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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자들의 발을 씻어주신 예수님

진리의증인 2020. 1. 24. 06:22

이 정만 목사

블로그(네이버:논산동산교회, 다음:논산동산교회)

 

@메시지479(설203)                           제자들의 발을 씻어주신 예수님

 

1유월절 전에 예수께서 자기가 세상을 떠나 아버지께로 돌아가실 때가 이른 줄 아시고 세상에 있는 자기 사람들을 사랑하시되 끝까지 사랑하시느니라 2마귀가 벌써 시몬의 아들 가룟 유다의 마음에 예수를 팔려는 생각을 넣었더라 3저녁 먹는 중 예수는 아버지께서 모든 것을 자기 손에 맡기신 것과 또 자기가 하나님께로부터 오셨다가 하나님께로 돌아가실 것을 아시고 4저녁 잡수시던 자리에서 일어나 겉옷을 벗고 수건을 가져다가 허리에 두르시고 5이에 대야에 물을 떠서 제자들의 발을 씻으시고 그 두르신 수건으로 닦기를 시작하여 6시몬 베드로에게 이르시니 베드로가 이르되 주여 주께서 내 발을 씻으시나이까 7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내가 하는 것을 네가 지금은 알지 못하나 이후에는 알리라 8베드로가 이르되 내 발을 절대로 씻지 못하시리이다 예수께서 대답하시되 내가 너를 씻어주지 아니하면 네가 나와 상관이 없느니라 9시몬 베드로가 이르되 주여 내 발뿐 아니라 손과 머리도 씻어 주옵소서 10예수께서 이르시되 이미 목욕한 자는 발밖에 씻을 필요가 없느니라 온 몸이 깨끗하니라 너희가 깨끗하나 다는 아니니라 하시니 11이는 자기를 팔 자가 누구인지 아심이라 그러므로 다는 깨끗하지 아니하다 하시니라 12그들의 발을 씻으신 후에 옷을 입으시고 다시 앉아 그들에게 이르시되 내가 너희에게 행한 것을 너희가 아느냐 13너희가 나를 선생이라 또는 주라 하니 너희 말이 옳도다 내가 그러하다 14내가 주와 또는 선생이 되어 너희 발을 씻었으니 너희도 서로 발을 씻어주는 것이 옳으니라 15내가 너희에게 행한 것 같이 너희도 행하게 하려 하여 본을 보였노라” (요한복음 13:1-15)

 

   서론: 성경에서 예수님의 사랑과 겸손을 본문보다 감동적으로 묘사한 곳은 없습니다. 옛날에 이스라엘에서 주인이나 주인의 초대를 받은 손님이 왔을 때 종이나 하인이 흙과 먼지투성이의 발을 씻어주었는데 종이나 하인 중에서 가장 서열이 낮은 자가 발을 씻었습니다. 그러나 본문에 보면 예수님께서 제자들의 발을 씻어주셨습니다. 예수님은 제자들의 발을 씻어주시고 “너희들이 나를 선생이라 또는 주라 하지 않느냐?......내가 너희에게 행한 것 같이 너희도 행하게 하려고 본을 보였다”고 말씀하셨습니다. 겸손한 마음과 낮은 자세로 섬기고 봉사하고 사랑하라고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사랑과 섬김의 본을 보여주신 것입니다.

이 시간에는 “제자들의 발을 씻어주신 예수님”이란 제목으로 은혜를 받고자 합니다.

 

1.예수님께서 사랑과 섬김의 본을 보여주시려고 제자들의 발을 씻어주셨습니다.

   일반적으로 사람이 죽을 때가 되고 세상을 떠날 시간이 다가오면 마음이 조급해지고 매사에 몹시 서두릅니다. 자신은 깨닫지 못하지만 본능적인 어떤 힘에 끌려 세상을 떠날 준비를 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일을 다 마치고 죽는 사람은 없습니다. 인간은 누구나 아쉬움 속에 미완(未完)의 상태로 세상을 떠나는 것입니다. 예수님도 하나님께로 돌아가셔야 할 시간이 다가오는 것을 느끼고 자신이 해야 할 일로 마음이 매우 분주했습니다. 예수님은 십자가에 못 박혀 돌아가시기 전에 사랑하는 제자들과 함께 식사를 하시기 원하셨습니다. 누가복음 22:15,절에 보면 예수님께서 제자들과 식사를 하시면서 “내가 고난을 받기 전에 너희와 함께 이 유월절 먹기를 원하고 원하였노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십자가를 지고 돌아가시기 전에 제자들과 함께 식사를 하기 원하신 것입니다.

   지금부터 2천 년 전에는 이스라엘뿐만 아니라 온 세상이 도로도 좋지 않고 신발사정도 좋지 않았습니다. 포장이 안 된 도로는 비가 안 올 때는 먼지가 발목까지 차올랐고 비가 올 때는 질퍽한 흙탕물과 진흙으로 무릎까지 빠졌습니다. 우리나라도 불과 백여 년 전만 해도 평민들은 볏짚으로 얼기설기 만든 짚신을 신었습니다. 포장이 안 된 도로에서 짚신을 신어봐야 먼지를 막겠습니까? 비가 오면 흙탕물로 범벅이 된 도로에서 발이 깨끗하겠습니까? 그래도 대책이 없으니까 짚신을 신은 것입니다. 2천 년 전 이스라엘도 그랬습니다. 그 당시의 신발은 오늘날 샌달(sandals)과 같은 것이었는데 샌달을 신고 먼지와 흙투성이의 길을 다니면 발이 얼마나 더러워지겠습니까? 그래서 손님으로 식사에 초대받거나 손님이 오면 종이나 하인이 손님의 발을 씻어준 것입니다. 예수님도 제자들과 식사를 하기 전에 발을 씻어야 하는데 그 집에 하인이 없었는지 아니면 다른 사람의 집을 빌려서 식사를 해서 그랬는지 알 수 없지만 아무도 발을 씻을 생각을 하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 자리에서 일어나셔서 제자들의 발을 씻어주신 것입니다.

   본문과 병행구절인 누가복음 22:24,절에 보면 “또 그들 사이에 그 중 누가 크냐 하는 다툼이 일어났다”고 기록돼 있습니다. 예수님은 세상을 떠나시기 전에 제자들과 식사를 하시기 위해 자리를 마련하셨는데 제자들은 그 자리에서 ‘누가 더 크냐?’ ‘누가 더 능력이 있느냐’고 자랑하고 서로 다툰 것입니다. 식사를 하려면 유대인의 결례와 전통에 따라 손과 발을 씻어야 하는데 누구도 예수님과 제자들의 발을 씻을 생각을 하지 않고 “우리 중에 누가 더 크냐? 누가 발을 씻어야 하느냐?”고 다른 제자가 자기들의 발을 씻어주기만 바란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 자리에서 일어나 몸소 제자들의 발을 씻어주신 것입니다.

   12세기 말에서 13세기 초의 인물로 이탈리아 아시시 출신의 성 프란시스(프란체스코 Francesco d’Assisi 1182-1226)란 분이 있습니다. 부유한 상인의 아들로 태어난 프란시스는 젊은 시절을 사치스럽고 방탕한 생활로 보냈는데 그의 마음은 항상 답답하고 불안하고 참된 평화를 누리지 못했습니다. 그의 마음과 영혼에는 항상 해소되지 않고 채워지지 않는 어떤 기갈이 있었습니다. 어느 날 프란시스는 혼자서 말을 타고 교외로 나갔는데 길에서 한 나병환자를 만났습니다. 평소 같으면 더럽고 불결하다고 쳐다보지도 않고 가까이 오지도 못하게 했을 텐데 마음속에서 뜨거운 연민의 감정이 솟구쳤습니다. 프란시스는 말에서 내려 나병으로 온몸이 일그러진 흉측한 외모의 나병환자를 두 팔로 꼭 껴안았습니다. 그랬더니 그 흉측한 나병환자가 예수님의 모습으로 변했습니다. 예수님을 만난 것입니다. 낮고 추하다고 차별하고 멀리하는 사람은 하나님께 가까이 나아갈 수 없습니다. 낮고 추하고 고난 가운데 있는 사람을 사랑하고 그들을 위해 섬기고 봉사할 때 하나님께 가까이 나아가는 것입니다.

   사람들이 터무니없는 착각으로 사랑과 봉사를 거부합니다. 나는 너무 위대해서 천한 일을 할 수 없고, 나는 높은 자리에 있기 때문에 봉사를 할 수 없으며, 섬기고 봉사하는 일은 낮고 천한 사람이 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진짜 위대하고 훌륭한 사람은 섬기고 봉사하는 일에 신분이나 체면을 따지지 않습니다. 머릿속에 들어있는 것이 없기 때문에 아는 척을 하고, 가진 것이 없기 때문에 있는 척을 하고, 사랑과 겸손을 모르기 때문에 교만을 떨고, 섬김과 봉사를 외면하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못 박혀 돌아가실 때까지 제자들은 믿음도 없었고 섬기고 봉사할 줄도 몰랐습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 몸소 제자들의 발을 씻어주시고 사랑과 섬김과 봉사의 본을 보여주신 것입니다. 예수님은 제자들의 발을 씻어주신 후 “너희들이 나를 선생이라 또는 주라고 하지 않느냐?......내가 너희에게 행한 것 같이 너희도 행하게 하려고 본을 보였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진정으로 존경받고 사랑받는 사람은 권력자나 부자가 아니라 섬기고 봉사하는 사람입니다. 스탈린, 모택동, 히틀러, 김일성이 얼마나 막강한 권력을 휘둘렀습니까? 오늘날 사람들이 아프리카의 아버지로 불리는 수바이처 박사를 존경합니까? 스탈린이나 히틀러나 모택동을 존경합니까? 또 가난한 사람들의 어머니로 불리는 테레사 수녀를 사랑합니까? 부자나 학자나 연예인을 사랑합니까? 사람들은 높은 자리에 앉아 군림하는 사람보다 허리를 굽히고 사랑하고 섬기고 봉사하는 사람을 존경하고 사랑합니다. 예수님은 사랑과 섬김의 본을 보여주시기 위해 제자들의 발을 씻어주셨습니다. 그리스도인은 예수님처럼 사랑하고 섬기고 봉사하는 삶을 살아야 한다는 것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2.예수님은 가룟 유다가 배반할 것을 아시고도 끝까지 사랑하셨습니다.

   본문 2절에 “마귀가 벌써 시몬의 아들 가룟 유다의 마음에 예수를 팔려는 생각을 넣었더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또 10절 하반절에서 11절에는 “......너희가 깨끗하나 다는 아니니라 하시니 이는 자기를 팔 자가 누구인지 아심이라......” 말씀하고 있습니다. 예수님은 처음부터 가룟 유다가 배반할 것을 아셨지만 끝까지 가룟 유다를 사랑하셨습니다. 이점이 예수님의 사랑과 인간의 사랑의 다른 점입니다. 인간은 배신자를 용서하고 받아들여도 평생 배신자라는 꼬리표를 떼지 않습니다. 아무 일이 없었던 것처럼 웃고 떠들어도 배신자와 위험인물로 분류하여 중요한 일은 맡기지 않습니다. 물 위에 뜬 기름처럼 평생을 외톨이로 인생의 광야를 맴돌게 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가룟 유다가 배반할 것을 아시고도 끝까지 사랑하셨습니다. 예수님은 가룟 유다에게 헌금을 관리하도록 맡기셨습니다. 가룟 유다에게 중요한 일을 맡기시면서 회개의 기회를 주신 것입니다. 그러나 가룟 유다는 끝내 회개하지 않았고 끝내 돌아오지 않았습니다. 인간은 배신자는 말할 것도 없고 자기와 조금만 생각이 달라도 거리를 두고 불신과 증오의 담장을 쌓아올립니다. 그리고 배신자가 될 것 같다는 주관적인 생각으로 평생 사귀어온 친구를 의심하고 감시합니다. 정도의 차이만 있을 뿐 인간은 누구나 교활하고 잔인한 성품을 가지고 있습니다. 상대가 주먹으로 나를 한 대 때리면 나는 열 대 스무 대로 갚아주고 나를 괴롭히는 사람은 패망하고 죽기를 원합니다. 인간이 얼마나 악하고 두려운 존재입니까? 그래서 위대한 사랑과 위대한 용서를 보면 사람들이 감동하고 열광하는 것입니다.

   본문 5절로 6절에 보면 “이에 대야에 물을 떠서 제자들의 발을 씻으시고 그 두르신 수건으로 닦기를 시작하여 시몬 베드로에게 이르시니 베드로가 이르되 주여 주께서 내 발을 씻으시나이까?”라고 말했습니다. “제자들의 발을 씻으시고 그 두르신 수건으로 닦기를 시작하여 시몬 베드로에게 이르시니”란 말씀으로 미루어보아 예수님께서 다른 제자의 발을 먼저 씻으시고 베드로에게 가신 것 같습니다. 이에 대해 신학자들은 예수님께서 배신자 가룟 유다의 발을 제일 먼저 씻으셨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왜냐하면 예수님은 선으로 악을 갚고 원수까지도 사랑하시기 때문입니다.

   바울 사도는 로마서 5:20,절에서 “......죄가 더한 곳에 은혜가 더욱 넘쳤다”고 말씀하셨습니다. 하나님의 사랑과 은혜는 인간의 어떤 죄도 용서하실 만큼 크고 넉넉하다는 말씀입니다. 예수님은 가룟 유다가 배반할 것을 아시고도 끝까지 사랑하셨습니다. 그리스도인은 세상이 악하고 상대가 불의해도 예수님처럼 사랑과 은혜가 넘치는 그리스도인다운 삶을 살아야 한다는 것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3.목욕한 사람도 손발을 씻는 것처럼 영적 목욕을 한 성도도 매일 씻고 회개해야 합니다.

   예수님께서 베드로의 발을 씻어주려고 하시자 베드로는 “내 발을 절대로 씻지 못한다.”고 펄쩍 뛰었습니다. 존귀하신 예수님께서 어떻게 내 발을 씻을 수 있느냐고 반대한 것입니다. 예수님은 베드로에게 “내가 너를 씻어주지 아니하면 네가 나와 상관이 없다.”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러자 베드로는 씻음의 영적의미를 깨닫지 못하고 예수님께 많은 씻음을 받아야 많은 은혜를 받고 많은 죄를 사함 받는 것으로 오해를 합니다. 그래서 베드로는 “......주여 내 발뿐 아니라 손과 머리도 씻어 주옵소서.”라고 대답했습니다. 그러자 예수님은 “......이미 목욕한 자는 발밖에 씻을 필요가 없느니라 온 몸이 깨끗하니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베드로는 목욕을 해서 온 몸이 깨끗하다는 말씀입니다.

목욕은 무엇을 의미합니까? 예수님의 보혈로 죄를 씻음 받은 것을 상징합니다. 사람이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하고 예수 그리스도 이름으로 세례를 받으면 그 사람의 모든 죄는 깨끗하게 사함을 받습니다. 사람이 목욕을 하면 온 몸이 깨끗하게 되는 것처럼 예수를 영접하고 세례를 받으면 예수님의 피로 죄를 씻음 받는 영적 목욕이 되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베드로에게 목욕한 자는 발밖에 씻을 필요가 없다고 말씀하셨습니다. 발은 무엇을 상징하느냐? 우리가 세상을 살아가면서 범하는 크고 작은 죄를 상징합니다. 목욕을 해도 손과 발에 먼지가 묻는 것처럼 우리가 예수님의 보혈로 우리의 죄를 깨끗이 씻고 사함을 받아도 살아가면서 새로운 죄와 허물을 계속 범하기 때문입니다. 죄를 범한 손과 발을 어떻게 씻느냐? 매일매일 회개하고 기도해야 합니다. 그래야 죄에 오염된 손과 발이 깨끗하게 씻깁니다. 그리고 회개는 한 번에 끝나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인간은 매일 새로운 죄를 범하면서 살아가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회개는 주님 앞에 가는 날까지 계속해야 합니다. 목욕을 한 사람도 매일 손과 발을 씻는 것처럼 예수 그리스도의 보혈로 영적목욕을 하고 죄를 사함 받은 그리스도인도 살아가면서 죄를 짓고 허물과 실수를 범하기 때문에 매일 회개하고 기도해야 죄를 용서받고 깨끗한 심령이 된다는 것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말씀을 맺겠습니다. 첫째, 예수님은 사랑과 섬김의 본을 보여주시려고 제자들의 발을 씻어주셨습니다. 그리스도인은 섬김을 받는 사람이 아니라 예수님처럼 섬기는 사람으로 살아야 한다는 것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둘째, 예수님은 처음부터 가룟 유다의 배신을 아시고도 끝까지 사랑하셨습니다. 그리스도인은 예수님처럼 배신자와 우리를 섭섭하게 한 사람에게도 사랑과 은혜를 베푸는 삶을 살아야 한다는 것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셋째, 목욕한 사람도 손과 발을 씻는 것처럼 예수님의 보혈로 영적 목욕을 하고 죄를 사함 받은 그리스도인도 매일 회개하고 죄를 씻어야 한다고 말씀드렸습니다. 목욕을 한 사람도 수시로 손과 발을 씻고 매일 손과 발을 씻는 것처럼 살아가면서 범하는 크고 작은 죄를 매일 회개해야 씻음 받고 용서받는 다는 것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우리가 하나님 앞에 갈 때 무엇을 가지고 갈까요? 재물을 가지고 가고 명성을 가지고 갑니까? 우리가 하나님께 가지고 가고 우리가 하나님 앞에 내놓을 수 있는 것은 신앙의 열매인 사랑과 구제와 섬김과 봉사밖에 없습니다.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사랑과 섬김의 본을 보여주시려고 제자들의 발을 씻어주셨습니다. 예수님의 사랑과 섬김을 본받아 많은 사람들에게 사랑과 섬김과 봉사를 베푸시고 하나님의 사랑을 실천하시는 성도 여러분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2020, 1, 2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