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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님의 부활을 의심한 도마

진리의증인 2021. 4. 2. 04:36

이 정만 목사

블로그(네이버:논산동산교회, 다음:논산동산교회)

 

24열두 제자 중의 하나로써 디두모라 불리는 도마는 예수께서 오셨을 때에 함께 있지 아니한지라 25다른 제자들이 그에게 이르되 우리가 주를 보았다 하니 도마가 이르되 내가 그의 손의 못 자국을 보며 내 손가락을 그 못 자국에 넣으며 내 손을 그 옆구리에 넣어 보지 않고는 믿지 아니하겠노라 하니라 26여드레를 지나서 제자들이 다시 집 안에 있을 때에 도마도 함께 있고 문들이 닫혔는데 예수께서 오사 가운데 서서 이르시되 너희에게 평강이 있을지어다 하시고 27도마에게 이르시되 네 손가락을 이리로 내밀어 내 손을 보고 네 손을 내밀어 내 옆구리에 넣어 보라 그리하여 믿음 없는 자가 되지 말고 믿는 자가 되라 28도마가 대답하여 이르되 나의 주님이시요 나의 하나님이시니이다 29예수께서 이르시되 너는 나를 본 고로 믿느냐 보지 못하고 믿는 자들은 복되도다 하시니라.” (요한복음 20:24-29)

 

서론: 예수님의 열두 명의 제자 중에 도마라는 제자가 있습니다. 본문 24절에 열두 제자 중의 하나로써 디두모라 불리는 도마......”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히브리어 이름은 도마(타마 תאם), 헬라어 이름은 디두모(Δίδυμος 쌍둥이)입니다. 부활하신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나타나셨을 때 도마는 그 자리에 없었습니다. 제자들이 도마에게 부활하신 예수님에 대해 이야기하자 도마는 내가 예수님 손의 못 자국을 보고, 내 손가락을 예수님 손의 못 자국에 넣고, 내 손을 창에 찔린 예수님의 옆구리에 넣어 보지 않고는 믿지 못하겠다.”고 말했습니다. 예수님의 부활을 믿지 않고 의심한 것입니다. 그로부터 여드레가 지난 후 도마가 제자들과 함께 있을 때 예수님께서 오셨습니다. 도마를 위해 다시 찾아오신 것입니다. 예수님은 도마에게 네 손가락을 내밀어 내 손을 보고 네 손을 내밀어 내 옆구리에 넣어보라. 그리고 믿음 없는 자가 되지 말고 믿는 자가 되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부활하신 예수님을 본 도마는 나의 주님이시요 나의 하나님이십니다.”라고 고백했습니다. 그러자 예수님은 도마에게 너는 나를 본 고로 믿느냐, 보지 못하고 믿는 자들이 복이 있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이 시간에는 예수님의 부활을 의심한 도마라는 제목으로 함께 은혜를 받고자 합니다.

 

1. 도마가 부활하신 예수님을 보지 못했기 때문에 예수님의 부활을 의심했습니다.

본문 24절에 열두 제자 중의 하나로써 디두모라 불리는 도마는 예수께서 오셨을 때에 함께 있지 아니한지라.” 말씀하고 있습니다. 도마가 제자들을 잠시 떠났는데 그사이에 부활하신 예수님께서 오신 것입니다. 도마가 어떤 일로 제자들을 떠났는지 알 수 없지만 인생에는 이처럼 한순간의 방심과 부주의로 소중한 기회를 잃는 경우가 많이 있습니다. 그래서 성경이 근신하라, 깨어 있으라, 모이기를 힘쓰라고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도마가 왜 예수님의 부활을 의심했느냐? 부활하신 예수님을 보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도마가 왜 부활하신 예수님을 보지 못했느냐? 도마가 잠시 제자들을 떠났기 때문입니다.

지혜로운 사람과 어리석은 사람의 차이는 일어날 수도 있고 일어나지 않을 수도 있는 상황에 대비하는 자세에 있습니다. 어리석은 사람은 항상 설마 별일 없겠지라고 생각합니다. 반면에 지혜로운 사람은 지금까지는 괜찮았지만 혹시 문제가 생길지 모른다.”고 생각하고 혹시 발생할지 모르는 상황에 대비합니다. 도로에서 잠시 자동차를 주차할 때도 어리석은 사람은 좁은 도로의 한복판에 차를 정차하고 잠깐 다녀올 텐데 설마 별일 없겠지라고 생각합니다. 반면에 똑같은 상황에서 지혜로운 사람은 잠깐 다녀오는 사이에 차가 올지 모른다.” 생각하고 다른 차의 통행에 지장이 없도록 차를 주차합니다. 어리석은 사람은 항상 설마를 반복하고 지혜로운 사람은 언제나 혹시나?” 하는 마음으로 매사에 완벽하고 지혜롭게 대처하는 것입니다.

도마가 어떤 일로 제자들을 떠났는지 알 수 없지만 부활하신 예수님을 보지 못한 것은 자랑스러운 일이 될 수 없습니다. 도마에게 불가피한 사정이 있었고 그 일이 부끄럽거나 죄가 되는 일은 아니라 할지라도 잘한 일이나 자랑스러운 행동이 될 수는 없는 것입니다. 운동이나 등산이나 여행은 부끄러운 일도 아니고 죄가 되지도 않습니다. 그러나 만약 사고가 나거나 사고로 죽게 되면 명예로운 죽음이 되지는 않습니다. 하나님과 교회 일을 하다가 죽으면 순교가 되고 영광이 되지만 운동이나 여행이나 등산을 하다 죽으면 명예롭지 못한 죽음이 되는 것입니다. 도마가 제자들을 떠나지 않았다면 예수님의 부활을 의심하지 않았을 것입니다. 제자들의 모임은 교회를 상징합니다. 성도가 교회를 떠나고 신앙의 울타리를 벗어나면 도마처럼 진리를 부정하고 신앙의 낙오자가 될 수 있습니다. 그리스도인은 모이기를 힘쓰고 하나님과 교회중심의 생활을 하셔야 한다는 것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2. 그리스도인은 자신의 무지와 불신앙을 고집하는 도마 같은 사람이 되면 안 됩니다.

요한복음 11:16,과 요한복음 14:5,에는 도마에 대한 짤막한 말씀이 기록돼 있습니다. 요한복음 11장에 기록된 도마는 생각이 단순하고 용기가 있는 사람입니다. 요한복음 11장은 병든 나사로에 관한 말씀입니다. 예수님께서 제자들과 요단강 건너편 베다니(요한복음 1:28)에 계실 때 유대의 베다니(요한복음 11:18)에 살고 있는 마리아와 마르다로부터 그들의 오빠 나사로가 병으로 죽게 되었다는 연락을 받으셨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이 병은 죽을병이 아니요 하나님 영광을 위한 것이라고 말씀하시고 그곳에 이틀을 더 머무셨습니다. 그 후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우리의 친구 나사로가 잠들었으니 유대로 가서 나사로를 깨우자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러자 제자들은 선생님 방금도 유대인들이 우리를 돌로 쳐서 죽이려고 하는데 유대로 들어가려 하시느냐?”고 반대했습니다. 그러나 유일하게 도마가 우리도 주와 함께 죽으러 가자.”고 두려워하는 제자들을 재촉했습니다.

이스라엘에서는 신성을 모독하거나, 우상을 숭배하거나, 안식일을 범하고, 부모를 거역한 자들은 돌로 쳐서 죽였습니다. 유대인들은 예수가 모세율법을 지키지 않고 자기가 하나님 아들이라고 백성을 미혹한다고 예수를 돌로 쳐서 죽이려고 했습니다. 그래서 죽은 나사로를 깨우러 가자는 예수님 말씀에 제자들이 방금도 유대인들이 우리를 돌로 쳐서 죽이려고 했는데 유대로 들어가려 하시느냐?”고 반대한 것입니다. 아무리 정당하고 의로운 일도 박해와 죽음이 기다리고 있다면 용기를 내기 어렵습니다. 그래서 제자들이 나사로에게 가는 것을 반대한 것입니다. 그러나 도마는 우리도 주와 함께 죽으러 가자고 말했습니다. 죽더라도 예수님과 함께 가자고 한 것입니다. 도마가 얼마나 용기가 있습니까?

또한 도마는 직설적이고 위선이나 거짓이 없는 사람입니다. 요한복음 14장의 말씀은 예수님께서 장차 이 세상을 떠나 천국으로 가신다는 말씀입니다. 예수님은 내 아버지 집에 거할 곳이 많도다......내가 너희를 위하여 거처를 예비하러 가노라......내가 어디로 가는지 그 길을 너희가 아느니라.”고 말씀하셨습니다(요한복음 14:2-4). 십자가를 지고 돌아가신다고 하면 될 텐데 예수님 말씀이 조금 추상적이고 모호합니다. 제자들은 예수님 말씀을 이해하지 못했지만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침묵했습니다. 그러나 도마는 주께서 어디로 가시는지 우리가 알지 못하거늘 그 길을 어찌 알겠습니까?”라고 반문했습니다. 우리는 예수님이 어디로 가시는지 알지 못한다고 한 것입니다. 도마는 위선을 모르는 정직한 사람이기 때문에 알지 못하면서 아는 척하고, 이해하지 못하면서 이해하는 척할 수 없었습니다.

도마처럼 생각이 단순하고 순수하고 거짓이 없는 사람은 오해를 받기 쉽습니다. 생각나고 느낀 대로 말을 하기 때문에 오해를 받는 것입니다. 어떤 소설인지 기억이 나지 않습니다만 작가는 그 책에서 적당한 위선은 생활 속에서 윤활유와 같다.”고 한 말을 읽은 적이 있습니다. 사실 적당한 위선이 없다면 우리들은 매일 싸우고 만나는 사람마다 다투고 원수가 될 것입니다. 만약 우리가 보고 느낀 대로 당신은 교만하다, 당신은 잘난척한다, 당신은 외모가 못생겼다, 당신은 말은 잘하지만 허풍쟁이라고 하면 어떻게 되겠습니까? 사람들은 속으로 분노를 느끼고 마음이 상해도 웃는 얼굴로 상냥하게 대하며, 이해하지 못하면서도 이해하는 척하고, 의심과 불신을 하면서도 믿고 신뢰하는 척합니다. 적당한 위선이 있기 때문에 최소한의 인간관계가 유지되는 것입니다.

그러나 도마는 그런 성품을 갖지 않았습니다. 도마에게 적당한 위선이 있었다면 부활하신 예수님을 보았다는 제자들의 말이 믿어지지 않더라도 ! 그게 사실이냐?”고 대답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도마는 그의 경험과 지식으로 예수님의 부활이 이해가 되지 않았기 때문에 내가 그의 손의 못 자국을 보며 내 손가락을 그 못 자국에 넣으며 내 손을 그 옆구리에 넣어 보지 않고는 믿지 않겠노라.”고 말한 것입니다. 도마처럼 보고 느끼고 생각나는 대로 말하는 사람이 정상적인 사람입니까? 비정상적인 사람입니까? 정상적인 사람도 아니고, 정직한 사람도 아니고, 지혜로운 사람도 아닙니다. 도마는 지혜와 분별력이 조금 부족한 사람입니다. 그리스도인은 도마의 순결하고 거짓이 없는 성품은 본받아야 하지만 생각나고 느낀 대로 말을 해서 다른 사람에게 상처를 주거나 진실을 부정하면 안 됩니다. 말을 순화하고 정제해서 해야 합니다. 도마는 용기도 있고 믿음도 있지만 느낀 대로 말을 하고 생각난 대로 말을 해서 의심이 많은 사람으로 오해를 받았는지도 모릅니다. 도마의 의심은 단순하고 순수하고 거짓 없는 성품에서 나왔을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의 부활을 의심하고 부정한 것은 어떤 이유로도 정당화될 수 없습니다. 도마가 예수님의 부활을 의심한 것은 그의 무지와 불신앙 때문이었다는 것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3. 예수님은 도마에게 나를 보지 않고 믿는 자들이 복이 있다고 말씀하셨습니다.

본문 29절에 너는 나를 본 고로 믿느냐 보지 못하고 믿는 자들은 복되도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의심의 눈초리로 보고, 확인을 하고 믿는 사람보다, 보지 않고 믿고 확인하지 않고 믿는 사람이 복이 있다는 말씀입니다. 예수님은 도마의 의심을 알고 계셨습니다. 그래서 여드레가 지난 후에 다시 오신 것입니다. 도마가 부활하신 예수님을 보고 나의 주님이시요 나의 하나님이십니다.”라고 고백하자, 예수님은 너는 나를 보았기 때문에 믿느냐? 보지 않고 믿는 자들이 복이 있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의심하는 도마를 대하시는 예수님의 태도가 얼마나 온유하고 인자하십니까?

예수님께서 살아계실 때 제자들에게 수없이 반복해서 예수님의 십자가 고난과 죽음과 부활을 말씀하셨습니다. 그러나 도마는 자신의 무지와 불신앙을 회개하기는커녕 내가 못 박힌 예수의 손을 만져보지 아니하고 창에 찔린 예수의 옆구리에 내 손을 넣어 보기 전에는 믿지 않겠다.”고 큰소리쳤습니다. 적반하장도 분수가 있지 예수님의 열두 제자 중 하나라는 사람이 이게 어디 말이 됩니까? ! 이 의심 많은 도마를 어떻게 해야 할까요? 그러나 예수님은 도마를 책망하시지 않고 네 손가락을 이리로 내밀어 내 손을 보고 네 손을 내밀어 내 옆구리에 넣어 보라 그리하여 믿음 없는 자가 되지 말고 믿는 자가 되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리고 도마가 나의 주님이시요 나의 하나님이십니다.”라고 고백하자 너는 나를 보아서 믿느냐? 보지 않고 믿는 자들이 복이 있다.”고 말씀하셨습니다. 무슨 뜻이냐? 세상의 모든 종교는 그들이 믿는 신의 신상(神像)이 있지만 기독교는 하나님의 신상이 없습니다. 왜냐하면 세상의 종교는 인간이 생각해서 만들었기 때문에 신의 형상이 있지만 기독교의 하나님은 형체가 없는 영()으로 계시기 때문에 하나님은 신상이 없고 하나님을 볼 수 없는 것입니다. 기독교는 하나님이나 예수님의 형상을 보고 믿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주신 하나님 말씀을 통해 믿습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 도마에게 너는 나를 보아서 믿느냐? 보지 않고 믿는 자들이 복이 있다.”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그리스도인은 어떤 믿음을 가져야 할까요? 마태복음 8장에 등장하는 가버나움의 백부장(백 명의 병사를 거느린 로마군대의 초급 장교신분) 같은 믿음을 가져야 합니다. 예수님께서 가버나움에 가셨을 때 한 백부장이 찾아와서 내 하인이 병으로 죽게 되었으니 고쳐 달라.”고 호소했습니다. 예수님께서 내가 가서 고쳐주겠다.”고 말씀하시자 백부장은 주여! 내 집에 들어오심을 나는 감당하지 못하겠사오니 다만 말씀으로만 하옵소서. 그러면 내 하인이 낫겠나이다. 나도 남의 수하에 있는 사람이요 내 아래에도 군사가 있으니 이더러 가라 하면 가고 저더러 오라 하면 오고 내 종더러 이것을 하라 하면 하나이다.”라고 대답했습니다. 나도 내 부하에게 명령하면 부하가 복종하고 순종합니다. 예수님께서 말씀으로 명령만 하셔도 하인의 병이 나을 텐데 수고스럽게 내 집에까지 오실 필요가 없다고 대답한 것입니다. 예수님은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온 이스라엘 사람 중에 이만한 믿음을 가진 사람을 만나보지 못하였다.”고 칭찬하셨습니다. 가버나움의 백부장처럼 단순한 마음으로 믿고 순종하는 믿음을 가져야 합니다. 예수님은 도마에게 보지 않고 믿는 자들이 복이 있다.”고 말씀하셨습니다. 하나님과 천국을 먼저 보고 믿는 사람은 없습니다. 먼저 믿어야 보게 되고 먼저 믿어야 깨닫게 됩니다. 예수님 말씀처럼 하나님과 천국과 기적을 보지 않고 믿는 사람이 복이 있다는 것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말씀을 맺겠습니다. 하나님을 시험해보고 하나님 말씀이 맞는지 안 맞는지 검증을 한 후에 믿겠다는 사람은 자기의 됫박만 한 머리로 이해가 되는 자기 수준의 하나님을 믿겠다고 생각하는 사람입니다. 이런 사람들을 똑똑하다고 해야 할까요? 교만하고 어리석다고 해야 할까요? 인간이 하나님 말씀과 하나님 뜻을 어떻게 다 이해할 수 있겠습니까? 눈에 보이지 않는다고 천국이 없고 지옥이 없습니까? 부활도 마찬가지입니다. 부활을 의심하는 사람은 예수님의 부활을 의심한 도마와 같은 사람입니다. 세상 모든 것이 눈으로 봐야 존재가 증명되고 손으로 만져봐야 진실이 됩니까? 이 세상에는 너무 똑똑해서 지옥에 가는 사람들이 많아 있습니다. 믿으면 천국에 가고 의심하고 안 믿으면 지옥에 갑니다. 예수님은 사망 권세를 이기시고 부활하신 부활의 첫 열매입니다. 예수님은 교회와 그리스도인의 머리가 되고 그리스도인은 예수님의 지체가 되기 때문에 그리스도인은 예수님을 따라 부활에 참여하게 되는 것입니다. 부활절을 맞이하여 부활과 영생을 소망하시고 확신하셔서 부활과 영생에 다 참여하시는 성도 여러분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2021, 4, 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