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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의롭고 지혜로운 히브리 산파

진리의증인 2020. 1. 17. 07:45

이 정만 목사

블로그(네이버:논산동산교회, 다음:논산동산교회)

 

@메시지290(설208)                       정의롭고 지혜로운 히브리 산파

 

15애굽 왕이 히브리 산파 십브라라 하는 사람과 부아라 하는 사람에게 말하여 16이르되 너희는 히브리 여인을 위하여 해산을 도울 때에 그 자리를 살펴서 아들이거든 그를 죽이고 딸이거든 살려두라 17그러나 산파들이 하나님을 두려워하여 애굽 왕의 명령을 어기고 남자 아기들을 살린지라 18애굽 왕이 산파를 불러 그들에게 이르되 너희가 어찌하여 이같이 남자 아기들을 살렸느냐 19산파가 바로에게 대답하되 히브리 여인은 애굽 여인과 같지 아니하고 건장하여 산파가 그들에게 이르기 전에 해산하였더이다 하매 20하나님이 그 산파들에게 은혜를 베푸시니 그 백성은 번성하고 매우 강해지니라 21그 산파들은 하나님을 경외하였으므로 하나님이 그들의 집안을 흥왕하게 하신지라 22그러므로 바로가 그의 모든 백성에게 명령하여 이르되 아들이 태어나거든 너희는 그를 나일 강에 던지고 딸이거든 살려두라 하였더라” (출애굽기 1:15-22)

 

서론: 어느 날 애굽(이집트) 왕이 히브리 산파들을 불러 “너희가 히브리 여인의 해산을 도울 때에 잘 살펴서 태어난 아기가 아들이거든 죽이고 딸이거든 살려두라”고 명령했습니다. 그러나 산파들은 하나님을 두려워하여 태어난 남자 아기들을 계속 살려두었습니다. 왕은 다시 산파들을 불러 “너희가 어찌하여 이같이 남자 아기들을 살려두었느냐?”고 물었습니다. 그러자 산파들은 “히브리 여인은 애굽 여인과 달리 건장해서 산파가 그들에게 도착하기 전에 해산하여 어떻게 할 수 없었습니다.”라고 대답했습니다. 산파들의 지혜로운 대답에 왕은 책망할 말이 없었습니다. 성경은 하나님의 축복으로 히브리 산파들은 집안이 부흥하는 복을 받았고 히브리인은 큰 민족으로 번성했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이 시간에는 “정의롭고 지혜로운 히브리 산파”라는 제목으로 은혜를 받고자 합니다.

 

1. 히브리 산파들은 왕의 부당한 명령을 거부하고 불복종한 정의의 사도들입니다.

   어느 날 애굽 왕은 히브리 산파를 불러 “남자 아기가 태어나면 죽이고 여자 아기가 태어나면 살려두라”고 명령했습니다. 애굽 왕이 왜 그런 명령을 내렸느냐? 애굽에 있는 히브리인이 너무 많아졌기 때문입니다. 애굽 왕이 걱정을 해야 할 정도로 히브리인이 큰 민족으로 번성한 것입니다. 히브리인이 어떤 민족입니까? 히브리인은 아브라함의 후손으로 이스라엘 민족을 말합니다. 아브라함의 후손인 히브리인은 애굽과 가나안의 7년 흉년에 애굽의 국무총리로 있던 요셉의 초청을 받아 애굽으로 이주했습니다. 요셉이 7년 흉년에서 그의 가족을 구원하기 위해 가나안에 살고 있던 그의 아버지 야곱과 야곱의 자손 70여 명을 애굽으로 초청했는데 이들이 4백여 년 후에 애굽에서 큰 민족으로 번성한 것입니다.

   애굽에 정착한 아브라함의 후손은 요셉이 국무총리로 있을 때는 어려움이 없었지만 요셉이 죽고 요셉을 알지 못하는 새로운 왕이 애굽을 다스리면서 아브라함의 후손은 애굽에서 노예와 하인의 신분으로 전락했습니다. 그러나 아브라함의 후손은 애굽의 박해와 탄압에도 불구하고 인구가 급속히 증가했습니다. 그래서 애굽 왕이 히브리인이 증가하는 것을 막기 위해 히브리인의 남자아기가 태어나면 죽이라고 분부한 것입니다. 그러나 히브리 산파들은 왕의 명령을 거부하고 사내아이들을 계속 살려두었습니다. 산파가 어떤 사람이냐? 산파는 산모의 해산(解産)을 도와주는 일을 하는 조산원(助産員)을 말합니다. 산모의 해산을 도와 어린 아기의 생명을 돌보는 산파가 어떻게 갓 태어난 아이를 죽일 수 있겠습니까? 그래서 산파들이 왕의 명령을 거부하고 사내아기들을 계속 살려둔 것입니다.

   히브리 산파들이 우리에게 주는 교훈이 무엇입니까? 하나님 말씀과 하나님 뜻에 역행하고 정의와 진리를 거스를 때는 어떤 명령과 압력도 거부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왕이든지, 대통령이든지, 회사 사장이든지, 누구든지 불의하고 부당한 명령을 하고 신앙과 양심에 반하는 지시와 요구를 할 때는 히브리 산파들처럼 거절해야 합니다. 옛날에 왕의 명령보다 절대적인 권위를 가진 법은 없습니다. 왕의 명령을 거역하면 죽임을 당할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히브리 산파들은 왕의 명령에 복종하지 않았습니다. 왜냐하면 왕의 명령이 악하고 불의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아모스 5:24,에서 “오직 정의를 물 같이, 공의를 마르지 않는 강 같이 흐르게 하라”고 말씀하셨습니다. 하나님은 사랑의 하나님이시지만 동시에 불의와 죄악을 보시면 분노하시는 정의의 하나님입니다. 히브리 산파들은 왕의 부당한 명령을 따르지 않은 정의의 사도들이었습니다. 그리스도인은 히브리 산파들처럼 불의한 명령과 부당한 압력을 거부하고 하나님 말씀과 하나님 뜻을 따라야한다는 것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2.히브리 산파들은 하나님 두려운 줄을 아는 지혜로운 여인들이었습니다.

   애굽 왕이 히브리 산파들에게 “아이가 태어날 때 아들이거든 죽이고 딸이거든 살려두라”고 명령했지만 산파들은 남자 아기들을 계속 살려두었습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이 두려웠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이 두려워서 어린 아기들을 죽일 수 없었던 것입니다. 지혜가 무엇이냐? 성경은 시편 111:10,에서 “여호와를 경외함이 지혜의 근본이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여호와를 경외한다는 말이 무슨 뜻이냐? 하나님을 공경하고 하나님을 두려워한다는 뜻입니다. 하나님을 공경하고 하나님 두려운 줄 아는 사람이 지혜로운 사람인 것입니다. 히브리 산파들은 하나님 두려운 줄을 알았습니다. 그래서 왕의 명령을 거역하고 남자 아이들을 계속 살려둔 것입니다. 사람이 하나님 두려운 줄을 알아야 겸손해지고, 하나님 두려운 줄을 알아야 불의한 압력을 거부하고, 그리스도인답게 바르게 살아가는 것입니다.

   산파들도 애굽 왕이 두려웠을 것입니다. 그러나 산파들에게 하나님은 애굽 왕 보다 더 두려운 분이었습니다. 그래서 왕의 명령을 거역한 것입니다. 산파들이 하나님에 대한 두려움이 없었다면 애굽 왕의 명령을 따랐을 것입니다. 그리스도인은 하나님 두려운 줄을 알아야 합니다. 그리스도인이 하나님 두려운 줄을 모르기 때문에 죄를 짓고, 불의하고 악한 일을 하는 것입니다. 성경은 시편 1:1,에서 “복 있는 사람은 악인의 꾀를 따르지 아니하며, 죄인의 길에 서지 아니하며, 오만한 자의 자리에 앉지 아니한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어떤 사람이 복 있는 사람이냐? 히브리 산파들처럼 악하고 불의한 일에 참여하지 않는 사람이 복 있는 사람입니다. 죄를 짓고 죄의 종이 되어 부귀영화를 누리는 것은 절대로 복이 아닙니다. 죽으면 지옥에 가는데 이 땅에서 잠시 누리는 죄악의 부귀영화가 무슨 가치가 있겠습니까? 하나님 두려운 줄 알고 하나님 앞에 바르고 진실하게 행하는 사람이 복 있는 사람이라는 것을 명심하셔야 합니다.

   다음으로 히브리 산파들의 대답이 얼마나 지혜롭습니까? 애굽 왕이 산파들에게 “너희가 어찌하여 남자 아기들을 살려두었느냐?”고 묻자 “히브리 여인은 애굽 여인과 같지 아니하고 건장하여 산파가 그들에게 도착하기 전에 해산하였나이다.”라고 대답했습니다. “히브리 여인들은 건강해서 산파가 도착하기도 전에 아이를 해산했는데 어떻게 아이들을 죽일 수 있겠느냐?”고 대답한 것입니다. 왕은 산파들의 말을 믿지 않았지만 공개적으로 처벌을 할 수 없었습니다. 왜냐하면 산파들에게 내린 명령이 정당하지 않다는 것을 왕 자신도 알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히브리 여인은 건강해서 우리가 해산장소에 도착하기도 전에 해산을 끝냈는데 어떻게 하겠느냐?”는 대답에 왕은 할 말이 없었습니다. 왕이 반박할 수 없도록 히브리 산파들에게 지혜로운 대답을 주신 분이 누구냐? 하나님입니다. 하나님께서 산파들의 입에 지혜로운 말을 주신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열두 제자를 복음 전도자로 파송하시면서 “사람들이 너희를 넘겨 줄 때에 어떻게 또는 무엇을 말할까 염려하지 말라, 그 때에 너희에게 할 말을 주시리니 말하는 이는 너희가 아니라 너희 속에서 말씀하시는 이 곧 너희 아버지의 성령이시니라.”고 말씀하셨습니다(마태복음 10:19-20). 제자들이 복음을 전하다가 붙잡혀 재판을 받거나, 왕이나 관리들 앞에 서게 될 때에 무슨 말을 하고 어떻게 대답을 할까 염려하지 말라는 말씀입니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 제자들의 입에 필요한 말을 주시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히브리 산파들에게 왕이 반박할 수 없는 지혜로운 말을 주셨습니다. 그리고 “히브리 여인들은 건강해서 산파들이 도착하기 전에 해산을 했다.”는 산파들의 주장이 사실일 수도 있습니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 가나안에 살고 있던 아브라함의 후손을 큰 민족으로 번성시키기 위해 애굽으로 불러들이셨기 때문입니다. 옛날에 애굽은 세상에서 양식이 가장 풍족했습니다. 아브라함의 후손을 큰 민족으로 번성시키기 위해 양식이 풍족한 애굽으로 불러들이신 하나님께서 히브리 여인들이 많은 자손을 낳도록 특별한 건강을 주셨을 수도 있습니다. 실제로 히브리 여인들이 건강해서 산파들이 도착하기 전에 해산을 했을 수도 있는 것입니다.

   히브리 산파들은 하나님을 두려워했습니다. 히브리 산파들처럼 하나님 두려운 줄을 아는 사람이 지혜로운 사람이며 하나님 두려운 줄 아는 사람이 신앙과 인생에 승리합니다. 그리스도인은 히브리 산파들처럼 하나님 두려운 줄 알고 하나님 앞에 정의롭고 진실하게 행하셔야 한다는 것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3.하나님은 히브리 산파들에게 은혜를 베푸시고 축복해주셨습니다.

   본문 20절에 “하나님이 그 산파들에게 은혜를 베푸시니 그 백성은 번성하고 매우 강해졌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산파들에게 은혜를 베푸셔서 아브라함의 후손인 이스라엘 민족이 번성하고 강한 민족이 되었다는 말씀입니다. 하나님께서 왜 히브리 산파들에게 은혜를 베푸셨느냐? 아브라함의 후손을 큰 민족으로 만드시기 위해서입니다. 본문에 등장하는 히브리 산파 ‘십브라’와 ‘부아’라는 사람은 히브리 산파들의 우두머리와 책임자들입니다. 이들이 히브리 산파들을 감독하고 관리한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히브리 산파들에게 은혜를 베푸시고 지켜 보호해주셨기 때문에 그들은 열심히 히브리 여인의 해산을 도왔고, 신생아가 잘 태어나고 잘 자라서 히브리인이 큰 민족으로 번성한 것입니다.

   다음으로 히브리 산파들은 그들의 가정이 축복을 받았습니다. 본문 21절에 “그 산파들은 하나님을 경외하였으므로 하나님이 그들의 집안을 흥왕하게 하셨다.” 말씀하고 있습니다. 산파들이 히브리 여인의 해산을 도와 히브리인이 크게 번성하자, 하나님께서 그에 대한 보상으로 산파들의 가정을 축복하신 것입니다. “하나님이 그들의 집안을 흥왕하게 하셨다”는 말씀은 하나님께서 히브리 산파들을 축복하사 그들의 가정과 자녀들이 번성하고 잘 되었다는 뜻입니다. 하나님 일에는 절대로 공짜가 없습니다. 하나님께서 반드시 보상해주시고 축복해주십니다. 하나님을 사랑하고, 하나님을 섬기고, 하나님을 위해 봉사하는 방법이 무엇이냐? 하나님 일군과 하나님 백성을 사랑하고 섬기고 봉사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하나님 일군과 하나님 백성을 섬기고 봉사하고 사랑하는 행위를 하나님에 대한 사랑과 섬김과 봉사로 받아주시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아브라함에게 “너를 축복하는 자에게는 내가 복을 내리고 너를 저주하는 자에게는 내가 저주하리니 땅의 모든 족속이 너로 말미암아 복을 얻을 것이니라.”고 말씀하셨습니다(창세기 12:3).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하신 약속과 축복은 시공을 초월하여 모든 하나님 백성에게 주신 하나님의 약속과 축복입니다. 하나님 백성을 축복하고 도와주면 하나님께서 축복으로 갚아주시고 하나님 백성을 대적하면 하나님께서 그 사람에게 저주를 내리신다는 말씀입니다. 그러므로 히브리 산파들처럼 고난과 어려움 가운데 있는 하나님 백성에게 사랑과 은혜를 베풀고 돌보고 도와줘야 하나님의 은혜와 축복을 받는 것입니다.

   다음으로 히브리 산파들이 거짓말을 했다고 주장하는 영적푼수들이 있습니다. 그런 주장을 하는 사람들은 생각과 지혜가 많이 부족하고 어리석은 인간들입니다. 자! 갓 태어난 어린 생명을 죽이는 것이 정의입니까? 살리는 것이 정의입니까?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의 후손을 왜 애굽으로 불러들이셨습니까? 양식이 풍족한 애굽에서 큰 민족으로 번성시키기 위해 불러들이셨습니다. 그러므로 갓 태어난 어린 아기를 죽이는 것은 하나님을 대적하고 하나님 뜻에 역행하는 죄악입니다. 하나님께서 히브리 산파들을 축복하신 것은 거짓말을 해서 축복하신 것이 아니라 그들이 하나님 뜻을 행하고 하나님 백성들에게 사랑과 자비를 베풀었기 때문입니다. 이것이 “거짓말이냐? 아니냐?” 고민하고 논쟁할 필요가 없습니다. 하나님 말씀과 하나님 뜻에 합당하게 행하면 그것이 최고의 정직과 진실이며 최고의 정의입니다.

   십계명의 “거짓말하지 말라.”는 말씀이 불의와 죄악에 굴복하고 사탄 마귀에게 미주알고주알 일러바치라고 주신 말씀입니까? 목사와 성도들 중에는 지혜와 분별력이 부족한 사람들이 많이 있습니다. 율법이나 성경을 해석할 때는 어떤 동기와 목적에서 이 율법을 주셨는지 율법을 제정한 정신으로 돌아가 율법을 해석해야 합니다. 원수 마귀에게 정직하게 일러바쳐서 예수 믿는 사람들 잡혀가고 죽게 하시려고 “거짓말하지 말라”는 계명을 주셨을까요? 예수 믿는 사람이 “주어진 상황에서 어떻게 하는 것이 하나님의 뜻인지?” 최소한의 분별력은 있어야 하지 않겠습니까? 히브리 산파들처럼 하나님 백성을 사랑하고 하나님 말씀과 하나님 뜻대로 행하셔야 하나님 상을 받고 하나님 축복을 받는다는 것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말씀을 맺겠습니다. 첫째, 히브리 산파들은 부당한 왕의 명령을 거부하고 불복종한 정의의 사도들이었다고 말씀드렸습니다. 하나님 말씀과 하나님 뜻에 역행하면 왕이나, 대통령이나, 부모나 누구의 명령과 청탁이든지 거부해야 한다는 것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둘째, 히브리 산파들은 하나님 두려운 줄을 아는 지혜로운 여인들이었습니다. 세상에서 가장 지혜로운 사람은 하나님 두려운 줄을 아는 사람입니다. 그리스도인은 히브리 산파들처럼 하나님을 두려운 줄을 알고 하나님을 경외하는 지혜로운 성도가 돼야 한다는 것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셋째, 하나님은 히브리 산파들에게 은혜를 베푸시고 축복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 히브리 산파들을 왜 축복해주셨습니까? 히브리 산파들이 하나님을 두려워하여 왕의 명령을 거역하고 하나님 뜻대로 행했기 때문입니다. 히브리 산파들이 거짓말을 해서 축복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 뜻에 합당하게 행하고 정의와 진리 가운데 행했기 때문에 축복하신 것입니다. 히브리 산파들처럼 하나님 말씀과 하나님 뜻에 합당하게 행하셔서 신앙과 인생에 승리하시는 성도 여러분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2020, 1, 19.