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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롭기 때문에 당하는 고난

진리의증인 2021. 8. 27. 03:06

이 정만 목사

블로그(네이버:논산동산교회, 다음:논산동산교회)

 

6......요셉은 용모가 빼어나고 아름다웠더라 7그 후에 그의 주인의 아내가 요셉에게 눈짓하다가 동침하기를 청하니 8요셉이 거절하며 자기 주인의 아내에게 이르되 내 주인이 집안의 모든 소유를 간섭하지 아니하고 다 내 손에 위탁하였으니 9이 집에는 나보다 큰 이가 없으며 주인이 아무 것도 내게 금하지 아니하였어도 금한 것은 당신 뿐이니 당신은 그의 아내임이라, 그런즉 내가 어찌 이 큰 악을 행하여 하나님께 죄를 지으리이까 10여인이 날마다 요셉에게 청하였으나 요셉이 듣지 아니하여 동침하지 아니할 뿐더러 함께 있지도 아니하니라, 11그러할 때에 요셉이 그의 일을 하러 그 집에 들어갔더니 그 집 사람들은 하나도 거기에 없었더라, 12그 여인이 그의 옷을 잡고 이르되 나와 동침하자, 그러나 요셉이 자기의 옷을 그 여인의 손에 버려두고 밖으로 나가매 13그 여인이 요셉이 그의 옷을 자기 손에 버려두고 도망하여 나감을 보고 14그 여인의 집 사람들을 불러서 그들에게 이르되 보라 주인이 히브리 사람을 우리에게 데려다가 우리를 희롱하게 하는도다, 그가 나와 동침하고자 내게로 들어오므로 내가 크게 소리질렀더니 15그가 나의 소리 질러 부름을 듣고 그의 옷을 내게 버려두고 도망하여 나갔느니라 하고 16그의 옷을 곁에 두고 자기 주인이 집으로 돌아오기를 기다려 17이 말로 그에게 말하여 이르되 당신이 우리에게 데려온 히브리 종이 나를 희롱하려고 내게로 들어왔으므로 18내가 소리 질러 불렀더니 그가 그의 옷을 내게 버려두고 밖으로 도망하여 나갔나이다 19그의 주인이 자기 아내가 자기에게 이르기를 당신의 종이 내게 이같이 행하였다 하는 말을 듣고 심히 노한지라, 20이에 요셉의 주인이 그를 잡아 옥에 가두니 그 옥은 왕의 죄수를 가두는 곳이었더라, 요셉이 옥에 갇혔으나 21여호와께서 요셉과 함께하시고 그에게 인자를 더하사 간수장에게 은혜를 받게 하시매 22간수장이 옥중 죄수를 다 요셉의 손에 맡기므로 그 제반 사무를 요셉이 처리하고 23간수장은 그의 손에 맡긴 것을 무엇이든지 돌아보지 아니하였으니 이는 여호와께서 요셉과 함께하심이라, 여호와께서 그의 범사에 형통케 하셨더라

(창세기 39:6-23)

 

서론: 본문 6절에 “......요셉은 용모가 빼어나고 아름다웠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요셉은 인물이 잘생겼다는 뜻입니다. 남자나 여자나 인물이 반반하면 이성의 유혹이 따릅니다. 요셉도 예외가 아니었습니다. 요셉의 주인의 아내가 요셉의 외모에 반해 요셉을 유혹한 것입니다. 어느 날 요셉이 시무를 하기 위해 주인의 집에 들어갔는데 주인의 아내가 요셉의 옷을 붙잡고 동침할 것을 요구했습니다. 주인의 아내가 요셉의 옷을 붙잡고 놓아주지 않자, 요셉은 여자의 손에 옷을 버려두고 밖으로 뛰쳐나갔습니다. 그러자 주인의 아내는 요셉이 마음을 돌이키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하고 요셉에게 치한의 누명을 씌워 복수했습니다. “요셉이 나를 강간하려고 해서 소리를 질렀더니 이렇게 옷을 벗어두고 도망했다.”고 요셉에게 치한의 누명을 씌운 것입니다. 세상에는 요셉처럼 의롭기 때문에 모함을 받고 고난을 당하는 사람도 많이 있습니다. 그리스도인은 악하고 불의해서 고난을 받는 사람이 되면 안 됩니다. 요셉처럼 바르고 의롭기 때문에 고난을 당하는 사람이 돼야 합니다.

이 시간에는 의롭기 때문에 당하는 고난이란 제목으로 함께 은혜를 받고자 합니다.

 

1. 그리스도인은 요셉처럼 바르고 의롭기 때문에 고난받는 사람이 돼야 합니다.

사람이 바르고 의롭게 살아간다고 환영받고 칭찬만 받는 것은 아닙니다. 타락한 세상에서 죄악과 타협하지 않고 바르게 살고 의롭게 살아가는 사람은 고난을 피할 수 없습니다. 요셉은 그의 잘생긴 외모 때문에 이성의 유혹을 받고 고난을 받았습니다. 본문 6절 하반절에 “......요셉은 용모가 빼어나고 아름다웠다말씀하고 있습니다. 반듯하게 잘 생긴 외모는 인생에서 축복의 자산입니다. 사람이 외모가 너무 처지면 정당한 평가를 받지 못하고 많은 불이익을 당합니다. 옛날 중국 삼국시대에 유비의 휘하에 재갈공명과 쌍벽을 이루는 봉추라는 인물이 있었습니다. 봉추는 학문과 지혜에서 탁월한 인물이었지만 외모가 너무 못생겼습니다. 작은 키와 뚱뚱한 몸매와 납작코에 얼굴은 몹시 얽어있었습니다. 봉추는 당대에 최고의 지혜와 능력을 가진 인물이었지만 외모가 너무 못생겨서 정당한 평가를 받지 못했습니다. 그런데 유비에게 능력을 인정받고 발탁된 것입니다. 그러나 봉추는 유비와 함께 나라 정벌에 나섰다가 말에서 낙마하여 그의 탁월한 재능을 펼쳐보지도 못하고 비운의 천재로 인생을 마쳤습니다. 안타깝지만 옛날이나 지금이나 사람이 외모가 너무 처지면 정당한 평가와 합당한 대우를 받지 못하는 것이 현실입니다.

그러나 본문의 주인공인 요셉은 인물이 너무 잘 생겨서 고난을 받았습니다. 요셉은 외모만 잘 생긴 것이 아니라 겸손하고 성실해서 누구에게나 사랑을 받았습니다. 요셉은 인격적으로도 훌륭했습니다. 문제는 잘생긴 외모와 훌륭한 인격 때문에 고난과 시련을 당하는 경우도 있다는 것입니다. 노예로 팔려간 요셉은 애굽 왕의 호위와 경호를 책임지는 애굽 왕의 친위대장 보디발의 집에서 가정총무로 일했습니다. 가정총무란 가정의 모든 일을 맡아서 주장하는 사람입니다. 청지기나 지배인 같은 사람입니다. 그런데 보디발의 부인이 요셉의 외모에 반해 요셉을 유혹한 것입니다.

! 요셉이 어떻게 해야 할까요? 요셉이 여자의 유혹과 압력에 굴복해서 동침을 하면 주인을 배반한 파렴치한 인간이 되고 불륜이 탄로 나면 죽임을 당할 수도 있습니다. 반대로 주인 여자의 동침 요구를 거절하면 주인 여자의 노여움을 사서 요셉이 불이익을 당하고 생명이 위태로울 수도 있습니다. 진퇴양난입니다. 그러나 요셉은 그런 문제로 갈등하거나 고민하지 않았습니다. 왜냐하면 순결하고 의로운 요셉이 주인을 배반하고 주인의 아내와 불륜의 관계를 갖는다는 것은 상상할 수도 없기 때문입니다. 요셉은 동침을 요구하는 주인 여자에게 내 주인이 집안의 모든 소유를 간섭하지 아니하고 다 내 손에 위탁하셨기 때문에 이 집에서는 나보다 큰 사람이 없습니다. 주인이 나에게 아무것도 금하지 아니하셨지만 당신은 금한 사람이 됩니다. 왜냐하면 당신은 주인의 아내가 되기 때문입니다. 그런즉 내가 어찌 이 큰 악을 행하여 하나님께 죄를 지으리이까?”라고 간절히 호소했습니다.

그러나 정욕에 눈이 먼 주인여자에게 요셉의 호소는 통하지 않았습니다. 요셉에 대한 주인 여자의 유혹은 더욱 치밀하고 대담해져 갔습니다. 어느 날 요셉이 시무를 하기 위해 주인의 집에 들어갔는데 주인 여자 외에는 아무도 사람이 없었습니다. 여자가 요셉을 유혹하기 위해 집에 있는 사람들을 미리 내보낸 것입니다. 아무도 없는 집에서 요셉과 단둘이 만난 주인 여자는 요셉을 붙잡고 동침하자고 애원했습니다. 그러자 요셉은 여자가 붙잡고 있는 옷을 벗어 던지고 집을 뛰쳐나갔습니다. 주인 여자는 요셉의 환심을 사기 위해 그동안 많은 노력을 기울였지만 요셉의 마음은 요지부동(搖之不動), 움직이지 않았습니다. 주인 여자는 사랑이 거부당하자 증오와 복수의 화신으로 변했습니다. 사랑이 변해서 증오가 되고 연인이 변해서 원수가 된 것입니다.

18세기 영국의 작가 윌리암 콩그리브(William Congreve, 1670-1729)는 남녀의 사랑을 다룬 작품을 많이 발표했습니다. 콩그리브는 사랑의 증오에 대해서 사랑이 증오로 변할 때만큼의 분노는 하늘에도 없다. 또한 경멸당한 여인의 광분만큼의 광분은 지옥에도 없다고 말했습니다. 요셉의 사랑을 기대할 수 없다고 판단한 여자는 요셉을 죽이기로 결심하고 요셉에게 치한(癡漢, 여자를 희롱하는 남자)의 누명을 씌웠습니다. 요셉이 옷을 벗어 던지고 도망하자, 여자는 사람들을 집으로 불러들여 요셉이 나를 강간하려고 해서 소리를 질렀더니 요셉이 이렇게 옷을 버려두고 도망갔다고 말하고 그녀의 남편에게도 그와 같이 말했습니다. 그 결과 요셉은 치한의 누명을 쓰고 감옥에 갇혔습니다. 음탕한 눈으로 요셉을 유혹한 주인 여자는 요조숙녀(窈窕淑女)가 되고 의롭고 진실한 요셉은 치한이 된 것입니다.

요셉의 경우에서 볼 수 있듯이 사람이 죄악과 타협하지 않고 바르게 살아가면 모함도 받고 고난도 당합니다. 그러나 공의의 하나님께서는 의롭기 때문에 고난당하는 성도를 절대로 버려두시지 않습니다. 반드시 구원해주시고 더 큰 은혜와 축복으로 갚아주십니다. 하나님은 감옥에 갇힌 요셉에게 은혜를 베푸셨습니다. 하나님께서 감옥의 죄수를 감독하는 간수장(看守長)에게 섭리하셔서 요셉에게 은혜를 베풀게 하신 것입니다. 간수장은 감옥의 모든 죄수를 요셉의 손에 맡기고 감옥의 사무를 요셉에게 위임했습니다. 성경은 본문 창세기 39:23, 하반절에서 “......여호와께서 요셉의 범사를 형통하게 하셨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의롭게 살고 하나님 뜻대로 살기 위해 고난당한 의로운 요셉을 하나님께서 복되고 형통한 길로 인도하신 것입니다. 치한의 누명을 쓰고 감옥에 갇힌 요셉은 어느 날 감옥에서 왕의 신하의 꿈을 해몽해주었는데 이 일이 인연이 돼서 요셉은 애굽의 국무총리로 발탁되었습니다.

요셉의 고난이 주는 교훈이 무엇이냐? 첫째, 탁월한 재능이나 타고난 축복의 조건이 신앙과 인생에서 고난과 시련의 원인이 될 수도 있다는 것입니다. 요셉은 외모가 잘 생긴 미남청년입니다. 잘 생긴 외모는 분명히 축복의 조건입니다. 그러나 요셉은 그의 잘 생긴 외모 때문에 유혹을 받고 고난과 시련을 당했습니다. 좋은 가문, 높은 학문과, 뛰어난 재능, 풍족한 물질 등 남다른 축복의 조건을 가진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러나 축복의 조건이 반드시 좋은 결과만 가져오는 것은 아닙니다. 사람이 축복의 조건을 지혜롭게 잘 사용하면 신앙과 인생에 도움이 되고 유익이 되지만 축복의 조건을 과신하고 남용하면 파멸의 덫과 불행의 올무가 된다는 것을 명심해야 합니다. 재산, 가문, 학문, 미모 등 무엇이든지 너무 믿고 과신하면 안 됩니다. 재산이나 미모나 명성보다 노력하고 하나님을 믿고 의지해야 합니다. 성도가 열심히 노력하고 하나님 앞에 진실하게 행하면 하나님께서 은혜와 복을 주시지만 하나님보다 세속적인 것을 믿고 의지하면 반드시 실패한다는 것을 명심하셔야 합니다.

둘째, 시험과 유혹을 이기고 극복하려면 시험과 유혹을 피하고 멀리해야 합니다. 요셉은 굳게 결심하고 여자의 유혹을 피했습니다. 본문 10절에 여인이 날마다 요셉에게 청하였으나 요셉이 듣지 아니하여 동침하지 아니할 뿐더러 함께 있지도 아니했다말씀하고 있습니다. 요셉이 여자를 피한 것입니다. 이성의 시험과 죄악의 유혹은 피하는 것이 상책입니다. 인간은 불완전한 존재이기 때문에 때와 장소와 환경에 따라 감정이 변하고 생각이 바뀝니다. 그래서 아무리 선하고 의로운 결심도 어느 때가 되면 약해지고 무너지는 것입니다. 유혹을 이기는 최선의 방법은 유혹을 피하고 멀리해야 합니다. 알콜중독자와 마약중독자가 술과 마약을 가까이 두고는 절대로 술과 마약을 끊을 수 없습니다. 술과 마약을 끊으려면 멀리하고 피해야 합니다. 세상에는 성도를 유혹하는 것들이 많이 있습니다. 물질, 명예, 권세, 이성 등 많은 것들이 성도를 유혹합니다. 어떤 사람은 돈에 약하고 어떤 사람은 이성에 약하고 어떤 사람은 명예에 약합니다. 사람은 누구나 한두 가지 특별히 약한 부분이 있습니다. 그리스도인은 자신이 무엇에 약한지 잘 살펴서 항상 조심해야 합니다. 유혹을 이기고 극복하려면 유혹이 되는 것을 피하고 멀리해야 한다는 것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셋째,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마음을 가져야 유혹을 이기고 극복합니다. 요셉은 “......내가 어찌 이 큰 악을 행하여 하나님께 죄를 지으리이까?”라고 여자의 유혹을 뿌리쳤습니다(창세기 39:9, ). 요셉은 하나님을 두려워했습니다. 하나님이 두려워서 죄를 범하지 못한 것입니다. 죄인은 하나님을 두려워하지 않기 때문에 죄를 범하고도 태평합니다. 어떤 사람이 하나님을 두려워할까요? 요셉같이 의로운 사람이 하나님을 두려워하고, 하나님을 사랑하는 사람이 하나님을 두려워하며, 믿음이 진실한 성도가 하나님을 두려워합니다.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마음을 가져야 죄악의 유혹을 이기고 극복한다는 것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넷째, 그리스도인은 어떤 협박과 위협에도 자신을 하나님께 맡기고 정의와 진리의 길로 가야 합니다. 옛날에 노예의 운명은 주인의 뜻에 달려 있었습니다. 주인은 노예를 죽일 수도 있고 살릴 수도 있었습니다. 그런 시대적인 상황에서 노예 신분의 요셉이 주인 여자의 요청을 거절한다는 것은 생명을 거는 모험이 아닐 수 없습니다. 그러나 요셉은 하나님이 두려워서 죄를 범할 수 없었습니다. 그래서 주인 여자의 유혹을 거절한 것입니다. 요셉처럼 의롭게 살고 바르게 사는 사람은 고난을 피할 수 없습니다. 그러나 의롭기 때문에 당하는 고난과 박해는 반드시 더 큰 축복으로 돌아옵니다. 억울하게 치한의 누명을 쓰고 감옥에 갇힌 요셉은 감옥에서 전화위복의 기회를 맞이합니다. 요셉과 같은 감옥에 갇혀있던 애굽 왕의 신하의 꿈을 해석해 준 것이 계기가 돼서 요셉이 애굽의 국무총리로 발탁된 것입니다. 믿음으로 살고 바르게 살아가는 성도에게 고난과 시련이 있다면 거기에는 반드시 하나님의 목적과 뜻이 있습니다. 하나님 말씀대로 살면 반드시 복을 받고 승리합니다. 왜냐하면 인간의 생사화복이 하나님 뜻에 달려 있기 때문입니다.

오늘 본문의 주인공인 요셉을 보십시오. 요셉이 주인 여자의 요청에 응하면 요셉을 믿고 요셉에게 가정의 제반 사무를 맡겨준 주인을 배반한 배은망덕한 인간이 됩니다. 그래서 요셉은 죄악의 유혹으로부터 자신을 지키기 위해 더욱 몸을 사리고 주인 여자를 피한 것입니다. 칼빈 선생님은 사람은 자기가 위임받은 권세가 크면 클수록 자신을 한층 더 엄격하게 그 권세의 의무에 얽매여야 한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요셉은 치한의 누명을 쓰고 감옥에 갇히면서도 하나님과 주인을 배반하지 않고 신앙을 지켰습니다. 요셉의 경우에서 볼 수 있듯이 의롭기 때문에 고난을 당하는 성도는 하나님의 더 큰 은혜와 축복을 받습니다. 의롭기 때문에 당하는 고난은 영광과 승리의 보상으로 돌아오는 것입니다. 그리스도인은 죄를 지어서 고난을 받는 사람이 되면 안 됩니다. 그리스도인은 죄를 지어서 고난받는 사람이 아니라 의롭기 때문에 고난받는 사람이 돼야 한다는 것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말씀을 맺겠습니다. 무죄하고 의로운 요셉이 죄인의 누명을 쓰고 감옥에 갇힌 것은 아무 죄도 없으신 예수님께서 우리의 죄를 지시고 십자가에 죽으신 구속사역을 예표하고 상징합니다. 예수님은 마태복음 5:10,에서 의를 위하여 박해를 받는 자는 복이 있나니 천국이 그들의 것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죄악 된 세상에서 바르게 살고 의롭게 살기 위해 고난받는 성도가 천국에 들어가고 천국에서 상을 받는다는 말씀입니다. 하나님은 의를 위해서 고난당하는 의로운 성도를 버려두시지 않습니다. 하나님은 의로운 일로 고난당하는 성도를 축복하시고 형통한 길로 인도하신다는 것을 명심하셔야 합니다. 사도 베드로는 “......선을 행함으로 고난을 받고 참으면 이는 하나님 앞에 아름답다고 말씀하셨습니다(베드로전서 2:20). 그리스도인은 죄를 지어서 고난당하는 사람이 아니라 의롭게 때문에 고난당하는 사람이 되셔야 합니다. 요셉처럼 어떤 유혹과 압력에도 바르고 의롭게 행하셔서 하나님께 인정받고 신앙과 인생에 승리하시는 성도 여러분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2021, 8, 2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