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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 없는 인간의 계획

진리의증인 2020. 2. 21. 05:36

이 정만 목사

블로그(네이버:논산동산교회, 다음:논산동산교회)

 

@메시지89(설41)                                  하나님 없는 인간의 계획

 

13들으라, 너희 중에 말하기를 오늘이나 내일이나 우리가 어떤 도시에 가서 거기서 일 년을 머물며 장사하여 이익을 보리라 하는 자들아, 14내일 일을 너희가 알지 못하는도다, 너희 생명이 무엇이뇨, 너희는 잠깐 보이다가 없어지는 안개니라, 15너희가 도리어 말하기를 주의 뜻이면 우리가 살기도 하고 이것이나 저것을 하리라 할 것이거늘 16이제도 너희가 허탄한 자랑을 하니 그러한 자랑은 다 악한 것이라, 17그러므로 사람이 선을 행할 줄 알고도 행하지 아니하면 죄니라” (야고보서 4:13-17)

 

   서론: 인간에게 꿈과 희망이 없다면 인생에서 고난과 시련을 만날 때 얼마나 암담하고 절망적일까요? 인간이 두려움과 절망적인 상황에서도 인생을 포기할 수 없는 것은 삶에 대한 본능적인 애착도 있지만 꿈과 희망이 있기 때문입니다. 인간의 꿈과 희망을 이루어주시는 분이 누굽니까? 하나님입니다. 만복의 근원이 되시는 하나님께서 인간의 꿈과 희망을 이루어 주시는 것입니다. 야고보 사도는 “하나님 없는 인간의 계획은 악하다”고 말씀하셨습니다. 하나님 없는 인간의 계획이 왜 악할까요? 하나님은 인간과 온 세상의 주인이 되시고 인간의 생사화복이 하나님 뜻에 달려있기 때문입니다. 인간의 생사화복이 하나님 뜻에 달려있기 때문에 하나님 없는 인간의 계획은 악하고 불의한 것입니다.

이 시간에는 “하나님 없는 인간의 계획”이란 제목으로 함께 은혜를 받고자 합니다.

 

 

1.인간은 자신의 미래를 알 수 없기 때문에 인생을 하나님과 함께 계획해야 합니다.

   야고보 사도는 본문 14절에서 “내일 일을 너희가 알지 못한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인간은 내일 일을 알지 못한다는 말씀입니다. 내일 일을 알지 못한다는 뜻이 무엇입니까? 내일 어떤 일이 일어날지 알 수 없고 내일 일이 어떻게 될지 모른다는 뜻입니다. 어떤 사람이 적당한 날을 잡아 어느 도시로 이사를 가서 그 도시에 1년 동안 머물면서 장사를 해서 돈을 벌겠다고 계획을 세웠습니다. 그러나 야고보 사도는 이 사람의 계획이 악하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왜냐하면 이 사람의 계획에 하나님이 없기 때문입니다. 인간의 생사화복을 주장하시는 하나님이 없는 인간의 계획은 악하고 불의한 것입니다.

   나폴레옹(Napoleon Bnaparte, 일명 나폴레온 1세 1769-1821)은 “내 사전에 불가능이란 말은 없다”고 말했습니다. 나폴레옹은 무엇이든지 자기가 마음먹고 원하는 대로 할 수 있다고 말한 것입니다. 그러나 나폴레옹의 인생은 그의 말대로 되지 않았습니다. 1769년에 지중해의 코르시카 섬에서 출생한 나폴레옹은 유능한 군인으로 승승장구하며 1804년부터 1815년까지 프랑스 황제로 전 유럽을 호령했습니다. 그러나 그토록 강한 나폴레옹 군대도 영국군대 앞에서는 고양이 앞에 쥐처럼 싸우기만 하면 패하는 수모를 겪었습니다. 나폴레옹은 1804년 황제에 즉위하자, 군대를 동원하여 이듬해인 1805년 영국과 전쟁을 시작했습니다. 그러나 나폴레옹이 거느린 프랑스 함대는 트라팔가 해전에서 영국의 H. 넬슨 제독에게 처참하게 격파 당하고 말았습니다. 나폴레옹은 그 후에도 전쟁과 침략을 일삼다가 1814년 영국과 러시아 등 연합국 군대에 포로로 잡혀 이탈리아 서해안에 있는 엘바 섬으로 유배되었습니다. 나폴레옹의 인생은 이제 끝난 것처럼 보였습니다.

   그러나 나폴레옹은 이듬해 3월 유배지인 엘바 섬을 탈출하여 파리로 돌아와 다시 황제에 즉위했습니다. 나폴레옹에게 다시 재기의 기회가 온 것 같았습니다. 그러나 나폴레옹은 1815년 6월 워털루 전투에서 다시 영국 군대에게 대패하고 포로로 잡혀 대서양의 세인트헬레나 섬에 유배되어 그곳에서 오랜 지병인 위장병을 앓다가 1821년에 세상을 떠났습니다. 한 시대의 세계역사를 주름잡았던 나폴레옹의 최후는 너무도 외롭고 쓸쓸하고 비참했습니다. “내 사전에 불가능이란 말은 없다”고 큰소리쳤던 나폴레옹도 성경 말씀처럼 내일 일을 알지 못하고 날뛰다가 포로로 붙잡혀 그의 생을 마감한 것입니다.

   지나친 자신감은 실패와 몰락으로 가는 지름길입니다. 인간은 무엇이든지 할 수 있는 전능한 존재가 아닙니다. 인간은 5분 후에 일어날 일도 알지 못합니다. 그래서 성경은 잠언 27:1,에서 “너는 내일 일을 자랑하지 말라, 하루 동안에 무슨 일이 일어날는지 네가 알 수 없음이니라” 말씀하고 있습니다. 인간은 자신의 미래를 알 수 없습니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 인간에게 자신의 미래를 알 수 있는 지혜를 주시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인간의 미래와 인간의 운명은 인간의 생사화복을 주장하시는 하나님 뜻에 달려있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뜻 안에서 인생을 설계하고 하나님과 함께 인생을 계획해야 합니다. 하나님 없는 인간의 계획은 악합니다. 하나님 없는 인간의 계획은 성공할 수 없습니다. 인간은 내일 일을 알 수 없고, 자신의 미래를 예측할 수 없기 때문에 하나님의 뜻 안에서, 하나님과 함께 인생을 계획해야 한다는 것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2.인간은 생명의 불확실성 때문에 하나님과 함께 인생을 계획해야합니다.

   야고보 사도는 본문 14절 하반절에서 “.......너희 생명이 무엇이냐, 너희는 잠깐 보이다가 없어지는 안개니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야고보 사도는 인간의 생명과 인생의 무상함을 안개에 비유했습니다. 안개는 아무리 무겁고 짙게 깔려 있어도 해만 뜨면 금방 사라집니다. 그래서 동서고금의 많은 학자와 현인들이 인생의 무상함을 안개에 비유했습니다. 안개는 덧없는 것을 상징합니다. 덧없다는 말은 무상의 극치 또는 세월이 속절없이 빠름을 의미합니다. 아무리 짙은 안개도 해가 뜨면 금방 사라지기 때문에 인생의 무상과 인생의 덧없음을 안개에 비유한 것입니다. 또한, 안개는 붙잡아 둘 수 없습니다. 인생의 노화와 죽음이라는 삶의 종점을 향해 달리는 생의 수레바퀴를 저지하거나 붙잡아 둘 수 있습니까? 그래서 인생을 안개에 비유한 것입니다.

   인간은 누구나 건강한 몸으로 오래 살기를 소망합니다. 그러나 건강을 위해 열심히 운동하고 몸에 좋다는 음식을 먹는 순간에도 인간의 몸은 죽음과 생의 종점을 향해 달려갑니다. 인생의 이런 역설과 부조화를 어떻게 설명해야 할까요? 본능적으로 노화와 죽음을 거부하는 생명의 발버둥입니다. 인간의 미래에서 가장 확실한 것은 언젠가는 죽는다는 것밖에 없습니다. 그러나 사람들은 인생을 설계하고 미래를 계획하면서 죽음이라는 가장 확실한 운명을 전혀 계산하지 않습니다. 인간이 얼마나 이해할 수 없는 불가사의한 존재입니까? 하나님은 인간을 메뚜기에 비유하셨습니다(이사야 40:22). 메뚜기는 긴 뒷다리를 가지고 높이 뛰어오르지만 금방 풀썩 땅에 떨어집니다. 인간이 아무리 이곳저곳을 헤집고 돌아다니며 소란을 피워도 인간은 하나님 앞에 메뚜기 같은 존재인 것입니다.

   인간의 생명이 얼마나 연약하고 불완전합니까? 오늘 살아 있다고 내일 죽지 않는다는 보장이 있습니까? “밤사이 안녕하십니까?”라는 인사가 왜 나왔습니까? 밤사이에 어떤 일이 일어 난지 모르기 때문입니다. 내일은 내 시간이 아닙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 “내일 일을 위하여 염려하지 말라, 내일 일은 내일 염려할 것이요, 한 날의 괴로움은 그 날에 족하다.”고 말씀하신 것입니다(마태복음 6:34). 생명의 주인은 하나님입니다. 그런데 왜 인간의 미래를 계획하면서 생명의 주인이신 하나님과 의논하지 않습니까? 인간은 오늘 밤에라도 하나님께서 부르시면 떠나야합니다. 생명의 주인이신 하나님께 물어보지도 않고 미래를 계획하면 그 계획이 어떻게 성공할 수 있겠습니까?

   어떤 사람은 이 세상과 인생을 다리(橋梁)에 비유했습니다. 다리는 목적지에 가기 위해 건너서 지나가는 곳이지 여행의 목적지가 아닙니다. 이 세상에 천년만년 영원히 살 생각을 하는 사람은 다리를 건너지 않고 다리 위에 집을 짓는 사람과 같습니다. 지혜로운 사람은 다리를 건너기는 하지만 다리 위에 집을 짓지는 않습니다. 우리의 인생을 영원하신 하나님 시간에서 보면 한 순간입니다. 인생은 마치 여행객이 다리를 건너 지나가는 것처럼 극히 짧은 시간인 것입니다. 그러므로 인간은 하나님께 부여받은 인생의 시간을 지혜롭게 잘 사용해야 합니다. 인생의 시간을 지혜롭게 잘 사용하는 방법이 무엇이냐? 이 땅에서 천국과 영생을 준비하며 선하고 의롭게 사는 것입니다. 어리석은 부자가 재물을 쌓아두고 기뻐할 때 하나님께서 뭐라고 말씀하셨습니까? “어리석은 자여 오늘밤에 네 영혼을 도로 찾으리니 그러면 네 준비한 것이 누구의 것이 되겠느냐”고 말씀하셨습니다(누가복음 12:20).

   야고보 사도가 본문 15-16절에서 하신 말씀은 “인간은 모름지기 하나님의 뜻과 하나님의 섭리를 인정하라”는 것입니다. 무엇을 하든지 어떤 일을 하든지 먼저 하나님의 뜻을 생각해야 한다는 말씀입니다. 우리가 믿는 하나님은 관념적인 하나님이 아닙니다. 하나님은 살아 계신 하나님으로 인간의 생사화복이 하나님 뜻에 달려있다는 것을 명심하셔야 합니다. 그러므로 인간의 계획과 인생의 중심에는 반드시 하나님이 계셔야 합니다. 하나님이 없는 사랑은 정욕으로 시작해서 파멸로 끝나고 하나님이 없는 인간의 확신은 어리석은 자의 자기도취에 불과합니다. 또한 하나님 없는 교육은 약삭빠른 마귀만 양산하며 하나님 없는 지식은 범죄와 타락의 수단으로 악용됩니다. 또한 하나님 없는 물질은 죄악의 도구로 사용되며 하나님 없는 권력은 독재와 멸망으로 막을 내립니다. 하나님 없는 인생을 계획하는 사람은 정말 교만하고 어리석은 인간입니다. 인간의 생명이 얼마나 불완전합니까? 오늘밤에라도 하나님께서 부르시면 가야 합니다. 그러므로 하나님 없는 인간의 계획은 악하고 불의한 것입니다. 인간의 생명의 불확실성 때문에, 그리고 내일 어떤 일이 일어날지 모르기 때문에 인간은 인생을 계획할 때 하나님과 함께 세워야 한다는 것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3.그리스도인은 자기가 알고 있고 자기가 믿고 있는 대로 행하고 실천해야 합니다.

   야고보 사도는 본문 17절에서 “그러므로 사람이 선을 행할 줄 알고도 행하지 아니하면 죄”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신앙은 하나님 말씀과 뜻을 탐구하는 학문의 영역이 아닙니다. 신앙생활에서 하나님 말씀과 하나님 뜻을 탐구하는 지적인 노력도 필요하지만 그보다 중요한 것은 하나님 말씀대로 행하고 실천하는 것입니다. 신앙의 지식을 얻기 위해 예수를 믿는 것은 아니지 않습니까? 죄에서 구원받고 천국에 가기 위해 예수를 믿고 진리와 생명이신 하나님 말씀에 순종해서 복 받고 신앙과 인생에 승리하기 위해서 하나님을 믿는 것입니다. 오늘날 교회의 문제가 무엇이냐? 말과 행동이 다르고 아는 것만큼 실천하지 않는다는 데 있습니다. 성도의 학력은 높아져서 아는 것은 많지만 헌신과 사랑과 봉사가 없습니다. 사람으로 비유하면 머리만 있고 손과 발이 없는 형국입니다. 말은 잘하지만 행함이 없습니다. 행함이 없는 신앙은 죽은 신앙입니다. 행함이 없는 죽은 신앙으로는 천국에 들어갈 수 없습니다. 머리로 믿는 관념적인 믿음이 아니라 믿고 행하고 실천해야 합니다. 만고불변의 진리이신 하나님 말씀대로 행하고 실천하는 믿음을 가져야 하는 것입니다.

   어느 날 한 사람이 무디(D L Moody) 목사님께 “목사님 성경을 읽을 때 이해가 되지 않고 의심이 생길 때는 어떻게 하는 것이 좋습니까?”라고 물었습니다. 보통사람 같으면 “기도하십시오.” 또는 “목사님께 물으시고 목사님과 상담하십시오.”라고 대답하겠지만 무디 목사님은 의외의 대답을 하셨습니다. “성경을 읽다가 의심이 생기고 성경 말씀이 이해가 되지 않으면 성경책을 덮어두고 뛰쳐나가 전도하십시오. 전도하고 지나가는 손수레라도 밀어주고 일을 찾아 봉사하고 돌아와서 성경을 읽으면 이해가 될 것입니다”라고 말했습니다. 무디 목사님 말씀이 조금 이상하지 않습니까? 무디 목사님은 전도를 하고 봉사를 해야 하나님 말씀이 이해가 된다는 뜻으로 하신 말씀이 아닙니다. 무디 목사님은 지적인 탐구와 입술의 고백으로 대신하는 관념적인 신앙을 경계하신 것입니다. 알고 있는 대로 행하고 실천하라는 말씀입니다. 예수는 머리나 입으로 믿는 것이 아닙니다. 거룩한 감정이 사랑과 구제를 대신할 수 없고 신앙의 지식이 신앙의 행위를 대신할 수 없다는 것을 명심하셔야 합니다.

   심리학자들은 인간의 가장 비겁하고 가장 나쁜 습관 중 하나가 거듭거듭 감정으로 느끼면서도 그것을 실천으로 옮기지 못하는 것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마음으로 느끼면서도 행동으로 옮기지 못하는 일이 반복될수록 실천하기가 점점 어려워집니다. 선이 무엇인지 알면서 행동하지 않으면 죄가 됩니다. 그리고 죄라는 것을 알면서도 죄를 범하면 모르고 죄를 범한 사람보다 죗값이 크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하나님 뜻이 무엇인지 알고 있다면 하나님 뜻대로 행하고 실천해야 합니다. 그리고 하나님이 싫어하시는 일이라면 어떤 압력과 유혹이 있어도 거부하고 물리쳐야 합니다. 편지의 첫 문장이 어렵고 작품도 언제나 처음 시작이 어렵습니다. 인생과 신앙의 세계도 마찬가지입니다. 맨 처음, 첫 발자국을 떼기가 가장 어렵습니다. 첫 발자국을 떼고 나면 용기와 자신감이 생깁니다. 신앙인으로 행동하고 신앙의 열매를 맺는 것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가 몰라서 죄를 짓거나 몰라서 행하지 않는 경우는 거의 없습니다. 우리에게 믿음과 용기가 없기 때문에 죄의 사슬을 끊지 못하고 죄의 종으로 살아가고 있는 것입니다. 아는 것 따로, 행동 따로 하는 분열된 태도 때문에 오늘날 교회가 비난을 받고 있습니다. 지식에는 언제나 책임이 따릅니다. 그리스도인은 자기가 알고 있는 대로 행하고 실천하셔야 한다는 것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말씀을 맺겠습니다. 첫째, 인간은 자신의 미래를 알 수 없기 때문에 하나님과 함께 인생을 계획해야 한다고 말씀드렸습니다. 성도 여러분의 미래를 하나님과 함께 계획하셔야 하나님의 인도와 하나님의 축복을 받으신다는 것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둘째, 생명의 불확실성 때문에 하나님 없는 계획을 세우면 안 된다고 말씀드렸습니다. 생명의 주인은 하나님입니다. 오늘 밤에라도 하나님께서 부르시면 가야합니다. 생명의 불확실성 때문에 성도 여러분의 인생을 하나님과 함께 계획하셔야 한다는 것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셋째, 알고 있고 믿고 있는 대로 행하고 실천하는 믿음을 가져야 한다고 말씀드렸습니다. 행함이 없는 믿음은 죽은 믿음입니다. 행하고 실천하셔야 합니다. 하나님 없는 인간의 계획은 악하고 불의합니다. 새해를 맞이하면 많은 계획을 세웁니다. 2020년을 하나님과 함께 계획하셔서 신앙과 인생에 승리하시는 성도 여러분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2020, 2, 2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