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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가모 교회가 주는 교훈

진리의증인 2022. 6. 24. 04:24

이 정만 목사 (HP:010-5359-1617)

블로그(네이버:논산동산교회, 다음:논산동산교회)

 

@메시지335(117) 버가모 교회가 주는 교훈

 

12버가모 교회의 사자에게 편지하라. 좌우에 날선 검을 가지신 이가 이르시되 13네가 어디에 사는 지를 내가 아노니 거기는 사탄의 권좌가 있는 데라, 네가 내 이름을 굳게 잡아서 내 충성된 증인 안디바가 너희 가운데 곧 사탄의 사는 곳에서 죽임을 당할 때에도 나를 믿는 믿음을 저버리지 아니하였도다, 14그러나 네게 두어 가지 책망할 것이 있나니 거기 네게 발람의 교훈을 지키는 자들이 있도다. 발람이 발락을 가르쳐 이스라엘 자손 앞에 걸림돌을 놓아 우상의 제물을 먹게 하였고 또 행음하게 하였느니라, 15이와 같이 네게도 니골라당의 교훈을 지키는 자들이 있도다, 16그러므로 회개하라, 그리하지 아니하면 내가 네게 속히 가서 내 입의 검으로 그들과 싸우리라, 17귀 있는 자는 성령이 교회들에게 하시는 말씀을 들을지어다, 이기는 그에게는 내가 감추었던 만나를 주고 또 흰 돌을 줄터인데 그 돌 위에 새 이름을 기록한 것이 있나니 받는 자 밖에는 그 이름을 알 사람이 없느니라

(요한계시록 2:12-17)

 

서론: 버가모(터키에 위치)는 서머나에서 북쪽으로 약 100킬로미터, 동지중해의 에게해()에서 내륙으로 24킬로미터의 거리에 위치합니다. 아시아의 일곱 교회 중 서머나 교회와 빌라델비아 교회는 칭찬만 받았고, 라오디게아 교회는 책망만 받았으며, 버가모 교회와 나머지 교회들은 칭찬과 책망을 함께 받았습니다. 버가모 교회는 우상숭배의 중심지에서 믿음을 지켰다고 칭찬받았지만 이단세력을 징계하지 않았다고 책망도 함께 받았습니다.

이 시간에는 버가모 교회가 주는 교훈이란 제목으로 함께 은혜를 받고자 합니다.

 

1. 버가모 교회는 우상숭배의 중심지에서 믿음을 지켰다고 칭찬을 받았습니다.

예수님은 본문 13절에서 네가 어디에 사는지를 내가 아노니 거기는 사탄의 권좌가 있는 데라, 네가 내 이름을 굳게 잡아서......”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예수님은 버가모에 사탄의 권좌가 있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사탄의 권좌가 있는 데란 우상숭배의 중심지라는 뜻입니다. 버가모에는 우상의 신전이 많이 있었습니다. 신화(神話)란 어떤 것이든지 인간이 만들어 낸 허황된 이야기지만 우상숭배자들은 그런 허황된 주장에 열광합니다. 버가모에는 신들과의 전쟁에서 승리한 제우스의 거대한 신전이 우상숭배자들의 종교심을 유혹했고 많은 사람들이 뱀의 형상을 가진 의술의 신 아스쿨라피우스(Aesculapius)를 열렬히 숭배했습니다.

그러나 버가모에서 가장 강력한 우상숭배는 황제숭배였습니다. 로마제국은 로마의 황제를 살아있는 신으로 숭배하도록 강요했습니다. 로마제국의 전성기 때는 아시아를 제외한 전 세계가 로마의 식민지였습니다. 로마제국의 숙제와 고민거리는 어떻게 하면 거대한 로마제국 내의 수많은 나라와 민족을 하나로 결집할 수 있을까?”라는 문제였습니다. 그래서 로마제국은 수많은 속국과 민족을 하나로 결집시키기 위해 인간의 종교심을 이용했습니다. 나라와 민족과 종교와 문화가 다른 로마제국 내의 수많은 나라와 민족을 하나로 묶는 구심점으로 황제숭배를 추진한 것입니다. 버가모는 로마의 아시아 수도로 황제숭배의 신전이 있었기 때문에 버가모에 사는 사람들은 의무적으로 일 년에 한 번씩 로마 황제의 흉상 앞에 서서 로마의 황제 가이사는 주이시다는 고백을 하고 머리 숙여 분향을 해야 합니다. 로마제국은 분향을 한 사람에게는 황제숭배에 참여했다는 증명서를 발급해 주었는데 이 증명서를 소지한 사람은 국가나 사회적으로 문제를 일으키지 않는 한 개인적으로 어떤 신을 섬기든지 간섭이나 규제를 하지 않았습니다. 반면에 황제숭배를 거부하면 국법을 어긴 자로 분류돼 공민권을 박탈하고 추방조치가 내려졌습니다. 일본제국이 식민지 백성들에게 신사참배를 강요한 것도 로마제국으로부터 배운 고도의 정치적 책략이었습니다. 일본 왕을 신적인 존재로 우상화하여 정신적 구심점으로 삼으려고 한 것입니다. 버가모 교회는 로마제국의 박해와 위협에도 황제숭배를 거부하고 끝까지 믿음을 지켰습니다. 그래서 예수님께 칭찬을 받은 것입니다. 하나님 외에는 신이 없습니다. 그리스도인은 하나님과 예수님 외에는 어떤 것도 숭배하면 안 된다는 것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다음으로 버가모 교회는 안디바란 성도가 순교를 당할 때도 믿음이 흔들리지 않았다고 칭찬을 받았습니다. 본문 13절 중반절에 “......내 충성된 증인 안디바가 너희 가운데 곧 사탄이 사는 곳에서 죽임을 당할 때에도 나를 믿는 믿음을 저버리지 아니하였다고 칭찬하셨습니다. 안디바가 어떤 인물인지 자세한 것은 알 수 없지만 안디바는 예수 그리스도의 증인으로 예수 그리스도를 증거하다 죽임을 당했습니다. 증인을 헬라어로 마르투스(μάρτυς)라고 하는데 영어에서는 헬라어 마르투스를 순교자를 의미하는 마아터(martyr)로 번역하고 있습니다. 왜냐하면 초대교회에서 예수 그리스도의 증인은 대부분 순교를 당했고 예수의 증인은 순교를 각오해야 했기 때문입니다. 초대교회 때 예수를 믿고 예수 그리스도의 증인이 된다는 것은 죽음과 순교를 의미했습니다. 초대교회 일곱 집사 중 한 사람인 스데반 집사도 예수 그리스도를 증거하다 돌에 맞아 순교했고(사도행전 7:55-60), 사도 요한의 형제였던 야고보 사도도 예수 그리스도를 증거하다 순교했습니다(사도행전 12:2). 예수님의 열두 제자 중 사도 요한을 제외하고는 모두 예수 그리스도를 증거하다 순교의 제물로 세상을 떠났습니다.

그래서 초대교회 때 증인과 순교자는 같은 뜻을 가진 말이 되었습니다. 초대교회 때는 순교할 각오가 없이는 예수를 믿을 수 없었고 예수의 증인이 될 수 없었습니다. 버가모 교회는 황제숭배를 거부했기 때문에 무서운 환난과 박해를 받았는데 안디바란 성도가 황제숭배를 거부하다 순교를 당할 때도 믿음을 굳게 지켰습니다. 그래서 칭찬을 받은 것입니다. 버가모 교회는 우상숭배의 중심지에서 믿음을 지켰고 황제숭배를 거부하다 안디바가 순교를 당해도 믿음이 흔들리지 않았습니다. 그리스도인은 버가모 교회처럼 어떤 압력을 받고 어떤 환난을 당해도 끝까지 믿음을 지켜야 한다는 것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2. 버가모 교회는 이단세력에 대한 징계를 게을리해서 책망을 받았습니다.

예수님은 14절에서 그러나 네게 두어 가지 책망할 것이 있나니 거기 네게 발람의 교훈을 지키는 자들이 있도다, 발람이 발락을 가르쳐 이스라엘 앞에 걸림돌을 놓아 우상의 제물을 먹게 하였고 또 행음하게 하였느니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버가모 교회는 두 가지 문제로 책망을 받았습니다. 이단종파인 발람의 교훈을 지키는 자들니골라당()을 징계하지 않았기 때문에 책망을 받은 것입니다. 먼저 발람의 교훈이 무엇이냐? 발람에 관한 기사는 민수기 22장 이하에 기록돼 있습니다. 이방인 술사(術士)발람은 모압 왕 발락의 부탁을 받고 애굽에서 나온 이스라엘 민족을 저주하려고 했지만 하나님의 반대로 저주를 할 수 없게 되자, 이스라엘 민족이 범죄하여 그들 스스로 하나님의 저주를 받게 했습니다. 발람은 이스라엘 남자들이 우상의 제사에 참여하여 모압 여자들과 간음을 범하게 했는데 그에 대한 하나님의 심판과 형벌로 우상의 제사에 참여한 이스라엘 남자 24천 명이 죽임을 당했습니다(민수기 25:9). 발람은 우상숭배와 종교적 간음으로 이스라엘 민족이 하나님의 저주와 심판을 받도록 계책을 베푼 것입니다.

버가모 교회에는 발람이란 이단세력이 들어와 있었는데 징계를 하지 않아 예수님께 책망을 받았습니다. 교회는 원수도 사랑하고 모든 사람을 사랑해야 하지만 이단종파에게는 절대로 관용을 베풀면 안 됩니다. 이단종파는 기독교가 아닙니다. 이단종파는 하나님을 팔고 예수를 이용해서 자기들의 배를 채우는 사탄과 마귀들입니다. 사랑도 좋고 은혜도 좋지만 성경 말씀에 어긋난 주장을 하는 이단종파는 절대로 용납하면 안 됩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대적하는 이단종파를 용납하면 교회는 사탄의 소굴로 전락합니다. 이단종파의 세력을 징계하지 않는 것은 이단종파가 교회에 둥지를 틀고 번성하도록 방치하는 것과 같습니다.

다음으로 버가모 교회는 니골라당에 대한 징계를 하지 않아서 책망을 받았습니다. 니골라당이 무엇이냐? 성경에는 니골라당에 대한 자세한 언급이 없지만 초대교회 교부들의 문헌이나 기독교 교회사를 기술한 학자들의 주장에 의하면 니골라당은 쾌락주의자들과 세상과 타협한 수정주의자들로 이원론의 세계관을 가진 이단종파입니다. 바울 사도의 경고처럼 니골라당은 그리스도인의 자유를 육신의 쾌락에 사용한 무리들입니다(갈라디아서 5:13). 초기 기독교회의 존경을 받은 교부와 학자인 알렉산드리아 클레멘트(Clemens Alexandrinus 150?-215?)는 니골라당에 대해 자기 충동의 부끄러움을 모르는 염소새끼처럼 자신들을 쾌락에 던져 산 자들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초대교회 때 예루살렘 공의회는 이방인이 기독교회에 들어오면 우상의 제물과 피와 음행을 삼가야 한다고 결정했습니다(사도행전 15:28-29). 그러나 니골라당은 교회의 결정을 무시하고 음행을 즐기고 우상의 제물을 먹고 마셨습니다. 그리고 니골라당은 이원론(二元論)으로 그들의 범죄를 변명했습니다. 이원론이 무엇이냐? 이 세상을 물질과 비물질, 영혼과 육신이라는 이분법적 시각으로 보는 세계관을 이원론이라고 합니다. 니골라당은 물질에 속한 육신은 악하고 정신에 속한 영혼은 선하다. 영혼은 죽지 않지만 인간의 육신은 죽으면 없어지는 무가치한 것이다. 영혼과 육신 중에 중요한 것은 영혼이다. 육신이 무엇을 하든지 영혼과는 아무 관계가 없다. 인간이 간음을 하거나 우상의 제물을 먹거나 그런 것들은 육신이 한 것이기 때문에 인간의 영혼은 용서받을 수 있다.”고 주장했습니다. 자신의 범죄와 행동에 대해 육신이 한 것이기 때문에 자기와는 상관이 없다니 이게 말이 됩니까?

또한 니골라당이 주장하는 이원론적 인간론은 성경적으로도 지지를 받을 수 없습니다. 성경은 하나님이 흙(육신,물질)으로 사람의 형상을 만드시고 거기에 생기(영혼,정신)를 불어넣으시자 생령, 곧 사람이 되었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인간은 육과 영이라는 두 가지의 본질로 만들어졌습니다. 그러므로 인간은 영혼과 육신으로 분리해서 생각할 수 없습니다. 인간의 죄는 인간의 의지, 곧 인간의 마음과 영혼에서 싹이 트고 자라서 행동으로 옮겨집니다. 죄를 이원론적인 논리로 변명하는 것은 인간을 타락시키기 위한 사탄의 전술입니다. 그러므로 니골라당에 강력한 제재와 징계를 내려야 하는데 버가모 교회는 니골라당이나 발람과 같은 이단들에 대해 징계를 하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예수님께 책망을 받은 것입니다. 교회 안에서 이단적인 사상과 그릇된 교훈을 퍼뜨리는 자들은 아무리 아픔과 상처가 커도 읍참마속(泣斬馬謖)의 자세로 엄격하게 징계를 내려야 합니다. 이단은 타협이나 공존의 대상이 아니라 타도의 대상이라는 것을 명심하셔야 합니다. 교회가 이단세력과 불의한 집단을 징계하지 않으면 예수님께 책망을 받는다는 것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3. 예수님은 이기는 자에게 만나흰 돌을 상급으로 주시겠다고 약속하셨습니다.

예수님은 본문 17절에서 “......이기는 그에게는 내가 감추었던 만나를 주고 또 흰 돌을 줄 터인데 그 돌 위에 새 이름을 기록한 것이 있나니 받는 자 밖에는 그 이름을 알 사람이 없느니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 약속하신 상급은 두 가지입니다. 하나는 감추었던 만나요 다른 하나는 흰 돌입니다. 먼저 감추었던 만나가 무엇이냐? 애굽에서 나온 이스라엘 민족이 40년 동안 광야에서 먹은 양식이 만나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애굽(이집트)에서 나온 이스라엘 민족이 광야에서 생활할 때 40년 동안 매일 하늘에서 만나를 내려 먹이셨습니다. 그리고 광야에서 만나로 먹이시고 기르신 하나님 은혜를 잊지 않도록 가르치시기 위해 만나를 항아리에 담아서 영원히 보관하라고 말씀하셨습니다(출애굽기 16:31-34). 그래서 만나를 금으로 만든 항아리에 담아 언약궤에 넣어 보관했습니다. 이 만나가 여호수아와 사사시대를 거쳐 다윗 왕의 시대까지는 성막(聖幕)의 지성소에 보관돼 있다가 솔로몬이 예루살렘에 성전을 건축한 후에는 솔로몬 성전에 보관되었습니다. 그러다가 주전(BC) 586년 유다 왕국이 바벨론에 멸망하여 성전이 파괴될 때 만나가 들어있는 언약궤를 바벨론에 빼앗겨 아직까지 찾지 못하고 있습니다. 유대인들에게는 만나가 들어있는 언약궤를 선지자 예레미야가 숨겨두었는데 메시아가 오면 언약궤를 되찾아 만나가 공개된다는 전설이 전해져오고 있습니다. 그러나 전설은 전설일 뿐 성경말씀이 아닙니다. 믿을 수 없지요.

! 그러면 감추었던 만나가 무엇이냐? 감추었던 만나에 대해서도 그 해답을 성경에서 찾아야 합니다. 어느 날 유대인들이 예수님께 당신이 메시아라면 모세처럼 하늘에서 만나가 내리게 하여 하나님이 보내신 메시아라는 것을 증명 하라고 요구했습니다. 하늘에서 만나를 내려 먹게 하면 예수님을 메시아로 믿겠다고 한 것입니다. 그러자 예수님은 나는 생명의 떡이니 내게 오는 자는 결코 주리지 아니할 터이요, 나를 믿는 자는 영원히 목마르지 아니하리라고 말씀하셨습니다(요한복음 6:35). 예수님 자신이 만나와 생명의 떡이라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이스라엘 민족이 광야에서 먹었던 만나는 참 만나와 생명의 떡이신 예수님을 상징하며 성도가 장차 천국에서 먹게 될 신령한 양식을 상징합니다. ‘감추었던 만나를 주시겠다는 말씀은 이 세상에서 감추어진 만나를 천국과 하나님 나라에서 주시겠다는 말씀입니다. 예수님께서 믿음을 지킨 버가모 교회 성도들에게 상급으로 감추었던 만나를 주시겠다고 하신 말씀은 천국에서 특별한 상급으로 만나를 주시겠다는 약속인 것입니다.

다음으로 흰 돌에 대한 상급은 성도와 예수님과의 특별한 관계를 상징합니다. 본문 17절 중반절에 “......또 흰 돌을 줄 터인데 그 돌 위에 새 이름을 기록한 것이 있나니 받는 자 밖에는 그 이름을 알 사람이 없느니라.”고 말씀하셨습니다. 흰색이나 희다는 것은 순결, 성결, 깨끗함, 거룩함을 의미합니다. 그러므로 흰 돌을 받는 것은 주님으로부터 특별한 신앙의 사람으로 인정받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리고 돌에는 새 이름이 새겨져 있다고 말씀하셨는데 이것은 흰 돌을 받는 자와 주님과의 특별한 관계를 의미합니다. 성경에 보면 하나님은 특별한 사람들에게 새 이름을 주셨습니다. 아브람은 아브라함으로, 야곱은 이스라엘로, 사도 요한은 보아너게로, 시몬에게는 베드로란 새 이름을 주셨습니다. 흰 돌에는 받은 사람만 알 수 있는 새 이름이 새겨져 있다는 말씀은 주님과의 특별한 관계를 의미하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이기는 자에게 상급으로 감추었던 만나와 흰 돌을 주시겠다고 약속하셨습니다. 그리스도인은 버가모 교회의 충성된 성도들처럼 감추었던 만나와 흰 돌을 받을 수 있는 신앙의 용사가 돼야합니다. 감추었던 만나와 흰 돌은 예수님께서 충성한 성도들에게 약속하신 영광스러운 상급이라는 것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말씀을 맺겠습니다. 첫째. 버가모 교회는 사탄의 권좌가 있는 우상숭배의 중심지에서 믿음을 지켰다고 칭찬을 받았습니다. 버가모 교회 성도들처럼 신앙과 인생에 어떤 환난과 시련을 만나도 끝까지 믿음을 지켜야 한다는 것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둘째, 버가모 교회는 이단종파들에 대한 징계를 게을리해서 예수님께 책망을 받았습니다. 이단은 용서나 공존의 대상이 아니라 타도의 대상이라는 것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셋째, 예수님은 이기는 자들에게 감추었던 만나와 흰 돌이라는 특별한 상급을 주시겠다고 약속하셨습니다. 버가모 교회 성도들처럼 어떤 환경과 여건에서도 믿음을 잘 지켜서 천국에서 예수님께 특별한 상급을 받으시는 성도 여러분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 (성경공부에 도움이 되는 자료): 버가모는 서머나에서 북쪽으로 약 100킬로미터, 동지중해의 에게해에서 내륙으로 약 24킬로미터 거리에 위치하고 있습니다. 버가모는 상업의 발달이나 물질적 번영은 누리지 못했지만 정치와 행정과 학문과 종교의 도시로 알려졌습니다. 버가모는 버가모 왕국의 수도로 약 150, 버가모 왕국이 몰락한 후에는 로마제국의 아시아 주의 수도로 약 250, 도합 약 400년 동안 정치와 행정의 중심지가 되었습니다. 그래서 버가모를 정치와 행정의 도시로 부른 것입니다. 또 버가모를 학문의 도시라고 부른 것은 버가모에는 양피지에 쓰여진 약 20만권의 장서를 보유한 도서관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이런 규모는 당시 이집트의 알렉산드리아에 있던 도서관에 이어 세계에서 두 번째로 큰 도서관이었습니다. 그리고 버가모를 종교의 도시로 부른 것은 버가모에 거대한 우상의 신전들이 많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로마 황제를 숭배하는 신전과 제우스의 신전, 그리고 아스클레피오스라는 의술의 신전이 있었고 그 외에도 크고 작은 우상의 신전들이 많이 있었습니다.

 

 

2022, 6, 2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