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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한 갈대를 꺽지 아니하시고

진리의증인 2020. 12. 4. 06:47

이 정만 목사

블로그(네이버:논산동산교회, 다음:논산동산교회)

 

9거기에서 떠나 그들의 회당에 들어가시니 10한쪽 손 마른 사람이 있는지라, 사람들이 예수를 고발하려 하여 물어 이르되 안식일에 병 고치는 것이 옳으니이까, 11예수께서 이르시되 너희 중에 어떤 사람이 양 한 마리가 있어 안식일에 구덩이에 빠졌으면 끌어내지 않겠느냐, 12사람이 양보다 얼마나 더 귀하냐, 그러므로 안식일에 선을 행하는 것이 옳으니라 하시고 13이에 그 사람에게 이르시되 손을 내밀라 하시니 그가 내밀매 다른 손과 같이 회복되어 성하더라, 14바리새인들이 나가서 어떻게 하여 예수를 죽일까 의논하거늘 15예수께서 아시고 거기를 떠나가시니 많은 사람이 따르는지라 예수께서 그들의 병을 다 고치시고 16자기를 나타내지 말라 경계하셨으니 17이는 선지자 이사야를 통하여 말씀하신 바 18보라 나의 택한 종 곧 내 마음에 기뻐하는 바 내가 사랑하는 자로다, 내가 내 영을 그에게 줄 터이니 그가 심판을 이방에 알게 하리라, 19그가 다투지도 아니하며 들레지도 아니하리니 아무도 길에서 그 소리를 듣지 못하리라, 20상한 갈대를 꺾지 아니하며 꺼져가는 심지를 끄지 아니하기를 심판하여 이길 때까지 하리니 21또한 이방들이 그의 이름을 바라리라, 함을 이루려 하심이니라” (마태복음 12:9-21)

 

서론: 어느 날 예수님께서 회당에서 한쪽 손이 마른 사람을 고쳐주셨습니다. 이날은 안식일이었기 때문에 이스라엘의 서기관과 바리새인들은 예수가 안식일을 범했다고 비난했습니다. 그러나 복음서의 저자 마태는 이사야 선지자의 말을 인용하여 예수님은 상한 갈대를 꺾지 아니하고 꺼져가는 심지를 끄지 아니하셨다.”고 말했습니다. 예수님께서 병들고 약하고 버림받은 상한 갈대들을 고쳐주시고 고통에서 구원해 주셨다는 말씀입니다.

이 시간에는 상한 갈대를 꺾지 아니하시고란 제목으로 함께 은혜를 받고자 합니다.

 

1. 예수님은 상한 갈대를 꺾지 아니하시고 꺼져가는 심지를 끄지 아니하셨습니다.

어느 날 예수님께서 유대인의 회당에 들어가셨는데 한쪽 손이 마른 사람이 있었습니다. ‘손 마른사람이란 손을 정상적으로 사용할 수 없는 사람을 말합니다. 본문에는 손 마른 사람이라고만 나와 있지만 외경(外經, 성경으로 채택되지 않은 문서)히브리인의 복음서에는 이 사람이 돌을 깎고 돌에 글이나 그림을 새기는 석공(石工)이었다고 기록돼 있습니다. 그리고 본문과 병행 구절인 누가복음 6:6,에는 이 사람의 오른손이 말랐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석공이 손을 사용하지 못하면 생활에도 불편이 있지만 일을 할 수 없기 때문에 경제적으로 어려움을 당합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 석공의 손을 고쳐주신 것입니다.

복음서의 저자 마태는 이 사건을 기록하면서 예수님은 상한 갈대를 꺾지 아니하고 꺼져가는 심지를 끄지 아니하셨다고 말했습니다. 본문 18-21절 말씀은 이사야 42:1-4절 말씀을 마태가 복음의 빛 아래에서 재해석하여 인용한 것입니다. “18보라 내가 택한 종 곧 내 마음에 기뻐하는 바 내가 사랑하는 자로다 내가 내 영을 그에게 줄 터이니 그가 심판을 이방에 알게 하리라 19그는 다투지도 아니하며 들레지도 아니하리니 아무도 길에서 그 소리를 듣지 못하리라 20상한 갈대를 꺾지 아니하며 꺼져가는 심지를 끄지 아니하기를 심판하여 이길 때까지 하리니 21또한 이방들이 그의 이름을 바라리라......” 이 말씀은 바사(페르시아) 왕 고레스에 대한 이사야 선지자의 예언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이방인인 고레스를 하나님 일군과 하나님의 사자로 사용하셨습니다. 마태는 고레스에 대한 예언이 예수님을 통해 성취되었다고 주장한 것입니다. 마태가 인용한 말씀에는 상한 갈대를 꺾지 아니하고 꺼져가는 심지를 끄지 아니하시는 예수님의 인자한 성품이 잘 나타나 있습니다.

예수님은 다투지 아니하셨습니다. 본문 19절에 그가 다투지 아니하며......”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하나님 일을 하는 사람은 다툼을 피해야 합니다. 복음서에 보면 서기관과 바리새인들이 예수님을 공격하고 비난했지만 예수님은 그들과 다투지 아니하셨습니다. 다투지 않으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참고 인내하고 다툼을 피해야 합니다. 아브라함은 그의 목자들과 롯의 목자들의 다툼을 중단시키기 위해 롯에게 땅을 선택해서 떠나게 했습니다(창세기 13:8-9). 그리고 이삭은 블레셋 사람들과 다투지 않으려고 그가 판 우물을 두 번이나 양보했습니다. 그랬더니 하나님께서 더 큰 축복으로 보상해주셨습니다(창세기 26:15-22). 그리스도인은 싸움꾼이 아닙니다. 그리스도인은 예수님처럼 다투지 않는 사람이 돼야 합니다.

또한 예수님은 시끄럽게 떠들지 아니하셨습니다. 본문 19절 중반절에 “......들레지도 아니하리니 아무도 길에서 그 소리를 듣지 못하리라말씀하고 있습니다. ‘들레다는 말은 왁자지껄 시끄럽게 떠드는 것을 말합니다. 들레다란 말은 어리석고 무식한 사람의 고함소리, 술 취한 사람의 야유와 고성방가, 패를 지어서 싸우는 소리, 개가 짖는 소리 등등 시끄럽게 떠드는 것을 말합니다. 말이란 때와 장소에 따라 큰소리로 해야 할 때도 있고 작은 소리로 해야 할 때도 있습니다. 때와 장소를 가리지 않고 큰소리로 떠드는 사람은 분명히 문제가 있는 사람입니다. 예수님은 떠들거나 소리를 지르시지 않았습니다. 원래 일을 하는 사람은 말이 없고 소리가 없습니다. 일을 한다고 떠드는 사람은 일을 하지 않는 사람이든지 그릇이 작은 사람이든지 둘 중 하나입니다. 그리스도인은 일을 할 때 예수님처럼 소리 없이 조용히 하셔야 한다는 것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다음으로 예수님은 상한 갈대를 꺾지 아니하셨습니다. 본문 20절에 상한 갈대를 꺾지 아니하며 꺼져가는 심지를 끄지 아니한다......” 말씀하고 있습니다. 예수님은 상한 갈대를 꺾지 아니하고 꺼져가는 심지를 끄지 아니하신다는 말씀입니다. 우리사회에는 스스로의 힘으로 일어설 수 없는 상한 갈대들이 많이 있습니다. 그리스도인은 스스로 일어설 수 없는 상한 갈대들의 힘이 되고 의지가 되어 주셔야 합니다. 학생들은 공부에 대한 경쟁과 스트레스로 상처를 입은 상한 갈대들이며 청소년들은 근거 없는 열등감으로 괴로워하는 상한 갈대들입니다. 또한 청년들은 이상과 현실 사이에서 방황하며 이루지 못한 꿈 때문에 상처를 안고 살아가며 어른들은 인생의 무거운 짐을 지고 살아가는 상한 갈대들입니다.

예수님은 지치고 상한 영혼들을 치료하시고 꺼져가는 생명의 심지를 살리기 위해 이 땅에 오셨습니다. 그리스도인은 예수님을 본받아 상한 갈대를 일으켜 세우고 꺼져가는 생명의 심지를 살려내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우리사회는 빈부격차와, 경제적 어려움과, 신체적 장애와, 편견과, 차별과 열등감으로 힘겹게 살아가는 상한 갈대들이 많이 있습니다. 그들에게 힘과 용기를 주고 그들이 희망을 가질 수 있도록 사랑과 관심을 가지고 격려하고 기도해줘야 합니다. 그리스도인은 예수님을 본받아 상한 갈대를 꺾지 아니하고 꺼져가는 심지를 끄지 아니하는 사랑과 희망의 천사가 되셔야 한다는 것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2. 안식일에도 구제와 병자의 심방과 사랑과 은혜를 베푸는 선한 일은 할 수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손 마른 사람을 고쳐주신 날은 안식일이었습니다. 이스라엘의 종교지도자인 서기관과 바리새인들은 안식일에는 하나님께 예배드리는 일 외에는 어떤 일도 하면 안 된다고 가르쳤습니다. 주전 2세기 경 이스라엘은 시리아의 통치를 받았습니다. 헬라의 사상과 문화에 심취한 시리아 왕 안티오쿠스는 헬라의 사상과 문화를 배경으로 대시리아제국의 건설을 꿈꿨는데 하나님만 숭배해야한다고 고집하는 유대인과 유대교가 대시리아제국의 건설에 방해가 됐습니다. 그래서 안티오쿠스는 유대교를 말살할 목적으로 유대인들에게 강제로 돼지고기를 먹게 하고 우상에게 제사를 지내게 했습니다. 그 결과 안티오쿠스의 정책에 반대한 유대인들이 마카비 형제를 중심으로 반란을 일으켰습니다. 시리아 왕 안티오쿠스는 반란에 가담한 유대인을 소탕하기 위해 군대를 파견했는데 이 날은 안식일이었습니다. 마카비의 추종자들은 시리아 군대를 피해 광야에 있는 한 동굴 속으로 들어갔는데 안식일에 전쟁을 하는 것은 안식일을 거룩하게 지키라는 하나님 율법을 범하는 것이 된다고 시리아 군대에 아무 저항도 하지 않고 동굴속에서 죽어갔습니다. 유대인의 율법과 전통은 안식일에 적이 공격해 오면 방어를 하는 것은 허락됐지만 마카비 일당은 방어도 하지 않고 죽어간 것입니다. 이처럼 유대인들은 목숨을 걸고 안식일을 지켰으며 안식일에는 어떤 일도 하면 안 된다고 생각했습니다. 이게 바로 율법주의의 폐단과 율법주의의 비극인 것입니다.

예수님 당시에 이스라엘에는 율법에 권위 있는 두 학파가 있었는데 하나는 삼마이(Shammai) 학파이고 다른 하나는 힐렐(Hillel) 학파입니다. 삼마이 학파는 율법을 엄격하게 해석하고 힐렐 학파는 율법의 해석에 상당히 융통성이 있었습니다. 안식일 문제에도 두 학파는 약간 차이가 있었지만 생명에 위협이 있을 때는 안식일에도 병을 고쳐주도록 허용했습니다. 그러나 손 마른 사람은 생명이 위험한 것도 아니고 안식일이 지나가기를 기다린다고 병세가 악화되거나 환자에게 고통이 따르는 것도 아닙니다. 예수님께서 손 마른 사람을 고쳐주시면 서기관과 바리새인들은 예수가 안식일을 범했다고 비난할 수밖에 없습니다.

이스라엘의 서기관과 바리새인들은 예수님께 안식일에 병 고치는 것이 옳으냐?”고 물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만약 너희가 집에서 기르는 양 한 마리가 안식일에 구덩이에 빠졌다면 안식일을 지킨다고 양을 구덩이에 버려 둘 사람이 있겠느냐, 안식일이라도 양을 구해내지 않겠느냐, 사람이 양보다 얼마나 더 귀하냐, 그러므로 안식일에 선을 행하는 것이 옳으니라말씀하시고 병자의 손을 고쳐주셨습니다. 유대인의 안식일 규례에는 안식일에 양이 구덩이에 빠지면 건져내도록 규정하고 있으며 안식일에도 동물의 먹이는 주도록 허용하고 있습니다. 양이나 집에서 기르는 짐승도 안식일에 필요한 도움을 받는다면 사람은 더욱 받아야하지 않겠습니까? 사람은 양보다 얼마나 귀한 존재입니까? 그러므로 안식일에 구제나 병자의 심방이나 전도나 인간에게 도움을 주는 선한 일은 얼마든지 할 수 있습니다.

칼빈 선생님은 사람의 생명을 빼앗는 자는 악행 자이다. 그러나 곤난 중에 있는 자들을 도우려고 애쓰지 않는 자들도 살인자와 크게 다를 바 없다......율법을 거스려 무엇을 하려는 자 뿐만 아니라 자기의 의무에 태만한 자 역시 범법자이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안식일이라는 핑계로 선을 행하지 않으면 죄가 된다는 말씀입니다. 율법은 양날을 가진 칼입니다. 하지 말라는 것을 해도 율법을 범하는 것이 되고 하라고 명하는 것을 하지 않아도 율법을 범하는 죄가 됩니다. 안식일에 선을 행하는 것은 죄가 되지 않지만 안식일이라는 핑계로 마땅히 해야 할 일을 하지 않으면 죄가 된다는 것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3. 하나님 일을 하는 사람은 다툼과 분쟁을 피해야 합니다.

예수님께서 손 마른 사람을 고쳐주시자, 서기관과 바리새인들은 예수가 안식일을 범했다고 어떻게 하면 예수를 죽일 수 있을까?”하고 적개심을 불태웠습니다. 그러자 예수님은 그들과 충돌을 피하기 위해 그곳을 떠나셨습니다. 그리고 예수님께서는 당신을 따르는 사람들의 병을 고쳐주시고 자기가 병을 고쳐주셨다는 것을 나타내지 말라고 경계하셨습니다. 육신이 불편한 사람의 병을 고쳐주고 환자의 건강을 회복시켜 준 일이 얼마나 선하고 아름다운 일입니까? 칭찬을 받고 영광을 받아야 하지만 유대인들은 예수가 안식일을 범했다고 비난한 것입니다. 제가 항상 드리는 말씀입니다만 반대가 없는 선행은 없습니다. 아무리 선하고 의로운 일도 반대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 일을 하는 사람은 비판이나 세상 여론 의식하지 말고 하나님만 바라보고 일을 해야 합니다.

그리스도인이 하나님 일이나 의로운 일을 하다가 반대자를 만나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반대자들과 맞서서 싸워야 할까요? 아니면 피해야 할까요? 맞서서 싸워야 할 때도 있지만 경우에 따라 참고 피할 줄도 알아야 합니다. 예수님께서 손 마른 사람을 고쳐주셨지만 안식일 율법을 범하지는 않았습니다. 그러나 오랜 세월 동안 그릇된 종교적 관습을 율법과 전통으로 지켜온 서기관과 바리새인들은 예수가 안식일을 범했다고 확신하고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그들과는 말이 통할 수 없고 이성적인 대화가 될 수 없습니다. 이성적인 대화가 되지 않고 말이 통하지 않는 사람들과는 논쟁을 피하는 것이 좋습니다. 참고 인내하는 것이 항상 최선의 방법일 수는 없지만 작전상 후퇴가 필요한 때도 있는 것입니다.

또한 세상만사가 다 그렇지만 하나님 일에도 때가 있습니다. 중요한 일일수록 타이밍(timing)을 잘 맞춰야 합니다. 너무 서둘러도 안 되고 너무 늦어도 효과가 떨어집니다. 그래서 일에는 타이밍이 중요한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세상을 구원하시는 일도 하나님께서 예정하신 때가 있습니다. 예수님과 종교지도자들의 반목과 갈등이 깊어지면 하나님 일에 지장을 받을 수밖에 없습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 병을 고치신 선한 일을 하고도 숨기시고 종교지도자들과의 충돌을 피하신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두려워서 서기관과 바리새인들을 피하신 것도 아니고 그들을 제압하실 만한 능력이 없어서 피하신 것도 아닙니다. 율법주의자들과 맞서서 싸워봐야 하나님 일에 도움이 되지 않기 때문입니다. 하나님 일을 하는 사람에게는 용기와 담력도 필요하지만 경우에 따라 후퇴하고 물러설 줄 아는 지혜도 필요합니다. 하나님 일을 하는 사람은 다툼과 분쟁을 피해야 한다는 것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말씀을 맺겠습니다. 첫째, 예수님은 상한 갈대를 꺾지 아니하고 꺼져가는 심지를 끄지 아니하셨습니다. 그리스도인은 빈부격차와 질병과 가난과 편견과 차별로 상처받고 살아가는 상한 갈대들에게 하나님의 사랑과 은혜를 베풀어야 한다는 것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둘째, 안식일에도 가난한 자를 구제하고 병자를 심방하고 전도하고 사랑과 은혜를 베풀고 봉사하는 선한 일은 할 수 있다고 말씀드렸습니다. 그러나 선을 행한다고 예배에 빠지고 주일을 범하면서 봉사나 사회활동을 하는 것은 명백히 안식일을 범한 죄가 됩니다. 율법주의와 자유주의는 그리스도인이 피하고 경계해야 할 신앙의 양 극단입니다. 주일날은 하나님께 예배를 드리고 하나님의 뜻 안에서 사랑과 은혜와 선을 베풀 수 있다는 것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셋째, 하나님 일을 하는 사람은 다툼과 분쟁을 피해야 한다고 말씀드렸습니다. 그리스도인은 다투고 싸우면 안 됩니다. 예수님처럼 상한 갈대를 꺾지 아니하고, 꺼져가는 심지를 끄지 아니하며, 고난 중에 있는 사람들에게 사랑과 은혜를 베풀고 선하고 아름다운 모습으로 살아가시는 성도 여러분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2020, 12, 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