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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금률

진리의증인 2022. 7. 8. 01:39

이 정만 목사 (HP:010-5359-1617)

블로그(네이버:논산동산교회, 다음:논산동산교회)

 

@메시지202(마태52) 황금률(黃金律)

 

그러므로 무엇이든지 남에게 대접을 받고자 하는 대로 너희도 남을 대접하라, 이것이 율법이요 선지자니라

(마태복음 7:12)

 

서론: 어느 날 공자의 제자 자공(子貢)이 공자에게 선생님! 세상 사람들이 생활의 실천율(實踐律)로 지킬만한 말씀을 한 마디로 요약한다면 어떤 말씀이 있겠습니까?”라고 물었습니다. 사람이 살아가면서 지켜야 할 생활의 윤리를 한 마디로 표현하면 무엇이 되겠느냐는 질문입니다. 공자는 네 자신에게 되어지기를 원하지 아니하는 일은 다른 사람에게도 하지 말라고 말했습니다. 네가 싫어하는 일은 다른 사람에게도 하지 말라는 말입니다. 반면에 예수님께서는 무엇이든지 남에게 대접을 받고자 하는 대로 너희도 남을 대접하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네가 싫어하는 일은 다른 사람에게도 하지 말라는 공자의 말과 무엇이든지 남에게 대접을 받고자 하는 대로 너희도 남을 대접하라는 예수님 말씀은 얼핏 보기에는 비슷한 것 같지만 전혀 다릅니다.

공자의 말과 예수님 말씀은 무엇이 다를까요? 공자의 하지 말라는 계율은 움츠리고 가만히 있으면 지킬 수 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의 하라는 율법은 실천하기가 어렵습니다. 원수를 용서하고 원수에게 보복을 하지 말라는 율법은 마음만 먹으면 얼마든지 지킬 수 있습니다. 죽은 송장처럼 가만히 있으면 됩니다. 그러나 원수를 사랑하고 축복하고 원수를 위하여 기도하라는 율법은 정말 지키기 어렵습니다. 누가 원수를 사랑하고 축복하고 원수를 위하여 기도할 수 있겠습니까? 인간이 지키고 행해야 할 생활의 윤리를 하지 말라는 소극적인 윤리로 말한 사람은 공자가 아니라도 많이 있습니다. 그러나 무엇을 하라는 적극적인 윤리로 말씀하신 분은 예수님밖에 없습니다. “무엇이든지 남에게 대접을 받고자 하는 대로 너희도 남을 대접하라는 말씀은 기독교 윤리의 최고봉입니다. 그래서 교회에서는 이 말씀을 황금률(黃金律)이라고 합니다. 황금처럼 귀한 율법이란 뜻입니다.

이 시간에는 황금률이란 제목으로 함께 은혜를 받고자 합니다.

 

1. 황금률은 하나님 은혜를 받고 성령으로 거듭난 사람만 지킬 수 있는 천국율법입니다.

무엇을 하지 말라는 소극적인 율법은 금지하고 규제하는 것을 하지 않으면 됩니다. 복음서에 보면 이스라엘의 서기관과 바리새인들이 가르친 율법이 무엇을 하지 말라는 소극적인 율법입니다. 예를 들어 사람을 죽이지 않았으면 살인하지 말라는 율법을 지킨 것이 되고 남녀 간에 부정한 성관계가 없었다면 간음하지 말라는 율법을 지킨 것이 됩니다. 마음속으로 아무리 불의하고 죄악 된 생각을 품어도 율법이 금하고 있는 구체적인 행위만 하지 않으면 그 사람은 율법을 지킨 사람이 되는 것입니다. 이스라엘의 서기관과 바리새인들이 말하는 율법은 인간의 외적인 행위가 판단의 기준이 되었습니다. 반면에 예수님께서는 행위는 물론 동기와 목적과 마음의 생각까지 심판의 근거와 기준으로 말씀하셨습니다. 예를 들면 마음으로 누구를 증오하면 살인이라고 말씀하셨고 마음으로 음란한 생각을 품고 여자를 보면 이미 간음을 한 것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하나님을 모르는 사람들도 살인은 하지 않습니다. 예수를 믿지 않는 사람들도 간음이 옳지 않다는 것은 알고 우상을 숭배하는 이교도들도 도둑질이 나쁘다는 것은 알고 있습니다. 하나님을 모르고 예수를 믿지 않는 사람들도 선악에 대한 기본적인 지식과 원칙을 가지고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믿지 않는 불신자들 중에 정의롭고 인자하고 도덕적으로 탁월한 삶을 살아가는 사람들이 얼마나 많이 있습니까? 다른 사람에게 피해를 주거나 고통을 주면 안 된다는 것은 모든 인류가 추구하고 우리사회가 요구하는 최소한의 윤리규범입니다. 하나님을 믿지 않는 불신자나 이방인들도 다른 사람에게 해를 끼치거나 남이 싫어하는 일을 하거나 다른 사람에게 부당한 요구를 하면 안 된다는 것을 알고 있는 것입니다. 그리고 하나님을 모르는 사람들도 법을 지키고 법을 지키기 위해 노력하고 있습니다. 말씀이 반복되고 있습니다만 하지 말라는 소극적인 율법은 죽은 송장처럼 가만히 있으면 지킬 수 있습니다. 그러나 무엇을 하라는 적극적인 율법은 노력하지 않으면 지킬 수 없습니다.

그리스도인은 무엇이든지 남에게 대접을 받고자 하는 대로 너희도 남을 대접하라.”는 황금률을 지킬 수 있을까요? 지킬 수 없을까요? 지킬 수 있는 사람도 있고 지킬 수 없는 사람도 있습니다. 어떤 사람이 황금률을 지킬 수 있느냐? 하나님 은혜를 받고 성령으로 거듭난 사람이 지킬 수 있습니다. 왜냐하면 인간은 연약하여 할 수 없는 일을 성령은 하실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성령의 도우심과 인도하심을 받아야하는 것입니다. 믿음이 없는 사람과 시기와 증오심을 가진 사람과 이기적인 인간은 황금률을 지킬 수 없습니다. 또 게으르고 나태한 인간과 타락한 인간도 황금률을 지킬 수 없습니다. 그리고 인간의 의지와 결심과 노력만 가지고는 황금률을 지킬 수 없습니다. 그러나 성령으로 거듭 난 사람은 황금률을 지킬 수 있습니다. 그리스도인은 무엇이든지 남에게 대접을 받고자 하는 대로 너희도 남을 대접하라는 황금률을 지킬 수 있는 사람이 돼야 합니다. 황금률은 하나님 은혜를 받고 성령으로 거듭난 사람이 지킬 수 있는 천국율법이라는 것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2. 황금률은 우리의 이웃에 대한 사랑과 봉사를 명령하신 율법입니다.

무엇이든지 남에게 대접을 받고자 하는 대로 너희도 남을 대접하라는 말씀은 다른 사람의 입장에서 생각하고 상대방의 처지에서 행동하라는 말씀입니다. 칼빈 선생님은 인간은 누구나 자기 자신의 이익이나 자신의 권리에 관한 문제에는 구구절절이 따져서 정확하고 공정하게 처리하는 학자가 되지만 다른 사람의 문제에는 관심을 기울이지 않는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자신의 문제에는 정의롭고 현명하지만 타인의 문제는 의도적으로 외면하고 고의적으로 모른 척한다는 말입니다. 자신의 일에는 공정과 정의를 외치면서 타인의 일에는 불공정과 불의를 당연시하는 것이 정의와 진리를 외치는 인간의 이성과 양심입니다. 사람이 왜 자기중심적이 되고 이기적인 행동을 할까요? 다른 사람에 대한 사랑과 이해가 부족하기 때문입니다.

아무리 부도덕하고 이기적인 인간도 사랑 앞에서는 진실하고 겸손하고 희생적인 사람으로 변합니다. 사랑하는 마음이 있어야 상대의 입장을 생각하고, 사랑하는 마음이 있어야 상대에 대한 배려를 하며, 사랑하는 마음이 있어야 양보도 하고 희생도 하는 것입니다. 자녀를 낳아서 길러보신 부모들은 아시겠지만 자녀가 얼마나 사랑스럽습니까? 어린아이를 기를 때 부모는 철저하게 어린아이 중심으로 생활을 합니다. 사랑과 정성을 다해 어린아이를 양육하는 것입니다. 움직이지도 못하고 말도 하지 못하는 어린아이 앞에서 자기의 권리를 주장하거나 자기의 희생을 불평하는 부모는 없습니다. 왜 그럴까요? 자식을 사랑하기 때문입니다. 사랑 앞에는 희생이 기쁨이 되고 수고가 보람이 되는 것입니다. 같은 수고와 희생도 사랑이 있느냐 없느냐에 따라 의미가 달라집니다. 사랑하는 마음으로 하면 수고와 희생도 기쁨과 보람이 되지만 사랑하는 마음이 없으면 고통과 시련이 됩니다. 사랑하는 마음만 있으면 하지 못할 일이 없고 불가능한 일도 없습니다. “무엇이든지 남에게 대접을 받고자 하는 대로 너희도 남을 대접하라는 황금률은 사랑하는 마음이 있어야 지킬 수 있는 율법입니다.

황금률을 보다 구체적으로 기록하고 있는 것이 십계명의 두 번째 돌판에 기록된 인간에 대한 계명입니다. 네 부모를 공경하라, 살인하지 말라, 간음하지 말라, 도둑질하지 말라, 네 이웃에 대하여 거짓 증거하지 말라, 네 이웃의 집을 탐내지 말라는 계명들이 무엇이든지 남에게 대접을 받고자 하는 대로 너희도 남을 대접하라는 황금률에 포함되는 것입니다. 바울 사도는 로마서 13:9-10,에서 간음하지 말라, 살인하지 말라, 도둑질하지 말라, 탐내지 말라 한 것과 그 외에 다른 계명이 있을 찌라도 네 이웃을 네 자신과 같이 사랑하라하신 그 말씀 가운데 다 들었나니......그러므로 사랑은 율법의 완성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렇습니다. 진실로 사랑은 율법의 완성입니다. 사랑하는 마음만 있으면 행하지 못할 율법이 없고 지키지 못할 율법이 없습니다. “무엇이든지 남에게 대접을 받고자 하는 대로 너희도 남을 대접하라는 황금률은 이웃을 내 몸처럼 사랑하는 마음을 가져야 지킬 수 있는 율법인 것입니다.

하나님의 사랑을 깨닫고 체험한 사람이 하나님을 사랑하고 가족과 이웃의 사랑을 깨닫고 체험한 사람이 가족과 이웃을 사랑합니다. 하나님의 사랑을 깨닫지 못하고 체험하지 못한 사람은 하나님을 사랑할 수 없고 부모와 형제와 이웃의 사랑을 깨닫지 못하고 체험하지 못한 사람은 부모와 형제와 이웃을 사랑할 수 없습니다. 하나님의 사랑과 은혜를 체험하고 부모 형제와 이웃의 사랑을 체험하고 깨달아야 진정한 사랑을 할 수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요구하시는 사랑은 형식적인 사랑이 아니라 거짓 없는 참된 사랑입니다. 하나님이 요구하시는 사랑은 자아를 망각하는 희생적인 사랑이며 망각과 희생 속에서 기쁨과 만족을 얻는 거룩한 사랑입니다. 황금률은 우리 이웃과 인간에 대한 사랑과 봉사를 명령한 계명이라고 말씀드렸습니다. 그리스도인은 국경과 민족을 초월하여 모든 사람에게 하나님의 사랑을 베풀고 실천하셔야 한다는 것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3. 황금률은 내가 바라고 원하는 만큼 베풀고 행하라는 사랑의 율법입니다.

다른 나라의 말을 우리말로 번역했을 때 원문의 의미를 100퍼센트(%), 완벽하게 전달하기 어려운 경우가 있습니다. 문화와 정서와 언어의 차이에서 오는 번역의 한계입니다. “무엇이든지 남에게 대접을 받고자 하는 대로 너희도 남을 대접하라는 말씀도 본래의 의미를 제대로 전달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이 말씀을 공동번역 성경은 너희는 남에게서 바라는 대로 너희도 남에게 해 주어라고 번역하고 있습니다. 공동번역이 원문의 뜻에 더 가깝게 번역되어 있습니다. 황금률을 헬라어 성경의 뜻을 살려 이해하기 쉽게 의역하면 사람들이 너희에게 해 주기를 바라는 대로 너도 모든 일에 그렇게 해 주어라는 뜻입니다. 우리가 사용하고 있는 개역 개정성경은 본문 말씀이 마치 대접을 받고 싶으면 대접을 하라는 뜻으로 오해하도록 번역되어 있습니다. 특히 대접이라는 말이 우리 문화권에서는 음식 대접을 연상하기 때문에 더욱 그렇습니다. 예수님은 보상을 기대하고 사람을 대접하지 말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예수님은 사람들을 식사에 초대할 때에 친척이나 부유한 이웃을 청하지 말고 가난한 자나 장애자들을 청하라고 말씀하셨습니다(누가복음 14:12-14). 왜냐하면 갚을 것이 없는 가난한 자들을 대접하고 장애자나 어려운 사람들을 위해 봉사해야 하나님께 상을 받기 때문입니다. 황금률은 절대로 대접을 받고 싶으면 대접하라는 뜻이 아닙니다.

그러므로 무엇이든지 남에게 대접을 받고자 하는 대로 너희도 남을 대접하라는 말씀은 너희들이 다른 사람에게 원하고 바라는 대로 베풀고 해 주어야 한다는 말씀입니다. 내가 사랑받고 싶으면 나도 다른 사람을 사랑해야 합니다. 내가 신뢰받고 싶으면 나도 상대방을 신뢰해야 합니다. 내가 고통 받는 것이 싫으면 나도 다른 사람에게 고통을 주면 안 됩니다. 내 자식이 칭찬 받기 원하면 나도 다른 사람의 자녀들을 칭찬해야 합니다. 내가 모함 받는 것이 싫으면 나도 다른 사람을 모함하면 안 됩니다. 내 가정이 소중하면 다른 사람의 가정도 소중하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내가 행복하기 원하면 다른 사람의 행복도 지켜줘야 합니다. 모든 면에서 네가 원하는 만큼 다른 사람에게도 그렇게 해 주라는 것이 황금률의 근본정신입니다. 황금률은 내가 원하고 바라는 만큼 사람들에게 베풀고 행하라는 사랑의 율법이라는 것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주경학자인 벵겔 선생님은 사람은 손해를 주기 위해서가 아니라 유익을 주기 위해서 행동해야 한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사기꾼과 강도와 폭력배는 남에게 고통과 불행을 주고 남에게 손해를 끼치는 무리로 우리 사회에 존재하는 인간 해충들입니다. 그리스도인은 우리의 이웃과 우리사회에 유익을 주는 존재가 되어야 합니다. 남에게 해를 끼치지 않고 살겠다는 소극적인 인생관을 가진 사람은 헌신적인 사랑과 봉사를 할 수도 없고 국가와 사회를 위해 큰일을 할 수 없습니다. 반면에 남에게 유익을 주고 살겠다는 사람은 국가와 사회를 위해 큰일을 하고 헌신적인 사랑과 봉사를 하며 살아갑니다. 수동적이고 소극적인 형태의 선을 추구하는 사람은 우리 사회에도 많이 있습니다. 반면에 선을 찾아 적극적이고 능동적으로 행하고 실천하는 사람은 많지 않습니다. 황금률은 적극적으로 선을 찾아서 행하고 능동적으로 사랑을 실천하라는 율법입니다. 그러나 황금률은 대가를 기대하고 사랑을 베풀거나 보상을 바라고 선을 행하는 것이 아닙니다. 황금률은 모든 면에서 내가 원하고 바라는 만큼 이웃과 상대에게 베풀고 행하라는 사랑의 율법이라는 것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말씀을 맺겠습니다. 첫째, 황금률은 하나님 은혜를 받고 성령으로 거듭난 사람이 지킬 수 있는 천국율법이라고 말씀드렸습니다. 그리스도인은 하나님 은혜를 받고 성령으로 거듭나서 천국율법인 황금률을 지킬 수 있는 사람이 돼야 한다는 것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둘째, 황금률은 우리의 이웃에 대한 사랑과 봉사를 명령하신 율법이라고 말씀드렸습니다. 그리스도인은 이웃과 형제들에게 사랑의 정신으로 황금률을 행하시고 실천하셔야 한다는 것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셋째, 황금률은 내가 원하고 바라는 만큼 이웃과 상대에게 베풀고 행하라는 사랑의 율법이라고 말씀드렸습니다. 기독교의 사랑과 은혜는 상업적인 거래가 될 수 없습니다. 조건 없이 베풀고 사랑해야 합니다. 모든 면에서 내가 원하고 바라는 만큼 사람들에게 베풀고 사랑해야 합니다. 모든 면에서 성도 여러분이 바라고 원하는 만큼 여러분의 이웃과 형제에게 사랑과 은혜를 베풀고 행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2022, 7, 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