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넓은 길과 좁은 길

진리의증인 2020. 5. 15. 05:56

 

이 정만 목사

블로그(네이버:논산동산교회, 다음:논산동산교회)

                                                    넓은 길과 좁은 길

 

13좁은 문으로 들어가라, 멸망으로 인도하는 문은 크고 그 길이 넓어 그리로 들어가는 자가 많고 14생명으로 인도하는 문은 좁고 길이 협착하여 찾는 자가 적음이니라” (마태복음 7:13-14).

 

 

   서론: “좁은 문으로 들어가라. 멸망으로 인도하는 문은 크고 그 길이 넓어 그리로 들어가는 자가 많고 생명으로 인도하는 문은 좁고 길이 협착하여 찾는 자가 적음이니라” 예수님께서는 좁은 길로 가고 좁은 문으로 들어가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왜냐하면 좁은 길이 생명의 길이요 좁은 문이 생명의 문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많은 사람들은 좁은 길보다 넓은 길로 가기를 좋아합니다. 왜냐하면 넓은 길은 자유롭고 편리하며 많은 사람들이 넓은 길로 가기 때문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좁은 길은 생명의 길이요 넓은 길은 멸망의 길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러므로 그리스도인은 좁은 길로 가야하고 좁은 길로 가기를 힘써야합니다.

이 시간에는 “넓은 길과 좁은 길”이라는 제목으로 함께 은혜를 받고자 합니다.

 

1.많은 사람들이 넓은 길로 가지만 넓은 길은 멸망의 길입니다.

   사람들은 좁은 길보다 넓은 길로 가기를 좋아합니다. 인간의 마음속에는 많은 사람을 따르고자 하는 군중심리가 자리 잡고 있습니다. 그래서 사탄은 언제나 군중심리를 이용하여 사람들을 유혹합니다. “봐라! 많은 사람들이 넓은 길로 가고 있다. 누구도 그 일을 했고 아무개도 그렇게 했다. 누구나 다 그렇게 하고 있다. 이것은 이 시대의 문화요 세계적인 추세다 그러니까 이것은 죄가 아니다”고 속삭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사탄의 이런 감언이설에 넘어가 넓은 길로 가고 멸망의 길로 가고 있습니다. 많은 사람이 받아들이고 절대 다수가 따른다고 정의가 되고 진리가 되는 것은 아닙니다. 다수의 결정이 가장 악하고 가장 불의한 경우도 있습니다. 2천 년 전에 예수님을 죄인으로 십자가에 못 박아 죽인 유대인들의 결정이 옳았습니까? 아니면 예수님이 옳았습니까? 또 노아의 홍수 때에 하나님의 홍수 심판을 믿고 하나님 말씀에 순종하여 방주를 만든 노아의 선택이 옳았습니까? 아니면 하나님의 홍수 심판을 믿지 않고, 방주를 만드는 노아를 멸시하고, 조롱하고, 방주에 들어가지 않고 멸망한 절대 다수가 옳았습니까? 많은 사람의 의견과 다수의 결정이 한두 사람의 생각이나 소수의 결정보다 잘못된 선택을 할 위험성이 적다는 것이지 다수의 결정이 항상 옳은 것은 아니라는 것을 명심하셔야 합니다.

   또한 사람들은 타락한 자유와 죄악의 쾌락을 즐기기 위해 넓은 길로 가기를 좋아합니다. 술을 먹는 사람들은 술 없이 무슨 재미로 세상을 사느냐고 말합니다. 술이나 담배를 한다고 구원을 받지 못하거나 술 담배를 한다고 지옥에 가는 것은 아닙니다. 그러나 술이나 담배는 성도의 경건한 생활에 도움이 되지 않고 신앙과 교회에 덕이 되지 않기 때문에 삼가야 합니다. 또 세상 사람들은 성적 방종과 성적 타락을 성의 자유와 성이 주는 기쁨과 행복이라고 주장합니다. 그러나 성적으로 방탕한 인간은 절대로 행복할 수 없습니다. 성적으로 방탕한 사람은 가정이 화목할 수 없고 영혼이 평안할 수 없습니다. 그리고 성적으로 방탕한 삶을 산 사람은 하나같이 인생의 노년이 외롭고 불행합니다. 인간은 이성적인 존재입니다. 이성적인 존재는 자신의 행위에 대해 책임을 져야 합니다. 흔히 하는 말로 아무리 운명적인 사랑도 부모와 자식과 사회의 구성원으로 책임과 의무를 다 하지 못하고 가족과 다른 사람에게 피해를 주면 정당화 될 수 없고 비난을 피할 수 없습니다.

   또한 넓은 길에는 자유와 인권이라는 이름으로 불의와 죄악이 당당하게 허락되고 있습니다. 불의하고 부정한 행위도 사생활 보호라는 이름으로 감춰지고 개인의 자유와 소수의 인권이라는 이름으로 정당한 간섭과 규제마저 법으로 금지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타락한 소수의 목소리가 건전한 다수의 주장을 압도하고 다수가 소수의 방종과 반인륜적인 행위를 비판할 수 없는 것입니다. 넓은 길로 가는 사람들은 방종과 타락과 반인륜적인 행위를 인생의 기쁨과 행복이라고 주장합니다. 그러나 부정하고 부도덕한 방법으로 얻는 기쁨과 만족은 절대로 참된 만족과 행복이 될 수 없습니다. 그것은 마약처럼 인생을 더 큰 불행과 파멸로 유혹하는 사탄의 술책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이사야 48:22,에서 “악인에게는 평강이 없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죄인은 절대로 참된 자유와 평화를 누릴 수 없습니다.

   거짓된 철학에 의한 거짓된 확신보다 위험한 것은 없습니다. 불신자들은 거짓된 확신에 빠져 있기 때문에 멸망과 파멸의 길에서도 자신만만합니다. 많은 사람이 가기 때문에 잘못된 길이 아니라고 믿는 것입니다. 많은 사람이 가는 길이라고 옳은 길이 아니며 다수의 선택이라고 바른 것은 아니라는 것을 명심하셔야 합니다. 그리스도인의 판단과 선택의 기준은 무엇이냐? 하나님 말씀이신 성경입니다. 그리스도인에게는 성경이 신앙과 행위의 유일한 법과 기준입니다. 그러므로 성경말씀에 역행하는 것은 거부하고 성경말씀대로 살아야 합니다. 시대의 문화와 유행과 세계적인 추세라는 것은 대부분 그동안 억제돼 온 죄악의 욕망이 분출된 것이며 새로운 형태의 죄악이 등장한 것입니다. 그리스도인은 세계적인 추세나 문화라는 말에 속으면 안 됩니다. 세상 풍조와 문화가 아무리 바뀌어도 그리스도인은 만고불변의 진리인 성경말씀을 따라야 합니다. 죄와 무죄, 선과 악을 판단하는 기준은 여론이나 시대의 문화나 시대의 가치관이 아니라 만고불변의 진리인 성경말씀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넓은 길로 가지만 넓은 길은 멸망의 길이라는 것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2.좁은 길은 가는 사람이 적지만 좁은 길이 생명의 길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좁은 길로 가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좁은 길의 의미가 무엇일까요? 좁은 길은 신앙의 길이요, 영생의 길이요, 천국 가는 길입니다. 벵겔 선생님은 ‘좁은’의 의미를 의(義) 또는 ‘의의’로 해석했습니다. 그러므로 좁은 길은 의의 길입니다. 또한 좁은 길로 간다는 말은 인간적인 방법이나 세상의 흐름이 아니라 신앙의 규범을 따라 살아간다는 뜻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리스도인은 세상의 풍조와 세상이 어떻게 변하든지 하나님 말씀과 하나님 뜻에 합당하게 살아야 합니다. 그것이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좁은 길이며 생명의 길입니다. 그러므로 그리스도인은 흔들림 없이 힘써 좁은 길로 가야 합니다.

   다음으로 좁은 길로 가는 사람은 신앙으로 인한 고난을 각오해야 합니다. 예수님께서는 “좁은 문으로 들어가라. 생명으로 인도하는 문은 좁고 길이 협착하여 찾는 자가 적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좁은 길은 길이 좁고 협착해서 찾는 사람이 적습니다. 길이 좁고 협착(狹窄)하다는 말은 신앙의 길에는 고난과 어려움이 있다는 뜻입니다. 부흥사들이 불신자나 초신자들을 상대로 복음을 전할 때는 신앙생활의 유익한 점과 긍정적인 면을 강조합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을 알지 못하고 믿음도 없는 사람들에게 의무와 책임을 강조하고 고난과 시련을 얘기하면 복음에 부정적인 인상을 심어 줄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부흥사들은 쉽고 재미있는 말로 사람들의 마음을 여는 것입니다. 그러나 예수님과 세례 요한은 한 번도 그렇게 말씀하시지 않았습니다. 예수님과 세례 요한은 복음을 전하실 때 첫 마디가 “회개하라 천국이 가까이 왔느니라.”고 말씀하셨습니다. 회개를 강조하신 것입니다. 왜냐하면 회개는 신앙의 첫걸음으로 회개가 없으면 죄를 용서받을 수 없고, 회개가 없으면 하나님의 축복을 받을 수 없으며, 회개가 없으면 중생과 거듭 남의 역사도 불가능하기 때문입니다.

   싸구려 신앙과 싸구려 신자라는 말이 있습니다. 희생과 봉사는 하지 않고 복만 받기 원하는 사람들을 두고 한 말입니다. 그리스도인 중에는 물건 값 깎듯이 예수도 에누리해서 믿고 천국도 에누리해서 들어가려고 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하나님과 교회를 위한 희생과 봉사는 안 하거나 최소한으로 하고 복은 많이 받고 천국에 쉽게 들어가려고 하는 사람들이 싸구려 신자입니다. 그리스도인이 싸구려 신자가 된 데에는 목사들의 책임이 큽니다. 예수님과 세례 요한처럼 회개를 강조하고, 희생과 봉사를 가르치고, 책임과 의무를 역설해야 하는데, 목사들이 교인들 비위 맞추느라 공짜 좋아하는 싸구려 신자로 양육한 것입니다. 예수 쉽게 믿고 희생과 봉사 없이 천국 가겠다는 생각은 분명히 잘못된 믿음입니다. 예수님은 한 번도 편하고 쉽게 예수 믿으라고 말씀하시지 않았습니다. 예수님은 오히려 제자들에게 “나를 따르는 자는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예수 믿는 사람에게는 하나님이 주시는 신령한 기쁨도 있지만 예수 때문에 당하는 고난과 시련도 있습니다. 그리스도인이 죄악과 타협하지 않고, 세상 사람들이 가는 길 가지 않고, 하나님 말씀과 하나님 뜻대로 살아가기 때문에 고난과 어려움을 당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의를 위하여 박해를 받는 자가 복이 있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왜냐하면 천국에서 받을 상이 크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과 예수를 위해 고난과 박해를 당하지 않고 하나님과 교회를 위해 희생과 헌신을 하지 않은 사람은 상을 받을 수 없습니다. 의롭기 때문에 고난을 당하고 하나님을 사랑하기 때문에 희생하고 헌신하는 것입니다. 하나님과 예수님을 위해 고난과 박해를 당하고 천국을 위해 희생하고 헌신한 사람이 상을 안 받으면 누가 상을 받겠습니까? 의롭기 때문에 당하는 고난은 그리스도인의 자랑이며 영광인 것입니다.

   또한 하나님께서는 고난과 시련을 통해 그리스도인을 천국 백성으로 훈련시키십니다. 불의하고 죄악 된 성품을 가지고는 하나님 나라에 들어갈 수 없습니다. 그래서 고난과 시련의 과정을 통해 성도의 영혼과 생활 속에 있는 죄악의 잔재와 영적 불순물을 제거하시는 것입니다. 신앙의 고난을 두려워하는 사람은 좁은 길로 갈 수 없습니다. 좁은 길로 가는 것은 어렵고 힘들지만 우리 주님과 함께 간다는 사실을 기억하셔야 합니다. 주님과 함께 가면 좁은 길과 험한 길도 평탄한 길이 되며 성공과 승리의 길이 됩니다.

   또한 좁은 길로 가는 사람은 넓은 길과 세상을 쳐다보면 안 됩니다. 왜 넓은 길과 세상을 쳐다보면 안 될까요? 우리의 눈으로 죄악과 죄악의 유혹이 들어오기 때문입니다. 눈을 통해 들어오는 죄악의 유혹이 얼마나 강력합니까? 이성의 유혹, 물질의 유혹, 탐식의 유혹 등 수많은 죄악의 유혹들이 눈을 통해서 들어옵니다. 믿음이 좋은 사람은 유혹을 이길 수 있지만 믿음이 약한 사람은 죄악의 유혹을 이겨낼 수 없습니다. 그래서 좁은 길로 가는 사람은 세상을 쳐다보면 안 되고 넓은 길로 가는 사람들을 쳐다보면 안 되는 것입니다. 말씀이 반복되고 있습니다만 다수의 여론이나 다수의 결정이 항상 옳은 것은 아닙니다. 아무리 다수의 뜻과 다수의 결정이라도 하나님 말씀과 하나님 뜻에 어긋나면 반대하고 배척해야 합니다. 좁은 길은 가는 사람이 적지만 좁은 길이 생명의 길이라고 말씀드렸습니다. 좁은 길로 가는 사람은 신앙의 고난을 각오해야 하며 좁은 길로 가는 사람은 넓은 길로 가는 사람과 세상을 쳐다보면 안 된다는 것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3.그리스도인은 좁은 길로 가기를 힘써야 합니다.

   좁은 길로 가야한다는 것을 아는 것과 좁은 길로 가기를 힘쓰는 것은 전혀 차원이 다른 문제입니다. 예수님께서 왜 좁은 문으로 들어가고 좁은 길로 가라고 말씀하셨느냐? 많은 사람들이 입으로는 진리를 말하지만 생활 속에서 진리를 실천하지 않고 행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좁은 길로 가지 않으면 천국에 들어갈 수 없습니다. 그러나 어찌된 일인지 천국에 들어가겠다는 성도들이 넓은 길로 가지 못해서 안달을 하고 있습니다. 많은 성도들이 넓은 길에서 천국을 찾고 있습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 좁은 길로 가라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그리스도인이 왜 좁은 길과 좁은 문으로 들어가기를 주저하느냐? 예수를 쉽게 믿고 편하게 믿으려고 하기 때문입니다. 적당히 믿고 적당히 세상의 재미도 보면서 예수를 믿겠다는 유혹에 빠져 있습니다. 그런 생각을 가지고 있으니 어떻게 좁은 길로 가겠습니까? 예수를 믿는다는 것은 예수님이 가신 길을 따라가고 예수를 닮아 가는 것을 의미합니다. 예수를 따라가고 예수를 닮아가려면 어떻게 해야 합니까? 나를 부정하고 예수님 말씀에 순종해야 합니다. 그러나 많은 성도들이 나라는 우상을 부정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나를 부정하고 하나님 말씀에 복종해야 좁은 길로 갈 수 있는데 나라는 우상을 버리지 못하고 나를 부정하지 못하기 때문에 좁은 길로 가지 못하고 좁은 길로 가기를 두려워하는 것입니다.

   구약의 신명기는 모세의 마지막 설교라는 점에서 모세의 유언과 같은 책입니다. 이스라엘 민족을 이끌고 애굽에서 나온 모세가 야속의 땅 가나안을 눈앞에 바라보고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들려준 최후의 설교가 신명기입니다. 모세는 신명기 28장에서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너희가 여호와 하나님의 말씀을 잘 듣고 행하면 너희는 세계 민족 위에 뛰어난 민족이 되고 범사에 하나님의 복이 임할 것이다, 그러나 너희가 여호와 하나님의 명령을 지켜 행하지 아니하고 불순종하면 너희의 모든 일에 심판과 저주가 임할 것이다”고 말했습니다. 하나님 말씀에 순종하면 복을 받고 불순종하면 심판과 저주를 받는다는 말씀입니다. 하나님 말씀에 순종하는 것이 좁은 길로 가고 천국 가는 길입니다. 넓은 길은 죄악과 사망의 길이지만 좁은 길은 의의 길이며 생명의 길입니다. 오직 좁은 길만이 생명의 길이며 천국의 길입니다. 그리스도인은 좁은 길로 가기를 힘써야 한다는 것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말씀을 맺겠습니다. 첫째, 많은 사람들이 넓은 길로 가지만 넓은 길은 멸망의 길이라고 말씀드렸습니다. 다수의 여론과 다수의 결정이 항상 옳은 것은 아닙니다. 많은 사람들이 가는 넓은 길은 멸망의 길이라는 것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둘째, 좁은 길은 가는 사람이 적지만 생명의 길이라고 말씀드렸습니다. 좁은 길에는 많은 장애물들이 있습니다. 좁은 길로 가는 사람은 신앙의 고난을 각오해야 하며, 좁은 길로 가는 사람은 넓은 길로 가는 사람과 세상을 쳐다보면 안 된다는 것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셋째, 그리스도인은 좁은 길로 가기를 힘써야 한다고 말씀드렸습니다. 좁은 길로 가기를 힘쓰셔서 신앙과 인생에 승리하시는 성도 여러분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2020, 5, 1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