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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과 염소의 비유

진리의증인 2020. 12. 11. 05:14

이 정만 목사

블로그(네이버:논산동산교회, 다음:논산동산교회)

 

31인자가 자기 영광으로 모든 천사와 함께 올 때에 자기 영광의 보좌에 앉으리니 32모든 민족을 그 앞에 모으고 각각 구분하기를 목자가 양과 염소를 구분하는 것 같이 하여 33양은 그 오른편에 염소는 왼편에 두리라, 34그 때에 임금이 그 오른편에 있는 자들에게 이르시되 내 아버지께 복 받을 자들이여 나아와 창세로부터 너희를 위하여 예비된 나라를 상속받으라, 35내가 주릴 때에 너희가 먹을 것을 주었고 목마를 때에 마시게 하였고 나그네 되었을 때에 영접하였고 36헐벗었을 때에 옷을 입혔고 병들었을 때에 돌보았고 옥에 갇혔을 때에 와서 보았느니라, 37이에 의인들이 대답하여 이르되 주여 우리가 어느 때에 주께서 주리신 것을 보고 음식을 대접하였으며 목마르신 것을 보고 마시게 하였나이까, 38어느 때에 나그네 되신 것을 보고 영접하였으며 헐벗으신 것을 보고 옷 입혔나이까, 39어느 때에 병드신 것이나 옥에 갇히신 것을 보고 가서 뵈었나이까 하리니 40임금이 대답하여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가 여기 내 형제 중에 지극히 작은 자 하나에게 한 것이 곧 내게 한 것이니라 하시고 41또 왼편에 있는 자들에게 이르시되 저주를 받은 자들아 나를 떠나 마귀와 그 사자들을 위하여 예비된 영원한 불에 들어가라, 42내가 주릴 때에 너희가 먹을 것을 주지 아니하였고 목마를 때에 마시게 하지 아니하였고 43나그네 되었을 때에 영접하지 아니하였고 헐벗었을 때에 옷 입히지 아니하였고 병들었을 때와 옥에 갇혔을 때에 돌보지 아니하였느니라 하시니 44그들도 대답하여 이르되 주여 우리가 어느 때에 주께서 주리신 것이나 목마르신 것이나 나그네 되신 것이나 헐벗으신 것이나 병드신 것이나 옥에 갇히신 것을 보고 공양하지 아니하더이까, 45이에 임금이 대답하여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이 지극히 작은 자 하나에게 하지 아니한 것이 곧 내게 하지 아니한 것이니라 하시리니 46그들은 영벌에 의인들은 영생에 들어가리라 하시니라” (마태복음 25:31-46).

 

서론: 양과 염소의 비유는 종말론적 사상이며 최후의 심판에 대한 예언입니다. 최후의 심판 때에 하나님 말씀에 순종하고 예수님께 충성한 자()들은 하나님 나라에 들어가지만 하나님 말씀과 예수님 뜻에 불순종한 자(염소)들은 심판을 받는다는 말씀입니다. 본문은 말세를 살아가는 성도들이 어떤 자세로 살아야 할지를 감동적으로 말씀하고 있습니다.

이 시간에는 양과 염소의 비유란 제목으로 함께 은혜를 받고자 합니다.

 

1. 예수님의 심판의 기준은 믿음과 행함입니다.

복음을 들었다고 다 구원을 받고 교회에 출석했다고 구원이 보장되는 것은 아닙니다. 복음을 듣고 하나님 말씀을 받았으면 하나님 말씀대로 행하고 실천해야 합니다. 야고보 사도는 영혼 없는 몸이 죽은 것 같이 행함이 없는 믿음은 죽은 믿음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야고보서 2:26). 하나님 말씀대로 행하고 실천해야 한다는 말씀입니다. 예수님은 오른편에 있는 양들에게 내가 주릴 때에 너희가 먹을 것을 주었고, 목마를 때에 마시게 하였고, 나그네 되었을 때에 영접하였고, 헐벗었을 때에 옷을 입혔고, 병들었을 때에 돌보았고, 옥에 갇혔을 때에 와서 보았느니라.”고 말씀하셨습니다(35-36). 양들은 배고픈 자에게 음식을 주고, 목마른 자에게 물을 주고, 나그네로 오고 갈 데 없는 사람에게 잠자리를 주었습니다. 또 헐벗은 자에게 입을 옷을 주었고, 병든 자를 심방하고, 옥에 갇힌 자를 찾아 위로했습니다. 굶주린 자에게 음식을 주고, 목마른 자에게 물을 주고, 병든 자와 옥에 갇힌 자를 위로하고 격려하는 것은 어려운 일이 아닙니다. 마음만 먹으면 얼마든지 할 수 있습니다.

그리스도인이 선행과 구제를 베풀 때 어떤 사람에게 베풀어야 할까요? 성경을 해석하는 학자인 벵겔 선생님은 악한 자라고 선행의 대상에서 제외되는 것은 아니지만 악한 자보다는 선한 자에게 선행을 베푸는 것이 더 낫다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렇습니다. 악한 사람보다는 선하고 의로운 사람을 먼저 도와야 합니다. 오늘날 박애주의를 흉내 내는 어떤 사람들은 악을 조장하고 불의를 변론하는 일에 대단한 열정을 쏟고 있습니다. 이 인간들은 피해자의 고통과 두려움보다 가해자의 인권을 강조합니다. 박애주의도 좋고 인권도 좋지만 그런 일을 하려면 선과 악에 대한 분별력부터 가져야하며, 정의와 진리가 무엇이고, 우리 사회에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 생각하고 고민하는 자세가 필요합니다. 우리 사회의 일부 판사들도 피해자의 고통과 두려움보다 죄인의 인권을 우선시합니다. 정말 지옥에나 떨어질 인간들입니다. 선행과 구제의 목적은 선을 장려하고 선한 사람을 돕는 데 있습니다. 회개하지 않는 악하고 불의한 죄인들을 위해 물질과 시간을 바쳐 봉사하는 것은 분명히 문제가 있습니다. 선행과 구제의 대상과 선행과 구제의 우선순위에서 먼저 선하고 의로운 사람에게 해야 하고 그다음에 악하고 불의한 자들에게 해야 한다는 것을 명심하셔야 합니다.

그리스도인은 선행과 구제가 하나님의 뜻이라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그러나 선행과 구제에 참여하는 사람은 많지 않습니다. 그리스도인이 왜 선행과 구제에 참여하지 못할까요? 믿음이 없고 하나님에 대한 사랑이 부족하기 때문입니다. 자기 자식에게 인색하고 자기 자식 먹는 것을 아깝게 생각하는 부모는 없습니다. 왜냐하면 자식을 사랑하기 때문입니다. 같은 원리로 하나님을 사랑하는 사람은 하나님께 어떤 것을 드려도 아깝지 않습니다. 그리고 더 드리지 못해 아쉽고 안타깝습니다. 사랑과 구제와 선행은 구원받은 성도의 의무이며 신앙의 열매입니다. 구원받은 성도가 사랑과 구제와 선행에 열심을 내는 것입니다.

구제와 선행은 신앙의 열매입니다. 나와 내 가족의 사치와 허영에 쓰는 돈의 백 분의 일만 구제와 선행에 사용하면 하나님 나라는 지금보다 훨씬 힘 있게 확장될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호세아 6:6,에서 나는 인애를 원하고 제사를 원하지 아니한다.”고 말씀하셨습니다. 하나님은 형식적인 예배보다 이웃과 형제를 사랑하기 원하신다는 말씀입니다. 구제와 선행은 하나님 명령입니다. 예수님의 심판의 기준은 신앙의 지식이나 아름다운 신앙고백이 아니라 행함과 믿음입니다. 행함이 없는 믿음은 죽은 믿음입니다. 참된 믿음을 가진 사람은 신앙의 열매를 맺게 되어 있습니다. 그리스도인은 예수님 오른편의 양들처럼 구제와 선행에 앞장서서 하나님의 사랑을 실천하셔야 한다는 것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2. 선행과 구제는 겸손하고 낮은 자세로 하고 은밀하게 해야 합니다.

예수님께서는 너는 구제할 때에 오른손이 하는 것을 왼손이 모르게 하여 네 구제함이 은밀하게 하라......”고 말씀하셨습니다(마태복음 6:3). 본문에 보면 양들은 자기들의 선행과 구제를 전혀 기억하지 못하고 있지만 염소들은 그들의 선행을 다 기억하고 있습니다. 양들은 “......주여 우리가 어느 때에 주의 주리신 것을 보고 음식을 대접하였으며 목마르신 것을 보고 마시게 하였나이까, 어느 때에 나그네 되신 것을 보고 영접하였으며 헐벗으신 것을 보고 옷 입혔나이까, 어느 때에 병드신 것이나 옥에 갇히신 것을 보고 가서 뵈었나이까?”라고 반문했습니다. 양들은 예수님께서 그들의 선행을 칭찬하시자 깜짝 놀랐습니다. 왜냐하면 양들은 자기들의 선행을 기억하지 못하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반면에 왼편에 있는 염소들은 자기들의 선행을 다 기억하고 있었습니다. “주여 우리가 어느 때에 주께서 주리신 것이나, 목마르신 것이나, 나그네 되신 것이나, 헐벗으신 것이나, 병드신 것이나, 옥에 갇히신 것을 보고 공양하지 아니하더이까?”라고 반문했습니다. 악인들은 자신들의 선행을 기억하고 자랑하고 있다가 예수님께서 사랑을 행하지 않았다고 책망하시자, 반발한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왜 악인들의 구제와 선행을 인정하시지 않았느냐? 악인들은 자기 자랑과 자기 과시라는 영적 허영을 위해 구제와 선행을 베풀었기 때문입니다.

구제와 선행을 베풀 때는 다음과 같은 몇 가지 원칙이 지켜져야 합니다. 먼저, 구제와 선행이 사람들에게 자기 이름을 알리고 자기 선행을 자랑하고 과시하는 수단이 되면 안 됩니다. 신문과 방송에 사진과 이름이 나가면 많은 사람들이 돈 봉투를 들고 줄을 서서 선행과 구제에 참여합니다. 오늘날은 덜 하지만 옛날에는 선거철만 되면 정치인들이 금일봉이라는 봉투를 들고 신문사와 방송국을 찾아다녔습니다. 사람들에게 자기 이름을 알리는 수단으로 구제와 이웃돕기를 이용한 것입니다. 양심도 없고 부끄러운 중도 모르는 인간들입니다.

또한 남의 것으로 선행을 하거나 타인의 것으로 생색을 내면 안 됩니다. 남의 돈을 떼먹거나 마땅히 돌려줄 것을 돌려주지 않고 그 돈으로 생색을 내면 안 된다는 말씀입니다. 다른 사람 돈 떼어먹고 남을 불행에 빠뜨린 사람이 구제와 선행을 한다면 얼마나 가증스럽습니까? 또 구제와 선행과 하나님 사업에 쓴다고 마땅히 하나님께 드려야 할 십일조나 감사헌금 등 하나님의 것을 떼먹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이 사람들도 잘못된 사람들입니다. 십일조는 하나님의 것인데 왜 하나님의 것을 가지고 생색을 냅니까? 어떤 하인이 주인에게 돈을 빌려갔습니다. 하인은 명절이라고 주인에게 갈비를 사오고 주인의 생일이라고 진귀한 선물을 가져왔습니다. 그러나 하인은 기한이 되어도 주인에게 빌려간 돈을 갚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하루는 주인이 하인을 불러 기한이 지났는데 왜 돈을 갚지 않느냐?”고 물었습니다. 그랬더니 하인은 지난번에 주인님께 가져온 갈비값이 얼마이고 주인님의 생일에 가져온 선물값이 얼마이니 그것으로 주인에게 빌려온 돈을 다 갚았다고 대답했습니다. 그러자 주인은 하인에게 내가 언제 너에게 그런 것을 요구했느냐?”고 하인을 책망했습니다. 하나님의 것은 하나님께 드리고 자기의 것으로 선행을 하든지 구제를 해야지 하나님의 것으로 생색을 내는 것은 명백하게 잘못된 것입니다.

또한 선행이나 구제는 받는 사람의 기분이나 자존심 상하지 않도록 지혜롭게 해야 합니다. 몇 푼 안 되는 선행이나 구제가 받는 사람의 인격과 자존심에 상처를 입히면 안 된다는 말씀입니다. 옛날에 이스라엘에서 구제를 베푸는 사람들의 교만과 위선이 얼마나 극에 달했으면 예수님께서 오른손으로 주는 것을 왼손이 모르게 하라고 말씀하셨겠습니까? 구제와 선행은 예수님의 지상명령입니다. 그리스도인은 불신자와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구제와 선행에 열심을 내야 하지만 겸손하고 낮은 자세로 해야하고 오른손이 하는 것을 왼손이 모르게 은밀하게 해야 한다는 것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3. 하나님은 우리의 이웃에 대한 헌신과 사랑을 통해 우리의 사랑을 받으십니다.

예수님께서 양들에게 내가 주릴 때에 너희가 먹을 것을 주었고, 목마를 때에 마시게 하였고......헐벗었을 때에 옷을 입혔고, 병들었을 때에 돌보았고, 옥에 갇혔을 때에 와서 보았느니라.”고 말씀하시자 양들은 깜짝 놀라 우리가 어느 때에 주의 주리신 것을 보고 음식을 대접하였으며 목마르신 것을 보고 마시게 하였나이까?”라고 반문했습니다. 그러자 예수님은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가 여기 내 형제 중에 지극히 작은 자 하나에게 한 것이 곧 내게 한 것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지극히 작은 자 하나에게 한 것이 하나님께 한 것이 되고 예수님께 한 것이 된다는 말씀입니다. 반면에 왼편에 있는 염소들이 우리가 어느 때에 주께서 주리신 것이나, 목마르신 것이나, 헐벗으신 것이나, 병드신 것이나, 옥에 갇히신 것을 보고 공양하지 아니하더이까?”라고 반문하자, 예수님은 “......이 지극히 작은 자 하나에게 하지 아니한 것이 곧 내게 하지 아니한 것이니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인간이 직접 하나님께 은혜와 사랑을 갚는 방법은 없습니다. 인간이 하나님을 사랑하고 하나님 은혜를 갚는 길은 우리의 형제와 이웃을 사랑하는 방법밖에 없습니다.

군인으로 성자란 칭호를 받은 투르스 마틴(Martin of Tours)이 어느 추운 겨울날 어떤 성으로 들어가고 있을 때 한 거지가 그에게 다가와 한 푼만 달라고 구걸했습니다. 거지는 추위에 얼굴이 시퍼렇게 얼어 온몸을 덜덜 떨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마틴은 거지에게 줄만한 것이 없었습니다. 그래서 마틴은 그가 걸치고 있던 외투를 벗어 두 조각으로 찢어 한 조각은 거지에게 주고 한 조각은 마틴이 걸쳤습니다. 그러자 거지는 마틴에게 축복을 빌고 어디론가 사라졌습니다. 그 날 밤에 마틴은 꿈을 꾸었습니다. 마틴은 꿈속에서 하늘나라의 천군 천사들과 예수님을 보았는데 꿈속에서 본 예수님은 로마 군인의 외투 반쪽을 걸치고 계셨습니다. 꿈속에서 한 천사가 예수님께 주님! 주님께서는 왜 그처럼 낡은 외투를 걸치고 계십니까?”라고 묻자, 예수님은 이 외투는 내 종 마틴이 나에게 준 것이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추운 겨울날 가난한 거지에게 준 외투 반쪽이 예수님께 드린 것이 된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이웃을 사랑하는 간접적인 방법을 통해서 우리의 사랑을 받으십니다. 가난한 이웃을 사랑하는 것이 하나님과 예수님을 사랑하는 것이 된다는 것을 명심하셔야 합니다. 예수님은 양들에게 여기 있는 내 형제 중에 지극히 작은 자 하나에게 한 것이 곧 내게 한 것이니라.” 말씀하시고 염소들에게는 이 지극히 작은 자 하나에게 하지 아니한 것이 곧 내게 하지 아니한 것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가난하고 연약한 형제를 사랑하는 이웃 사랑을 통해 우리의 사랑을 받으신다는 것을 명심하셔야 합니다.

지상의 교회는 완전한 교회가 아닙니다. 그래서 지상의 교회에는 의인과 악인이 섞여 있고 양과 염소가 함께 있습니다. 지상의 교회는 양과 염소가 함께 있기 때문에 싸우기도 하고 시끄럽기도 합니다. 우리들은 때로 왜 하나님께서 양과 염소를 구별하시지 않을까?” 생각하지만 그것은 하나님의 깊으신 뜻을 몰라서 그렇습니다. 하나님께서 염소를 심판하면 양이 상처를 받습니다. 왜냐하면 염소를 양으로 오해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최후의 심판 날까지 양과 염소를 함께 두시는 것입니다. 저 사람이 진실한 그리스도인인지 아닌지 무엇으로 알 수 있습니까? 예수님께서 양과 염소를 판단하실 때 무엇을 보셨습니까? 귀신을 쫓아내고 죽은 자를 살리는 신앙의 능력을 보셨습니까? 아닙니다. 예수님은 가난하고 연약한 이웃에 대한 사랑과 구제와 선행을 보셨습니다. 참된 신앙은 입술의 고백이나 신앙의 지식이 아니라 사랑의 열매로 증명된다는 것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말씀을 맺겠습니다. 첫째, 예수님의 심판의 기준은 믿음과 행함이라고 말씀드렸습니다. 우리가 하나님 앞에 가지고 가고 우리가 하나님 앞에 내놓을 수 있는 것은 믿음과 사랑밖에 없다는 것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둘째, 선행과 구제를 베풀 때는 겸손하고 낮은 자세로 하고 오른손이 하는 것을 왼손이 모르게 은밀하게 해야 한다고 말씀드렸습니다. 구제와 선행은 겸손하고 낮은 자세로 하고 은밀하게 해야 한다는 것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셋째, 하나님은 우리의 이웃에 대한 사랑과 헌신을 통해 우리의 사랑을 받으신다고 말씀드렸습니다. 2020년이 저물어갑니다. 올해는 코로나19’라는 질병으로 온 세계가 힘든 시기를 보내고 있습니다. 삶이 어렵고 힘들지만 주위에 있는 나보다 어려운 사람을 돌아보면 예수님께서 얼마나 기뻐하실까요? 예수님 오른편에 있는 양들처럼 하나님께 칭찬받고 인정받으실 수 있는 성도 여러분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2020, 12, 1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