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이야기

영혼의 생수 예수

진리의증인 2021. 4. 30. 10:32

이 정만 목사

블로그(네이버:논산동산교회, 다음:논산동산교회)

 

13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이 물을 마시는 자마다 다시 목마르려니와 14내가 주는 물을 마시는 자는 영원히 목마르지 아니하리니 내가 주는 물은 그 속에서 영생하도록 솟아나는 샘물이 되리라 15여자가 이르되 그런 물을 내게 주사 목마르지도 않고 또 여기 물 길으러 오지도 않게 하옵소서 16이르시되 가서 네 남편을 불러 오라 17여자가 대답하여 이르되 나는 남편이 없나이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네가 남편이 없다 하는 말이 옳도다 18너에게 남편 다섯이 있었고 지금 있는 자도 네 남편이 아니니 네 말이 참되도다 19여자가 이르되 주여 내가 보니 선지자로소이다 20우리 조상들은 이 산에서 예배하였는데 당신들의 말은 예배할 곳이 예루살렘에 있다 하더이다 21예수께서 이르시되 여자여 내 말을 믿으라 이 산에서도 말고 예루살렘에서도 말고 너희가 아버지께 예배할 때가 이르리라 22너희는 알지 못하는 것을 예배하고 우리는 아는 것을 예배하노니 이는 구원이 유대인에게서 남이라 23아버지께 참되게 예배하는 자들은 영과 진리로 예배할 때가 오나니 곧 이 때라 아버지께서는 자기에게 이렇게 예배하는 자들을 찾으시느니라 24하나님은 영이시니 예배하는 자가 영과 진리로 예배할지니라 25여자가 이르되 메시야 곧 그리스도라 하는 이가 오실 줄을 내가 아노니 그가 오시면 모든 것을 우리에게 알려 주시리이다 26예수께서 이르시되 네게 말하는 내가 그라 하시니라 27이 때에 제자들이 돌아와서 예수께서 여자와 말씀하시는 것을 이상히 여겼으나 무엇을 구하시나이까 어찌하여 그와 말씀하나이까 묻는 자가 없더라 28여자가 물동이를 버려두고 동네로 들어가서 사람들에게 이르되 29내가 행한 모든 일을 내게 말한 사람을 와서 보라 이는 그리스도가 아니냐 하니 30그들이 동네에서 나와 예수께로 오더라” (요한복음 4:13-30)

 

서론: 예수님께서 제자들과 예루살렘에서 갈릴리로 가시다가 사마리아의 수가라는 동네에 도착하셨습니다. 마침 점심때가 돼서 제자들은 점심을 준비하기 위해 마을로 들어갔고 예수님 혼자 우물에 앉아계시는데 한 사마리아 여자가 물을 긷기 위해 우물에 도착했습니다. 예수님께서 여자에게 마실 물을 조금 달라.”고 말씀하시자 여자는 예수님께 당신은 유대인인데 사마리아 여자인 나에게 어떻게 물을 달라 하느냐?”고 거절했습니다. 원래 유대인과 사마리아인은 아브라함의 같은 후손이지만 이스라엘이 남과 북으로 분단된 후에는 상종을 하지 않을 정도로 감정의 골이 깊었습니다. 그러나 사실은 유대인에 대한 사마리아인의 적대감보다 물 한 그릇도 줄 수 없을 만큼 여자의 마음이 세상을 향해 굳게 닫혀져 있었기 때문에 물을 주기 거절한 것입니다. 이 여자는 결혼에 다섯 번이나 실패하고 현재 여섯 번째 남자의 소실로 살아가고 있습니다. 그런데 여자가 우물에서 예수님과 대화를 나누면서 죄책감과 수치심에서 구원받고 자유와 평화를 얻었습니다. 여자는 우물에 물동이를 버려두고 마을로 달려가서 사람들에게 나의 부끄러운 과거를 말씀하신 분을 와 보라. 이 분이 메시야(세상을 구원할 주님)가 아니냐?”고 외쳤습니다. 결혼에 다섯 번이나 실패하고 세상과 담을 쌓고 살아가던 여자가 예수님을 만나 죄책감과 수치심에서 구원을 받고 새로운 인생을 시작한 것입니다. 예수님은 사마리아 여자에게 "내가 영혼의 생수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이 시간에는 영혼의 생수 예수라는 제목으로 함께 은혜를 받고자 합니다.

 

1. 영혼의 생수이신 예수님만이 인생에 참된 만족과 평화를 주십니다.

사마리아 여자가 왜 곤고한 삶을 살았습니까? 인생의 목적과 인생관이 잘못됐기 때문입니다. 인간은 물질적 풍요나 성적쾌락으로는 절대로 참된 만족과 평화를 얻을 수 없습니다. 생물학적으로 보면 인간도 동물의 한 종()입니다. 그래서 인간도 동물과 비슷한 점이 있습니다. 예를 들면 동물이 본능에 의해 짝짓기를 하는 것처럼 남녀의 성관계도 본능에 따라 이뤄지는 경우가 있습니다. 그러나 사랑이 없는 성관계는 참된 만족을 얻지 못한다는 데 문제가 있습니다. 사랑이 없는 성관계는 허무와 좌절감과 남깁니다. 그래서 방탕한 인간들이 언짢은 기분과 허무한 감정을 극복하기 위해 더 자극적인 쾌락을 추구하는 것입니다.

사마리아 여자는 여섯 명의 남자를 전전했습니다. 잇따라 결혼에 실패한 사마리아 여자는 수치심과 죄책감으로 괴로워하면서도 남자에 대한 집착을 버리지 못했습니다. 그러나 인간에게는 물질이나 육신의 쾌락이나 세속적인 것으로 채워지지 않는 영역이 있습니다. 그것이 무엇이냐? 하나님을 향하고 하나님을 찾는 영적본성입니다. 성경은 그것을 인간의 영혼이라고 합니다. 인간은 영혼과 육신이라는 두 가지 본질로 구성돼 있는데 영혼이 육신보다 고등한 위치에 있습니다. 그러므로 영혼이 만족하지 못하면 돈이나 명예나 쾌락이나 무엇으로도 참된 만족을 얻을 수 없습니다. 영혼이 만족하지 못하면 참된 만족을 누릴 수 없는 것입니다. 영혼의 만족을 어떻게 얻느냐? 예수를 통해서 얻고 하나님과의 관계에서 얻습니다.

일천 명의 아내를 거느리고 평생 부귀영화를 누렸던 이스라엘 왕 솔로몬이 그의 인생을 결산하고 내린 결론이 무엇입니까? “.......헛되고 헛되며 헛되고 헛되니 모든 것이 헛되다.”고 고백했습니다. 솔로몬은 전도서 12절 한 절에서 헛되다는 표현을 무려 다섯 번이나 사용하여 헛되게 산 자신의 인생을 후회하고 탄식한 것입니다. 솔로몬의 고백처럼 예수가 없는 인생은 헛되고 헛됩니다. 예수가 없는 인생은 이 세상을 다 소유해도 참된 만족을 얻을 수 없습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 자신을 영혼의 생수라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사마리아 여자의 인생에는 영혼의 생수인 예수가 없었습니다. 그래서 곤고하고 목마른 삶을 산 것입니다. 영혼의 생수가 되시는 예수님만이 인생에 참된 만족과 평화와 참된 자유를 주신다는 것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2. 영혼의 생수이신 예수님을 만나 죄책감과 수치심과 영적 갈증에서 해방된 사마리아 여자 는 사람들에게 달려가 그녀가 만난 예수(복음)를 전했습니다.

사마리아 여자는 남자를 여섯 명이나 전전한 기구한 운명을 가졌습니다. 그래서 사마리아 여자는 죄책감과 수치심에 괴로워하며 세상을 향해 담을 쌓고 살았습니다. 사마리아 여자는 사람들의 홍수 속에서 뼈가 저리도록 외롭고 고독한 삶을 산 것입니다. 이스라엘에서는 무더운 낮 시간을 피해 아침저녁의 시원한 시간에 물을 긷습니다. 그러나 사마리아 여자는 사람 만나는 것을 피하기 위해 일부러 한낮의 무더운 시간에 물을 길으러 온 것입니다.

사마리아 여자는 물을 좀 달라고 하시는 예수님께 유대인으로 어떻게 사마리아인인 나에게 물을 달라고 하느냐며 거절했습니다. 유대인은 사마리아인과 상종을 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인자하신 예수님은 사마리아 여자와 말씀을 계속하셨습니다. “네가 만일 하나님의 구원의 선물과 또 너에게 물을 좀 달라 하는 사람이 누구인지 알았더라면 네가 그에게 생수를 구하였을 것이요 그가 너에게 생수를 주었으리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러나 여자는 예수님 말씀을 이해하지 못하고 동문서답을 합니다. 예수님은 수치심과 열등감에서 그녀를 해방시켜 줄 성령(聖靈)과 하나님 은혜를 생수(生水, living water)로 말씀하셨는데 여자는 생수의 영적 의미를 이해하지 못하고 먹는 생수로 생각한 것입니다. 여자가 주여 물길을 그릇도 없고 이 우물은 깊은데 어디서 생수를 얻는다고 하십니까? 우리 조상 야곱이 이 우물을 우리에게 주셨고 또 여기서 자기와 자기 아들들과 짐승이 다 마셨는데 당신이 야곱보다 위대합니까?”라고 말했습니다. 이 우물물보다 좋은 생수가 어디에 있느냐? 당신이 야곱보다 위대하냐고 비아냥거린 것입니다.

예수님은 사마리아 여자가 생수의 의미를 이해하지 못하고 있다는 것을 아시고도 말씀을 계속하셨습니다. “.......이 물을 마시는 자마다 다시 목마르려니와 내가 주는 물을 마시는 자는 영원히 목마르지 아니하리니 내가 주는 물은 그 속에서 영생하도록 솟아나는 샘물이 되리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무슨 뜻입니까? “네가 자랑하는 야곱의 우물물은 마셔도 목이 마르고 갈증이 나지만 나를 믿고 내가 주는 영혼의 생수를 마시면 영원히 목마르지 않는다.”는 뜻입니다. 그러나 여자는 생수의 영적 의미를 깨닫지 못하고 동문서답을 계속합니다. “그런 물을 내게 주사 목마르지도 않고 또 여기 물 길으러 오지도 않게 하옵소서.”라고 말했습니다. 여자는 자신의 목마름은 마시는 물에 있는 것이 아니라 잘못된 생활과 하나님과의 잘못된 관계에서 비롯된 죄책감과 영적 목마름이라는 것을 깨닫지 못한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사마리아 여자에게 문제의 핵심을 말씀하셨습니다. 예수님은 여자에게 가서 네 남편을 불러오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여자가 움찔하며 기가 죽은 목소리로 나는 남편이 없나이다.”라고 대답했습니다. 예수님께 이보다 좋은 물이 어디에 있느냐? 당신이 야곱보다 크냐?”고 비아냥거리던 여자가 가서 네 남편을 불러오라는 말씀에 기가 죽고 꼬리를 내린 것입니다. 예수님은 남편이 없다는 여자의 주장을 인정하시면서도 그녀의 잘못된 생활을 깨우치고 지적하셨습니다. “네가 남편이 없다 하는 말이 옳다. 너에게 남편 다섯이 있었고 지금 있는 자도 네 남편이 아니니 네 말이 참되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여자는 다섯 번 이혼을 당하고 지금 여섯 번째 남자의 소실로 살아가고 있습니다. 예수님은 처음부터 다 알고 계셨지만 아무것도 모른 척 그녀의 말도 안 되는 소리를 들어주신 것입니다. 여자가 주여 내가 보니 선지자로소이다라고 말했습니다. 예수님이 선지자 같이 보인다는 뜻입니다. 방탕하고 음란한 여자가 드디어 예수님을 알아보기 시작한 것입니다.

이윽고 여자는 예수님께 자신의 영적갈등을 호소했습니다. “우리 조상들은 이 산(그리심 산)에서 예배를 드렸는데 유대인들은 예루살렘(시온 산)에서 예배를 드려야 한다고 주장합니다. 예배를 어디서 드려야 합니까?”라고 물었습니다. 여자가 왜 이런 질문을 했느냐? 예배를 드려도 영혼의 평화와 기쁨을 얻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여자가 왜 예배를 드려도 영혼의 평화와 기쁨을 얻지 못했느냐? 예배를 드려도 가슴에 응어리진 수치심과 죄책감이 떠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여자가 하나님 은혜를 받고 영혼이 자유와 평화와 기쁨을 누리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하나님 은혜를 받을 준비가 돼 있어야 합니다. 하나님 은혜를 받을 준비가 무엇이냐? 수치심과 죄책감을 주는 부끄러운 생활을 청산해야 합니다. 남자관계를 깨끗하게 청산하고 정리해야하는 것입니다. 여러 남자를 전전하며 수치심과 죄책감에 사로잡혀서 예배를 드리는데 어떻게 하나님 은혜를 받겠습니까? 사마리아 여자는 아무리 예배를 드려도 수치심과 죄책감을 떨쳐버릴 수 없었습니다. 그래서 혹시 예배장소에 문제가 있지 않나?” 생각한 것입니다. 사마리아인은 그리심 산에서 예배를 드렸는데 유대인들은 예루살렘의 시온 산(예루살렘 솔로몬 성전)에서 예배를 드렸기 때문에 여자가 예배장소를 의심한 것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예배 장소는 문제가 되지 않는다고 말씀하셨습니다. 21절에 여자여 내 말을 믿으라. 이 산에서도 말고 예루살렘에서도 말고 너희가 아버지께 예배드릴 때가 이르리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예배 장소는 문제가 되지 않는다는 말씀입니다. 이어서 예수님은 사마리아인들의 잘못된 신앙을 지적하셨습니다. 22절에 너희 사마리아인들은 알지 못하는 것을 예배하고 우리는 아는 것을 예배한다. 그것은 구원이 유대인에게서 오기 때문이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유대인들은 모세 오경과 선지서, 시편, 역사서를 성경으로 믿고 받아들이지만 사마리아인들은 모세 오경만 믿고 선지서와 시편은 성경으로 인정하지 않았습니다. 성경을 부정하는 사마리아인들이 어떻게 정상적인 신앙생활을 할 수 있겠습니까? 그리고 사마리아인들은 구원이 베들레헴에서 탄생한 예수 그리스도라는 유대인을 통해 온다는 사실을 알지 못했습니다. 사마리아인들은 가장 중요한 구원의 원리를 모르고 있었던 것입니다.

다음으로 예수님은 하나님께 상달되는 참 예배와 하나님께서 받으시는 신령한 예배를 드리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본문 24,절에 하나님은 영이시니 예배하는 자가 영과 진리로 예배할지니라.”고 말씀하셨습니다. 하나님은 영이시기 때문에 시간과 장소의 구애를 받지 아니하십니다. 예배에서 장소는 문제가 되지 않는다는 말씀입니다. 다음으로 진리는 무엇이냐? 만고불변의 진리이신 하나님 말씀입니다. 만고불변의 진리이신 하나님 말씀에 근거한 예배를 드려야 한다는 뜻입니다. 하나님 말씀에 근거해서 마음과 뜻과 정성을 다해 예배를 드려야 하나님이 받으시는 참 예배가 되고 신령한 예배가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 말씀에 근거하지 않는 예배는 아무리 예배의식이 웅장하고 아무리 아름다운 찬송을 드려도 하나님은 그 예배를 받지 아니하신다는 것을 명심하셔야 합니다.

다음으로 이 불쌍한 사마리아 여자도 구원을 소망하고 메시야를 기다렸습니다. 아무리 추하고 불의한 인간도 인간답게 살고 싶다는 간절한 소망을 가지고 있는 것입니다. 여자가 메시야가 오면 모든 것을 우리에게 알려주실 것이라고 말하자 예수님은 너와 말하고 있는 내가 메시야다.”고 말씀하셨습니다. “내가 메시야다.”는 예수님 말씀을 듣는 순간 여자의 가슴에 거룩한 감정이 뜨겁게 불타올랐습니다. 엠마오 길의 두 제자가 우리에게 말씀하시고 우리에게 성경을 풀어 주실 때에 우리 속에서 마음이 뜨겁지 아니하더냐?”(24:32) 고백한 것처럼 여자가 거룩하고 뜨거운 감정을 체험한 것입니다. 사마리아 여자는 그리스도 안에서 새로운 피조물로 거듭 나고 세상과 인생에 새로운 눈이 열렸습니다. 예수님을 만나 수치심과 죄책감에서 해방되어 참된 자유와 평화를 얻고 인생의 목적을 발견한 것입니다.

사마리아 여자는 물동이를 버려두고 마을로 뛰어가 사람들에게 내가 행한 모든 일을 나에게 말해준 분을 와서 만나보라. 이 분이 메시야가 아니냐?”고 외쳤습니다. 죄책감과 수치심으로 세상과 담을 쌓고 살아가던 여자가 사람들을 찾아가 마치 다른 사람의 이야기를 하듯 자신의 수치스러운 과거를 스스럼없이 이야기하며 예수를 전한 것입니다. 사람이 예수를 만나고, 하나님 은혜를 받으면, 변하지 않을 수 없고 자신이 만난 예수를 전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예수님은 영혼의 생수입니다. 예수님만이 우리 마음과 우리 영혼에 참된 만족과 평화를 주시기 때문입니다. 그리스도인은 사마리아 여자처럼 사람들에게 자신이 만난 예수와 영혼의 생수가 되시는 예수님을 힘써 전해야 한다는 것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말씀을 맺겠습니다. 첫째, 영혼의 생수이신 예수님만이 인생에 참된 만족과 평화를 주신다고 말씀드렸습니다. 예수가 없는 인생은 세상을 다 소유해도 참된 만족이 없습니다. 예수를 인생의 주인으로 모시고 예수님을 잘 섬겨야 참된 만족과 평화를 누린다는 것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둘째, 예수님을 만나 죄책감과 수치심과 영적갈증에서 해방된 사마리아 여자는 사람들에게 달려가 그녀가 만난 예수(복음)를 전했습니다. 박해자 사울이 전도자 바울 사도가 되고 사마리아 여자가 복음전도자로 변한 것처럼 영혼의 생수이신 예수님을 온 세상 사람들에게 힘써 전하시는 성도 여러분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2021, 5, 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