으로 하나님 말씀에 순종하셔야 한다는 것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3. 하나님의 경륜(經綸)과 섭리에는 합력하여 선을 이루시는 하나님의 깊은 뜻이 있습니다.

바울 사도는 본문 11-12절에서 이스라엘이 넘어짐으로 말미암아 구원의 은총이 이방인에게 이르고 이방인의 구원은 다시 이스라엘을 시기하게 하여 나중에는 이스라엘과 이방 모두가 구원을 받는다.”고 말씀하셨습니다. 말씀이 반복되고 있습니다만 어느 시대나 하나님께 택함 받은 자들이 있었고 다른 한편에는 하나님께 택함 받지 못한 자들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아무리 환난과 박해가 극심하고 아무리 이스라엘 백성이 범죄하고 타락해도 하나님께서 아브라함과 다윗에게 약속하신 구원의 등불은 꺼지지 않았습니다. 하나님의 구원의 방주에서 이스라엘민족이 추방되지 않았다는 말씀입니다. 이스라엘민족은 여전히 구원의 방주 안에 있습니다. 다만 옛날에는 구원의 방주의 중심이 이스라엘에 있었고 구원의 방주의 닻이 이스라엘이란 나라에 내려져 있었지만 오늘날은 구원의 방주가 온 세상이라는 넓은 바다 위에 떠 있습니다. 옛날이나 지금이나 이스라엘은 여전히 하나님의 구원의 경륜에 들어 있으며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을 버리시지 않았습니다. 단지 인간의 눈에 이스라엘이 실패한 것처럼 보이는 것뿐입니다.

하나님은 합력하여 선을 이루어주시는 하나님이십니다. 인간이 하나님의 경륜과 섭리를 어떻게 다 이해할 수 있겠습니까? 이스라엘의 실패와 불순종으로 이방인에게 구원의 문이 열렸으며 이스라엘의 실패가 이방인에게 구원의 기회가 되었습니다. 그러나 이스라엘 민족 전체가 실패한 것은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택하신 백성은 여전히 구원의 방주 안에 보호받고 있습니다. 유대인의 구원이 실패한 것처럼 보이는 것은 인간의 판단이지 하나님은 유대인을 버리시지 않았습니다. 온 세상을 구원하시는 하나님의 경륜에는 구원받을 이방인의 숫자가 충만히 찰 때가 있습니다. 이방인의 충만한 수가 구원의 방주로 들어오면 유대인이 이방인의 구원을 시기하여 다시 하나님 앞으로 돌아오고 그 때에 유대인과 이방인 모두가 구원을 받는다는 것이 바울 사도의 구원관입니다.

어린아이들은 부모의 깊은 뜻을 헤아리지 못하기 때문에 부모에게 불평과 원망을 합니다. 그러나 어린 자녀들이 부모에게 불평과 원망을 하는 순간에도 부모는 자녀를 위해 땀 흘려 일하고 자녀를 위한 계획을 세웁니다. 하나님의 사랑도 그와 같습니다. 그리스도인은 예수님의 피로 값 주고 사신 하나님의 자녀들입니다. 예수님의 피로 값 주고 사셨는데 하나님께서 그리스도인을 얼마나 사랑하시겠습니까? 예수님께서는 너희 중에 누가 아들이 떡을 달라고 하는데 돌을 주며 생선을 달라 하는데 뱀을 줄 사람이 있겠느냐, 너희가 악한 자라도 좋은 것으로 자식에게 줄 줄 알거든 하물며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께서 구하는 자에게 좋은 것으로 주시지 않겠느냐고 말씀하셨습니다(마태복음 7:9-11). 하나님의 경륜과 섭리에는 합력하여 선을 이루어주시는 하나님의 깊은 뜻이 있다고 말씀드렸습니다. 그러므로 그리스도인은 하나님의 사랑과 구원을 의심하면 안 됩니다. 합력하여 선을 이루어주시는 하나님의 섭리와 하나님의 사랑을 굳게 믿어야 한다는 것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말씀을 맺겠습니다. 첫째, 하나님께서는 당신이 택하신 자녀들을 결코 버리지 아니하신다고 말씀드렸습니다. 다만 하나님의 선택은 전체가 아니라 일부이며 민족이나 국가 전체의 구원이 아니라 개인적인 구원이라는 것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둘째, 하나님을 거역하고 계속해서 죄를 범하면 심령이 우둔하게 된다고 말씀드렸습니다. 불순종하여 우둔한 자가 되면 양심에 굳은살이 박여 하나님을 거역하게 됩니다. 우둔한 자가 되지 않도록 깨어서 기도하며 하나님 말씀과 하나님 뜻에 순종하셔야 한다는 것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셋째, 하나님의 경륜과 섭리에는 합력하여 선을 이루시는 하나님의 깊은 뜻이 있다고 말씀드렸습니다. 어떤 고난과 어떤 환경에서도 합력하여 선을 이루어주시는 하나님의 섭리를 믿고 참고 인내하셔야 합니다. 성도 여러분은 하나님 백성으로 선택받고 예수님의 보혈로 구원받으신 하나님의 자녀입니다. 구원받은 하나님 자녀와 하나님 백성답게 진실한 믿음으로 행하셔서 신앙과 인생에 승리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2022, 8, 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