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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도가 두려워해야 할 것

진리의증인 2022. 5. 27. 05:59

이 정만 목사 (HP:010-5359-1617)

블로그(네이버:논산동산교회, 다음:논산동산교회)

 

24제자가 그 선생보다, 또는 종이 그 상전보다 높지 못하나니 25제자가 그 선생 같고 종이 그 상전 같으면 족하도다, 집 주인을 바알세불이라 하였거든 하물며 그 집 사람들이랴, 26그런즉 그들을 두려워하지 말라, 감추인 것이 드러나지 않을 것이 없고 숨은 것이 알려지지 않을 것이 없느니라, 27내가 너희에게 어두운데서 이르는 것을 광명한 데서 말하며 너희가 귓속말로 듣는 것을 집 위에서 전파하라, 28몸은 죽여도 영혼은 능히 죽이지 못하는 자들을 두려워하지 말고 오직 몸과 영혼을 능히 지옥에 멸하실 수 있는 이를 두려워하라” (마태복음 10:24-28)

 

서론: 인간은 많은 것을 두려워합니다. 가난도 두렵고, 질병도 두렵고, 죽음도 두렵고, 불확실한 미래도 두렵습니다. 그러나 인간이 진정으로 두려워해야 할 대상은 하나님밖에 없습니다. 왜냐하면 인간의 생사화복과 천국과 지옥이라는 인간의 최후의 운명이 하나님에 의해 결정되기 때문입니다. 예수님께서는 몸은 죽여도 영혼은 능히 죽이지 못하는 자들을 두려워하지 말고 오직 몸과 영혼을 능히 지옥에 멸하실 수 있는 이를 두려워하라고 말씀하셨습니다(28). 사람을 죽일 때 인간은 육신의 몸만 죽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인간의 몸과 영혼까지 죽이고 죄인은 지옥에서 천년만년 형벌을 받게 하십니다. 그렇기 때문에 성도가 진정으로 두려워해야 할 대상은 하나님밖에 없는 것입니다.

이 시간에는 성도가 두려워해야 할 것이란 제목으로 함께 은혜를 받고자 합니다.

 

1. 그리스도인은 사람들의 반대와 비판을 두려워하면 안 됩니다.

예수님은 제자들을 복음 전도자로 파송하시면서 제자가 그 선생보다 또는 종이 그 상전보다 높지 못하나니 제자가 그 선생 같고 종이 그 상전 같으면 족하도다. 집 주인을 바알세불이라 하였거든 하물며 그 집 사람들이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제자는 선생보다 높을 수 없고 종은 상전보다 높을 수 없기 때문에 제자가 선생 같고 종이 그의 상전 같으면 족한 줄로 알아야 한다는 말씀입니다. 제자와 종은 그리스도인을 말하고 선생과 상전은 예수님을 의미합니다. 이스라엘의 서기관과 바리새인들은 예수님께서 귀신의 왕 바알세불의 도움을 받아 귀신을 쫓아낸다고 모함했습니다. 귀신의 왕이 어떻게 자기 부하 귀신을 쫓아내고 귀신의 왕이 어떻게 병자를 고치고 죽은 사람을 살리는 선한 일을 할 수 있겠습니까? 이스라엘 종교지도자들은 하나님과 마귀도 구별하지 못하는 인간들이었습니다.

이스라엘의 종교지도자들이 왜 그토록 예수님을 반대하고 배척했느냐? 예수님에 대한 시기와 질투심 때문입니다. 이스라엘 종교지도자들은 예수님 때문에 그들의 권위와 영향력을 잃어갔고 종교지도자로 누려온 특권을 상실하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을 반대하고 배척하고 모함한 것입니다. 사람이 선하고 바르게 살고 선하고 의로운 일을 했다고 환영만 받는 것은 아닙니다. 이성과 양심이 마비된 자들과 사탄 마귀의 하수인들은 선행이나 의로운 행실 자체를 싫어합니다. 왜냐하면 선행과 의로운 행실이 악인들의 정체를 드러내고 그들을 부끄럽게 하기 때문입니다. 교회에 나온 지 얼마 안 된 초신자가 하나님 은혜를 받고 가난한 사람에게 구제도하고 고아원과 양로원도 방문하고 하나님 사랑을 실천했습니다. 그러나 이 성도에게 돌아온 것은 저 사람 다음에 선거에 나오려고 그러나? 아니면 사람들에게 칭찬 받고 싶어서 그러나?”라는 조롱과 핀잔뿐이었습니다. 초신자는 하나님 은혜를 받고 감사해서 순수한 마음으로 봉사했는데 악의적인 모함과 조롱을 받은 것입니다. 매사에 비판적이고 부정적인 사람은 피하고 상대를 하지 않는 것이 좋습니다.

예수님보다 7백여 년 전에 활동하신 이사야 선지자는 그가 찔림은 우리의 허물 때문이요 그가 상함은 우리의 죄악 때문이라 그가 징계를 받으므로 우리는 평화를 누리고 그가 채찍에 맞으므로 우리는 나음을 받았다고 예수님의 고난을 예언했습니다(이사야 53:5). 그리스도인이 하나님 말씀과 하나님 뜻대로 살고자하면 이사야 선지자의 예언처럼 가슴이 찔리고 마음이 상할 때도 있고 고난과 모함을 받는 경우도 있습니다. 그러나 그리스도인은 고난과 모함을 두려워하면 안 됩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은 우리의 모든 사정을 다 알고 계시기 때문입니다. 최후의 심판자가 누굽니까? 하나님입니다. 오늘날 우리 사회를 어지럽히고 혼탁하게 하는 사람들이 누굽니까? 타락한 정치인들과 이념의 노예가 된 무책임한 일부 언론입니다. 저의 개인적인 생각입니다만 하나님 앞에 가면 목사와 정치인과 언론인이 가장 무서운 심판을 받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말과 행실이 다른 목사, 악의적으로 모함하고 습관적으로 거짓말을 하는 정치인, 정확한 근거도 없이 양비론적으로 싸잡아 비판하고 떠들어대는 무책임한 언론인들은 하나님의 무서운 심판을 받을 것입니다. 그리스도인은 부당한 반대와 비판을 두려워하면 안 됩니다. 왜냐하면 기독교를 반대하는 사람들과 사탄 마귀들은 교회와 성도가 아무리 선한 일을 해도 비판과 모함을 하기 때문입니다.

문제는 교회 안에도 선하고 의로운 일을 비판하고 반대하는 사람들이 있다는 것입니다. 믿음으로 열심히 살아가는 사람에게 당신 하는 것 별 것 아니다, 나도 옛날에 다 해봤다는 식으로 냉소하고 열심에 김을 뺍니다. 교회 안에 있는 가라지와 쭉정이들이 마귀의 조종을 받아 성도를 낙심시키고 좌절시키는 것입니다. 예수님 당시에는 이스라엘 종교지도자인 서기관과 바리새인들이 예수가 귀신의 왕 바알세불의 힘을 입어 귀신을 쫓아내고 기적을 행한다고 모함했습니다. 이 세상에 반대 없는 선행이 없고 비판받지 않는 정의도 없습니다. 아무리 선하고 의로운 일도 반대하는 사람이 있고 비판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특히 하나님과 교회를 반대하는 자들은 교회와 그리스도인이 어떻게 해도 비판을 하고 반대를 합니다. 그들의 반대와 비판에 신경을 쓰면 안 됩니다. 그리스도인과 교회에 대한 반대와 비판은 어제오늘 시작된 것이 아닙니다. 흠이 없고 완전하신 예수님도 반대와 비판을 받으셨는데 우리들이 어떻게 반대와 비판을 피할 수 있겠습니까? 반대와 비판을 두려워하면 아무 일도 할 수 없습니다. 옳은 일은 반대를 해도 밀고 나가야 합니다. 그리스도인은 사람들의 반대와 비판을 두려워하면 안 된다는 것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2. 그리스도인의 수고와 헌신은 반드시 드러나고 하나님 앞에 상달됩니다.

예수님은 본문 26절에서 그런즉 그들을 두려워하지 말라, 감추인 것이 드러나지 않을 것이 없고 숨은 것이 알려지지 않을 것이 없다고 말씀하셨습니다. 감추어진 사실이 하나님 앞에 드러나지 않을 수 없고 숨겨진 일이 알려지지 않을 수 없다는 말씀입니다. 무슨 뜻입니까? 성도의 수고와 헌신은 반드시 하나님 앞에 드러나고 알려진다는 말씀입니다. 또한 진실은 반드시 승리한다는 뜻입니다. 하나님은 누가 복음을 방해하고 누가 의로운 성도를 박해했는지 알고 계시며 누가 하나님을 위해 충성하고 헌신했는지도 알고 계십니다. 하나님께서는 누가 양이며 누가 염소인지 알고 계시며 누가 알곡이고 누가 쭉정이인지도 알고 계십니다. 예수님께서 오시면 양 중에서 염소를 구별하여 내시고 알곡 중에 섞여 있는 가라지를 골라내셔서 그들의 믿음과 행위에 따라 상과 벌을 내리실 것입니다. 성도의 수고와 헌신은 반드시 드러나고 하나님은 성도의 충성과 헌신을 갚아 주신다는 것을 명심하셔야 합니다.

다음으로 예수님은 27절에서 내가 너희에게 어두운데서 이르는 것을 광명한데서 말하며 너희가 귓속말로 듣는 것을 집 위에서 전파하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이 말씀은 생명의 복음을 사람들 앞에서 공개적으로 전하고 담대하게 증거하라는 말씀입니다. 옛날에는 모든 나라와 모든 민족이 기독교를 반대하고 기독교에 적대적이었습니다. 그래서 옛날에는 숨어서 복음을 전하고 어두운 곳에서 은밀하게 귓속말로 복음을 전했습니다. 그런데 오늘날에도 복음을 귓속말로 전하고 어두운 곳에서 숨어서 복음을 전하는 곳이 있습니다. 이슬람 국가와 공산주의 국가들은 아직도 복음에 문을 닫고 있습니다. 그래서 이슬람국가와 공산주의 국가에서는 지금도 어두운 데서 귓속말로 복음을 전합니다. 우리나라는 복음 전파에 어떤 위협이나 장벽도 없습니다. 우리나라가 얼마나 축복받은 나라입니까?

인간은 논리적이고 이성적인 것 같지만 철저하게 자기중심적이고 이기적입니다. 그래서 자기와 다른 것에 대해서는 본능적으로 반대하고 적개심을 품는 것입니다. 종교나 영적인 문제에는 배타성과 거부감이 더욱 강합니다. 자기와 다른 종교에 대해서는 맹목적으로 반대하고 배척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이렇게 반대하고 거부하는 사람들에게 복음을 전하고 불신앙의 세계에서 신앙을 지키고 살아간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닙니다. 전도하고 복음을 전하려면 뻔뻔스럽다는 말을 들을 정도로 담력과 인내심을 가져야 합니다. “예수 믿고 구원받으세요.”라고 하면 예 감사합니다.’하고 교회에 나오는 사람은 한 사람도 없습니다.

전도를 하면 이상한 사람도 만나고 속된 말로 별꼴 다 당합니다. 무당이나 우상을 숭배하는 사람은 그리스도인과 말하면 부정 탄다고 아무리 말을 걸어도 입 딱 다물고 대답을 하지 않습니다. 또 무식한 인간이 유식한 척 종교에 대해 일장 연설을 늘어놓기도 합니다. 또 어떤 사람은 대놓고 멸시와 모욕을 하기도 하고 어떤 사람은 불쌍하고 안 됐다는 시선으로 쳐다보기도 합니다. 복음을 전하려면 뻔뻔스러워야하고 담력이 있어야합니다. 그래야 복음을 전할 수 있습니다.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그들을 두려워하지 말라 감추인 것이 드러나지 않을 것이 없고 숨은 것이 알려지지 않을 것이 없다고 말씀하셨습니다. 하나님을 향한 성도의 사랑과 수고와 헌신은 반드시 하나님 앞에 드러나고 상달됩니다. 강하고 담대한 믿음으로 하나님께 충성하시고 열심히 복음을 전하셔야 한다는 것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3. 그리스도인이 진정으로 두려워해야 할 대상은 오직 하나님밖에 없습니다.

예수님은 본문 28절에서 몸은 죽여도 영혼은 능히 죽이지 못하는 자들을 두려워하지 말고 오직 몸과 영혼을 능히 지옥에 멸하실 수 있는 이를 두려워하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인간은 몸과 영혼, 육신과 영혼이라는 두 가지 본질(本質)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우리의 몸, 우리 육신은 기한이 되면 질병과 노화로 죽게 됩니다. 사람이 죽었다고 할 때 인간의 죽음은 육신의 죽음을 의미하고 영혼과 육신이 분리되는 것을 말합니다. 그러나 육신은 죽고 없어져도 인간의 영혼은 영원히 죽지 않고 영원히 없어지지 않는 불사와 불멸의 존재입니다. 그러면 육신이 죽을 때 인간의 영혼은 어떻게 되느냐? 사람이 죽으면 예수 믿고 구원받은 영혼은 즉시 천국으로 올라가지만 예수를 반대하고 예수를 믿지 않은 자들의 영혼은 불신앙에 대한 심판과 형벌을 받기 위해 지옥으로 갑니다. 인간의 영혼은 누구도 죽일 수 없고 무엇으로도 죽일 수 없습니다. 인간의 영혼은 오직 하나님만 주장하실 수 있습니다. 하나님은 인간의 육신의 생명은 물론 인간의 영혼도 죽이시고 살리십니다. 그렇기 때문에 성도가 진정으로 두려워해야 할 대상은 하나님밖에 없는 것입니다.

사람이 무엇을 귀하게 여기고 무엇을 두려워하느냐에 따라 그 사람의 인생관이 결정됩니다. 남의 비판과 세상 여론을 의식해서 살아가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내가 이렇게 하면 주위 사람들이 나를 어떻게 생각할까? 나의 친구나 나의 이웃들은 나에게 뭐라고 할까?” 다른 사람들의 비판과 여론만 의식하며 사는 사람은 자기 인생을 사는 사람이 아닙니다. 그 사람들은 비판과 여론에 따라 춤추는 인간 허수아비들입니다. 비판과 여론을 의식해서 사는 사람은 인생의 목적도 없고 인생의 철학도 없는 사람입니다. 바람에 흔들리는 갈대와 허수아비처럼 평생을 여론에 휘둘리며 오락가락하는 인간은 존재할 가치가 없습니다. 이런 사람은 행복할 수도 없고 신앙생활도 제대로 할 수 없습니다. 천국과 지옥이라는 인간의 최후의 운명은 사람들의 평판이나 여론이 아니라 하나님에 의해 결정됩니다. 그렇기 때문에 그리스도인이 두려워해야 할 대상은 하나님밖에 없는 것입니다.

하나님보다 인간을 두려워하는 사람은 절대로 신앙을 지킬 수 없고 신앙과 인생에 승리할 수 없습니다. 하나님보다 인간을 두려워하기 때문에 하나님을 배반하고 하나님보다 여론과 평판을 두려워하기 때문에 하나님 말씀에 불순종하는 것입니다. 그리스도인이 신앙을 지키고 믿음으로 살아갈 때는 어려움도 만나고 반대와 박해도 받고 경제적 불이익을 당하기도 합니다. 그러나 그리스도인은 불평하거나 원망하면 안 됩니다. 왜냐하면 장차 천국에서 누리게 될 영생복락에 비하면 이 땅의 고난과 시련은 지극히 하찮은 것에 불과하기 때문입니다. 그리스도인은 하나님과 천국을 위해서라면 무엇이든지 기꺼이 포기하고 희생할 수 있어야합니다.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사람은 세상의 어떤 것도 두려워하지 않지만 하나님보다 인간이나 세속적인 것을 두려워하는 사람은 세상 모든 것을 두려워합니다. 그리고 하나님보다 인간을 두려워하는 사람은 정의로운 일이나 큰일을 할 수 없습니다. 그리스도인이 두려워해야 할 대상은 오직 하나님밖에 없다는 것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말씀을 맺겠습니다. 첫째, 그리스도인은 사람들의 반대와 비판을 두려워하면 안 된다고 말씀드렸습니다. 예수님도 반대와 비판을 받으셨는데 예수님의 제자로 예수님이 가신 길을 가는 그리스도인에게 왜 반대와 비판이 없겠습니까? 하나님과 예수님을 위해 받는 반대와 비판은 천국의 상급과 영광의 면류관이 됩니다. 그리스도인은 세상의 평판과 불신자들의 반대와 비판을 두려워하면 안 된다는 것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둘째, 하나님을 위한 성도의 수고와 헌신은 반드시 하나님 앞에 드러나고 하나님께 상달된다고 말씀드렸습니다. 하나님은 모든 것을 다 알고 계십니다. 하나님과 세상에 양다리 걸치고 살아가는 위선자와 기회주의자는 반드시 신앙과 인생에 실패합니다. 그리스도인은 진실한 믿음으로 하나님께 충성하셔야 한다는 것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셋째, 그리스도인이 진정으로 두려워해야 할 대상은 하나님밖에 없다고 말씀드렸습니다.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사람은 세상의 어떤 것도 두려워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하나님보다 인간이나 세속적인 것을 두려워하는 사람은 세상 모든 것을 다 두려워합니다.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믿음을 가져야 죄악의 유혹과 불의한 압력을 극복하고 세상의 빛과 소금으로 살아갈 수 있습니다. 하나님 한 분만 두려워하는 진실한 믿음으로 신앙과 인생에 승리하시는 성도 여러분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2022, 5, 2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