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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로자와 기업주의 의무

진리의증인 2022. 4. 29. 03:42

이 정만 목사

블로그(네이버:논산동산교회, 다음:논산동산교회)

 

22종들아 모든 일에 육신의 상전들에게 순종하되 사람을 기쁘게 하는 자와 같이 눈가림만 하지 말고 오직 주를 두려워하여 성실한 마음으로 하라 23무슨 일을 하든지 마음을 다하여 주께 하듯 하고 사람에게 하듯 하지 말라 24이는 기업의 상을 주께 받을 줄 아나니 너희는 주 그리스도를 섬기느니라 25불의를 행하는 자는 불의의 보응을 받으리니 주는 사람을 외모로 취하심이 없느니라 4:1상전들아 의와 공평을 종들에게 베풀지니 너희에게도 하늘에 상전이 계심을 알지어다

                                                      (골로새서 3:22-4:1)

 

서론: 근로자와 기업주는 기업(企業)이란 배를 함께 탄 공동운명체입니다. 그러나 역사적으로 근로자와 기업주는 항상 긴장과 대립의 관계를 유지했습니다. 근로자는 기업으로부터 더 많은 것을 받아내기 위해 투쟁했고 기업주는 더 많은 이윤을 내기 위해 골몰했습니다. 배가 기관고장으로 바다를 표류하다 태풍을 만나거나 암초에 부딪치면 배에 탄 사람은 살아남을 수 없습니다. 기업도 마찬가지입니다. 근로자의 지나친 요구로 기업이 경쟁력을 잃거나 기업주가 경영을 잘못하면 그 기업은 살아남을 수 없습니다. 그렇게 되면 기업주나 근로자 모두 하루아침에 일자리를 잃고 삶의 터전을 잃게 됩니다. 오늘은 2022년 근로자의 날입니다.

이 시간에는 근로자와 기업주의 의무라는 제목으로 함께 은혜를 받고자 합니다.

 

1. 근로자는 자신과 회사와 하나님 영광을 위해 성실한 마음으로 열심히 일해야 합니다.

본문 22절에 종들아 모든 일에 육신의 상전들에게 순종하되 사람을 기쁘게 하는 자와 같이 눈가림만 하지 말고 오직 주를 두려워하여 성실한 마음으로 하라말씀하고 있습니다. 본문에서 바울 사도가 말씀하고 있는 은 옛날 로마제국의 노예를 말합니다. 로마제국에서 노예는 사람이 아니라 가축이나 하나의 도구에 불과했습니다. 노예는 농사를 짓고, 무거운 짐을 운반하고, 재산을 증식하기 위해 집에서 기르는 소나 말과 같은 존재였습니다. 로마제국보다 앞서 세계를 지배했던 헬라제국에서도 노예는 현금이나 유가증권이나 양도성 예금증서 같은 동산(動産)으로 취급했습니다. 그래서 옛날 헬라나 로마시대에는 노예를 상품처럼 시장에서 사고팔았습니다. 일을 잘 하는 젊고 건강하고 힘 있는 노예는 비싼 값에 거래됐지만 늙고 병이 들어서 일을 할 수 없는 노예는 병든 가축처럼 내다 버렸습니다. 늙고 병들어 버려진 노예는 질병과 굶주림으로 죽어갔습니다.

역사적으로 로마제국이 노예에게 가장 잔인했습니다. 로마제국에서는 주인의 뜻에 의해 노예의 운명이 결정되었습니다. 노예가 죄를 범하거나 주인의 명령을 거역하면 주인은 노예를 죽일 수도 있고 살릴 수도 있으며 노예가 늙고 병에 걸리면 주인은 노예를 내다 버릴 수도 있었습니다. 노예로 살아가기 위해서는 주인의 말에 무조건 복종해야 합니다. 노예가 살아남기 위해서는 주인의 충복(忠僕)이 되고 주인의 충견(忠犬)이 돼야 했던 것입니다.

바울 사도는 그리스도인 노예들에게 육신의 상전에게 성실한 마음으로 순종하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본문 22절에 종들아 모든 일에 육신의 상전들에게 순종하되 사람을 기쁘게 하는 자와 같이 눈가림만 하지 말고 오직 주를 두려워하여 성실한 마음으로 하라말씀하고 있습니다. 겉만 잘 꾸며 남의 눈을 속이는 것을 눈가림이라고 합니다. 예를 들면 주인이 있을 때나 주인이 볼 때는 일을 하고 주인이 없거나 주인이 보지 않을 때는 일을 안 합니다. 일을 하지 않으면서 일하는 것처럼 속이는 것이 눈가림입니다. 바울 사도는 눈가림으로 하지 말고 성실한 마음으로 하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성실한 마음이 무엇이냐? 성실(誠實)은 태도나 언행이 정성스럽고 참되다는 뜻인데 벵겔 선생님은 성실을 나누어지지 않은 마음과 정직함으로 정의하셨습니다. 성실은 이기적인 목적으로 딴마음을 품지 않고 위선자처럼 두 마음을 품지 아니하며 정직하게 행하는 것을 말하는 것입니다.

바울 사도도 노예들의 비참한 사정을 잘 알고 계셨을 텐데 왜 위로나 격려의 말씀은 하시지 않고 눈가림으로 하지 말고 성실한 마음으로 순종하라고 말씀하셨을까요? 궁극적으로 참된 승리에 이르는 길은 성실과 정직이라는 방법밖에 없기 때문입니다. 주인이 있을 때만 일을 하고 주인이 볼 때만 일을 하는 눈가림은 주인을 속이는 속임수입니다. 속임수는 시간이 지나면 반드시 탄로가 나게 되어 있습니다. 기만과 속임수는 몸 안에서 자라는 악성종양과 같습니다. 반드시 치명적인 대가와 고통을 치르게 됩니다. 그래서 눈가림으로 하지 말고 성실한 마음으로 순종하라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그리스도인은 어떤 일을 하든지 주어진 환경에서 최선을 다해야 합니다. 마지못해서 하고 억지로 하는 피동적인 인간은 성공할 수 없습니다. 또 양다리를 걸치고 오락가락하는 기회주의자도 승리자가 될 수 없습니다. 위선자나 기회주의자에게는 참된 승리의 영광이 주어지지 않는다는 것을 명심하셔야 합니다.

기독교는 세상을 살아가는 편법이나 어려운 일에서 도피하는 요령을 가르치지 않습니다. 기독교는 세상의 악과 불법에 맞서 싸워 하나님의 뜻을 세우고 하나님의 정의를 실현하라고 강조합니다. 지금부터 2천 년 전 초대교회 때 로마 시민의 6퍼센트(%)가 기독교인이었는데 이들의 신분은 대부분 노예나 하인들이었습니다. 그런데 그리스도인 노예들은 일반 노예들과 달았습니다. 그래서 노예의 주인들이 그 원인을 찾아보았더니 노예들이 믿는 그들의 신앙에 있었습니다. 로마제국의 노예들이 믿는 기독교가 그들에게 전혀 차원이 다른 삶을 살아가게 한 것입니다. 그리스도인 노예들은 성실하고 정직했으며 사명감이 투철했고 맡은 일에 항상 최선을 다했습니다. 그리스도인 노예들의 삶이 얼마나 부지런하고 얼마나 성실했으면 로마제국이 그들의 노예가 믿는 기독교를 국교로 받아들였겠습니까? 힘과 무력으로 세계를 정복한 로마제국이 그리스도인 노예들의 삶에 감동을 받아 복음을 받아들이고 기독교 국가가 된 로마제국이 온 세상에 복음을 전파한 것입니다.

또한 바울 사도는 상전의 명령에 복종하고 자신에게 주어진 일을 할 때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마음으로 주께 하듯 하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육신의 상전을 대할 때 하나님을 대하듯 하라는 말씀입니다. 본문에서 바울 사도가 말씀하신 육신의 상전을 오늘날 근로자에게 적용하면 기업주나 기업의 최고경영자가 될 것입니다. 근로자는 기업주가 요구하고 회사가 지향하는 경영방침을 잘 따라야 합니다. 왜냐하면 회사가 살아야 자신도 살고 회사가 잘돼야 근로자도 잘되기 때문입니다. 그리스도인 근로자들은 최선을 다해 열심히 일해야 합니다. 그리스도인 근로자가 습관적으로 파업이나 주도하고 회사에 손해만 끼친다면 기독교와 그리스도인에 대한 이미지가 어떻게 되겠습니까? 그리스도인 근로자들이 칭찬을 받아야 하나님께 영광이 돌아가고 하나님 나라가 확장됩니다. 회사와 일터에서 그리스도인 근로자가 하는 일은 궁극적으로 하나님을 위한 일이 되는 것입니다. 그리스도인 근로자는 자신과 가족과 자신이 몸담고 있는 회사와 하나님 영광을 위해 성실한 마음으로 열심히 최선을 다해 일해야 한다는 것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2. 기업주는 근로자에게 의와 공평을 베풀고 정직하고 성실하게 회사를 경영해야 합니다.

본문 골로새서 4:1,상전들아 의와 공평을 종들에게 베풀지니 너희에게도 하늘에 상전이 계심을 알지어다말씀하고 있습니다. 노예와 하인들에게만 상전이 있는 것이 아니라 노예와 하인을 부리는 상전들에게도 그들 위에 상전이 있다는 말씀입니다. 상전들의 상전이 누굽니까? 하나님입니다. 하나님은 노예와 하인의 상전도 되시지만 노예와 하인을 부리는 상전들의 상전도 되십니다. 본문 1절 말씀을 의역하면 근로자를 부리고 사람을 다스리는 자들은 하늘에 자기 주인과 자기 상전이 계시다는 것을 생각하고 근로자를 공평하고 정당하게 대하라는 말씀입니다. 하나님은 이 세상과 온 우주의 주인이시며 이 세상의 왕과 대통령과 통치자들을 다스리시는 최고의 통치자와 최고의 상전이십니다. 근로자가 회사와 기업주에게 책임과 의무가 있고 하나님께 책임과 의무가 있는 것처럼 기업주도 근로자에게 책임과 의무가 있고 그들의 상전이신 하나님께 책임과 의무가 있다는 것을 명심하셔야 합니다.

기업주의 책임과 의무가 무엇이냐? 자기가 거느리고 있는 근로자들에게 의와 공평을 베푸는 것입니다. ()와 공평(公平)이 무엇이냐? 바르고 공평하게 행하는 것입니다. 기업주가 근로자에게 의와 공평을 베풀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사랑의 정신으로 행해야 합니다. “네 이웃을 네 자신 같이 사랑하라고 말씀하신 예수님의 말씀과 뜻을 행하고 실천해야 의와 공평이 이뤄지는 것입니다(마태복음 22:39). 사랑하는 마음이 없기 때문에 인색하고, 사랑하는 마음이 없기 때문에 잔인하며, 사랑하는 마음이 없기 때문에 이웃의 고통에 무관심하고, 이웃의 고난과 불행을 당연시하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마음만 있으면 주인과 종, 기업주와 근로자라는 신분의 관계를 초월하여 가족과 형제가 될 수 있고 어떤 사회적 장벽이나 편견도 극복할 수 있습니다. 마태복음 8장에는 칭찬받은 백부장에 대한 말씀이 기록돼 있습니다. 어느 날 로마 군대의 백부장이 예수님께 찾아와 내 하인이 지금 중풍병으로 집에 누워 고생하고 있으니 고쳐달라고 부탁했습니다. 로마 군대의 백부장이라는 정복자의 장교의 신분에도 불구하고 종을 위해 예수님께 찾아와 종의 병을 고쳐달라고 부탁한 것입니다. 이 백부장의 태도가 상전이나 기업주가 근로자에게 베풀어야 할 의와 공평의 모델입니다.

오늘날 기업과 기업인이 우리 국민과 근로자의 일자리를 만들어 내지만 존경받는 기업인은 많지 않습니다. 기업인이라면 생각나는 것이 탈세, 비자금, 이중장부, 부정한 정치헌금, 재산의 해외도피 등등 하나같이 부정적인 이미지뿐입니다. 임시직이라는 편법으로 근로자의 임금을 착취하고 회사가 어렵다고 임금동결에 강제로 퇴직까지 시키면서 기업주는 호화생활을 합니다. 그러면서도 부끄러움이나 양심의 가책을 전혀 느끼지 않습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 낙타가 바늘귀로 들어가는 것이 부자가 하나님 나라에 들어가는 것보다 쉽다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내 회사와 내 기업이라고 제왕처럼 군림하며 근로자의 인권을 무시하고 근로자의 목숨을 파리 목숨 정도로 생각하는 기업인들은 속히 망해야 합니다. 성경은 에베소서 6:9,에서 상전들아 공갈을 그치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오늘날 우리나라의 기업인들이 가슴 깊이 새겨야 할 말씀이 아닐까 생각됩니다.

기업인은 자신과 가족의 사치와 호화생활 자랑하지 말고 자기 기업이 다른 기업보다 직원들에게 월급 많이 주고 기업의 이익을 사회에 환원하는 것을 자랑해야 합니다. 근로자의 복지에 힘쓰고 우리 사회의 가난하고 소외된 자들에게 베풀고 나누어주는 존경받는 기업인이 되어야 합니다. 상전에게도 하늘에 그들의 상전이 있고 기업주에게도 하늘에 그들의 상전이 있다는 것을 명심해야 합니다. 하늘에 나의 상전이 있고 내가 하나님 앞에 서 있다는 신전의식을 가져야 사랑받고 존경받는 기업인이 될 수 있습니다. 기업주는 근로자에게 의와 공평을 베풀고 정직하고 성실하게 회사를 경영해야 한다는 것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3. 하나님은 사람의 외모를 보시지 않고 마음의 중심을 보시고 행위를 보십니다.

본문 25절에 불의를 행하는 자는 불의의 보응을 받으리니 주는 외모로 사람을 취하심이 없느니라.” 말씀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은 사람을 외모로 판단하시지 않기 때문에 악을 행하고 불의를 행한 사람은 반드시 심판을 받습니다. 인간은 독불장군으로 혼자서 살아갈 수 있는 존재가 아닙니다. 인간은 이웃과 함께 살아가는 사회적 존재입니다. 우리 사회에는 남녀노소와 빈부귀천과 개인의 재능에 따라 다양한 유형과 계층의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 앞에서는 모든 인간이 평등합니다. 하나님은 인간의 외모를 보시지 않기 때문입니다. 외모가 무엇이냐? 돈이나 권력이나 가문이나 학식 같은 것을 말합니다. 인간 세계에서는 돈이나 권력이나 명예나 학식이 특권과 자랑거리로 통하지만 하나님께는 통하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은 돈이나 권력이나 사회적인 지위를 보시지 않기 때문입니다. 회사 사장이나 대통령이라고 교만하면 안 됩니다. 반면에 가난하고 출세하지 못했다고 기죽을 필요도 없습니다. 하나님은 그 사람이 소유한 것을 보시지 않고 그 사람이 무엇을 위해 어떻게 살았느냐에 따라 심판을 하시기 때문입니다.

하나님 앞에 가면 이 땅에서 불의하고 부당하게 누린 특권이 무서운 심판의 부메랑이 돼서 돌아온다는 것을 명심하셔야 합니다. 특권을 가진 사람은 자신의 특권으로 하나님과 이웃을 위해 봉사해야 할 책임과 의무가 있습니다. 특권만 누리고 특권에 따른 책임과 의무를 감당하지 않았다면 하나님 앞에 가면 큰 책망을 받을 것입니다. 종이나 자유인이나, 부자나 가난한 자나, 근로자나 기업주나 인간은 죽으면 그가 한평생 살아온 자신의 삶에 의해 심판을 받게 됩니다. 권력자나, 재판관이나, 부자나, 목회자처럼 특별한 지위에 있었던 사람들은 더 가혹한 심판을 받는다는 것을 명심하셔야 합니다. 종이나 상전이나 근로자나 기업주나 인간의 유일하고 참되신 상전은 하나님밖에 없습니다. 그러므로 근로자는 내가 하나님 앞에 서 있다는 신전의식으로 자신이 맡은 일에 최선을 다해야 하며, 상전과 기업주는 내가 하나님 앞에서 기업을 경영한다는 의식을 가지고 의와 공평을 베풀고 정직하고 성실하게 회사를 경영해야 합니다. 하나님은 사람의 외모를 보시지 않고 마음의 중심을 보시고 행위를 보신다고 말씀드렸습니다. 불꽃 같은 눈동자로 감찰하시는 하나님 앞에 진실하고 성실하고 의롭게 행하셔야 한다는 것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말씀을 맺겠습니다. 첫째, 근로자는 자신과 회사와 하나님 영광을 위해 성실한 마음으로 열심히 일해야 한다고 말씀드렸습니다. 근로자에게는 성실하게 일해야 할 책임과 의무가 있다는 것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둘째, 기업주는 근로자에게 의와 공평을 베풀고 정직하고 성실하게 회사를 경영해야 한다고 말씀드렸습니다. 근로자에게 성실하게 일해야 할 책임과 의무가 있는 것처럼 기업주에게는 성실하게 기업을 경영해야 할 책임과 의무가 있다는 것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셋째, 하나님은 사람의 외모를 보시지 않고 마음의 중심을 보시고 행위를 보신다고 말씀드렸습니다. 마음의 중심을 보시는 하나님 앞에 정의롭고 성실하게 행하셔서 신앙과 인생에 승리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2022, 5, 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