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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날 계수하는 지혜를 주소서

진리의증인 2021. 7. 23. 05:38

 

이 정만 목사

블로그(네이버:논산동산교회, 다음:논산동산교회)

 

1주여 주는 대대에 우리의 거처가 되셨나이다, 2산이 생기기 전, 땅과 세계도 주께서 조성하시기 전 곧 영원부터 영원까지 주는 하나님이시니이다, 3주께서 사람을 티끌로 돌아가게 하시고 말씀하시기를 너희 인생들은 돌아가라 하셨사오니 4주의 목전에는 천 년이 지나간 어제 같으며 밤의 한 순간 같을 뿐임이니이다, 5주께서 그들을 홍수처럼 쓸어가시나이다, 그들은 잠깐 자는 것 같으며 아침에 돋는 풀 같으니이다, 6풀은 아침에 꽃이 피어 자라다가 저녁에는 시들어 마르나이다, 7우리는 주의 노에 소멸되며 주의 분내심에 놀라나이다, 8주께서 우리의 죄악을 주의 앞에 놓으시며 우리의 은밀한 죄를 주의 얼굴 빛 가운데에 두셨사오니 9우리의 모든 날이 주의 분노 중에 지나가며 우리의 평생이 순식간에 다하였나이다, 10우리의 연수가 칠십이요 강건하면 팔십이라도 그 연수의 자랑은 수고와 슬픔뿐이요, 신속히 가니 우리가 날아가나이다, 11누가 주의 노여움의 능력을 알며 누가 주의 진노의 두려움을 알리이까 12우리에게 우리 날 계수함을 가르치사 지혜로운 마음을 얻게 하소서” (시편 90:1-12)

 

서론: 시편 90편은 이스라엘 민족의 지도자인 모세의 기도입니다. 이 시가 언제 기록됐는지 정확한 연대는 알 수 없지만 모세의 말년에 기록되지 않았나 생각됩니다. 왜냐하면 시의 내용이 모세의 회고록으로 불리는 신명기 사상과 비슷하기 때문입니다. 모세는 우리 날 계수함을 가르치사 지혜로운 마음을 얻게 하소서라고 기도했습니다(12). 인생이 얼마나 짧은지 깨닫고 인생을 지혜롭게 살아갈 수 있도록 지혜를 달라고 기도한 것입니다.

이 시간에는 우리 날 계수하는 지혜를 주소서란 제목으로 함께 은혜를 받고자 합니다.

 

1. 인간은 죽으면 흙으로 돌아가고 티끌로 돌아갑니다.

모세는 본문 3절에서 주께서 사람을 티끌로 돌아가게 하시고 너희 인생들은 돌아가라고 명령하셨기 때문에 인간은 죽어서 티끌로 돌아간다고 말씀하셨습니다. 하나님은 에덴동산에서 선악과를 따먹은 아담에게 형벌을 내리시면서 “......너는 흙이니 흙으로 돌아갈 것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창세기 3:19). 하나님께서 인류의 시조인 아담에게 흙으로 돌아가라고 명령하셨기 때문에 인간은 죽으면 흙으로 돌아가는 것입니다. 흙으로 돌아간다는 말씀의 뜻이 무엇이냐? 죽는다는 뜻입니다. 죽음에서 예외가 되는 사람은 없습니다. 이스라엘 왕 솔로몬은 그가 모태에서 벌거벗고 나왔은즉 그가 나온 대로 돌아가고 수고하여 얻은 것을 아무것도 자기 손에 가지고 가지 못한다고 말했습니다(전도 5:15). 빈손으로 왔다 빈손으로 간다는 공수래공수거(空手來空手去)와 같은 뜻입니다. 빈손으로 왔다 빈손으로 가는데 왜 싸우고, 원수를 만들고, 원망을 듣고 살아갑니까? 인류의 시조인 아담의 이름은 인간, 인류, 남자, , 티끌, 먼지 등의 뜻을 가지고 있습니다. 인간은 흙과 티끌과 먼지와 같은 존재인데 왜 교만하고 도토리 키재기를 합니까?

세상에는 인간에 대한 상반된 두 가지 주장이 있습니다. 먼저 인간을 지나치게 과대평가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이 사람들에게는 인간이 신이요 신이 인간입니다. 이런 사람들의 마음에는 인간이 신의 자리에 앉아있기 때문에 이 사람들은 하나님을 믿지 않습니다. 다음으로 인간을 육적인 존재로 보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이들은 인간을 동물보다 조금 높은 수준으로 봅니다. 그래서 이 사람들은 동물처럼 감정과 정욕에 내맡겨 살아갑니다. 이런 사람들도 인간을 과대평가하는 사람들과 별 차이가 없습니다. 왜냐하면 이런 사람들에게 영적인 품성이나, 도덕성이나, 정의감이나, 이성적인 행동을 기대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성경은 인간에 대해 어떻게 말씀하고 있습니까? 성경이 말씀하고 있는 인간은 흙이요 티끌입니다. 성경은 하나님께서 흙으로 사람의 모양을 만드시고 거기에 생기(生氣) 즉 영혼을 불어넣으시자 사람이 되었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2:7). 인간은 흙에서 태어나서 흙에서 난 것을 먹고 살다가 죽으면 우리 몸은 흙으로 돌아가고 우리 영혼은 하나님께로 돌아갑니다.

다음으로 모세는 인간의 죽음의 행렬을 거대한 홍수에 휩쓸려 떠내려가는 것으로 묘사했습니다. 모세는 마치 홍수에 휩쓸려 떠내려가는 것처럼 수많은 사람이 죽어가는 것을 눈으로 목격했습니다. 이스라엘 민족이 가나안 땅으로 돌아가는 것을 반대한 애굽 사람들은 장자가 죽었고(출애굽기 12), 이스라엘 민족을 추격한 애굽군대는 모두 홍해에 빠져 죽었으며(출애굽기 14), 고라의 반역으로 수천 명이 죽고(민수기 16), 발람의 유혹에 넘어가 모압과 미디안의 우상숭배 제사에 참여한 죄로 이스라엘 남자가 24천 명이나 죽었습니다(민수기 25:9). 그리고 모세의 인도로 애굽에서 나온 이스라엘 민족은 광야에서 다 죽고 여호수아와 갈렙과 20세 이하의 어린 사람들만 가나안 땅에 들어갔습니다(민수기 26:63-65).

오늘날 전 세계적으로 하루에 약 30만 명이 죽는다고 합니다. 매일 죽어가는 30만 명을한 자리에서 볼 수 있다면 죽음의 행렬은 거대한 홍수에 휩쓸려 떠내려가는 것과 같을 것입니다. 세월이라는 열차는 모든 인간을 태우고 죽음이라는 인생의 종착역을 향해 달려갑니다. 인간은 자신의 의지와 상관없이 죽음이라는 인생의 종착역을 향해 달려가는 것입니다. 인간이 어떻게 해야 할까요? 인간에게는 두 가지 길이 있습니다. 사망과 멸망으로 가는 길이 있고 영생과 천국으로 가는 길이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거부하면 사망과 멸망의 길로 가고 예수를 믿으면 천국에서 영생복락을 누립니다. 인간은 자신의 삶에 의해 천국과 지옥이라는 인간의 최후의 운명이 결정됩니다. 그러므로 인간은 겸손하고 진실하고 의로운 삶을 살아야 합니다. 교만하고 어리석은 인간은 죽음과 함께 흙으로 돌아가고 티끌로 돌아가지만 진실한 믿음으로 산 성도는 천국에서 영생복락을 누린다는 것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2. 허무한 인생과 실패한 인생이 되지 않도록 최선을 다하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모세는 인생을 잠깐 잠을 자는 것에 비유했습니다(5). 고된 노동을 하거나 하기 싫은 일을 할 때는 시간이 더디게 가지만 잠을 잘 때는 시간이 얼마나 빨리 갑니까? 한잠 자고 나면 날이 바뀌고 새날이 오는 것처럼 우리 인생은 그렇게 금방 지나갑니다.

또 모세는 인생의 허무함을 아침에 피었다가 저녁에는 시들고 말라버리는 들의 꽃과 풀에 비유했습니다. 모세는 본문 5절 하반절에서 6절에 그들은......아침에 돋는 풀 같으니 풀은 아침에 꽃이 피어 자라다가 저녁에는 시들어 마르나이다.”라고 말했습니다. 아침에 싹이 나서 자라다가 저녁에는 말라 없어지는 풀처럼 인생이 너무 허무하고 덧없다는 뜻입니다. 어느 날 이사야 선지자가 광야에서 꽃과 풀을 보고 있을 때 갑자기 뜨거운 열풍이 불어와서 꽃과 풀이 시들고 마르는 것을 목격했습니다. 그때 하나님께서 말하는 자의 소리여 외치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이사야가 내가 무엇이라 외치리이까?”라고 반문하자, 하나님께서 모든 육체는 풀이요, 그의 모든 아름다움은 들의 꽃과 같으니, 풀이 마르고 꽃이 시듦은 여호와의 기운이 그 위에 붊이라. 이 백성은 실로 풀이로다. 풀은 마르고 꽃은 시드나 우리 하나님의 말씀은 영원히 서리라 하라고 말씀하셨습니다(이사야 40:6-8). 하나님께서는 인생을 아침에 피었다가 저녁이 되면 시들고 마르는 꽃과 풀에 비유하신 것입니다.

모세는 “......우리의 평생이 순식간에 다하였다고 말했습니다(9). 순식간(瞬息間)이란 눈 한번 깜짝하거나 숨 한번 쉬는 극히 짧은 시간을 말합니다. 모세는 인생의 짧고 허무함을 눈 한번 깜짝하고 숨 한번 쉬는 시간에 비유한 것입니다. 하나님 없는 인생은 진짜 허무합니다. 왜냐하면 하나님 없는 인생은 죽음으로 모든 것이 끝나기 때문입니다.

다음으로 모세는 인생을 수고와 슬픔뿐이라고 말했습니다. 모세는 10절에서 우리의 연수가 70이요 강건하면 80이라도 그 연수의 자랑은 수고와 슬픔뿐이라고 말했습니다. 모세의 말처럼 우리의 연수는 70이요 강건하면 80입니다. 그러나 그 짧은 인생도 수고와 슬픔뿐입니다. 인생의 비극과 인간의 불행이 무엇이냐? 인간은 슬픔과 불행 중에도 헛된 일로 분주하고 하나님을 찾지 않는다는 데 있습니다. 환자는 자신이 병에 걸렸다는 것을 인정하고 의사의 치료와 지시를 잘 따라야 병을 고칠 수 있습니다. 환자가 자신의 병을 부정하고 의사의 지시를 따르지 않으면 절대로 병을 고칠 수 없습니다. 마찬가지로 인간도 자신의 문제가 무엇인지 알아야 성공적인 인생을 살아갈 수 있습니다. 인간의 문제를 가장 잘 아시는 분이 누굽니까? 하나님입니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 인간을 만드셨기 때문입니다. 어떤 물건이든지 그 물건을 가장 잘 아는 사람은 그 물건을 만든 사람입니다. 그러므로 인간은 하나님을 만나야 인생의 목적을 발견하고 인생을 어떻게 살아갈지 결론이 나옵니다. 인간이 하나님을 거부하기 때문에 헛되고 헛된 삶을 사는 것입니다.

모세가 말하고자 하는 것은 인생의 허무나 염세주의가 아닙니다. 인간이 얼마나 연약하고 불완전한 존재인지 깨닫고 헛된 것 믿거나 헛된 것 의지하지 말고 하나님 믿고 하나님 의지하라는 것입니다. 인생의 허무를 극복할 수 있는 유일한 길은 예수 앞으로 나가서 예수를 믿어야 합니다. 그래야 신앙과 인생의 궁극적 목적인 사죄와 구원과 영생을 얻을 수 있습니다. 인간은 예수 앞으로 나가야 하고 허무한 인생과 실패한 인생이 되지 않도록 천국과 영생을 위해 최선을 다하는 삶을 살아야 한다는 것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3. 그리스도인은 인생의 날을 계수하며 살아가는 지혜로운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모세는 본문 12절에서 우리에게 우리 날 계수함을 가르치사 지혜로운 마음을 얻게 하소서라고 기도하고 있습니다. 우리의 날 계수하는 지혜를 달라는 말씀은 인생이 얼마나 짧은지 깨닫고 인생을 지혜롭게 살아갈 수 있도록 지혜를 달라는 기도입니다. 인생의 시간은 정해져 있습니다. 그러므로 인간은 자신에게 주어진 인생의 시간을 지혜롭게 잘 사용해야 합니다. 그러나 인간은 인생의 시간을 지혜롭게 사용할 줄을 모릅니다. 칼빈 선생님은 수학에 재치가 있고 백만의 백만을 헤아리는 사람도 자기 생명이 80년이라는 것은 헤아리지 못하며, 달이 우주에서 얼마나 떨어져 있고, 하늘과 땅 사이의 넓이가 얼마인지는 측량하면서도, 자기의 생명의 수한이 70이라는 것은 헤아리지 못한다.”고 말씀하셨습니다.

모세가 우리 날 계수함을 가르치사 지혜로운 마음을 얻게 하소서라고 기도한 것은 많은 인간이 생명의 유한함을 깨닫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칼빈 선생님은 인간은 여러 사람이 함께 있을 때는 인생의 허무함을 고백하면서도 혼자 있을 때는 영원히 살 생각을 한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우리들의 생각을 꿰뚫어 보고 말씀하신 것 같지 않습니까? 말은 바르게 하는데 엉뚱하게 행동하고 인생의 허무를 고백하면서도 헛된 것에 집착합니다. 인간이 얼마나 모순되고 이율배반적인 존재입니까? 그래서 인간에게 지혜가 필요한 것입니다.

지혜가 무엇이냐? 지혜는 자기 자신을 아는 데서부터 출발합니다. 어느 날 소크라테스는 그리스의 델포이(신탁으로 유명한 신, 신탁이란 신이 인간을 매개자로 자신의 뜻을 나타내는 것) 신으로부터 세상에서 가장 지혜롭다는 말을 들었습니다. 그래서 소크라테스는 자기가 정말 세상에서 가장 지혜로운 사람인지 알아보기 위해 세상에서 가장 지혜롭다는 사람들을 찾아 나섰습니다. 소크라테스가 제일 먼저 찾아간 사람은 당대의 현자로 모든 사람들의 존경을 받고 있는 한 정치가였습니다. 그러나 소크라테스가 만나보니 이 정치가는 지혜롭지도 않고 소크라테스보다 지혜가 없었습니다. 소크라테스가 정치가를 지혜가 없다고 판단한 것은 세상에는 자기가 모르는 것과 자기가 모르는 세계가 있다는 것을 알지 못하고 자기는 모든 것을 다 알고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반면에 소크라테스는 세상에는 자신이 알지 못하는 것이 있다는 것을 알고 있다는 점에서 정치가보다 지혜로웠습니다.

소크라테스가 두 번째로 찾아간 사람은 시인(詩人)이었습니다. 시인도 소크라테스보다 지혜가 없었습니다. 시인이 시를 쓰는 것은 지혜가 있어서가 아니라 시에 대한 소질과 영감에 의해 시를 쓰고 있었습니다. 또한 시인이 아름답고 좋은 말을 많이 사용하고 있었지만 시인 자신도 그 말의 뜻을 잘 모르고 있었습니다. 시인의 더 한심한 점은 그가 시인으로 명성이 있기 때문에 자기가 세상에서 가장 지혜로운 사람이라고 착각하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소크라테스가 시인도 지혜가 없다고 판단한 것입니다.

마지막으로 소크라테스는 한 장인(匠人,기술자,예술가)을 찾아갔습니다. 장인도 역시 지혜가 부족했습니다. 장인은 자기가 당대에 최고로 훌륭한 기술자이기 때문에 자기의 능숙한 장인의 솜씨로 다른 모든 중대한 일들도 잘 해결할 수 있을 것이라고 착각하고 있었습니다. 소크라테스는 세 사람의 지혜자를 만난 후 자기는 무엇이든지 다 알고 있다는 인간의 오만한 생각이 참된 지혜를 가로막고 있다고 말했습니다. 오늘날 지식이 얼마나 세분화되어 있습니까? 자기 전공분야가 아니면 다 무식하고 다 문외한입니다. 진짜 무식한 사람이 어떤 사람이냐? 세상에는 자기가 모르는 세계와 자기가 모르는 분야가 있다는 것을 모르는 사람입니다. 그리스도인은 정말 지혜롭고 겸손한 사람이 돼야합니다.

모세는 본문 시편 90:1,에서 주는 대대에 우리의 거처가 되셨나이다. 산이 생기기 전, 땅과 세계도 주께서 조성하시기 전 곧 영원부터 영원까지 주는 하나님이시다고 고백했습니다. 하나님만이 우리의 영원한 거처와 안식처가 되신다는 말씀입니다. 하나님은 인간을 죄에서 구원하사 영원한 생명을 주시기 위해 예수 그리스도를 이 땅에 보내셨습니다. 그러므로 예수를 믿어야 죄에서 구원받고 천국에서 영생복락을 누립니다. 지나온 세월을 한 번 돌이켜 보시기 바랍니다. 얼마나 바쁘고 분주하게 살았습니까? 우리들이 정말 가치 있고 정말 중요한 일로 바쁘고 분주했을까요? 솔로몬의 고백처럼 헛되고 헛된 일로 바쁘고 분주하지는 않았을까요? 그리스도인은 인생의 날을 계수하며 지혜로운 삶을 살아야 합니다.

모세는 우리의 날을 계수하는 지혜를 달라고 기도했습니다. 어떻게 사는 것이 지혜롭게 사는 것이냐? 어거스틴(Augustine)우리는 매일 당하는 그 날을 우리 일생의 최후의 날과 같이 여겨야한다고 말했습니다. 오늘이 내 인생의 마지막 날이라는 마음과 자세로 살아야한다는 뜻입니다. “오늘이 내 인생의 마지막 날이라는 마음가짐으로 살아간다면 인생을 훨씬 아름답고 멋지게 살아갈 수 있을 것입니다. 예수의 이름으로 사랑과 은혜를 베풀고 세상의 빛과 소금으로 선하고 의롭게 살아야 합니다. 인생의 날을 계수하며 세상의 빛과 소금으로 아름답고 지혜롭게 살아가시는 성도 여러분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21, 7, 2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