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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아디라 교회에 보낸 편지

진리의증인 2021. 8. 20. 07:42

이 정만 목사

블로그(네이버:논산동산교회, 다음:논산동산교회)

 

18두아디라 교회의 사자에게 편지하라 그 눈이 불꽃 같고 그 발이 빛난 주석과 같은 하나님의 아들이 이르시되 19내가 네 사업과 사랑과 믿음과 섬김과 인내를 아노니 네 나중 행위가 처음 것보다 많도다, 20그러나 네게 책망할 일이 있노라, 자칭 선지자라 하는 여자 이세벨을 네가 용납함이니 그가 내 종들을 가르쳐 꾀어 행음하게 하고 우상의 제물을 먹게 하는도다, 21또 내가 그에게 회개할 기회를 주었으되 자기의 음행을 회개하고자 하지 아니하는도다, 22볼지어다, 내가 그를 침상에 던질 터이요, 또 그와 더불어 간음하는 자들도 만일 그의 행위를 회개하지 아니하면 큰 환난 가운데에 던지고 23또 내가 사망으로 그의 자녀를 죽이리니 모든 교회가 나는 사람의 뜻과 마음을 살피는 자인 줄 알지라, 내가 너희 각 사람의 행위대로 갚아 주리라, 24두아디라에 남아 있어 이 교훈을 받지 아니하고 소위 사탄의 깊은 것을 알지 못하는 너희에게 말하노니, 다른 짐으로 너희에게 지울 것은 없노라, 25다만 너희에게 있는 것을 내가 올 때까지 굳게 잡으라, 26이기는 자와 끝까지 내 일을 지키는 그에게 만국을 다스리는 권세를 주리니 27그가 철장을 가지고 그들을 다스려 질그릇 깨뜨리는 것과 같이 하리라, 나도 내 아버지께 받은 것이 그러하니라, 28내가 또 그에게 새벽 별을 주리라, 29귀 있는 자는 성령이 교회들에게 하시는 말씀을 들을지어다

(요한계시록 2:18-29)

 

서론: 두아디라는(터키 내륙에 위치) 버가모와 사데 사이, 버가모에서 남동쪽으로 32킬로미터(km) 거리에 위치하고 있습니다. 두아디라는 상업이 조금 발달한 도시인데 예수님은 아시아의 일곱 교회 중 두아디라 교회에 가장 긴 편지를 보내셨습니다. 이것은 두아디라 교회에 많은 문제가 있었다는 것을 반증합니다. 겉은 화려하고 겉으로 보기에는 부흥한 것 같지만 영적으로 죽은 교회, 죄악과 타협하고 불의를 용납하는 교회가 두아디라 교회입니다. 두아디라 교회는 오늘날 세속화된 이 땅의 교회와 성도들에게 많은 교훈을 주고 있습니다.

이 시간에는 두아디라 교회에 보낸 편지란 제목으로 함께 은혜를 받고자 합니다.

 

1. 두아디라 교회는 처음보다 나중이 더 좋았다고 칭찬을 받았습니다.

예수님은 본문 19절에서 내가 네 사업과 사랑과 믿음과 섬김과 인내를 아노니 네 나중 행위가 처음 것보다 많도다라고 칭찬하셨습니다. 두아디라 교회는 처음보다 나중이 더 좋았다고 칭찬하신 것입니다. 세상에는 거창하게 시작해서 흐지부지 용두사미로 끝나는 경우도 있고 반대로 사람들의 관심과 주목을 받지 못하고 시작해도 많은 사람들에게 감동을 주는 경우도 있습니다. 시작보다 끝이 더 좋은 경우도 있는 것입니다. 그리스도인은 처음보다 나중이 더 좋은 사람이 돼야 합니다. 처음보다 나중이 더 좋은 사람이 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선하고 의롭고 항상 최선을 다하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선하고 의롭지 못하고 최선을 다하지 않으면 유종의 미를 거둘 수 없고 아름다운 결말을 기대할 수 없습니다. 인간에게 가장 중요한 시간이 언제일까요? 현재라는 시간입니다. 과거는 이미 지나갔기 때문에 내 시간이 아닙니다. 또한 미래도 내 시간이라는 보장이 없습니다. 왜냐하면 오늘 밤에라도 하나님께서 부르시면 가야 하기 때문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현재라는 시간이 가장 중요합니다. 그러므로 오늘이 내 인생의 마지막 날이 될지 모른다는 자세로 최선을 다해 살아야 합니다. 그래야 처음보다 나중이 더 좋은 사람이 되고 아름다운 결말을 기대할 수 있습니다.

예수님은 더 불리지 못하고 처음에 받은 한 달란트를 가지고 온 종에게 악하고 게으른 종이라고 책망하셨습니다(마태복음 25:26). 하나님 나라에 본전이나 현상유지라는 계산법은 존재하지 않습니다. 성장이 아니면 퇴보요 발전이 아니면 쇠퇴가 있을 뿐입니다. 그리스도인은 모든 면에서 처음보다 나중이 더 좋은 사람이 돼야 하고 시간이 갈수록 더 성장하고 더 발전해야 합니다. 믿음도 연륜이 더 할수록 더 커지고 더 깊어져야 합니다. 작년보다는 금년이 어제보다는 오늘의 믿음이 더 성장하고 더 깊어저야 하는 것입니다.

우리 사회에는 과거의 향수에 젖어서 사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현실을 직시하지 못하고 과거의 추억에서 헤어나지 못하는 사람은 발전할 수 없습니다. 또한 구체적인 계획이나 노력 없이 막연하게 장밋빛 인생을 꿈꾸는 사람도 장밋빛 인생의 주인공이 될 수 없습니다. 최선의 노력을 다하는 사람이 밝은 미래의 주인공이 되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하나님 나라를 겨자씨에 비유하셨습니다(마태복음 13:31-32). 작은 겨자씨가 큰 나무로 성장하는 것처럼 그리스도인과 하나님 나라는 성장하고 발전해야 한다는 뜻입니다. 두아디라 교회는 처음보다 나중이 더 좋았다고 칭찬을 받았습니다. 그리스도인은 처음보다 나중이 더 좋은 사람이 되고 사귈수록 믿음이 가고 마음이 끌리는 사람이 돼야 한다는 것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2. 두아디라 교회는 이세벨이라는 이단세력을 용납했다고 책망을 받았습니다.

예수님은 본문 20절에서 그러나 네게 책망할 일이 있노라. 자칭 선지자라 하는 여자 이세벨을 네가 용납함이니 그가 내 종들을 가르쳐 꾀어 행음하게 하고 우상의 제물을 먹게 하였다.”고 책망하셨습니다. 이스라엘 왕 아합은 바알이란 우상을 숭배하는 이세벨이란 이방 여자를 아내로 맞아들였습니다. 이세벨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나님을 버리고 바알이란 우상을 숭배하도록 여호와 신앙을 탄압했습니다(열왕기상 16:31). 그래서 성경에서 이세벨은 하나님을 대적하고 성도를 타락시키는 사악한 우상 숭배자를 상징합니다. 두아디라 교회에는 이세벨처럼 간음과 우상숭배로 성도들을 타락시킨 사악한 여자가 있었는데 교회가 징계를 하지 않았기 때문에 예수님께 책망을 받은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이세벨이 내 종들을 가르쳐 꾀어 행음하게 하고 우상의 제물을 먹게 하였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이세벨이 두아디라 교회의 성도들을 꾀어서 간음을 하고 우상을 숭배하게 했다는 말씀입니다. 이세벨은 무슨 일로, 어떻게, 두아디라 교회의 성도들을 유혹하고 타락시켰느냐? 직업과 경제적인 문제로 성도들의 신앙을 타락시켰습니다. 두아디라는 상업 도시인데 당시의 비문(碑文)에 의하면 두아디라에는 동업조합(同業組合)이란 단체가 있었습니다. 동업조합이 무엇이냐? 동업조합이란 같은 직종에 종사하는 사람들이 친목과 조합의 이익을 목적으로 설립한 직능단체입니다. 두아디라는 모직, 의복 제조, 피혁, 도자기, 염색 등 각 직종마다 조합이 설립돼 있었는데 특히 염색을 하는 염료업(染料業)이 유명했습니다. 사도행전 16:14,에 나오는 자주 장사 루디아도 두아디라 출신의 염료 장사였습니다.

두아디라 교회 성도들의 신앙을 타락시키는 것은 조합원의 이익을 대변하기 위해 설립된 동업조합이었습니다. 동업조합이란 오늘날의 노조와 성격이 유사한 조직인데 동업조합에 가입하지 않으면 자신의 직업에 종사할 수 없었고 직장과 사회로부터 추방을 당했습니다. 그래서 대부분의 사람들은 자기가 속한 직종의 조합에 가입했습니다. 그러면 동업조합의 가입과 신앙이 어떤 관계가 있느냐? 당시에 조합은 각 조합마다 그들이 섬기는 수호신(守護神)이 있었는데 조합원은 의무적으로 조합의 수호신을 숭배하도록 요구했습니다. 조합원들은 주기적으로 모여 조합의 수호신에게 제사를 드렸는데 우상에게 바쳐진 음식은 신이 내린 선물로 받아먹어야 하고 우상의 제사에는 남녀 간의 성적 간음 순서가 있었습니다. 성적 클라이막스를 신과의 교합으로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그리스도인이 우상의 제사에 참여하여 성적 간음을 한다는 것은 상상할 수도 없습니다. 그러나 신앙의 문제로 조합을 탈퇴하면 직장과 사회로부터 추방되고 경제적으로 불이익을 받기 때문에 조합을 탈퇴하기 어려웠습니다.

그런데 이세벨이란 여자가 신앙이냐? 조합이냐?’의 기로에서 방황하고 있는 두아디라 교회의 성도들에게 그럴듯한 타협안을 제시했습니다. “조합을 탈퇴하면 현실적으로 살아가기가 어렵지 않느냐? 조합이 요구하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우상의 제사에 참여하지만 우리는 우상을 섬기는 것도 아니고 예수를 배반한 것도 아니다. 우리가 살아가는 이 세상은 완전하지 못하고 인간도 연약하고 불완전한 존재이기 때문에 현실에 적응하지 않으면 살아갈 수 없다는 말로 성도들이 조합의 우상을 숭배하고 간음을 행하게 한 것입니다. “조합의 신을 섬기지 않으면 직장과 사회로부터 쫓겨나고 먹고 살아갈 방법이 없다. 조합의 요구이기 때문에 제사에 참여하지만 우리가 우상을 숭배하는 것은 아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연약함을 이해해주시고 용서해주실 것이라고 성도를 타락시킨 것입니다. 이처럼 인간이 하나님께 불순종하고 죄를 범할 때는 언제나 그럴듯한 변명으로 자신의 행위를 정당화합니다.

두아디라 교회는 겉으로 보기에는 번창하고, 열심도 있고, 헌금도 많이 들어오고 아무 문제가 없었습니다. 그러나 두아디라 교회는 죄악과 타협했고 우상을 숭배했습니다. 하나님과 우상은 함께할 수 없고 기독교와 우상숭배는 공존할 수 없습니다. 아무리 교회가 크고 아무리 세상 사람들에게 칭찬을 받아도 하나님 말씀을 지키지 않는 교회는 참된 교회가 될 수 없습니다. 하나님은 교회의 크기나, 성도의 숫자나, 헌금과 같은 물량적인 것으로 판단하시지 않습니다. 하나님 말씀 위에 서 있지 않은 교회는 기독교의 단체나 기독교적 친교의 모임은 될지 몰라도 교회는 될 수 없습니다. 이세벨은 신앙과 사업은 별개의 문제라고 주장하며 성도들을 타락시켰는데 교회가 징계를 하지 않아 책망을 받은 것입니다.

교회는 이세벨 같은 기회주의자와 수정주의자를 용납하면 안 됩니다. 예수님께서는 네게 책망할 일이 있노라. 자칭 선지자라 하는 여자 이세벨을 네가 용납함이니 그가 내 종들을 가르쳐 꾀어 행음하게 하고 우상의 제물을 먹게 하였다고 책망하셨습니다. 그리스도인은 아무리 어려운 환경에 처해도 죄악과 타협하면 안 됩니다. 기독교에서 보수주의 신앙과 자유주의 신앙의 차이가 무엇인지 아십니까? 보수주의는 하나님 말씀을 그대로 믿고 지키지만 자유주의는 현실과 타협하고 세상을 따라갑니다. 자유주의자들은 세상이 변하고 시대가 변했으니 교회도 시대에 맞게 변해야 한다고 주장합니다. 그러나 하나님 말씀은 아무리 시대와 환경이 변해도 변하지 않는 만고불변의 진리라는 것을 명심하셔야 합니다.

두아디라 교회는 이단을 징계하지 않고 용납했다고 책망을 받았습니다. 에베소 교회는 너무 법과 원칙을 강조하다 사랑을 잃었다고 책망을 받았고 반대로 두아디라 교회는 사랑과 은혜를 강조하며 이단에 징계를 하지 않아서 책망을 받았습니다. 두아디라 교회처럼 징계가 없다고 좋은 교회가 되고 은혜로운 교회가 되는 것은 아닙니다. 마땅히 징계를 해야 할 때 징계를 하지 않는 것은 진리를 포기하고 불의를 용납하는 것과 같습니다. 징계도 사랑의 한 방법입니다. 사랑하는 아들이 잘못된 길로 가면 내버려 두는 것이 사랑입니까? 징계를 해서라도 바른길로 가게 하는 것이 사랑입니까? 진정으로 자식을 사랑한다면 잘못된 길로 가도록 내버려두지 않을 것입니다. 칼빈 선생님은 하나님의 사랑은 징계 속에서 구체화된다.”고 말씀하셨습니다. 두아디라 교회는 이단에게 징계를 하지 않아서 책망을 받았습니다. 징계가 없는 교회는 진리에서 떠난 잘못된 교회라는 것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3. 예수님께서는 끝까지 믿음을 지켜 승리한 자들에게 두 가지 상급을 약속하셨습니다.

두 가지의 상급은 만국을 다스리는 권세와 새벽 별을 주시겠다는 약속입니다. 먼저 만국을 다스리는 권세를 주시는 상급입니다. 본문 26절에서 이기는 자와 끝까지 내 일을 지키는 그에게 만국을 다스리는 권세를 주리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충성된 성도들에게 만국을 다스리는 권세를 주시겠다는 말씀입니다. 예수님께서 세상을 다스리시고 죄인들을 심판하실 때 예수님과 함께 통치와 심판에 참여한다는 말씀입니다. 예수님께서 세상을 심판하실 때는 숨겨진 진실과 베일에 가려진 인간의 죄악이 다 드러날 것입니다. 악하고 불의한 자들의 감추어진 죄악이 드러나 책망을 받고 반대로 오른손이 한 일을 왼손이 모르게 한 진실한 성도들의 의로운 행위도 드러나 예수님께 칭찬과 상을 받게 될 것입니다. 끝까지 믿음을 지킨 성도가 예수님과 함께 만국을 다스리는 권세를 누린다는 것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두 번째 상급은 새벽별을 주리라는 약속입니다. 새벽별이 무엇이냐? 요한계시록 22:16,에 의하면 새벽별은 예수님을 상징합니다. 변절하지 않고 끝까지 믿음을 지킨 충성된 자들이 예수님의 특별한 사랑과 은혜를 받는다는 말씀입니다. 또한 별은 왕권을 상징합니다(민수기 24:17). 어떤 왕권이냐? 예수님의 왕권입니다. 새벽별이 밝아오는 새벽하늘을 비추는 것처럼 그리스도인은 장차 오는 세상에서 예수님과 함께 세상을 다스리는 영광에 참여한다는 말씀입니다. 진실하고 충성된 그리스도인은 만왕의 왕이신 예수님과 함께 만국을 다스리는 권세를 누리며 새벽별이신 예수님과 함께 메시아의 영광에 참여한다는 뜻입니다.

그리스도인은 천국에서 누릴 영광과 상급을 소망하며 천국의 상급과 영광을 확신해야 합니다. 감옥에 갇혀 죽음을 앞두고 있던 바울 사도는 디모데에게 보낸 편지에서 “......나의 떠날 시각이 가까웠도다. 나는 선한 싸움을 싸우고, 나의 달려갈 길을 마치고, 믿음을 지켰으니, 이제 후로는 나를 위하여 의의 면류관이 예비되었으므로 주 곧 의로우신 재판장이 그 날에 내게 주실 것이며 내게만 아니라 주의 나타나심을 사모하는 모든 자에게라고 말씀하셨습니다(디모데후서 4:6-8). 바울 사도는 감옥에 갇혀 죽음을 앞두고 있지만 천국에서 예수님께 상을 받고 예수님과 누릴 영광을 기대하며 신령한 기쁨으로 충만했던 것입니다. 얼마나 확신에 찬 믿음입니까? 그리스도인은 바울 사도처럼 나는 오늘 죽어도 천국에 간다는 확신을 가져야 합니다. 천국에 가는데 죽음이 왜 두렵습니까? 강하고 담대한 믿음으로 승리한 성도가 상을 받고 천국의 영광에 참여한다는 것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말씀을 맺겠습니다. 첫째, 두아디라 교회는 나중 행위가 처음 행위보다 더 좋았다고 칭찬을 받았습니다. 그리스도인은 처음보다 나중이 더 좋아야 합니다. 믿음도 더 좋아져야 하고 사랑과 우정도 사귈수록 더 깊고 더 좋은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그리스도인은 처음보다 나중이 더 좋은 사람이 되셔야 한다는 것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둘째, 두아디라 교회는 불의한 이세벨을 징계하지 않았다고 책망을 받았습니다. 성경은 히브리서 12:8,에서 징계가 없으면 사생자요 친아들이 아니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징계가 없는 사랑은 원수의 입맞춤과 같습니다. 징계도 사랑의 한 방법이라는 것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셋째, 예수님은 끝까지 믿음을 지키고 승리한 두아디라 교회 성도들에게 상급으로 만국을 다스리는 권세와 새벽별을 주시겠다고 약속하셨습니다. 믿음을 지키고 승리한 자들에게 특별한 상급과 영광을 약속하신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두아디라 교회의 성도들에게 약속하신 영광과 상급을 받아 누리시는 성도 여러분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2021, 8, 2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