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갈릴리 가나의 혼인잔치

진리의증인 2022. 6. 10. 00:30

이 정만 목사 (HP:010-5359-1617)

블로그(네이버:논산동산교회, 다음:논산동산교회)

 

1사흘째 되던 날 갈릴리 가나에 혼례가 있어 예수의 어머니도 거기 계시고 2예수와 그 제자들도 혼례에 청함을 받았더니 3포도주가 떨어진지라 예수의 어머니가 예수에게 이르되 저들에게 포도주가 없다 하니 4예수께서 이르시되 여자여 나와 무슨 상관이 있나이까 내 때가 아직 이르지 아니하였나이다 5그의 어머니가 하인들에게 이르되 너희에게 무슨 말씀을 하시든지 그대로 하라 하니라 6거기에 유대인의 정결 예식에 따라 두세 통 드는 돌 항아리 여섯이 놓였는지라 7예수께서 그들에게 이르시되 항아리에 물을 채우라 하신즉 아귀까지 채우니 8이제는 떠서 연회장에게 갖다 주라 하시매 갖다 주었더니 9연회장은 물로 된 포도주를 맛보고도 어디서 났는지 알지 못하되 물 떠온 하인들은 알더라 연회장이 신랑을 불러 10말하되 사람마다 먼저 좋은 포도주를 내고 취한 후에 낮은 것을 내거늘 그대는 지금까지 좋은 포도주를 두었도다 하니라 11예수께서 이 첫 표적을 갈릴리 가나에서 행하여 그의 영광을 나타내시매 제자들이 그를 믿으니라” (요한복음 2:1-11)

 

서론: 갈릴리의 가나란 곳에서 혼인잔치가 있었습니다. 예수님의 모친 마리아와 예수님과 제자들이 초청을 받은 것으로 봐서 혼인을 치른 사람이 예수님의 모친 마리아와 인척관계가 되지 않나 생각됩니다. 그런데 잔치 중에 포도주가 떨어졌습니다. 잔칫집에 포도주가 떨어졌으니 얼마나 당황스럽겠습니까? 마리아가 예수님께 포도주가 떨어졌다고 말하자, 예수님은 여자여 나와 무슨 상관이 있나이까?”라고 퉁명스럽게 대답하셨습니다. 그러나 마리아는 시중드는 하인들에게 예수님이 무슨 말씀을 하시든지 그대로 순종하라.”고 당부했습니다. 마리아는 예수님께서 포도주 문제를 해결해 주실 줄 믿은 것입니다. 유대인들은 음식을 먹기 전에 손을 씻는 관습에 따라 잔칫집 마당에는 손 씻는 물을 담아둔 여섯 개의 돌 항아리가 놓여 있었습니다. 예수님은 하인들에게 돌 항아리에 물을 채우라고 분부하셨습니다. 그래서 하인들은 항아리 아귀까지 물을 가득 채웠습니다. 항아리에 물이 채워지자, 예수님은 하인들에게 이제는 포도주를 떠서 연회장(宴會長)에게 갖다 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하인들이 물로 만든 포도주를 연회장에게 갖다 주자 연회장은 신랑을 불러 사람들은 먼저 좋은 포도주를 내고 취한 후에는 낮은 포도주를 내거늘 그대는 지금까지 좋은 포도주를 두었다.”고 칭찬했습니다. 갈릴리 가나의 혼인집에서 물로 포도주를 만드신 표적은 예수님께서 메시아의 공생애를 시작하신 후 처음 행하신 기적입니다.

이 시간에는 갈릴리 가나의 혼인잔치란 제목으로 함께 은혜를 받고자 합니다.

 

1. 예수님은 인생의 문제를 해결해주시고 고난에서 구원해주시는 우리의 주님이십니다.

우리나라 사람들은 술이라고 하면 이성을 잃고 몸을 가누지 못할 정도로 취하고 비틀거리는 모습을 연상하지만 이스라엘 사람들에게 포도주는 취하기 위해서 마시는 술이 아니라 음식과 음료의 일부입니다. 이스라엘은 포도의 주산지에다 유목민 출신의 이스라엘 사람들은 육식을 많이 하기 때문에 자연스럽게 포도주를 즐겨 마셨습니다. 성경에는 포도주를 마시고 취중에 실수를 한 노아와(9:20), 롯과(19:32), 나발에(삼상 25:32) 대한 기사도 있고 술에 취하지 말고 술을 즐기지 말라는 경고도 있지만 포도주는 하나님이 주신 기쁨과(시편 4:7) 번영을(창세기 27:28,37) 상징하기도합니다. 그래서 이스라엘 사람들에게 포도주는 술 이상의 특별한 의미를 가지고 있습니다. 특히 잔칫집에서 포도주는 꼭 필요한 잔치음식입니다.

그런데 잔치 중에 포도주가 떨어진 것입니다. 예수님의 모친 마리아가 예수님께 포도주가 떨어졌다.”고 말하자, 예수님은 여자여 나와 무슨 상관이 있나이까? 내 때가 아직 이르지 않았습니다.”라고 말씀하셨습니다. “포도주가 떨어진 것이 나와 무슨 상관이 있습니까? 내가 메시아의 영광과 메시아의 능력을 나타낼 때가 아직 되지 않았다.”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그러나 마리아는 예수님이 포도주 문제를 해결해 주실 줄 믿었습니다. 그래서 하인들에게 너희에게 무슨 말씀을 하시든지 그대로 순종하라.”고 당부한 것입니다.

잔칫집 마당에는 식사하기 전에 손을 씻는 유대인들의 정결의식에 따라 물을 담아 두는 두세 통 드는 돌 항아리가(90-130리터 들이) 여섯 개 놓여있었는데 예수님은 하인들에게 항아리에 물을 채우라고 분부하셨습니다. 그래서 하인들은 항아리의 아귀까지 물을 가득 채웠습니다. 항아리에 물이 채워지자, “이제는 떠서 연회장에게 갖다 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래서 하인들이 물로 된 포도주를 갖다 주었더니 연회장은 포도주를 맛보고 신랑에게 사람마다 먼저 좋은 포도주를 내고 취한 후에는 낮은 것을 내거늘 그대는 지금까지 좋은 것을 두었다.”고 칭찬했습니다. 예수님께서 만드셨는데 포도주의 맛과 향기가 얼마나 뛰어나겠습니까? 예수님이 계시지 않았다면 잔칫집은 포도주가 떨어져 큰 낭패를 보았을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포도주 문제를 해결해 주신 것처럼 예수님 은혜를 받아야 인생의 고난과 위기에서 구원을 받습니다. 예수님은 신앙과 인생의 문제를 해결해 주시고 고난과 위기에서 구원해주시는 우리 주님이라는 것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2. 믿고 순종해야 복을 받고 믿고 순종해야 기적이 일어납니다.

믿지 않고 순종하지 않으면 복을 받지 못하고 기적이 일어나지 않습니다. 마리아는 어느 날 우연히 예수님 안에 있는 전능하신 하나님의 능력을 발견했습니다. 그래서 하인들에게 예수님이 너희에게 무슨 말씀을 하시든지 그대로 순종하라고 당부한 것입니다. 하인들은 항아리에 물을 채우라.”는 예수님 말씀에 순종해서 항아리에 물을 가득 채웠습니다. 그랬더니 항아리의 물이 포도주로 변했습니다. 예수님 말씀에 순종하자, 물이 포도주로 변한 것입니다. 예수님은 하인들에게 이제는 떠서 연회장에게 갖다 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연회장(宴會長)은 혼인잔치를 맡아서 진행하는 책임자를 말합니다. 하인들이 물로 만든 포도주를 연회장에게 갖다 주자 연회장은 포도주를 맛보고 신랑에게 사람들은 먼저 좋은 포도주를 내고 취한 후에는 질이 낮은 포도주를 내는데 당신은 어떻게 지금까지 좋은 포도주를 남겨두었느냐?”고 칭찬했습니다. 예수님이 제조하신 포도주인데 얼마나 맛이 좋겠습니까?

기적(奇蹟)이 무엇입니까? 자연의 질서나 법칙을 초월하여 일어나는 초자연적인 현상이나 하나님의 능력에 의해 일어나는 불가사의한 현상을 기적이라고 합니다. 상식과 법칙을 초월한 초자연적인 현상을 기적이라고 하는 것입니다. 인간은 기적을 행할 수 없습니다. 기적은 하나님의 역사로 전능하신 하나님만 행하실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 일을 하셔야 기적이 일어납니다. 하나님께서 일을 하시고 하나님의 기적이 일어나게 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하나님 말씀에 순종해야 합니다. 인간의 경험과 인간의 생각으로 하나님을 판단하는 교만과 어리석음을 버리고 하나님 말씀에 순종해야 기적이 일어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인간의 경험과 지식으로 하나님을 판단하고 하나님 말씀에 불순종하는 것은 하나님께서 일을 하실 수 없도록 하나님의 기회와 능력을 박탈하는 것과 같습니다. 의심하고 불순종하면 기적이 일어날 수 없고 기적을 체험할 수 없습니다. 가나의 혼인잔치에서 하인들이 예수님 말씀에 순종해서 돌 항아리에 물을 채웠기 때문에 물이 포도주가 되는 기적이 일어났습니다. 순종은 하나님의 기적을 일으키고 하나님의 축복을 받는 비결입니다. 믿고 순종해야 복을 받고, 믿고 순종해야 기적이 일어나고, 믿고 순종해야 신앙과 인생에 승리한다는 것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3. 예수가 없는 인생은 포도주가 떨어진 잔칫집처럼 무미건조한 인생을 살아갑니다.

그리스도인은 술을 먹지 않지만 미식가나 애주가에게 포도주가 없는 잔치란 앙꼬가 없는 찐빵처럼 맛이 없고 기쁨이 없는 잔치가 됩니다. 앙꼬가 들어가야 찐빵의 맛이 나고 팥소가 들어가야 맛있는 떡이 됩니다. 앙꼬가 들어가지 않은 빵과 팥소가 들어가지 않은 떡을 상상해보세요. 그 맛이 어떻겠습니까? 예수가 없는 인생은 잔칫집에 포도주가 떨어진 것과 같고 찐빵과 떡에 앙꼬와 팥소가 들어가지 않은 것과 같습니다. 예수가 없는 인생은 맛과 향기와 기쁨이 없는 무미건조한 인생이 되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우리 인생에 들어오셔야 우리 인생이 변하고 우리 운명이 바뀝니다. 예수님이 우리 마음에 들어오셔야 따분하고 무미건조한 인생이 기쁨과 활력이 넘치는 인생으로 변하고, 예수가 우리 마음에 들어오셔야 체념과 운명에 길들여진 추레한 인생이 꿈을 꾸고 천국과 영생에 대한 소망으로 화려하게 부활합니다. 마치 작은 누룩 한 덩이가 커다란 술항아리를 통째로 변화시키는 것처럼 예수가 우리 마음속에 들어오셔야 인생이 기쁨과 감사와 소망으로 넘치는 것입니다. 예수가 없는 인생은 지루하고 단조롭고 허무합니다. 예수가 없는 인생은 온 세상을 다 소유해도 참된 만족과 평화를 누리지 못하고 영적 기갈에 허덕입니다. 그리고 예수가 없는 인생은 아무리 육체적 쾌락을 탐닉해도 공허와 고독과 두려움에서 영원히 해방될 수 없습니다.

지금 이 시간에도 많은 사람들이 술과 마약에 의지해서 살아가고 있습니다. 지금 이 시간에도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어두운 운명과 불행의 포로가 되어 살아가고 있습니까? 사람들이 왜 술과 마약에 취하고 사람들이 왜 불행과 어두운 운명에 사로잡혀 살아가느냐? 그들의 인생에 예수가 없기 때문이며 그들이 예수를 만나지 못해 인생의 목적을 발견하지 못해서 그렇습니다. 예수를 만나지 못해서 기쁨과 소망이 없는 무미건조한 삶을 살아가고, 예수가 없기 때문에 술과 마약에 의지해서 살아가는 것입니다. 오늘 밤에라도 하나님이 부르시면 지옥으로 떨어질 불쌍한 인간들이 돈 벌고 사업에 성공했다고 교만을 떨고 불의한 방법과 속임수로 탈취한 명예와 권력과 부귀영화를 자랑합니다. 얼마나 불쌍한 인간들입니까?

예수가 없는 인생은 아무리 부귀영화를 자랑해도 헛되고 헛됩니다. 왜냐하면 예수가 없는 인간의 최후의 운명은 지옥형벌이기 때문입니다. 예수가 없는 인생은 멸망의 바벨탑을 쌓고 있는 헛된 삶이라는 것을 명심하셔야 합니다. 예수가 우리의 마음에 들어와 우리가 인생의 목적을 깨닫고 발견할 때 참된 인생이 시작되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우리의 인생과 우리의 삶의 현장으로 들어오셔야 무미건조한 인생이 명품 포도주처럼 맛과 향기와 기쁨이 충만한 인생으로 변하고 바뀐다는 것을 명심하셔야 합니다.

마지막으로 본문에는 오늘날까지 풀리지 않은 수수께끼 같은 말씀이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마리아에게 하신 여자여 나와 무슨 상관이 있나이까?”란 말씀입니다. 이 말씀으로 예수님이 육신의 어머니인 마리아를 너무 하대한 말씀이 아니냐는 의문이 제기되고 있습니다. 이 말씀에 대해 두 가지 주장이 있습니다. 언어문화의 차이에서 느끼는 오해로 실제로는 전혀 문제가 되지 않는다는 주장과 다른 하나는 예수님께서 당신이 마리아의 주님이 되시는 것을 깨우쳐주시기 위해 그렇게 말씀하셨다는 주장이 있습니다.

먼저 언어문화의 차이에서 느끼는 오해라는 주장이 있습니다. 언어도 문화이기 때문에 시대에 따라 의미와 용법이 변하고 달라집니다. 요한복음은 사도 요한이 헬라어로 기록했습니다. 요한복음 19:26-27,에 보면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못 박혀 돌아가실 때도 사도 요한에게 마리아를 부탁하면서 여자여 보소서 아들이니이다.”라고 말씀하시고 사도 요한에게는 보라 네 어머니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 세상을 떠나시는 최후의 순간에도 마리아에게 여자여!’라고 호칭한 것입니다. ‘여자여!’라는 호칭이 마리아를 하대한 말이 아니라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윌리암 바클레이 박사는 로마의 황제 아우구스투수(Augustus)가 이집트의 여왕 클레오파트라를 부를 때도 여자여!’ 라는 호칭을 사용했다고 주장했습니다. 핸드릭슨이나 윌리암 바클레이 같은 학자들은 예수님이 마리아에게 여자여!’라고 한 것은 무례한 어법이 아니라 존경한 표현이라고 주장합니다.

반면에 칼빈과 대다수 주석가들은 마리아가 예수님을 낳았지만 예수님은 그녀의 주님이라는 것을 깨닫게 해주시려고 일부러 여자여!’라는 호칭을 사용하셨다고 주장합니다. 실제로 그랬을 수도 있습니다. 자식이 아무리 성장하고 나이를 먹어도 부모의 눈에는 철부지로 보이는 것처럼 마리아가 가끔씩 예수님을 단순히 아들로만 생각하는 과오를 범했을 수도 있습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 마리아에게 여자여!’라고 말씀하셨다는 것입니다. 예수님과 마리아 사이에는 항상 하나님과 인간, 아들과 모친의 관계로 설명할 수 없는 감정의 간극과 정서의 괴리가 있었을 것입니다. 하나님과 인간, 아들과 모친의 관계로 정의할 수 없는 감정의 딜레마와 정서의 혼란이 있었을 수 있습니다. 인간 마리아의 감정과 정서로는 영원히 이해할 수 없는 영역일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마리아는 여자여!’라는 예수님 호칭을 조금도 언짢게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마리아가 하인들에게 예수님께서 무슨 말씀을 하시든지 그대로 하라.”고 당부한 것입니다. 마리아가 여자여!’라는 예수님 호칭을 자연스럽게 받아들였다고 볼 수 있는 것입니다. ‘여자여!’라는 호칭은 무례한 말이 아니라 존경하는 표현이며 마리아도 여자여!’라는 호칭을 자연스럽게 받아들였다는 것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말씀을 맺겠습니다. 첫째, 예수님은 인생의 문제를 해결해주시고 고난과 위기에서 구원해주시는 우리의 주님이라고 말씀드렸습니다. 예수님께 신앙과 인생의 문제를 맡기고 예수님을 믿고 의지해야 고난과 위기에서 구원받고 신앙과 인생에 승리한다는 것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둘째, 믿고 순종해야 복을 받고 믿고 순종해야 기적이 일어난다고 말씀드렸습니다. 순종은 하나님의 은혜와 축복을 받고, 신앙의 기적을 체험하며, 신앙과 인생에 승리하는 비결이라는 것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셋째, 예수가 없는 인생은 포도주가 떨어진 잔칫집처럼 무미건조한 인생을 살아간다고 말씀드렸습니다. 포도주가 없으면 잔치가 어떻게 되겠습니까? 그리스도인은 잔칫집 포도주처럼 꼭 필요한 존재가 돼야 합니다. 성경에서 포도주는 하나님이 주신 기쁨과(시편 4:7) 번영을(창세기 27:28, 37) 상징한다고 말씀드렸습니다. 그리스도인은 가정에서나 교회에서나 직장에서나 어디서나 기쁨을 주고 번영을 가져오는 존재가 돼야 합니다. 잔칫집 포도주처럼 꼭 필요한 존재가 되고 많은 사람들에게 기쁨과 번영을 가져다주는 성도 여러분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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