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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으른 자들에 대한 경고

진리의증인 2022. 5. 20. 05:59

이 정만 목사 (HP:010-5359-1617)

블로그(네이버:논산동산교회, 다음:논산동산교회)

@메시지461(163) 게으른 자들에 대한 경고

 

6형제들아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너희를 명하노니 게으르게 행하고 우리에게서 받은 전통대로 행하지 아니하는 모든 형제에게서 떠나라 7어떻게 우리를 본받아야 할지를 너희가 스스로 아나니 우리가 너희 가운데서 무질서하게 행하지 아니하며 8누구에게서든지 음식을 값없이 먹지 않고 오직 수고하고 애써 주야로 일함은 너희 아무에게도 폐를 끼치지 아니하려 함이니 9우리에게 권리가 없는 것이 아니요 오직 스스로 너희에게 본을 보여 우리를 본받게 하려 함이니라 10우리가 너희와 함께 있을 때에도 너희에게 명하기를 누구든지 일하기 싫어하거든 먹지도 말게 하라 하였더니 11우리가 들은즉 너희 가운데 게으르게 행하여 도무지 일하지 아니하고 일을 만들기만 하는 자들이 있다 하니 12이런 자들에게 우리가 명하고 주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권하기를 조용히 일하여 자기 양식을 먹으라 하노라 13형제들아 너희는 선을 행하다가 낙심하지 말라 14누가 이 편지에 한 우리 말을 순종하지 아니하거든 그 사람을 지목하여 사귀지 말고 그로 하여금 부끄럽게 하라 15그러나 원수와 같이 생각하지 말고 형제 같이 권면하라” (데살로니가후서 3:6-15)

 

서론: 데살로니가 교회는 예수님 재림에 대한 오해로 큰 혼란을 겪었습니다. 데살로니가 교회에 박해와 환난이 가중되자 데살로니가 교회 성도들은 예수님 재림의 전조라고 일상적인 삶을 포기하고 가난과 청빈(淸貧)한 삶을 강조하며 기도와 명상으로 세월을 보냈습니다. 게으른 자들의 무위도식(無爲徒食)이 예수님 재림을 기다리는 성도의 합당한 삶이라는 이상한 풍조로 발전한 것입니다. 바울 사도는 데살로니가 교회 성도들에게 누구든지 일하기 싫어하거든 먹지도 말게 하고 게으른 자들에게서 떠나고 사귀지 말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이 시간에는 게으른 자들에 대한 경고라는 제목으로 함께 은혜를 받고자 합니다.

 

1. 성도는 예수님 재림과 상관없이 열심히 일하며 최선을 다하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그리스도인은 예수님 재림과 상관없이 열심히 일하며 최선을 다하는 삶을 살아야 한다는 말씀입니다. 바울 사도는 본문 6절에서 형제들아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너희를 명하노니 게으르게 행하고 우리에게서 받은 전통대로 행하지 아니하는 모든 형제에게서 떠나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게으른 자들과 가까이하지 말라는 말씀입니다. 사람이 자질이나 재능이 부족한 것은 어쩔 수 없지만 게으른 것은 정말 나쁜 생활습관입니다. 게으른 사람은 피하고 멀리해야 합니다. 그리고 전통대로 행하지 않는 자들에게서 떠나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전통이 무엇이냐? 이스라엘의 율법학자들이 구약성경에 근거하여 일상의 다양한 상황에 따라 율법을 해석해서 만들어 놓은 규례를 전통이라고 합니다. 바울 사도가 말씀하고 있는 게으른 자와 전통대로 행하지 않는 자들이 어떤 사람들이냐? 예수님 재림을 핑계로 일하지 않고 게으르고 불순종하는 자들을 말합니다.

바울 사도가 데살로니가 교회 성도들에게 이 편지를 쓰게 된 것은 예수님 재림에 대한 오해로 데살로니가 교회가 혼란에 빠졌기 때문입니다. 바울 사도께서 말씀하신 예수님 재림에 대한 일반적인 교훈을 예수님 재림이 즉시 일어날 것으로 오해한 것입니다. 그 결과 데살로니가 교회의 많은 성도들이 하던 일과 생업을 중단하고 무위도식으로 세월을 보냈습니다. 그래서 바울 사도께서 본래의 생활로 돌아가 열심히 일하라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성경에 보면 하나님께서 인류의 시조인 아담과 하와에게 주신 최초의 명령은 노동의 의무입니다. 하나님은 아담과 하와에게 하나님께서 창조하신 에덴동산과 천지만물을 다스리고 지켜 보존하라고 분부하셨습니다(창세기 2:15). 하나님께서 창조하신 천지만물을 다스리고 보존하라는 명령이 노동의 의무입니다. 하나님께서 인간에게 주신 최초의 명령이 일을 하라는 노동의 의무인 것입니다. 또 아담과 하와가 선악과를 따먹고 범죄 한 후에는 하나님께서 그들에게 더 무거운 노동의 명령을 주셨습니다. 하나님은 너희가 얼굴에 땀을 흘려야 먹을 것을 먹으리라고 말씀하셨습니다(창세기 3:19). 하나님은 얼굴에 땀을 흘리며 노동을 해서 먹고 살아가게 하신 것입니다. 그래서 옛날부터 이스라엘에서는 자식에게 일을 가르쳐 주지 않는 자는 도둑질을 가르치는 것이다라는 속담이 있을 정도로 노동이 강조됐습니다.

그리스도인은 노동과 일에 대해 어떤 생각을 가져야 할까요? 그리스도인의 영원한 스승이신 예수님을 보면 됩니다. 예수님의 원래 직업은 목수였습니다. 전설에 의하면 예수님은 목수였는데 특히 소의 멍에를 잘 만드셨다고 합니다. 그래서 예수님의 멍에를 사기 위해 이스라엘 전국에서 많은 사람들이 모여들었다고 전해지고 있습니다. 또 기독교 역사에서 불멸의 복음전도자였던 바울 사도도 천막 만드는 일을 하셨습니다. 예수님이나 바울 사도나 열심히 일하시면서 하나님 나라의 복음을 전파하신 것입니다. 예수님과 바울 사도 같은 분도 열심히 일을 하셨다면 우리들은 얼마나 더 열심히 일을 해야 되겠습니까? 그래서 기독교에서는 일하지 않는 것을 죄악으로 규정하고 있습니다. 열심히 일하지 않고 빈둥거리는 것은 하나님 앞에 죄가 된다는 것을 명심하셔야 합니다.

바울 사도는 데살로니가 교회 성도들에게 누구든지 일하기 싫어하거든 먹지도 말게 하라고 말씀하셨습니다(살후 3:10). 일하지 않는 사람은 밥을 먹을 자격도 없다는 말씀입니다. 지구상에서 일을 하지 않고 살아가는 생명체는 아무것도 없습니다. 식물, 곤충, 동물 등 살아있는 생명체는 다 노동의 대가로 먹고 살아갑니다. 먹고 살아가기 위해서 일을 하는 것입니다. 아무 일도 하지 않고 빈둥거리면서 다른 사람의 수고와 노동에 기생하여 살아가는 인간이 되면 안 됩니다. 건강한 몸으로 일할 수 있다는 것 자체가 하나님 축복이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죽은 사람은 움직임이 없습니다. 일을 하지 않는 사람은 꿈이 없고 정신이 죽은 사람입니다. 꿈이 없고 정신이 죽었기 때문에 일을 하지 않는 것입니다.

오늘날 우리 사회에 일을 하고 싶어도 직장이 없어서 일을 하지 못하고 질병이나 신체적인 장애로 일을 하지 못하는 사람들이 얼마나 많이 있습니까? 일을 하고 싶어도 직장이 없어서 일을 못하고, 질병이나 신체적 장애로 일을 하지 못하는 사람들이 많이 있는데 일을 하기 싫어서 빈둥거리며 백수(白手)로 살아간다면 얼마나 부끄러운 일입니까? 멀쩡한 몸뚱이를 가지고 백수로 사는 인간은 정말 밥 먹을 자격이 없는 인간입니다. 그래서 바울 사도께서 누구든지 일하기 싫어하거든 먹지도 말게 하라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마음에 맞는 직장이나 원하는 일자리가 없으면 우리 사회의 어두운 곳에서 어렵게 살아가는 사람들을 위해 봉사하는 일이라도 하시기 바랍니다. 어려운 이웃을 위해 봉사하면 인생에 대해 많은 것을 배우게 되고 자신의 삶에 보람도 얻고 인생에 좋은 길이 열릴 것입니다.

그리스도인은 예수님 재림과 상관없이 열심히 일하며 살아야 합니다. 성경 66권 어디에도 생업이나 하던 일을 중단하고 예수님 재림을 기다리라는 말씀이 없고 명상이나 기도나 금식으로 예수님 재림을 준비하라는 말씀도 없습니다. 왜냐하면 인간은 예수님께서 재림하실 날짜와 시간을 알 수 없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이 재림하실 날짜와 시간은 예수님 자신도 모르고 천사도 모르고 오직 하나님만 아신다고 예수님께서 분명히 말씀하셨습니다.(마태복음 24:36). 그런데 어떻게 예수님 재림을 기다린다고 생업이나 하던 일을 포기하고 기도나 명상으로 세월을 보낼 수 있겠습니까? 이단종파와 종교를 빙자한 사기꾼들의 말에 속으면 안 됩니다. 예수님이 내일 재림하셔도 오늘까지는 열심히 일하고 최선을 다하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그것이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그리스도인의 삶입니다. 그리스도인은 예수님 재림과 상관없이 열심히 일하며 최선을 다하는 삶을 살아야 한다는 것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2. 그리스도인은 신앙과 인생에 본()이 되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본문 7절에 어떻게 우리를 본받아야 할지를 너희가 스스로 아나니 우리가 너희 가운데서 무질서하게 행하지 아니했다말씀하고 있습니다. 9절에서는 우리에게 권리가 없는 것이 아니요 오직 스스로 너희에게 본을 주어 우리를 본받게 하려 함이니라말씀하고 있습니다. 바울 사도가 데살로니가 교회 성도들에게 본을 보이고 본이 되는 삶을 사셨다는 말씀입니다. ()이 무엇입니까? 본보기가 될 만한 방법이나 모범으로 될 만한 일을 본이라고 합니다. 바울 사도는 말이나 이론으로만 가르치시지 않고 삶의 현장에서 직접 본이 되는 삶을 사셨습니다. 예수는 이렇게 믿고 신앙생활은 이렇게 하는 것이라고 직접 본을 보여주신 것입니다. ‘백문(百聞)이 불여일견(不如一見)이란 말이 있습니다. 백 번 들어도 눈으로 한 번 보는 것만 못하다는 말로 경험을 해봐야 확실하게 안다는 뜻입니다. 신앙과 인생의 교육에서 논리적이고 체계적인 이론보다 중요한 것은 본이 되도록 행하고 실천하는 것입니다. 자기가 가르치고 주장한대로 행하고 실천해야 참된 교육이 되는 것입니다.

바울 사도는 천막 만드는 일을 하며 생활비나 전도사역에 필요한 경비를 일정부분 자신이 직접 조달했습니다. 바울 사도가 시간이 나는 대로 틈틈이 천막 만드는 일을 해서 생활과 전도에 필요한 경비를 마련한 것입니다. 바울 사도가 선교와 구제에 필요한 경비를 스스로 해결하는 자비량(自備糧) 정신으로 복음사업을 한 것은 유대인 랍비들의 전통과 관계가 있습니다. 이스라엘에서 율법에 능통한 학자를 랍비(רבי)라고 하는데 유대인들의 율법에 랍비는 돈을 받고 사람들을 가르쳐서는 안 된다고 규정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랍비는 아무리 많은 지식을 소유하고 아무리 탁월한 지식이 있어도 자신의 학문으로는 밥을 먹고 살아갈 수 없습니다. 그래서 랍비들은 생계의 수단으로 목수나 석공이나 제빵사나 이발사 같은 별도의 직업을 가졌습니다. 바울 사도는 당대에 율법의 최고 권위자였던 가말리엘이란 학자에게 율법을 공부한 랍비였습니다. 랍비는 보수를 받고 가르칠 수 없기 때문에 바울 사도가 손수 일을 해서 생활과 복음 전파에 필요한 비용을 일정부분 마련하신 것입니다.

그리고 바울 사도가 복음을 전하면서 손수 일을 한 것은 물질 문제로 복음전파에 방해가 되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서입니다. 물질 때문에 복음전파에 방해가 될 것을 염려하여 손수 일을 하고 돈을 벌었던 것입니다. 바울 사도는 고린도전서 9:4,에서 우리가 먹고 마시는 권리가 없겠느냐?”고 말씀하셨습니다. 사도로써 교회에서 사례비를 받아서 먹고 마시고 생활할 수 있었지만 복음전파에 방해가 될까봐 바울 사도가 직접 일을 해서 전도와 구제에 필요한 경비를 마련한 것입니다. 믿음이 들어가지 않은 사람에게 헌금(獻金)은 매우 부담스럽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돈 때문에 범죄하고 돈 때문에 하나님과 교회를 떠납니다. 돈 앞에 인색하지 않은 사람은 없습니다. 바울 사도는 지금부터 2천 년 전에 복음을 전했습니다. 하나님과 기독교에 대해 전혀 알지 못한 이방인들에게 헌금을 강조하고 경제적 부담을 주면 전도와 복음전파에 부정적인 영향을 끼칠 수밖에 없습니다. 그래서 바울 사도께서 스스로 필요한 경비를 마련하고 자비량 정신으로 복음을 전파하신 것입니다.

오늘날 그리스도인과 복음 전도자들은 바울 사도로부터 두 가지를 배우고 본받아야 합니다. 하나는 열심히 일해야 한다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물질에 욕심을 내지 말라는 것입니다. 그리스도인은 우리의 생명이 다하는 날까지 열심히 일해야 하고 우리 주님께서 언제 오시든지 예수님 재림과 상관없이 열심히 일하며 살아야 합니다. 왜냐하면 성경 66권 어디에도 생업과 일상적인 삶을 중단하고 예수님 재림을 준비하고 예수님 재림을 기다리라는 말씀이 없기 때문입니다. 그리스도인이 신앙의 양심에 따라 열심히 살아가면 되지 게으른 일군 주인 눈치 보듯이 왜 예수님 재림에 신경을 씁니까? 평소에 신앙생활을 제대로 하지 않고 예수를 제대로 믿지 않기 때문에 예수님 재림에 신경을 쓰는 것입니다. 그리고 목회자와 하나님 일을 하는 사람은 물질에 욕심을 내거나 인색하면 안 됩니다. 할 수만 있으면 자비량(自備糧) 정신으로 주의 일을 하면 좋겠지만 그렇게 안 되면 물질 때문에 하나님 영광 가리지 않도록 지혜롭게 처신을 잘해야 합니다. 그리스도인은 물질 문제든지 윤리 문제든지 신앙과 인생에 본이 되는 삶을 살아야 한다는 것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마지막으로 바울 사도는 게으르게 행하여 도무지 일하지 아니하고 일을 만들기만 하는 자들에게 권하기를 조용히 일하여 자기 양식을 먹으라.’ 하라고 말씀하셨습니다(3:11-12). 부지런히 일하는 사람은 쓸데없는 일을 만들지 않습니다. 일하지 않고 여기저기 몰려다니며 험담이나 하고 본이 되지 않는 삶을 살기 때문에 죄를 짓고 문제를 일으키는 것입니다. 바울 사도는 본문 14-15절에서 누가 이 편지에 한 우리 말을 순종하지 아니하거든 그 사람을 지목하여 사귀지 말고 그로 하여금 부끄럽게 하라, 그러나 원수와 같이 생각하지 말고 형제같이 권면하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정당한 주장도 감정을 절제하지 못하고 지나치게 되면 반감(反感)을 살 수 있고 역효과를 가져올 수 있습니다. 그래서 형제에게 하듯 따뜻하고 부드러운 말로 권하라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너무 과격해도 안 되고 너무 결단성이 없어도 안 됩니다. 권면하는 말은 겸손과 인자함과 부드러움이 있어야 하며 권위가 있어야 합니다. 그리스도인은 바울 사도처럼 신앙과 인생에 본이 되는 삶을 살아야 하고 범사에 지혜롭게 행하셔야 한다는 것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말씀을 맺겠습니다. 첫째, 그리스도인은 예수님 재림과 상관없이 열심히 일하고 최선을 다하는 삶을 살아야 한다고 말씀드렸습니다. 충성되고 진실한 일군은 주인의 눈치를 보지 않습니다. 그리스도인은 예수님 재림과 상관없이 열심히 일하며 최선을 다하는 삶을 살아야 한다는 것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둘째, 그리스도인은 신앙과 인생에 본이 되는 삶을 살아야 한다고 말씀드렸습니다. 그리스도인은 물질 문제든지 윤리 문제든지 사람들에게 본이 되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특히 그리스도인은 게으른 사람이 되면 안 됩니다. 성경에 보면 게으른 자는 개미에게 가서 배우라(6:6-7), “게으른 자는 가난하게 된다(잠언 10:4), “게으른 자는 지나치게 잠을 자기 좋아한다(6:10-11) 등등 반복해서 게으름에 대해 경고하고 있습니다. 취직이 안돼서 일을 하지 못하는 분과 신체적인 장애로 일을 할 수 없는 분은 어쩔 수 없지만 건강한 몸을 가지고 빈둥거리고 일을 하지 않는 사람은 하나님 앞에 죄를 짓는 사람입니다. 예수님 재림과 상관없이 하나님 앞에 가시는 날까지 부지런하고, 성실한 자세로 열심히 일하고, 최선을 다하는 삶을 살아가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데살로니가 전서와 후서는 바울 사도가 고린도에 1년 반 동안 머물 때 기록됐으며(사도행전 18:11), 데살로니가 전서에 이어 곧바로 후서가 씌어졌습니다. 그 근거로 데살로니가 전서를 기록할 때처럼 바울과 실라와 디모데가 고린도에 함께 있었다는 것입니다(사도행전 18:5)

 

2022, 5, 2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