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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야의 소리 세례 요한

진리의증인 2022. 4. 22. 06:07

이 정만 목사

블로그(네이버:논산동산교회, 다음:논산동산교회)

 

1그 때에 세례 요한이 이르러 유대 광야에서 전파하여 말하되 2회개하라, 천국이 가까왔느니라 하였으니 3그는 선지자 이사야를 통하여 말씀하신 자라 일렀으되 광야에 외치는 자의 소리가 있어 이르되 너희는 주의 길을 준비하라, 그가 오실 길을 곧게 하라 하였느니라, 4이 요한은 낙타털 옷을 입고 허리에 가죽띠를 띠고 음식은 메뚜기와 석청이었더라, 5이때에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요단강 사방에서 다 그에게 나아와 6자기들의 죄를 자복하고 요단강에서 그에게 세례를 받더니 7요한이 많은 바리새인들과 사두개인들이 세례 베푸는 데로 오는 것을 보고 이르되 독사의 자식들아 누가 너희를 가르쳐 임박한 진노를 피하라 하더냐, 8그러므로 회개에 합당한 열매를 맺고 9속으로 아브라함이 우리 조상이라고 생각지 말라,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하나님이 능히 이 돌들로도 아브라함의 자손이 되게 하시리라, 10이미 도끼가 나무뿌리에 놓였으니 좋은 열매 맺지 아니하는 나무마다 찍혀 불에 던지우리라, 11나는 너희로 회개하게 하기 위하여 물로 세례를 베풀거니와 내 뒤에 오시는 이는 나보다 능력이 많으시니 나는 그의 신을 들기도 감당치 못하겠노라, 그는 성령과 불로 너희에게 세례를 베푸실 것이요, 12손에 키를 들고 자기의 타작 마당을 정하게 하사 알곡은 모아 곳간에 들이고 쭉정이는 꺼지지 않는 불에 태우시리라”   (마태복음 3:1-12)

 

서론: 구약의 선지자들은 세상을 구원하실 메시아가 오신다고 예언은 했지만 메시아를 보지는 못했습니다. 그러나 세례 요한은 메시아를 직접 대면하여 보았고 유대인들에게 회개의 세례를 베풀면서 메시아로 오신 예수님을 영접하도록 메시아의 길을 준비했습니다. 또 세례 요한은 요단강에서 예수님께 세례를 베푸는 영광도 누렸습니다. 세례 요한은 광야에서 예수님을 증거하다 진리의 태양이신 예수님께서 나타나시자, 조용히 사라진 새벽 별과 같은 분입니다. 구약의 선지자들은 세례 요한을 광야의 소리라고 예언했고 세례 요한도 자신을 광야에서 외치는 자의 소리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이 시간에는 광야의 소리 세례 요한이란 제목으로 함께 은혜를 받고자 합니다.

 

1. 세례 요한은 광야에서 예수 그리스도를 증거한 광야의 소리였습니다.

성경은 세례 요한을 광야에서 외치는 자의 소리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소리가 무엇입니까? 소리는 형체도 없고 눈에 보이지도 않지만 소리를 통해서 사물의 정체를 분별하고 상황을 파악합니다. 소리를 듣고 사물을 분별하고 상황을 파악하고 대처하는 것입니다. 왜 세례 요한을 광야의 소리라고 했느냐? 세례 요한이 광야에서 예수 그리스도를 증거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세례 요한을 광야의 소리라고 합니다. 그리스도인은 세례 요한처럼 예수 그리스도를 증거하는 광야의 소리와 복음의 나팔이 되어야 합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어떤 자세로 전하고 증거해야 할까요? 자신은 낮추거나 감추고 예수님만 나타내고 예수님만 드러내야 합니다. 세례 요한은 그에게 세례를 받기 위해 찾아온 유대인들에게 나는 너희로 회개하게 하기 위하여 물로 세례를 베풀거니와 내 뒤에 오시는 이는 나보다 능력이 많으시니 나는 그의 신을 들기도 감당하지 못하겠노라......”고 말씀하셨습니다(마태복음 3:11-12). 옛날에 헬라제국이나 로마제국에서는 종이 주인이나 손님의 신발을 신기고 벗겼는데 종 중에서 서열이 가장 낮은 종이 그 일을 했습니다. 세례 요한이 유대 광야에서 하나님 말씀을 외칠 때 사람들이 구름처럼 모여들었고 세례 요한의 인기는 하늘을 찌를 듯 높았습니다. 그러나 세례 요한은 유대인들에게 나는 예수님의 신발을 만질 자격도 없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세례 요한이 얼마나 겸손합니까? 그리스도인 중에는 하나님과 예수님보다 자기 자신을 알리기 위해 열심을 내는 사람들이 많이 있습니다. 그리스도인은 하나님과 예수님을 드러내고 하나님과 예수님을 전하는 광야의 소리가 되셔야 합니다.

다음으로 세례 요한은 유대인들에게 “......너희는 주의 길을 준비하라, 그가 오실 길을 곧게 하라고 말씀하셨습니다(3). 주의 길을 준비하고 그가 오실 길을 곧게 하라는 말씀은 사람들이 마음을 열고 예수님을 받아들일 수 있도록 준비하고 노력하라는 말씀입니다. 사람들이 마음을 열고 예수를 영접하도록 준비하고 노력하는 것은 예수를 먼저 영접하고 예수를 먼저 믿은 성도들의 책임과 의무입니다. 그리스도인이 인자하고 온유하고 겸손하게 덕이 되는 삶을 살면 사람들이 마음을 열고 예수를 영접하지만 그리스도인이 겸손하지 못하고 진실하지 못하면 사람들은 마음을 닫고 예수를 외면합니다. 그리스도인의 삶이 얼마나 중요합니까? 그리스도인은 세례 요한처럼 사람들이 예수님을 영접할 수 있도록 주님의 길을 준비하고 예수를 전하는 삶을 살아야 한다는 것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2. 광야의 소리 세례 요한은 회개하라고 외쳤습니다.

세례 요한이 선지자로 공적인 사역을 시작하면서 유대인들에게 던진 첫 마디는 회개하라였습니다. “회개하라 천국이 가까이 왔느니라.”고 외치신 것입니다. 세례 요한이 왜 회개하라고 외쳤느냐? 회개는 신앙의 첫 걸음으로 회개하지 않으면 죄를 용서받을 수 없고 하나님 나라에 들어갈 수 없기 때문입니다. 예수님도 메시아의 공생애를 시작하시면서 외치신 첫 마디가 회개였습니다. 예수님도 회개하라 천국이 가까웠느니라고 말씀하신 것입니다(마태복음 4:17). 예수님과 세례 요한이 메시지의 첫마디로 왜 회개하라.”고 외쳤느냐? 회개하고 거듭 나야 죄에서 구원받고 하나님 나라에 들어가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하나님 나라는 회개하고 거듭 난 심령을 통해 이루어지고 회개하고 거듭 난 심령을 통해 확장됩니다. 회개가 얼마나 중요합니까? 그래서 첫 마디로 회개하라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회개(헬라어 메타노에오 μετανοέω)로 번역된 말은 마음을 바꾸다, 하나님께로 돌아서다, 잘못을 사죄하다는 뜻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회개는 세상으로 향하던 마음을 하나님께로 향하고, 죄악의 길에서 하나님께로 돌아오며, 자기의 잘못을 깨닫고 사죄하는 것을 말합니다. 회개를 어떻게 해야 할까요? 회개는 말로 되지 않습니다. 회개는 사람이 변하고 삶이 변하고 행위로 증명돼야 합니다. 세례 요한은 유대인들에게 회개에 합당한 열매를 맺으라.”고 말씀하시고(8) 좋은 열매 맺지 아니하면 도끼에 찍혀 불에 던지우리라.”고 말씀하셨습니다(10). 회개에 합당한 열매를 맺지 않으면 도끼로 찍어 불에 던진다는 말씀입니다. 참된 회개는 변화된 삶과 구체적인 신앙의 열매로 나타난다는 것을 명심하셔야 합니다.

회개는 누가복음 19장에 나오는 세리장 삭개오처럼 해야 합니다. 로마제국은 그들의 식민지를 여러 지역으로 나누어 각 지역의 징세권(徵稅權)을 입찰에 붙였습니다. 어느 지역의 세금으로 1년에 얼마를 납부하겠다고 써내면 로마 정부는 가장 많은 금액을 써낸 사람에게 조세(租稅) 징세권을 주었습니다. 그러면 징세권을 받은 자는 로마 정부에 써낸 금액보다 훨씬 많은 금액을 거둬들여 나머지 돈을 착복했습니다. 그래서 예수님 당시에 이스라엘에서 세리는 창기나 강도와 같은 취급을 받았습니다. 삭개오는 여리고라는 지역의 세리장입니다. 세리장은 오늘날 지방의 국세청장이나 관세청장쯤 되는 사람입니다. 삭개오가 도둑질을 얼마나 많이 해 먹었겠습니까? 그러나 세리장 삭개오는 예수를 영접한 후 완전히 새사람으로 변했습니다. 삭개오는 예수님께 “......내 소유의 절반을 가난한 자들에게 주겠사오며 만일 누구의 것을 속여 빼앗은 일이 있으면 네 배로 갚겠다.”고 말했습니다(누가복음 19). 회개는 말로 하는 것이 아닙니다. 회개한 사람은 삶이 변하고 인간이 변해야 합니다.

유대인들에게는 회개에 대한 훌륭한 속담이 있습니다. “죄를 지었을 때는 회개하면 되지, 이렇게 말하는 사람은 하나님의 용서를 받지 못한다. 죄를 범하더라도 참회하면 씻을 수 있을 테지, 이렇게 말하는 사람은 참회하더라도 죄를 씻을 수 없다. 하나님에 대한 과오는 참회하면 혹시 씻을 수 있을지 모른다. 그러나 이웃사람에 대한 과오는 이웃사람이 만족하지 않는 동안은 참회해도 씻을 수 없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회개에 대한 유대인의 속담은 우리에게 두 가지 교훈을 주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사랑과 용서를 악용하는 자는 회개해도 용서받지 못한다는 것과 하나님에 대한 과오는 참회하면 씻을 수 있을지 몰라도 이웃사람에 대한 과오는 이웃사람이 만족하지 않는 동안은 회개가 되지 않는다는 뜻입니다.

하나님께 대한 회개와 이웃에 대한 회개를 혼동하면 안 됩니다. 이웃의 돈을 떼어먹고, 폭력을 행사하고, 명예를 훼손했는데 하나님께 회개한다고 문제가 해결되겠습니까? 하나님께 회개하면 영적인 죄는 용서되지만 이웃에 대한 회개는 이웃의 정신적 피해와 물질적 피해를 보상하지 않으면 회개가 성립되지 않는다는 것을 명심하셔야 합니다. 회개는 신앙의 첫 걸음으로 회개해야 죄를 용서받고 회개해야 하나님 나라에 들어갑니다. 그래서 세례 요한과 예수님께서 회개를 강조하신 것입니다.

다음으로 본문에 보면 세례 요한은 그곳에 온 사두개인과 바리새인들에게 독사의 자식들이라고 책망하셨습니다. 왜 책망하셨느냐? 이스라엘 종교지도자인 사두개인과 바리새인들이 세례 요한과 예수님을 반대했기 때문입니다. 이스라엘 종교지도자들이 왜 세례 요한을 찾아왔느냐? 모든 유대인들이 세례 요한을 선지자로 알고 세례 요한에게 세례를 받기 때문에 세례 요한과 백성들의 동정을 살필 목적으로 나왔습니다. 그래서 세례 요한이 이스라엘 종교지도자들을 독사의 자식들이라고 책망하신 것입니다.

목사는 정의와 진리를 외쳐야 합니다. 명백한 범죄와 불법을 보고도 침묵하면 안 됩니다. 하나님은 사랑의 하나님이시지만 불의를 보면 분노하시는 공의의 하나님입니다. 힘들고 지친 성도들에게는 따뜻한 위로와 격려가 필요하지만 불의와 잘못을 보면 꾸짖고 바른 길을 제시하는 정의의 사도가 돼야 합니다. 하나님이 원하시고 청중에게 필요한 말을 해야 합니다. 그래서 세례 요한과 예수님께서 공생애의 첫마디로 회개하라고 외친 것입니다. 그리스도인은 사람들이 원하는 말보다 하나님이 원하시고 청중에게 필요한 말을 해야 한다는 것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3. 광야의 소리 세례 요한은 검소한 선지자였습니다.

본문 4절에 이 요한은 낙타털 옷을 입고 허리에 가죽 띠를 띠고 음식은 메뚜기와 석청이었더라.” 말씀하고 있습니다. 선지자 중 최고의 선지자는 엘리야 선지자입니다. 엘리야 선지자는 낙타털로 된 외투를 입고 가죽 띠를 띠었습니다(열왕기하 1:8). 그래서 이스라엘에서 낙타털로 만든 외투는 선지자를 상징하는 의복이 되었습니다. 세례 요한도 낙타털로 만든 옷(외투)을 입었습니다. 선지자들이 왜 낙타털로 만든 옷을 입었느냐? 거친 광야의 생활에 실용적이고 편리하기 때문입니다. 사막성 기후인 이스라엘은 낮에는 온도가 높고 밤에는 기온이 많이 내려갑니다. 그래서 낮에는 옷으로 입고 밤에는 이불로 덮었습니다. 광야의 생활에 실용적이고 편리하기 때문에 선지자들이 낙타털로 만든 옷을 입은 것입니다.

다음으로 세례 요한은 음식으로 메뚜기와 석청을 먹었습니다. 메뚜기는 광야에 많이 있는 곤충입니다. 또한 석청은 이스라엘의 광야나 들에서 쉽게 구할 수 있는 자연산 꿀을 말합니다. 세례 요한이 음식으로 메뚜기와 석청을 먹었다는 말은 광야에서 구하기 쉬운 메뚜기나 꿀을 먹었다는 뜻이지 메뚜기와 석청만 먹었다는 뜻은 아닙니다. 세례 요한은 음식으로 먹을 수 있는 것은 무엇이나 먹고 검소하게 생활하신 것입니다.

그리스도인은 검소하게 살아야 합니다. 오늘날 많은 그리스도인이 검소의 미덕을 상실한 삶을 살아가고 있습니다. 유행을 따라 살고 허영과 사치가 몸에 배어 있습니다. 사치와 허영에 쓰는 돈은 아끼지 않지만 자선과 구제에는 너무 인색합니다. 특히 구제나 자선은 가난한 자들보다 가진 자나 부자들이 더 인색합니다. 인색한 것과 검소한 것은 다릅니다. 하나님께서는 당신의 백성들이 검소하게 살면서 자선과 구제에는 풍성하기를 원하십니다.

교회에는 검소에 대한 그릇된 철학이 있습니다. 목회자는 가난하고 검소하게 살아야 한다는 생각입니다. 목사가 사치하고 호화롭게 사는 것은 나쁘지만 목사는 가난하고 검소하게 살아야 한다는 생각은 잘못된 것입니다. 목사가 물질 문제로 걱정하면 어떻게 목회에 전념할 수 있겠습니까? 목사가 의식주 문제와 자녀 교육 문제로 염려하지 않도록 최소한의 생활은 보장돼야 합니다. 목사는 밥 안 먹고 살아갑니까? 목사가 너무 가난해도 하나님 영광 가립니다. 목사의 불신자 친구가 네가 믿는 하나님은 목사 밥도 안 먹여주느냐?”고 비아냥거리는 말을 들은 적이 있습니다. 목사는 그 사회의 중간 정도의 삶은 살아야 합니다. 세례 요한은 광야의 선지자로 검소한 삶을 살았습니다. 그리스도인은 세례 요한처럼 검소하게 사시되 구제와 하나님 사업에는 부요한 사람이 되셔야 한다는 것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말씀을 맺겠습니다. 첫째, 세례 요한은 예수 그리스도를 증거하는 광야의 소리였습니다. 소리는 형체가 없고 눈으로 볼 수도 없습니다. 그리고 소리는 자신을 드러내지 않습니다. 그리스도인은 광야의 소리 세례 요한처럼 예수 그리스도를 나타내고 증거하는 소리로 살아야 한다는 것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둘째, 광야의 소리 세례 요한은 회개하라.”고 외쳤습니다. 회개하지 않으면 사죄도 구원도 받을 수 없고 하나님 나라에도 들어갈 수 없습니다. 회개는 평생 해야 합니다. 왜냐하면 우리가 살아가면서 많은 죄를 범하면서 살아가기 때문입니다. 회개는 하나님 나라에 갈 때까지 계속해야 한다는 것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셋째, 광야의 소리 세례 요한은 검소한 선지자였습니다. 그리스도인은 검소하게 생활하시되 하나님 사업에는 부요해야 합니다. 그리고 목사는 세례 요한처럼 정의와 진실을 말해야 합니다. 오늘날 한국 교회의 위기의 원인은 교회가 세상의 빛과 소금이 되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정치하는 목사들, 물질에 눈이 먼 그리스도인들, 고난받는 사람들의 문제를 외면하는 교회! 이것은 예수님께서 보여주신 교회의 모습이 아닙니다. 그리고 한국 교회의 설교에는 죄에 대한 책망이 없습니다. 불의와 불법에 대한 책망이 없는데 성도들이 어떻게 죄를 두려워하고 죄를 무서워하겠습니까? 광야의 소리 세례 요한처럼 예수를 전하는 복음의 나팔과 정의의 사도로 세상을 변화시키는 성도 여러분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2022, 4, 2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