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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들 앞에서 나를 시인하라

진리의증인 2020. 12. 25. 06:56

이 정만 목사

블로그(네이버:논산동산교회, 다음:논산동산교회)

 

29참새 두 마리가 한 앗사리온에 팔리지않느냐, 그러나 너희 아버지께서 허락하지 아니하시면 그 하나도 땅에 떨어지지 아니하리라, 30너희에게는 머리털까지 다 세신 바 되었나니 31두려워하지 말라, 너희는 많은 참새보다 귀하니라, 32누구든지 사람 앞에서 나를 시인하면 나도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 앞에서 그를 시인할 것이요, 33누구든지 사람 앞에서 나를 부인하면 나도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 앞에서 그를 부인하리라” (마태복음10:29-33)

 

서론: 예수님께서는 누구든지 사람 앞에서 나를 시인하면 나도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 앞에서 그를 시인할 것이요 누구든지 사람 앞에서 나를 부인하면 나도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 앞에서 그를 부인하리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예수 믿는 것을 숨기지 말고 공개적으로 예수를 믿고 예수를 반대하는 사람들 앞에서도 예수 믿는 것을 숨기지 말라는 말씀입니다. 왜 사람들 앞에서 나를 시인하라고 말씀하셨느냐? 공개적으로 예수를 믿어야 진실한 신앙생활을 할 수 있고, 전도가 되고 하나님 나라가 확장되기 때문입니다. 공개적으로 예수를 믿고 신앙생활을 해야 신앙이 성장하고 진실한 신앙생활을 할 수 있습니다. 오늘은 2020년 마지막 주일을 맞이하여 지난 1년 동안 우리의 신앙생활을 돌아보는 시간을 갖고자 합니다.

이 시간에는 사람들 앞에서 나를 시인하라는 제목으로 함께 은혜를 받고자 합니다.

 

1. 내가 예수 믿는 것을 사람들이 알 수 있도록 공개적으로 예수를 믿어야합니다.

내가 예수 믿는 사람이라는 것을 사람들 앞에서 분명히 밝혀야 한다는 말씀입니다. 장소와 상황에 따라 교묘한 말로 예수를 부인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어떤 유명한 정치인이 선거를 앞두고 어느 종교방송에 출연했습니다. 방송국 기자가 정치인에게 당신은 기독교인입니까?” 물었습니다. 그러자 정치인은 예 그렇습니다. 나는 기독교인입니다. 그러나 나는 종교에 구애받지 않고 자유롭게 살아갑니다. 일요일 날 특별한 일이 없으면 부인의 성화에 못 이겨 교회에 나가지만 바쁜 일이 있을 때는 교회에 나가지 않습니다. 나는 기독교만 유일하고 참된 종교라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사람이 무엇을 믿든지 종교는 자유이며 어떤 종교에나 구원이 있다고 생각합니다.”라고 대답했습니다. 이 사람이 예수를 믿는 사람입니까 예수를 부인하는 사람입니까? 이 사람은 교묘한 말로 예수를 부인하는 사람입니다.

이 정치인의 주장처럼 신앙에 얽매이지 않고 자기가 하고 싶은 대로 하면서 예수를 믿겠다는 사람은 정상적인 신앙생활을 할 수 없습니다. 나의 유익과 나이 기쁨과 내 인생의 쾌락을 희생하면서까지 예수를 믿고 싶지 않다면 그 사람은 교회를 떠나야 합니다. 예수를 시인한다는 것은 나에게는 예수보다 귀한 것이 없다는 공개적인 선언입니다. 그러므로 대통령이나 회사 사장이나 누구 앞에서든지 나는 예수를 믿는다.”고 당당하게 밝혀야 합니다. 그리스도인이 예수를 공개적으로 믿지 못하고 예수 믿는 것을 숨기는 것은 자기가 믿는 예수를 부인하는 행동입니다. 예수 믿는 것을 밝히는 것이 자신에게 유리할지 불리할지 따지기 때문에 예수 믿는 것을 숨기는 것입니다. 그리스도인은 자기가 예수 믿는 사람이라는 것을 밝히고 공개적으로 예수를 믿어야 한다는 것을 명심하셔야 합니다.

다음으로 침묵으로 예수를 부인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사람들 앞에서 예수를 변호하고 예수를 증거해야 할 때 침묵하는 것입니다. 침묵으로 예수를 부인하는 것은 가장 비겁한 방법으로 예수를 부인하는 행위입니다. 페르시아의 아하수에로 왕 때에 에스더가 유대인이라는 신분을 숨기고 아하수에로 왕의 왕비가 되었습니다. 아하수에로 왕 밑에는 하만이라는 국무총리가 있었는데 이 사람은 유대인에게 지독한 증오심과 적개심을 품고 있었습니다. 국무총리 하만은 유대인을 제거하기 위해 유대인은 왕을 반역하는 민족이라고 모함을 해서 왕으로부터 나라 안에 있는 유대인을 다 죽이라는 재가를 받아냈습니다. 페르시아에 포로로 잡혀 온 수많은 유대인들이 하만의 모함으로 다 죽게 된 것입니다.

그래서 왕비 에스더의 사촌 오빠가 되는 모르드개가 왕비 에스더에게 편지를 써서 왕에게 보고하여 하만의 음모에서 유대인을 구원하라고 부탁했습니다. 그러나 왕비 에스더에게서는 아무 연락이 없었습니다. 모르드개는 에스더에게 다시 편지를 보내 이 때에 네가 만일 잠잠하여 말이 없으면 유대인은 다른 데로 말미암아 놓임과 구원을 얻으려니와 너와 네 아버지 집은 멸망할 것이다. 네가 왕후의 자리를 얻은 것이 이때를 위함이 아닌지 누가 알겠느냐고 책망했습니다(에스더 4:14). 하만의 간계와 음모에서 유대인을 구원하라고 하나님께서 너를 왕비로 세워주셨는데 왜 깨닫지 못하느냐고 책망한 것입니다. 에스더는 모르드개의 책망을 받고 죽으면 죽으리라는 각오로 왕에게 호소하여 자기 민족을 구원했습니다. 만약 에스더가 침묵했다면 에스더는 자기 민족을 부인한 반역자로 역사에 남았을 것입니다.

그리스도인이 침묵하면 안 될 때가 있습니다. 하나님과 교회를 위해 혹은 예수 그리스도와 진리를 위해 분명하게 의사표시를 해야 할 때가 있습니다. 오만하고 불의한 자들의 모함과 편견을 폭로하고 기독교를 비방하는 자들과 맞서 싸워야합니다. 하나님과 교회가 멸시를 당하고 예수님이 비방을 받아도 침묵하는 사람은 그리스도인이라고 할 수도 없습니다. 오늘날 침묵으로 예수를 부인하는 그리스도인이 얼마나 많이 있습니까? 하나님은 침묵하는 벙어리 신자를 기뻐하시지 않습니다. 예수님은 본문 32-33절에서 누구든지 사람 앞에서 나를 시인하면 나도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 앞에서 그를 시인할 것이요, 누구든지 사람 앞에서 나를 부인하면 나도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 앞에서 그를 부인하리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리스도인이 예수를 부인하면 예수님도 그 사람을 부인하십니다. 그리스도인은 사람들 앞에서 예수를 시인하고 공개적으로 예수를 믿어야 한다는 것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2. 행동으로 예수를 시인해야 합니다.

무슨 뜻이냐? 그리스도인은 말과 행동이 일치되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거룩한 행위와 진실한 생활은 천 마디 말보다 감동을 주고 선한 영향을 끼칩니다. 말은 잘 하지만 행동으로 예수를 부인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이런 사람들 때문에 교회가 비난을 받는 것입니다. 충성과 헌신을 노래하던 사람이 가정과 자녀들을 핑계로 자신의 사명을 외면합니다. 사랑과 희생과 봉사는 말로 하는 것이 아닙니다. 말만 하고 행위와 실천이 따르지 않으면 행동으로 예수를 부인하는 사람이 됩니다. 또 습관적으로 거짓말을 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이런 사람들도 행동으로 예수를 부인하는 사람입니다. 우리가 살아가는 세상은 불완전하기 때문에 출애굽기 1장의 히브리 산파들처럼 거짓말을 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그러나 정확하게 말하면 히브리 산파들은 거짓말을 한 것이 아니라 정의와 진리의 편에 서서 행동한 사람들입니다. 불의한 왕의 명령을 거역하고 하나님 뜻에 따라 정의와 진리의 편에 선 것입니다.

제가 신학공부를 하기 전에 집사와 평신도로 있을 때 부흥회에 참석했는데 부흥회 강사가 예배를 본다는 말이 맞습니까? 예배를 드린다는 말이 맞습니까?”라고 물었습니다. 사람들이 선뜻 대답을 하지 못하자 부흥사가 예배는 하나님께 드리는 것이기 때문에 예배를 드린다는 말이 맞습니다. 성도 여러분도 앞으로는 예배 본다고 하지 마시고 꼭 예배드린다고 하시기 바랍니다라고 말했습니다. 여기까지는 좋았습니다. 그런데 바로 그 집회 시간에 부흥사가 내가 얼마 전에 개업예배를 보러 갔는데......”라고 말했습니다. 이 부흥사는 말과 행실이 다른 사람입니다. 자기도 실천하지 못하면서 사람들을 가르친 것입니다.

사랑과 자비를 외치는 사람이 가난한 사람에게 인색하고 십자가를 노래하던 사람이 희생과 봉사를 거부합니다. 십자가를 입으로 집니까? 또 하나님께 죄를 용서하여 달라고 기도하면서 자기는 형제의 죄를 용서하지 않습니다. 내가 다른 사람의 죄를 용서해야 하나님께서도 나의 죄를 용서해주시지 않겠습니까? 행동으로 예수를 시인한다는 것은 내가 알고 있는 대로 실천하고 행동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행함이 없는 믿음은 죽은 믿음입니다.

로마의 트라야누스 황제 때 비트니아(오늘날 터키의 흑해연안 지역) 총독으로 있던 플리니우스(Gaius Plinius Caecilius Secundus Minor 61?-113?)가 트라얀 황제에게 보고한 초대교회 기독교인들의 신앙에 대한 보고서가 있습니다. 그 당시에 세계를 통치하던 로마제국은 로마의 황제를 살아있는 신으로 숭배하도록 강요했습니다. 로마 황제를 신으로 숭배하지 않으면 재산을 빼앗기고 직장에서 쫓겨났으며 온갖 박해와 불이익을 당했습니다. 심한 경우는 로마 황제를 반역한 죄로 사형까지 당했습니다. 기독교는 초대교회 때부터 하나님 외에는 어떤 것도 신으로 숭배하기를 거부했기 때문에 로마제국은 그들의 제국 내에 있는 기독교인들의 처리 문제로 늘 골치를 앓았습니다. 어떤 사람이 익명으로 누가 기독교인이라고 밀고하면 즉시 로마 군대가 출동해서 체포했습니다. 그리고 붙잡혀 온 기독교인에게 로마 신들의 이름을 부르고 로마 황제의 신상 앞에 포도주를 붓고 향을 살라 숭배하고 하나님을 안 믿는다는 증거로 예수의 이름을 저주하도록 요구했습니다. 그러나 기독교인들은 어떤 압력과 형벌에도 로마 황제에게 숭배하기를 거부했습니다. 그래서 총독 플리니우스는 로마 황제에게 참 크리스챤들에게는 어떤 방법으로도 황제 숭배를 시킬 수가 없습니다.”라고 보고했습니다. 로마제국의 끔찍하고 무서운 탄압도 초대교회 성도들의 신앙을 파괴하지 못했던 것입니다. 오늘날 우리들이 신앙의 자유를 누리는 것은 초대 교회 성도들이 목숨을 걸고 신앙을 지켰기 때문입니다. 그리스도인은 사람들 앞에서 공개적으로 예수를 믿고 행동으로 예수를 시인해야 한다는 것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3. 진실한 신자와 강하고 담대한 믿음을 가진 성도가 사람들 앞에서 예수를 시인합니다.

성도들이 공개적으로 예수를 믿지 못하고 자신의 신앙을 숨기는 이유가 어디에 있느냐? 믿음이 없고 믿음이 약하기 때문입니다. 초신자나 믿음이 약한 성도들이 자신의 신앙을 숨기는 경향이 있습니다. 믿음이 약한 초신자 때는 친구나 자신을 바라보는 사람들의 시선이 부담스럽습니다. “! 저 사람이 언제부터 예수 믿었어?”라고 놀랄까봐 두려운 것입니다. 또 초신자나 믿음이 약한 신자는 예수를 비난하고 반대하는 사람을 논리적으로 설득하고 제압할 만한 신앙의 지식도 없고 구원에 확신이 없기 때문에 예수 믿는 것을 숨깁니다.

다음으로 교회에 덕이 되지 않는 생활을 하거나 신앙의 양심에 떳떳하지 못한 일을 하는 사람이 예수 믿는 것을 숨깁니다. 예수를 믿는 사람은 하나님 말씀과 신앙의 양심에 합당하지 않는 것은 무엇이든지 정리하고 버려야 합니다. 그러나 믿음이 없는 사람이 오래된 생활습관을 정리하는 것은 쉽지 않습니다. 그래서 예수 믿는 것을 숨기는 것입니다.

그러나 신앙의 자유를 누리는 길은 사람들 앞에서 담대하게 예수를 믿는 방법밖에 없습니다. 경험적으로 아시겠지만 예수에 대한 반대 중에 가장 힘들고 가장 고통스런 반대는 가족들의 반대입니다. 가족들의 반대가 심할수록 담대하게 예수를 믿어야 합니다. 그렇게 해야 가정에서 신앙의 자유를 누리고 가족을 구원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불신앙의 가정에 예수가 들어가면 어차피 한 번은 영적 전쟁을 치러야합니다. 공격이 최선의 방어라는 말이 있습니다. 공격적인 자세로 당당하게 믿어야 가정에서 예수님의 지위도 지키고 신앙의 자유를 누릴 수 있습니다. 가정에서 당당하게 예수를 믿지 못하기 때문에 가족들이 예수를 멸시하고 신앙생활에 방해를 받는 것입니다. 예수를 몇 년 동안 믿어도 가정에서 신앙의 자유를 누리지 못하고 있다면 가정에서 자신의 책임과 의무를 감당하지 않는 사람이든지 신앙생활이 진실하지 않든지 본인에게 문제가 있는 사람입니다. 가족들을 하나님 앞으로 인도하지는 못해도 최소한 가정에서 당당하게 예수를 믿어야 하지 않겠습니까?

많은 성도들이 말도 안 되는 이유로 예수를 부인하고 예수를 홀대합니다. 어떤 사람은 남편 때문에 예수를 부인하고 어떤 사람은 가정의 화목을 위한다는 구실로 예수를 부인합니다. 또 어떤 사람은 집안의 전통과 풍속이라는 핑계로 예수를 홀대합니다. 그리스도인은 관습이나 전통이나 어떤 것에도 얽매이면 안 됩니다. 그리스도인은 오직 하나님께만 얽매여야 합니다. 신앙의 자유는 노력하고 투쟁한 만큼 누립니다.

우리나라는 헌법에 종교의 자유가 보장돼 있습니다. 헌법에 보장돼 있는 자유를 누리지 못하는 것은 누가 뭐라고 해도 자신의 책임입니다. 옛날 신앙의 선조들은 목숨을 걸고 예수를 믿었습니다. 예수 때문에 가족과 헤어지는 경우도 있었고 예수 때문에 죄인의 신분으로 타국으로 추방되는 경우도 있었습니다. 또한 예수 때문에 직장에서 쫓겨났으며 예수 때문에 반역자로 몰려 재산을 빼앗기는 경우도 있었습니다. 옛날 로마제국에서는 예수를 믿는다는 이유로 원형 경기장에 끌려가 사자의 밥이 되어 죽었으며 산채로 뜨거운 불속에 던져지기도 했습니다. 신앙의 선조들은 그런 박해를 받으면서도 믿음을 지켰습니다. 오늘날 우리들이 당하는 반대나 박해는 박해라고 할 수도 없습니다. 예수 믿는 것을 숨기는 사람은 그리스도인이라고 할 수도 없습니다. 믿음이 없고 믿음이 약한 성도들이 사람들 앞에서 예수를 시인하지 못한다고 말씀드렸습니다. 2020년 금년도 한 해가 저물어 갑니다. 성도 여러분은 신앙의 양심에 부끄럽지 않게 사람들 앞에서 당당하게 예수를 시인하고 그리스도인답게 살았는지 성도 여러분의 지나온 삶을 한번 돌아보시기 바랍니다. 예수는 사람들이 알 수 있도록 공개적으로 믿고 당당하게 믿고 진실하게 믿어야 한다는 것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말씀을 맺겠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사람들 앞에서 나를 시인하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리고 사람들 앞에서 예수를 시인하면 예수님도 하나님 앞에서 그 사람을 시인하시고 사람들 앞에서 예수를 부인하면 예수님도 하나님 앞에서 그 사람을 부인하시겠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신앙의 선조들은 재산을 빼앗기고 생명의 위협을 받고 순교를 당하면서도 믿음을 지켰습니다. 성도 여러분은 무엇이 두려워서 예수 믿는 것을 숨기고 예수를 시인하지 못합니까? 예수 믿는 것을 숨기는 비겁한 사람이 천국에 들어갈 수 있을까요? 말로 예수를 부인하고 침묵으로 예수를 부인하고 행동으로 예수를 부인하는 사람은 천국에 들어가지 못할 것입니다. 그리스도인은 사람들이 알 수 있도록 사람들 앞에서 공개적으로 예수를 믿어야 합니다. 사람들이 알 수 있도록 공개적으로 예수를 믿고 사람들 앞에서 당당하게 예수 그리스도를 시인하시는 성도 여러분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샬롬.

 

2020, 12, 2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