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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스도인의 자유

진리의증인 2020. 2. 14. 05:51

이 정만 목사

블로그(네이버:논산동산교회, 다음:논산동산교회)

 

@메시지149(설25)                                      그리스도인의 자유

 

1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자유롭게 하려고 자유를 주셨으니 그러므로 굳건하게 서서 다시는 종의 멍에를 메지 말라......13형제들아 너희가 자유를 위하여 부르심을 입었으나 그러나 그 자유로 육체의 기회를 삼지 말고 오직 사랑으로 서로 종노릇 하라, 14온 률법은 네 이웃 사랑하기를 네 자신 같이 하라 하신 한 말씀에 이루어졌나니 15만일 서로 물고 먹으면 피차 멸망할까 조심하라” (갈라디아서 5:1, 13-15)

 

   서론: 자유가 무엇이냐? 어떤 것에도 얽매이거나 구속받지 않고 마음대로 행동할 수 있는 것을 자유라고 합니다. 그러나 어떤 것에도 구속받거나 얽매이지 않고 마음대로 행동할 수 있는 자유는 존재하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인간은 여러 사람이 모여서 함께 살아가는 사회적인 존재이기 때문입니다. 사람이 살지 않는 무인도에서 혼자 사는 사람은 무엇에도 얽매이지 않는 완전한 자유를 누릴 수 있습니다. 그러나 사회라는 울타리 안에서 이웃과 함께 살아가려면 상충되는 이해를 조율하고 사회 전체의 이익과 다수의 의견을 따라야 하기 때문에 자유는 필연적으로 제한될 수밖에 없습니다. 자유는 양심, 신체, 경제, 학문 등 다양한 분야로 세분화됩니다. 의인은 양심과 영혼의 자유를 누리지만 저급한 것을 추구하는 사람은 저속한 자유를 누립니다. 또 돈이 많은 사람은 경제적 자유를 누리고 학문이나 지식을 소유한 사람은 학문과 지식의 자유를 누립니다. 그리스도인의 자유도 자유의 영역이 있고 그리스도인의 자유에도 규제와 제약이 따르고 의무와 책임이 주어집니다.

이 시간에는 “그리스도인의 자유”란 제목으로 함께 은혜를 받고자 합니다.

 

1. 그리스도인의 자유는 예수님께서 주셨습니다.

   바울 사도는 본문 1절에서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자유롭게 하려고 자유를 주셨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 우리에게 자유를 주셨다는 말씀입니다. 예수님께서 어떤 자유를 주셨습니까? 죄에서 자유와 양심의 자유입니다. 자유의 개념에 있어서 그리스도인과 비그리스도인은 차이가 있습니다. 그리스도인이 생각하는 자유는 죄에서 자유이며, 양심의 자유이며, 신앙의 자유입니다. 반면에 비그리스도인이 생각하는 자유는 신체적 자유와, 법과 제도에 의한 자유이며, 사상과 행동의 자유입니다. 그리스도인의 자유가 영적이고 내적인 자유라면 세상 사람들이 말하는 자유는 물리적이고 외적인 자유입니다. 또 그리스도인의 자유가 예수님이 주신 자유라면 세상 사람들의 자유는 인간의 노력과 투쟁으로 얻은 자유입니다. 세상 사람들이 누리는 자유는 노력과 투쟁으로 얻은 자유이기 때문에 언제든지 잃거나 빼앗길 수 있습니다. 예를 들면 돈이 주는 경제적 자유는 돈이 떨어지면 경제적 자유도 상실합니다. 돈뿐만 아니라 권력, 명예, 건강 등 모든 것이 다 한시적입니다. 권력과 명예와 건강을 잃으면 그것들이 주는 자유도 함께 잃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면 그리스도인의 자유는 어떻습니까? 그리스도인의 자유는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얻은 자유입니다. 그리스도인의 자유는 투쟁으로 얻은 것이 아니라 믿음으로 얻은 것입니다. 예수님은 요한복음 8:31-32,에서 “너희가 내 말에 거하면 참으로 내 제자가 되고 진리를 알지니 진리가 너희를 자유롭게 하리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진리이신 예수님 말씀에 순종하고 예수 그리스도 안에 거할 때 자유를 누린다는 말씀입니다. 예수님은 죄에서 자유를 주셨고(로마서 6:18-23), 우상의 권세에서 자유를 주셨습니다(고린도전서 10:29, 갈라디아서 4:8-9). 또 율법의 멍에에서 자유를 주셨고(갈라디아서 4:21-23), 사망의 권세에서 구원하사 영원한 생명을 주셨습니다(로마서 8:18-21). 예수님은 그리스도인의 자유의 원천입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을 떠나서는 절대로 참된 자유를 누릴 수 없습니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많은 사람들이 자유를 얻겠다고 자유의 원천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떠납니다. 자유롭게 살겠다고 자유의 원천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떠나고 하나님과 교회에 등을 돌리는 것입니다. 그러나 그들이 진정으로 원하는 것은 자유가 아니라 자유를 빙자한 방탕한 생활입니다. 양심의 가책 없이 죄짓고 방탕한 생활을 하기 위해 예수님을 떠나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그리스도인의 자유의 원리를 명심하셔야 합니다. 그리스도인의 자유의 원리가 무엇입니까? 자유의 원천이신 예수 그리스도 안에 거하고 예수님 말씀에 순종해야 참된 자유를 누린다는 것입니다. 그리스도인의 자유는 예수님이 주셨습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을 떠나서는 참된 자유를 누릴 수 없습니다. 자유의 원천이신 예수 그리스도 안에 거하고 예수님 말씀에 순종해야 참된 자유를 누린다는 것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2.그리스도인의 자유는 교회에 덕이 되고 많은 사람의 유익을 위해 사용해야 합니다.

   자유와 방종은 어떻게 다릅니까? 방종은 빗나간 자유이며 타락한 자유입니다. 그리스도인은 항상 자유의 두 가지 위험성을 경계해야 합니다. 첫째, 자유를 방종과 타락의 기회로 악용하면 안 됩니다. 바울 사도는 본문 13절 중반절에서 “.......자유로 육체의 기회를 삼지 말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육체의 기회가 무엇이냐? 죄를 짓는 기회와 죄를 범하는 수단으로 자유를 사용하지 말라는 말씀입니다. 사도 베드로도 “너희는 자유가 있으나 그 자유로 악을 가리는 데 쓰지 말고 오직 하나님의 종과 같이 하라”고 말씀하셨습니다(베드로전서 2:16). 자유를 범죄의 수단이나 방탕의 기회로 사용하지 말라는 말씀입니다.

   자유에서 두 번째로 생각할 것은 내 자유가 다른 사람의 자유를 침해하거나 다른 사람에게 해를 끼치면 안 된다는 것입니다. 내 자유가 소중하면 남의 자유도 소중하고 내 행복이 소중하면 다른 사람의 행복도 소중합니다. 그러므로 사회적 관계에서 내 자유를 적당히 절제하고 규제할 줄 알아야 합니다. 자신의 자유를 절제하고 규제할 줄 아는 사람이 진정한 자유인이며 자유를 누릴 자격이 있는 것입니다. “내 돈 가지고 내가 쓰는데 웬 참견이냐?”고 말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런 생각을 가지고 있는 사람은 인격이 덜 된 사람입니다. 재물이나 권력을 소유한 사람에게는 “재물과 권력을 어떻게 사용했느냐?”는 책임이 따릅니다. 돈과 권력과 명예에는 책임과 의무가 따르는 것입니다.

   재산이 많다고 죄인이 되는 것도 아니고 가난하다고 의인이 되는 것도 아닙니다. 재물은 악한 것도 아니고 선한 것도 아니지만 어떻게 사용하느냐에 따라 재물은 의의 도구가 될 수도 있고 악의 도구가 될 수도 있습니다. 그러므로 물질은 지혜롭게 잘 사용해야 합니다. 많은 재물을 소유한 사람에게는 더 큰 책임과 의무가 요구된다는 것을 명심해야 합니다. 재물뿐만 아니라 권력, 재능, 지식 등 무엇을 가졌든지 공동의 선을 위해 사용해야 할 책임과 의무가 있습니다. 재물이든지 권력이든지 무엇이든지 많은 사람을 위해 선한 목적으로 사용할 때 참된 자유의 정신이 구현되는 것입니다. 법과 질서를 지키고 자유에 따른 책임과 의무를 감당할 때 참된 자유인이 된다는 것을 명심하셔야 합니다.

   바울 사도는 고린도전서 8:9,에서 “너희의 자유가 믿음이 약한 자들에게 걸려 넘어지게 하는 것이 되지 않도록 조심하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리스도인의 자유가 믿음이 약한 사람에게 나쁜 영향을 끼치거나 죄를 짓게 하면 안 된다는 말씀입니다. 바울 사도는 고린도전서 8장에서 우상의 제물에 대한 비유로 그리스도인의 자유의 한계를 정의하셨습니다. 바울 사도가 복음을 전할 때 고린도 지방에서는 소나 양을 잡아 우상의 신에게 제사하고 제사가 끝나면 제물로 바친 소나 양의 고기를 시장에 내다 팔았습니다. 고린도 교회에서는 제물로 바쳐진 고기와 음식을 먹어도 되느냐, 먹으면 안 되느냐는 문제로 논쟁이 일어났습니다. 바울 사도는 이에 대해 “우상의 신이란 실제로 존재하지 않기 때문에 제물로 바쳐진 음식을 먹어도 상관이 없다. 그러나 너희 형제 중에 어떤 사람이 네가 제물을 먹는 것을 하나님께 죄를 짓는 것으로 생각한다면 너는 그 형제를 위해 제물을 먹지 말라. 왜냐하면 그 형제가 시험에 들 수 있기 때문이다. 네가 그것을 먹거나 안 먹거나 죄가 되지 않지만 교회와 다른 사람들에게 덕이 되지 않는다면 절제하고 먹지 말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죄가 되느냐 안 되느냐에 상관없이 다른 사람에게 유익이 되지 않고 교회에 덕이 되지 않으면 먹지 말고 하지 말라는 말씀입니다. 그리스도인의 자유는 이웃에 대한 사랑의 정신에 종속돼야 하고 하나님 말씀과 하나님 뜻에 합당한지 판단해서 지혜롭게 사용해야 합니다.

   또 바울 사도는 “내가 모든 사람에게서 자유로우나 스스로 모든 사람에게 종이 된 것은 더 많은 사람을 얻고자 함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고린도전서 9:19-23). 바울 사도는 유대인에게는 유대인처럼 대했고, 율법 아래 있는 자들에게는 율법 아래 있는 자처럼 대했으며, 율법이 없는 자에게는 율법이 없는 자의 입장에서 대했습니다. 또 약한 자에게는 약한 자의 입장에서, 강한 자에게는 강한 자의 입장에서 대했습니다. 바울 사도가 왜 그렇게 처신하셨습니까? 복음을 전하고 전도를 하기 위해 그들의 눈높이에 맞추고 그들의 가치관으로 접근하신 것입니다. 자유에 대한 바울 사도의 행동철학은 “교회에 덕이 되고, 하나님께 영광이 되고, 성도들에게 유익이 되게 사용한다.”는 것이었습니다. 교회에 덕이 되지 않고 성도에게 유익하지 않으면 자유나 권리를 사용하시지 않은 것입니다.

   자! 그러면 그리스도인의 자유의 성격과 한계를 어떻게 정리할 수 있을까요? 자유인이라고 내가 하고 싶은 대로 할 수 있습니까? 또 내 자유와 내 권리라고 악착같이 주장할 수 있습니까? 그리스도인의 자유는 복음에 유익하고, 교회에 덕을 세우며, 하나님 영광을 위해 절제하고 규모 있게 사용해야 합니다. 그리스도인의 자유는 교회에 덕을 세우고, 많은 사람에게 유익을 주며, 하나님 영광을 위해 사용해야 한다는 것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3.그리스도인의 자유는 섬김과 봉사와 사랑으로 승화되고 완성돼야 합니다.

   바울 사도는 본문 13절에서 “형제들아 너희가 자유를 위하여 부르심을 입었으나 그러나 그 자유로 육체의 기회를 삼지 말고 오직 사랑으로 서로 종노릇하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리스도인의 자유는 자유를 얻은 것으로 끝나지 않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구속의 은혜로 자유를 얻은 그리스도인은 하나님과 예수 그리스도의 종이 되고(로마서 6:22, 고린도전서 7:22) 의의 노예가 되어야 합니다(로마서 6:18). 또한 예수님이 주신 복음을 전하기 위해 섬기고 봉사하는 사랑의 노예와 의의 종이 되어야 합니다(고린도전서 9:19-23, 고린도후서 4:5). 그리스도인의 자유는 하나님의 사랑을 실천하기 위한 섬김과 봉사로 승화돼야 하는 것입니다.

   참된 자유는 매임과 예속 가운데 있습니다. 더 큰 목적에 매이고 더 큰사랑에 예속될 때 참된 자유를 얻는 것입니다. 매임과 예속 가운데 참된 자유가 있다는 자유의 원리를 깨닫지 못한 사람은 아직까지 참된 자유와 참된 사랑을 체험하지 못한 사람입니다. 인간은 한 사람에게 매이고 한 사람을 사랑함으로 고독과 방종과 허무로부터 자유하게 됩니다. 남녀가 사랑에 빠져서 행복해 하는 것은 서로 상대에게 매이고 예속되기 때문입니다. 완전한 자유는 완전한 사랑과 완전한 예속에서 오는 것입니다. 그리스도인이 예수님께 매이고 예수님께 예속돼 예수님 말씀과 뜻에 순종할 때 참된 자유를 누린다는 것을 명심하셔야 합니다.

   사랑은 인생을 아름답고 행복하게 하며 인간의 삶에 활력과 풍요로움을 더합니다. 그러나 사랑이 기쁨과 행복만 주는 것은 아닙니다. 사랑은 희생과 헌신이라는 대가를 요구합니다. 아무리 아름다운 미사여구(美辭麗句)로 사랑을 고백해도 희생과 헌신이 없으면 참된 사랑이 아닙니다. 행복의 원리도 마찬가지입니다. 자기 이익과 권리를 주장하는 사람은 절대로 행복할 수 없습니다. 행복이란 자신을 망각하고 누군가를 위해 사랑하고 희생할 때 그 결과로 얻어지기 때문입니다. 사랑하는 사람을 위해 자신의 물질과, 시간과, 몸까지 기쁜 마음으로 바치는 희생을 통해 행복을 얻는 것입니다. 아기를 기르는 어머니는 아기를 위해 젖을 먹이면서 정성을 다해 어린이를 돌보고 사랑하지만 어머니는 기쁘고 행복합니다. 또 아버지는 가족을 위해 뼈가 부서지도록 일을 하고 희생하지만 기쁘고 행복합니다. 가족을 사랑하기 때문에 자신의 희생과 수고가 기쁨이 되고 행복이 되는 것입니다. 가족과 자녀를 위해 희생하고 헌신하는 이 땅의 모든 어머니와 아버지는 거룩한 사랑의 화신입니다.

   미국의 16대 대통령을 지낸 아브라함 링컨이 어느 날 노예 시장에 팔려나온 나이 어린 흑인 소녀를 보았습니다. 링컨은 항상 노예를 불쌍히 여겼지만 어린 흑인 소녀에게는 더욱 동정심이 갔습니다. 링컨은 노예 상인에게 값을 주고 흑인 소녀를 샀습니다. 그리고 링컨은 노예소녀에게 “이 흑인은 자유인이다”라고 쓰인 증서를 건네주며 “너는 이제부터 자유인이다. 네가 가고 싶은 곳으로 가라”고 말했습니다. 링컨의 말에 흑인 소녀는 이상하다는 표정으로 “내가 자유인이라고요? 내가 가고 싶은 곳은 어디라도 갈 수 있다고요?”라고 반문했습니다. 링컨은 인자한 웃음을 띠며 “참으로 그렇다. 너는 이제 자유인이다. 너는 어디든지 갈 수 있다”고 대답했습니다. 그러자 소녀는 링컨에게 “그러면 주인님! 저는 영원히 당신을 따르겠습니다.”라고 말했습니다. 이제 소녀는 법적으로 더 이상 노예가 아니지만 자기에게 자유를 준 링컨에게 사랑과 은혜를 갚기 위해 스스로 노예가 되겠다고 한 것입니다.

   우리들도 옛날에는 죄의 노예요 불의와 불법의 종이었습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 우리를 죄와 사망에서 구원하시고 우리에게 자유와 생명을 주셨습니다. 그리스도인의 자유는 자유를 얻고 자유인이 되는 것으로 끝나지 않습니다. 그리스도인은 예수 그리스도의 사랑의 노예와 은혜의 종으로 다시 태어나야 합니다. 왜냐하면 예수님께서 우리들에게 사랑과 은혜로 서로 종노릇하고 이웃과 약한 형제들을 섬기며 돌보라고 말씀하셨기 때문입니다. 사랑이란 언제나 거룩하고 순수한 책임과 의무감으로 충만합니다. 내가 누군가를 사랑하면 그 사람을 위해서 무엇인가 하지 않고는 견딜 수 없는 것이 사랑의 속성입니다. 자유인은 생각과 행동도 자유인다워야 합니다. 하나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섬기고 봉사할 때 억지로 하거나 형식적으로 하지 말고 감사한 마음으로 하고 자원하는 마음으로 해야 합니다. 나에게 주어진 책임과 의무를 감당하지 않으면 우리의 양심은 자유롭지 못하고 우리 영혼은 평화를 누릴 수 없습니다. 그리스도인의 자유는 예수님의 종이 되어, 하나님과 예수님을 사랑하고, 우리의 이웃을 사랑하고 섬기라고 주신 자유라는 것을 기억하시기 축원합니다.

2020, 2, 1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