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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회의 사명

진리의증인 2021. 1. 22. 04:09

이 정만 목사

블로그(네이버:논산동산교회, 다음:논산동산교회)

 

23예수께서 온 갈릴리에 두루 다니사 그들의 회당에서 가르치시며 천국 복음을 전파하시며 백성 중의 모든 병과 모든 약한 것을 고치시니 24그의 소문이 온 수리아에 퍼진지라, 사람들이 모든 앓는 자 곧 각종 병에 걸려서 고통 당하는 자, 귀신 들린 자, 간질하는 자, 중풍병자들을 데려오니 그들을 고치시더라, 25갈릴리와 데가볼리와 예루살렘과 유대와 요단강 건너편에서 수많은 무리가 따르니라” (마태복음 4:23-25).

 

서론: 교회에 맡겨진 일과 교회가 해야 할 일을 교회의 사명이라고 합니다. 교회의 사명이 무엇이냐? 교회의 사명에 대해 영혼 구원이다, 가난한 자의 구제다, 선교다, 사회 개혁이다 등 다양한 주장이 있습니다. 교회의 사명을 알고 싶으면 교회의 원형이신 예수님께서 어떤 일을 하셨는지 보면 됩니다. 예수님께서 하신 일이 교회의 사명이기 때문입니다.

이 시간에는 교회의 사명이란 제목으로 함께 은혜를 받고자 합니다.

 

1. 교회의 첫 번째 사명은 복음을 전하여 영혼을 구원하는 전도의 사명입니다.

왜 전도(傳道)가 교회의 첫 번째 사명이냐? 전도를 해야 영혼을 구원하고 하나님 나라가 확장되기 때문입니다. 전도가 무엇이냐? 예수를 믿어야 죄에서 구원받고 천국에 가는 생명의 복음을 사람들에게 전파하는 것을 전도라고 합니다. 지상의 교회가 해야 할 일이 많이 있지만 교회의 가장 중요한 사명과 교회의 가장 본질적인 사명은 전도입니다. 교회의 사명 중에 전도보다 중요한 사명은 없습니다.

오늘날 일부 목사와 그리스도인 중에는 본말이 전도된 이상한 교회관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들은 가난한 자에 대한 구제나, 사회 개혁이나, 종파를 초월한 평화와 일치의 운동을 교회의 사명으로 생각합니다. 가난한 자에 대한 구제나 사회를 개혁하는 것도 교회의 사명입니다. 그러나 교회의 가장 중요한 사명은 전도라는 것을 명심하셔야 합니다. 사도행전 6장에 보면 초대 교회는 전도와 말씀을 전하는 일보다 구제에 치중했습니다. 교회가 구제에 치중해서 말씀을 제대로 전하지 못했고 교회에서 구제품의 분배 문제로 성도들끼리 다투고 비난하는 일까지 일어났습니다. 그래서 사도들이 모여서 “......우리가 하나님 말씀을 제쳐 놓고 접대를 일삼는 것이 마땅하지 않다고 결론을 내리고 일곱 명의 집사를 세워 그들에게 구제의 일을 맡기고 사도들은 말씀을 전하고 기도하는 일에 전념했습니다. 초대 교회 때 사도들이 전도가 교회의 가장 중요한 사명이라고 결정을 내린 것입니다.

또한 사회개혁도 마찬가지입니다. 사회개혁이 성공하려면 먼저 인간의 의식이 개혁돼야 합니다. 인간의 의식과 사상이 변하지 않으면 사회개혁은 절대로 성공할 수 없습니다. 사회의 구성원인 시민의 사상과 의식이 변하고 변화된 사상과 의식이 행동으로 나타날 때 사회가 개혁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사회를 개혁하기 위해서는 인간의 의식의 변화가 선행돼야 합니다. 인간의 의식을 변화시킬 수 있는 방법이 무엇이냐? 살아서 역사하는 하나님 말씀이 들어가야 합니다. 성경은 히브리서 4:12,에서 하나님의 말씀은 살아 있고 활력이 있어 좌우에 날선 어떤 검보다도 예리하여 혼과 영과 및 관절과 골수를 찔러 쪼개기까지 하며 또 마음의 생각과 뜻을 감찰하신다.” 말씀하고 있습니다. 부패하고 타락한 인간의 심령에 살아서 역사하는 하나님 말씀이 들어가야 사람이 변하는 것입니다. 사람만 변하면 사회개혁은 성공할 수 있습니다. 사회를 개혁하기 위해서는 법이나 제도의 개혁도 필요하지만 먼저 인간의 의식의 변화가 선행돼야 합니다. 그리고 인간의 의식을 변화시키기 위해서 필요한 것이 전도입니다. 사회개혁도 교회의 사명 중 하나지만 교회의 가장 중요한 사명은 전도이며 사회개혁도 전도를 통해서만 이룰 수 있다는 것을 명심하셔야합니다.

다음으로 교회의 사명으로 이질적인 종파들과의 평화와 공존을 주장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러나 평화는 우상숭배자나 이단종파들과 타협을 해서 얻을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구약성경의 역사서를 보면 하나님을 잘 섬겼던 다윗 왕이 나라를 다스릴 때는 전쟁도 없었고 기근도 없었고 평화와 번영을 누렸습니다. 요사이 평화와 공존이라는 명분으로 종파를 초월한 연합과 일치를 강조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런 주장을 하는 사람들은 문제가 있는 사람들입니다. 성경은 고린도후서 6:14,에서 너희는 믿지 않는 자와 멍에를 함께 메지 말라말씀하고 있습니다. 멍에를 함께 메지 말라는 말씀은 같이 일을 하거나 함께 하면 안 된다는 뜻입니다. 그리스도인은 믿지 않는 자와 멍에를 함께 메면 안 되는데 우상숭배자들과 함께 하는 것을 하나님께서 기뻐하실까요? 평화는 이교도나 우상숭배자들에게 얻을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평화는 전능하신 하나님과 평화의 왕이신 예수님 말씀에 순종할 때 주어진다는 것을 명심하셔야 합니다.

교회의 첫 번째 사명은 전도라고 말씀드렸습니다. 그러면 어디에서 어떤 방법으로 전도를 해야 할까요? 전도할 장소를 잘 선택해야 합니다. 예수님은 갈릴리를 선교의 중심지로 삼고 복음을 전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 왜 갈릴리에서 복음을 전하셨느냐? 갈릴리는 사람이 많이 살았고 갈릴리 사람들은 새로운 사상에 개방적이었기 때문입니다.

이스라엘의 최북단에 위치한 갈릴리는 페니키아, 시리아, 두로 등 이방세계와 국경을 접하고 있었기 때문에 갈릴리 사람들은 이방 세계와의 교류와 교통으로 새로운 사상에 개방적이었습니다. 또한 갈릴리는 땅이 비옥해서 곡물이 많이 생산됐기 때문에 많은 사람이 거주했습니다. 갈릴리는 많은 사람이 거주했고 갈릴리 사람들은 새로운 사상에 관대하고 개방적이었기 때문에 갈릴리를 선교의 중심지로 삼고 갈릴리에서 복음을 전하신 것입니다. 이슬람 국가처럼 국가에서 법으로 전도를 금지하면 아무리 사람이 많이 살아도 전도를 할 수 없습니다. 그리고 사람이 적은 오지나 산골 같은 곳에서도 전도의 효과를 기대할 수 없습니다. 갈릴리는 사람도 많고 새로운 사상에 개방적이었기 때문에 좋은 어장(漁場)과 열린 마음이라는 전도의 조건을 갖추고 있었습니다. 갈릴리는 복음의 씨앗이 싹을 틔우고 자랄 수 있는 훌륭한 영적 옥토였습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 갈릴리에서 복음을 전하신 것입니다.

다음으로 예수님은 회당에서 복음을 전파하셨습니다. 회당(, 수나고게(συναγωγή), 기도하는 곳, 성소, 회중이란 뜻)이 무엇이냐? 유대인이나 유대교 신자들이 종교적 모임을 갖고 예배를 드리는 곳을 회당이라고 합니다. 원래 회당은 이스라엘의 국외에 거주하는 디아스포라(Diaspora 포로로 잡혀가거나 여러 가지 사정에 의해 외국에 거주하는 유대인들, 일명 흩어진 유대인들)에 의해 시작됐는데 소규모로 모일 수 있는 회당의 장점 때문에 이스라엘이 바벨론에 멸망한 후 회당의 제도가 이스라엘 국내로 역수입돼 들어왔습니다. 그 결과 회당은 지역과 국경을 초월하여 유대인이 머무는 곳은 세계 어느 곳에서나 유대인의 종교와 생활의 중심이 되었습니다.

회당에서 가장 중요한 사람은 회당장인데 회당장은 회당을 관리하고 회당에서 설교할 사람을 세우는 일을 합니다. 그리고 회당에서 설교가 끝나면 질문도 받고 토론도 했는데 유대인들은 그들의 종교적 성일이나 안식일에 회당에 모여서 기도도 하고 율법을 공부했습니다. 안식일에 회당에 가면 유대인을 만날 수 있었고 회당장의 허락만 받으면 유대인들을 상대로 설교를 하면서 합법적으로 복음을 전할 수 있었습니다. 예수님은 유대인의 회당에서 합법적인 방법으로 유대인들에게 복음을 전하신 것입니다. 전도하고 복음을 전파하는 데도 인간의 지혜가 필요합니다. 복음을 전할 수 있는 장소와 기회를 잘 활용해야 합니다. 전도보다 중요한 사명은 없습니다. 교회의 첫 번째 사명은 전도의 사명이라고 말씀드렸습니다. 열심히 전도하는 교회가 부흥하고 발전합니다. 그리스도인은 열심히 복음을 전파하여 교회에 주어진 전도의 사명을 잘 감당하셔야 한다는 것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2. 교회의 두 번째 사명은 신앙교육의 사명입니다.

어떤 교육이냐? 신앙교육입니다. 본문 4:23,예수께서 온 갈릴리에 두루 다니사 그들의 회당에서 가르치시며......”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회당에서 사람들을 가르치셨다는 말씀입니다. 무엇을 가르치셨느냐? 하나님 말씀을 가르치셨습니다. 단편적인 설교만 듣고 신앙이 성장하는 데는 한계가 있습니다. 설교만 듣고 신앙의 깊은 경지에 도달한다는 것은 현실적으로 어렵습니다. 말씀을 듣고 믿어서 구원을 받는 것과 성경을 공부하여 신앙의 깊은 경지에 들어가고 체험적인 믿음을 갖는 것은 전혀 차원이 다른 문제입니다. 교회교육은 구원을 확신시키고 믿음을 성장시키는 데 목적이 있습니다. 말씀을 깨닫고 이해해야 신앙이 성장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교회교육이 필요한 것입니다.

다음으로 교회교육의 교과서가 무엇이냐? 하나님 말씀이신 성경입니다. 그러나 성경은 인간의 지혜와 지식으로 이해하기 어려운 점이 있습니다. 왜냐하면 성경은 천국의 비밀과 하나님의 계획을 인간의 언어로 기록한 예언과 계시의 책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성경의 저자이신 진리의 성령께서 지혜를 주시고 진리를 깨닫게 해주셔야 성경말씀을 이해할 수 있습니다. 성경은 예언과 계시의 말씀이기 때문에 성경을 잘못 해석하면 하나님 뜻을 거역하고 하나님을 대적하는 이단으로 빠지기 쉽습니다. 기독교 이단은 대부분 성경을 잘못 해석해서 생겨난 영적 돌연변이들입니다. 사탄 마귀나 이단의 유혹에 넘어가지 않으려면 성경을 바로 알아야 합니다. 그래서 신앙교육이 필요합니다. 세상에서 성경보다 위대한 책은 없습니다. 왜냐하면 이 세상에서 사죄와 구원과 영생의 길을 제시하고 있는 책은 성경밖에 없기 때문입니다. 성경에 사죄와 구원과 영생의 길이 있고 성경에 인생을 살아가는 참된 지혜가 있습니다. 그래서 교회에서 신앙교육과 교회교육이 필요한 것입니다.

하나님 말씀은 살아서 역사하는 하나님의 능력입니다. 살아서 역사하는 하나님 말씀이 들어가야 사람이 변하고 천국과 구원을 확신합니다. 그래서 교회교육이 필요한 것입니다. 예수님은 온 갈릴리에 두루 다니시며 하나님 말씀을 가르치셨습니다. 교회의 두 번째 사명은 사죄와 구원과 영생을 확신시키는 교육의 사명이라는 것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3. 교회의 세 번째 사명은 고통받는 사람들을 돕고 구원하는 구제의 사명입니다.

예수님은 사람들에게 복음을 전하시고 가르치시면서 육신의 질병으로 고통당하는 사람들의 병을 고쳐주시고 모든 약한 사람들을 도와주셨습니다. 예수님은 영의 양식만 주시고 인간의 영혼만 구원하신 것이 아니라 인간의 육신에 필요한 것도 함께 주신 것입니다. 육신에 필요한 것이 무엇입니까? 굶주림과 육체의 질병과 육신의 고통에서 해방되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보리떡 다섯 개와 생선 두 마리로 오천 명을 먹이셨고 보리떡 일곱 개와 생선 두 마리로는 사천 명을 먹이셨습니다. 예수님은 굶주린 자들에게는 육신의 양식을 주셨고 육체의 질병으로 고생하는 자들은 병을 고쳐주시고 질병의 고통에서 구원하여 주신 것입니다.

인간은 영혼만 가지고 살아가는 존재가 아닙니다. 인간은 영혼과 육신이라는 두 가지 본질로 구성돼 있습니다. 영혼과 육신은 인간을 지탱하고 유지하는 두 기둥입니다. “죄만 짓는 이놈의 육신은 죽어 없어지고 영혼이 살아야 한다.”고 주장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대단히 잘못된 주장입니다. 영혼은 말짱한데 육신이 죄를 짓는 것이 아닙니다. 영혼이 병들고 영혼이 죄의 유혹에 넘어가기 때문에 육신이 죄를 짓는 것입니다. 영혼과 육신은 절대로 분리해서 생각할 수 없습니다. 육신의 고통은 영혼의 고통이며 영혼의 고통은 육신의 고통입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 배고픈 자에게는 빵을 주시고 육체의 질병으로 고생하는 자에게는 육체의 질병을 고쳐주시면서 복음을 전하신 것입니다. 예수님은 영혼만 구원하고 영혼만 치료하시지 않았습니다. 예수님은 인간의 고통이 무엇이든지 다 해결해 주셨습니다. 교회는 인간의 영혼을 구원하는 곳이지 인간의 편의를 도모하고 세상일을 하는 곳이 아니라고 주장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러나 그런 주장은 하나님 일을 하지 않는 악하고 게으른 자들의 핑계와 변명입니다. 성경 어디에도 그런 주장은 없습니다.

물론 교회의 가장 본질적인 사명은 영혼 구원입니다. 그러나 영혼과 육신은 분리할 수 없고 영혼과 육신을 분리해서 생각할 수 없기 때문에 육신의 구원도 영혼의 구원만큼 중요합니다. 그래서 가난한 자에게는 구제도 하고, 병든 자의 병도 고쳐주고, 억압받고 고통당하는 자를 압제와 고통에서 해방시켜줘야 하는 것입니다. 교회는 세상을 향해 하나님은 당신을 사랑하십니다.”라고 외칩니다. 그러면 하나님의 사랑이 구체적으로 나타나야하지 않겠습니까? 고통받는 사람들을 외면하면서 하나님의 사랑을 외칠 수 있을까요? 아무리 아름답고 듣기 좋은 말도 행동을 대신할 수는 없습니다. 오늘날 교회가 비난을 받고 외면을 받는 것은 교회가 고통받는 사람들을 외면하고 그리스도인이 세상의 빛과 소금이 되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고통 가운데 있는 자를 구원하고 사회정의를 세우는 것도 교회의 사명입니다. 교회의 세 번째 사명은 가난한 사람과 고통가운데 있는 사람을 구원하는 구제의 사명이라는 것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말씀을 맺겠습니다. 교회의 첫 번째 사명은 전도의 사명이라고 말씀드렸습니다. 전도를 해야 영혼을 구원하고 하나님 나라가 확장되기 때문입니다. 교회와 그리스도인은 열심히 전도하여 많은 영혼을 구원해야 한다는 것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교회의 두 번째 사명은 교육의 사명이라고 말씀드렸습니다. 교회는 하나님 양무리들이 사죄와 구원과 영생을 확신할 수 있도록 하나님 말씀으로 교육하고 양육하셔야 한다는 것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교회의 세 번째 사명은 고통 가운데 있는 사람들을 돕고 구원하는 구제의 사명이라고 말씀드렸습니다. 교회는 세상 사람들에게 실질적인 도움을 주어야 합니다. 본문 25절에 갈릴리와 데가볼리와 예루살렘과 유대와 요단강 건너편에서 수많은 무리가 따랐다.” 말씀하고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사람들이 원하는 것을 주시고 그들을 고통에서 구원해 주셨기 때문에 많은 사람들이 따른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정통성이나 따지고 신학논쟁이나 하는 교회가 아니라 전도와 교육과 구제를 열심히 하는 교회가 되기 원하십니다. 전도와 교육과 구제에 열심을 내는 교회가 부흥하고 발전합니다. 전도와 교육과 구제에 힘쓰셔서 교회를 부흥시키고 세상을 복음화시키는 일에 앞장서시는 성도 여러분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회당에 대한 지식**

회당은 이스라엘의 불행한 역사의 산물입니다. 이스라엘이 바벨론에 멸망할 때 예루살렘 성전도 파괴되었습니다. 유대교는 하나님 말씀인 토라(율법과 선지서까지 포함한 구약의 모든 성경)와 예루살렘 성전 중심의 제사가 유대교의 두 축을 이루고 있는데 이스라엘이 바벨론에 멸망할 때 예루살렘 성전이 파괴되어 유대교의 한 축이 무너졌습니다. 그리고 이스라엘을 정복한 침략자들은 유대인들의 구심점인 유대교를 멸절하기 위해 유대인들이 예루살렘에 모이는 것을 금지시켰습니다. 그때부터 이스라엘 종교는 예루살렘 성전 중심에서 개인과 몇몇 가정이 모이는 소그룹의 형태로 바뀌게 되었는데 여기에 적합한 것이 회당제도였습니다. 바벨론 군대에 의해 예루살렘의 솔로몬 파괴된 후 회당이 유대인과 유대교의 중심이 된 것입니다.

 

2021, 1, 2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