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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혜로운 건축자

진리의증인 2022. 4. 3. 11:53

이 정만 목사

블로그(네이버:논산동산교회, 다음:논산동산교회)

 

10내게 주신 하나님의 은혜를 따라 내가 지혜로운 건축자와 같이 터를 닦아 두매 다른 이가 그 위에 세우나 그러나 각각 어떻게 그 위에 세울까를 조심할지니라, 11이 닦아 둔 것 외에 능히 다른 터를 닦아 둘 자가 없으니 이 터는 곧 예수 그리스도라, 12만일 누구든지 금이나 은이나 보석이나 나무나 풀이나 짚으로 이 터 위에 세우면 13각 사람의 공적이 나타날 터인데 그 날이 공적을 밝히리니 이는 불로 나타내고 그 불이 각 사람의 공적이 어떠한 것을 시험할 것임이니라, 14만일 누구든지 그 위에 세운 공적이 그대로 있으면 상을 받고 15누구든지 그 공적이 불타면 해를 받으리니 그러나 자신은 구원을 받되 불 가운데서 받은 것 같으리라” (고린도전서 3:10-15)

 

서론: 바울 사도는 자신을 지혜로운 건축자에 비유하셨습니다. 집이나 빌딩이나 인공구조물을 건설하는 사람을 건축자라고 합니다. 그러나 바울 사도께서 말씀하신 건축자는 집이나 빌딩을 세우는 건축자가 아니라 이 땅에 하나님 나라를 건설하는 신앙의 건축자입니다. 그리스도인은 이 땅에 하나님 나라를 건설하는 지혜로운 건축자가 돼야 한다는 뜻입니다.

이 시간에는 지혜로운 건축자란 제목으로 함께 은혜를 받고자 합니다.

 

1. 지혜로운 건축자는 자신의 재능을 100퍼센트(%) 다 활용합니다.

바울 사도는 본문 10절에서 내게 주신 하나님의 은혜를 따라 내가 지혜로운 건축자.......”로 일한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바울 사도에게 주신 하나님의 은혜가 무엇이냐? 바울 사도가 하나님께 받은 재능, 달란트(talent)를 말합니다. 하나님께서는 모든 인간에게 각기 다른 특별한 재능을 주셨습니다. 어떤 사람에게는 노래하는 재능을 주셨고 어떤 사람에게는 악기를 연주하는 재능을 주셨습니다. 또 어떤 사람에게는 운동의 재능을 주셨고, 어떤 사람에게는 사업을 하는 재능을 주셨으며, 어떤 사람에게는 음식을 만드는 재능을 주셨고, 어떤 사람에게는 과학자와 철학자의 재능을 주셨습니다.

인간이 하나님으로부터 받은 이러한 특별한 재능을 카리스마(Χαρισα)라고 합니다. 다른 사람이 노력해서 따라갈 수 없는 특별한 재능, 태어날 때부터 타고난 천부적인 재능을 카리스마라고 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많은 사람들이 하나님께서 주신 재능을 깨닫지 못하고 발견하지 못해서 하나님이 주신 재능을 썩히고 있습니다. 하나님이 주신 재능을 썩히지 않고 잘 사용하려면 어떻게 해야 하느냐? 어떤 일이든지 열심히 노력하고 적극적으로 도전하는 용기를 가져야 합니다. 매사에 소극적이고 부정적인 생각을 가진 사람은 자신의 재능을 발견할 수도 없고 자신의 재능을 활용할 수도 없습니다. 기회가 주어졌을 때 적극적으로 도전하고 노력하는 사람이 하나님이 주신 재능을 잘 활용할 수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 나라의 지혜로운 건축자가 되기 위해서는 일을 피하지 말고 적극적으로 나서서 일을 하고 경험을 쌓아야 합니다. 그리고 만고불변의 진리인 하나님 말씀에 순종해야 성공합니다. 만고불변의 진리인 하나님 말씀에 순종하지 않으면 절대로 지혜로운 건축자가 될 수 없습니다.

다음으로 지혜로운 건축자의 문자적인 뜻은 숙달된 건축자 또는 능숙한 건축자란 뜻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지혜로운 건축자는 숙달된 일군과 능숙한 일군이 돼야 합니다. 새로 건축한 건물들을 보면 같은 건축비가 들어가도 건물의 값어치는 천차만별입니다. 공사비는 같이 들어갔는데 안전성과 디자인과 건축물의 가치에서 왜 차이가 나느냐? 건축자의 능력에 차이가 나기 때문입니다. 능력이 있고 실력이 있는 건축자는 아름답고 튼튼한 건물을 세우지만 실력이 없는 건축자는 불량건축물을 만드는 것입니다. 하나님 나라를 건설하는 신앙의 건축자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리스도인은 하나님 나라의 지혜로운 건축자로 숙달되고 능숙한 건축자가 되어야 합니다.

나는 생각한다. 그러므로 나는 존재한다.” 근대 철학의 시조이며 합리론의 개척자인 프랑스의 철학자 데카르트가 한 말입니다. 이 유명한 철학자 데카르트도 젊었을 때는 자기의 철학적 재능을 의심한 적이 있습니다. 데카르트는 그의 자서전에서 자기는 철학자의 재능이 없다고 생각하고 수학자와 철학자의 길을 놓고 어떤 길로 가야할지 고민하고 망설였다고 고백했습니다. 데카르트가 철학자의 길을 가기로 결심했을 때 그가 세계적인 철학자가 되리라고는 아무도 생각하지 못했지만 데카르트는 세계적인 철학자가 되었습니다. 하나님께서 데카르트에게 주신 재능이 무엇입니까? 철학자의 재능입니다. 하나님께 받은 재능과 은사를 알아보는 방법이 있습니다. 어떤 일을 할 때 그 일이 재미있고 다른 사람보다 일을 잘한다면 그 일이 하나님께서 주신 재능입니다. 그 방향으로 나가면 반드시 승리합니다.

인생도 그렇고 매사가 다 그렇습니다. 모든 일을 부정적으로 보고 소극적으로 행동하는 사람은 성공하기 어렵습니다. ‘나는 안 된다’ ‘나는 못 한다’ ‘그 일은 불가능하다고 매사에 부정적으로 말하는 사람은 성공할 수 없습니다. 바울 사도의 말씀처럼 내게 능력 주시는 자 안에서 나는 어떤 일이든지 할 수 있다.”고 믿고 도전하는 사람이 성공하고 승리합니다(빌립보서 4:13). “나는 할 수 있다.”는 긍정적인 생각을 가지고 주어진 기회에 도전하는 용기를 가져야 합니다. 지혜로운 건축자는 자신의 재능을 100% 활용하는 사람이며 숙달된 건축자라고 말씀드렸습니다. 그리스도인은 숙달되고 능숙한 건축자로 하나님이 주신 재능을 100퍼센트 활용하는 지혜로운 건축자가 되셔야 한다는 것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2. 지혜로운 건축자는 진리의 터 위에 건축합니다.

바울 사도는 본문 11절에서 이 닦아 둔 것 외에 능히 다른 터를 닦아 둘 자가 없으니 이 터는 곧 예수 그리스도라말씀하고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라는 진리의 터 위에 건축하라는 말씀입니다. 집을 짓거나 건축을 할 때 모래 위나 물이 질퍽한 시궁창에 공사를 하는 사람은 없습니다. 반드시 터를 닦고 기초공사를 한 다음에 집을 짓고 건축을 합니다. 바울 사도는 이 닦아 둔 터 위에 건축을 하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바울 사도가 말씀하신 이 닦아 둔 터가 무엇이냐? 신앙과 진리의 터인 예수 그리스도를 상징합니다. 교회는 예수 그리스도를 구세주로 믿는 신앙고백 위에 세워져야 한다는 뜻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구세주로 믿는 믿음 위에 세워지지 않은 교회는 기독교가 아닙니다. 기독교와 이단을 나누고 분류하는 기준과 근거가 무엇이냐? 예수 그리스도를 구세주로 인정하지 않으면 이단이고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구원을 받는다는 이신칭의(以信稱義)의 교리 외에 구원의 조건으로 율법이나 행위나 안식일 준수와 같은 것을 강조하면 이단으로 규정합니다.

바울 사도가 신앙과 진리의 터로 예수 그리스도를 강조한 것은 고린도 교회 성도들이 은사나 신비한 체험 같은 것을 강조하고 거기에 빠져 있었기 때문입니다. 방언이나 예언이나 병 고치는 은사는 신앙에 유익을 주고 말씀을 전파하기 위한 수단으로 주셨습니다. 은사를 위해 말씀을 주신 것이 아니라 말씀을 전파하기 위해 은사를 주신 것입니다. 그러나 고린도 교회 성도들은 하나님 말씀보다 은사나 체험을 강조했습니다. 그래서 바울 사도께서 교회는 예수 그리스도라는 진리의 터 위에 세워져야 한다고 강조하신 것입니다. 예수님은 우리를 죄와 사망에서 구원해주신 생명의 주님이시고 교회는 예수님의 몸이며 그리스도인은 예수님의 지체입니다. 그래서 바울 사도께서 예수 그리스도를 교회의 터로 말씀하신 것입니다.

어떤 교회의 강단에서는 성경 말씀보다 철학이나, 과학이나, 고고학이 더 권위 있게 선포됩니다. 만고불변의 진리인 성경 말씀을 철학이나 과학이나 고고학의 권위에 호소하여 변증(辨證)하는 것입니다. 이런 사람들은 스스로 성경의 권위를 떨어뜨리는 천박한 인간들입니다. 오늘날 자유주의자들과 일부 진보주의자들과 카톨릭 교회의 현실이 그렇습니다. 칼빈 선생님은 종교개혁 당시에 카톨릭 교회가 그리스도의 모든 것을 벗겨버리고 예수 그리스도의 빈이름만 남겨 두었다고 비판하셨습니다. 오늘날 카톨릭 교회에서는 성경은 권위를 잃은 지 오래되었습니다. 교황청의 결정이 성경말씀보다 권위가 있습니다. 성경과 예수님 말씀에 근거하지 않는 교회는 잘못된 교회라는 것을 명심하셔야 합니다.

또한 지혜로운 건축자는 예수님 말씀에 순종합니다. 예수님은 마태복음 7:24-27,에서 누구든지 나의 이 말을 듣고 행하는 자는 그 집을 반석 위에 지은 지혜로운 사람 같으리니 비가 내리고 창수가 나고 바람이 불어 그 집에 부딪치되 무너지지 아니하나니 이는 주초를 반석 위에 놓은 까닭이요, 나의 이 말을 듣고 행하지 아니하는 자는 그 집을 모래 위에 지은 어리석은 사람 같으리니 비가 내리고 창수가 나고 바람이 불어 그 집에 부딪치매 무너져 그 무너짐이 심하니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만고불변의 진리인 예수님 말씀에 순종하고 예수님 말씀대로 하면 성공하지만 예수님 말씀에 불순종하면 실패한다는 말씀입니다.

왜 부실공사가 됩니까? 공사를 법과 규정대로 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모든 공사에는 법과 규정이 있습니다. 콩크리트 공사를 할 때는 몇미리(mm) 굵기의 철근을 어느 정도의 길이로 절단해서 얼마 간격으로 박아야 하며, 콘크리트의 강도와 두께는 어느 정도 돼야 한다고 건축법에 다 나와 있습니다. 법과 규정대로 하면 절대로 부실공사가 될 수 없습니다. 공사비용을 절감하기 위해 규정대로 시공을 하지 않기 때문에 부실공사가 되는 것입니다.

신앙생활도 마찬가지입니다. 예수님께서 하지 말라고 말씀하신 것은 하면 안 되고 예수님께서 하라고 명령하신 것은 순종하고 해야 합니다. 그러나 성도들이 예수님 말씀을 듣기만 하고 행하지 않고 순종하지 않기 때문에 신앙과 인생에 실패하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내 말을 듣고 행하는 자가 지혜로운 자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예수님 말씀에 불순종하는 사람은 지혜로운 건축자가 될 수 없습니다. 지혜로운 건축자는 진리의 터가 되는 예수님 말씀에 순종하고 예수님 말씀대로 행하고 실천해야 한다는 것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3. 지혜로운 건축자는 좋은 재료를 사용합니다.

본문 12절에는 건축에 사용된 여섯 가지의 재료가 등장합니다. 금과 은과 보석과 나무와 풀과 짚입니다. , , 보석 이 세 가지는 귀하고 좋은 재료입니다. 반면에 나무와 풀과 짚은 질이 떨어지는 재료입니다. 옛날에 금이나 은이나 보석과 같은 재료는 하나님 성전이나 신전이나 왕궁의 건축에 사용했습니다. 반면에 나무와 풀과 짚은 가난한 사람의 집을 지을 때 사용했습니다. 나무는 목재로 사용했고 풀은 진흙을 이겨 벽돌을 만드는 데 사용했으며 짚은 지붕을 덮는 데 사용했습니다.

하나님은 만왕의 왕이시며 가장 존귀하신 분이십니다. 그리스도인이 하나님을 섬기고 하나님 일을 할 때 어떤 재료를 사용해야 하겠습니까? 불에 타지 않는 좋은 재료를 사용해야 합니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 불로 우리의 공력을 시험하실 때 나무나 풀이나 짚과 같은 재료는 불에 타서 없어지기 때문입니다. 또한 좋은 재료와 나쁜 재료는 진리와 비 진리를 상징합니다. 금 은 보석은 불의 시험에도 타지 않고 변하지 않는 진리를 상징하며 나무와 짚과 풀은 하나님의 시험을 통과하지 못하는 비진리를 상징합니다. 그릇된 진리와 거짓 교훈을 따르는 자들은 하나님 심판을 견디지 못하고 무너지는 것입니다.

하나님 나라의 지혜로운 건축자는 질적으로도 좋은 재료를 사용하고 양적으로도 풍성하게 드려야 합니다. 돈이 많은 부자로 하나님을 믿었던 사람과 가난한 형편에서 하나님을 섬겼던 사람이 죽어서 두 사람이 다 하늘나라에 들어갔습니다. 하늘나라에서는 천사가 구원받은 성도들이 살아갈 집을 지정해 주었는데 대궐처럼 크고 화려한 집도 있고 작고 초라한 집들도 있었습니다. 천사는 가난한 사람에게 대궐처럼 아름답고 훌륭한 집을 지정해 주었습니다. 이어서 천사는 부자를 데리고 작고 초라한 집들이 있는 곳으로 가서 이것이 너의 집이라며 작고 초라한 집을 지정해 주었습니다. 부자의 집은 조금 전에 가난한 사람이 받았던 집에 비해 너무 작고 초라했습니다. 그래서 부자는 천사에게 아까 그 사람은 좋은 집을 주고 왜 나에게는 이런 집을 주느냐?”고 물었습니다. 천사는 부자에게 하늘나라에서 사는 집은 인간이 세상에서 사는 동안 헌금하고 봉사하고 하나님을 섬긴 데 따라 받는 것이다. 가난한 사람은 가난한 형편에도 하나님 나라를 위해 저렇게 큰집을 건축할 만큼 많은 것을 드렸지만 네가 하나님께 드린 것으로는 이런 오두막밖에 지을 수 없다.”고 말했습니다.

세상에 공짜는 없습니다. 신앙도 마찬가지입니다. 하나님과 천국을 위해 헌신하고 봉사하고 하나님께 드린 만큼 상을 받고 영광을 받습니다. 성도 여러분! 구원과 상급을 혼동하면 안 됩니다. 구원은 믿음으로 받지만 천국의 상급과 영광은 하나님을 위해 헌신하고 봉사하고 하나님께 드린 것만큼 받습니다. 바울 사도는 본문 15절에서 누구든지 그 공적이 불타면 해를 받으리니 그러나 자신은 구원을 받되 불 가운데서 받은 것 같으리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부끄러운 구원을 받는 자가 되지 말라는 말씀입니다.

불이 난 위급한 상황에서는 알몸으로라도 뛰어나가야 구원을 받습니다. 그러나 불 가운데서 알몸으로 뛰어나와 구원을 받으면 부끄러운 구원이 됩니다. 가난한 사람과 함께 천국에 간 부자는 불 가운데서 구원받은 사람처럼 부끄러운 구원을 받은 것입니다. 믿는 사람은 천국과 지옥이라는 구원의 심판은 받지 않습니다. 그러나 상급의 심판은 받습니다. 참된 승리자는 부끄럽지 않는 모습으로 하나님을 뵐 수 있는 사람이며 최후의 승리자는 하나님 앞에서 웃을 수 있는 사람입니다. 지혜로운 건축자는 좋은 재료를 사용해서 하나님 나라를 건축하고 귀한 것으로 하나님을 섬긴다는 것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말씀을 맺겠습니다. 첫째, 지혜로운 건축자는 자기 재능을 100퍼센트 다 활용한다고 말씀드렸습니다. 그리스도인은 하나님이 주신 재능을 100퍼센트 활용해서 하나님을 섬기는 지혜로운 건축자가 되셔야 한다는 것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둘째, 지혜로운 건축자는 진리의 터 위에 건축한다고 말씀드렸습니다. 진리의 터는 예수님입니다. 지혜로운 건축자는 진리의 터가 되는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신앙고백 위에 건축하고 만고불변의 진리인 예수님 말씀에 순종한다는 것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셋째, 지혜로운 건축자는 좋은 재료를 사용한다고 말씀드렸습니다. 지혜로운 건축자로 귀하고 좋은 재료로 하나님을 섬기시고 마음과 뜻과 정성을 다해 하나님을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2022, 4, 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